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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당장 사랑을 멈춰주세요, 제발
051 고독한 순환을 즐기는 검은 유체 097 평론 | 노지영(문학평론가) 113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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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의 첫째 아이는 자신의 어머니가 성스러운 투쟁을 통해 쟁취해 낸 법적 성과 덕분에 제 어머니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당장 ‘태어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제 부모를 무력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루시 부부는 마약과 같은 위안에 중독되어 자식의 양육에 소홀한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에 루시의 첫째 아이, 또는 그녀의 변호사는 주정부를 상대로 배상금을 청구할 순 없었다.
--- 「당장 사랑을 멈춰주세요, 제발」 중에서 H는 17살 어느 날 갑자기 흑인이 됐다. 그러자 흑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말한 여자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수십 년 전 이미 그녀가 죽음으로써 치욕을 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몹시 쓸쓸해졌다. --- 「고독한 순환을 즐기는 검은 유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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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운명에 저항하며 자율적 선택을 통해 주체성을 찾아나가는 서사는 고대의 신화에서부터 오늘날의 서사에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효력을 발휘하는 매력적인 얼개다. 루시의 장애는 루시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천적 불운인 것인데, 루시의 어머니는 이러한 불운과 절연하기 위해서 최초의 선택을 한다. 절멸과 출산 사이에서 절멸을 결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인간의 결심은 인간의 나약함과 주변의 관계 속에서 방해된다. 그리고 그 선택을 첫 번째로 좌초시키는 것은 바로 사랑하는 대상이다.
김솔이 그리는 이방인의 모습들은 특정 인종의 집단적인 정체성으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상대적이고 조건부적인 환대 시스템 속에서 타인에 대한 태도는 분화될 수밖에 없다. 능력주의의 이상 속에서 적극적인 환대를 받는 흑인이 있고, 세계화의 하인들로 열등하게 취급받는 흑인집단이 있다. 이들 흑인은 주류 문화의 투사 속에서 동물적이고 야만적인 모습으로 재현되기도 하고, 신비화되고 대상화되어 나타나기도 하며, 때로 결핍된 타자들로 묘사되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타자의 시선과 통념 속에서 ‘흑인’과 ‘진정한 흑인’이 구분되며, 순혈한 인종의 본질적인 특징은 해체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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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암흑이 되어갈수록 검은 유체를 포착하는 시력은 어두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김솔의 작품엔 이러한 노래의 흔적과 추락의 자국들이 점점 더 선명해져 가고 있는 듯하다. 한때 이름을 가진 적 있으나, 이제는 가장자리로 밀려나 이름조차 박탈당한 익명의 도착자들을 향해 작가는 적극적으로 접촉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검은 유체들’이 태어난 관계 맥락들이 떠오르고, 불가해한 이방인의 세계가 개시된다. 부적자와의 거리와 척력의 긴장 속에서 새로운 문장은 탄생하고, 의미의 가계도도 낯설게 펼쳐진다.
- 노지영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