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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핸드폰 핸드폰 편의점에서 긋는 곡선 무의 셈본 붉은 색실로 지은 시간 바람바퀴를 단 기형물 호떡 굽는 날 하일 히틀러 금고기를 보내며 숭선에서 텔레비전 버리기 평론 1 방민호/ 헐벗고 굶주린 정신에 대한 보고 - 강준용 씨의 [숭선에서] 평론 2 이태동/ '본능적 욕망의 덫'과 '인간 가치의 상실' 평론 3 임헌영/ "강준용의 소설" 읽기 평론 4 김성수/ '붉은여우'의 경계선을 넘어서 작가 단상. 유민/ 전설의 소설가에 대한 단상 - 강준용을 말하다 작가와 작품 연보/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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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속이 강한 여울에 파리 낚시를 드리워 놓고 놈들이 입질하길 기다린다. 맑고 투명한 여울살을 가르고 물의 흐름에 역행하는 날렵한 피라미는 내 몸의 때가 절로 벗겨질 듯이 찬란하다. 놈들의 무리가 물살의 파문 아래 어른거리는 것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놈들과 친숙하다. 구슬프게 흐느끼는 음파의 파장처럼 햇살이 일렁이는 수면을 투과하여 물속으로 녹아들 때 놈들은 물보라로 만든 실루엣의 커튼을 걷고 신비스러운 실체를 드러낸다. 굴절된 햇살이 놈들의 무리들을 슬쩍 비추면 은빛 찬란한 놈들의 몸체가 거울에 반사되는 빛처럼 번쩍거리며 나를 벅찬 감정으로 몰아넣는다. 놈들은 그 경쾌하고 신비한 은빛으로 내 미끼를 물고, 나는 은빛 하나를 낚아챈다. 밖으로 끌려 나온 놈은 신비하기 그지없다.
은빛 비늘에 가는 회색 줄무늬를 양쪽에 박은 날렵한 몸체가 백 미터 출발을 앞둔 주자의 유니폼처럼 금방이라도 바람을 가를 듯하다. 낯선 세상을 본 두려움에 파르르 몸을 떠는 놈의 경악에 애처로움보다 허공에 날리는 은빛 날개의 우아함에 황홀감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놈의 아가미에 손가락을 넣어 고정시킨 뒤 엄지로 아가미 밑 가슴을 눌러 그대로 배를 갈라 내장을 훑어 낸다. 인간 세상이 싫은지 뭍으로 나오면 금방 죽어 부패되는 놈을 위해 신비한 아름다움을 보존케 하는 의식이다. 놈은 배를 갈리고 나부라진 뒤에도 생전의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반듯한 돌 위에 진열되어 말라가는 놈들은 아직도 살아 있는 우아한 형태로 나를 유혹한다. 오염되지 않는 물에서만 존재할 능력을 얻은 피라미는 하급수에서는 생존하지 못한다. 오급수 이하인 인간 세상에 나와 물 속의 형태 그대로 박제가 된 놈을 보고 나는 경탄을 한다. 놈들은 죽어서도 자신의 몸체를 변질하지 않는 신비성을 지닌 것이다. --- pp.21-22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가 염불처럼 웅얼거리며 셈을 세는 어머니의 음성을 만들었다. 그는 이끌리듯이 베란다로 나가 문을 열었다. 어둠을 휘젓던 바람이 그를 향해 불어쳤다. 박하에 혼류된 냉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맑아졌다. 온갖 고뇌와 갈등으로 오염된 그의 몸체가 그 바람에 녹는 것을 만끽하며 베란다의 난간에 올라섰다. 별이 든 밤하늘이 그를 향해 펼쳐졌다. 순간, 그는 몸속에 잔재해 있는 불규칙적인 사고가 다림질 받은 이불 홑청마냥 펴지는 걸 느꼈다. 하나 둘 다섯, 그는 우습잖게 헤어지는 셈을 하면서 어둠과 바람을 향해 몸을 띄웠다. --- p.98 “어이 친구, 자네야말로 임신한 소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함께 사는 여자와 살았겠는가.” 미립자의 사내가 나를 바라보며 능글거렸다. “아마―.” 나는 그랬을 거지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넌 지금 그랬을 거지라는 말을 안 하지. 니가 하는 말에 변명할 대책을 강구하지 말어. 니가 할 수 있는 가장 편안한 길은 니가 진실의 소리를 말하는 거야. 니 가슴에 새겨지는 그 활자를 그대로 발설하는 거야. 그걸 지우려 하지 마. 지우면 넌 그 순간부터 지운 것을 후회하면서 지운 것을 재생시키느라 고통을 받을 거야.” 미립자의 사내는 아직도 땅에 발을 붙이고 있지 않았다. 그의 몸은 허공에 한 치 정도 떠 있었다. 그의 발바닥에 달린 작은 추진 로켓이 그를 부유시킨다고 생각했다. --- pp.152-153 드르륵―. 황장윤 씨가 창고에 갔을 때 임신한 소녀는 엎드려 있었다. 황장윤 씨는 창고 안에 농약을 둔 것을 후회했다. 임신한 소녀의 머리맡에 있는 농약병은 비어 있었다. 나는 수레에 농약병을 주워 담았다. 우유는 없다. 갑자기 내 몸이 가벼워졌다. 발이 구름을 딛는 듯 푹푹 꺼져 들었다. 허공의 땅을 지나는 수레바퀴도 바람으로 만들어졌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함께 사는 여자는 옆을 따르며 비틀어진 손을 떨었다. 아이를 지워 버리고 절뚝거리며 과수원으로 들어가던 임신한 소녀가 내 옆에 있었다. 나는 발목이 없는 나의 기형을 함께 사는 여자한테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분산된 내 영혼에 자유를 주고 싶었다. --- p.157-158 느닷없이 바다가 그리웠다. 너른 바다를 향해 나가고 싶었다. 그때였다. 그의 앞에 검푸른 노도가 달려들었다. 항상 그를 덮치려고 위협한 격랑의 파도였다. 차를 몰아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세상의 소음을 소멸시키기 위해 파도 소리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파도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를 찾는 아내의 음성도 그를 부르는 아이들의 목청도, 그리고 월말마다 그를 기다리며 애걸해 대는 뭇사람들의 발성도 먼 시절에 지나간 바람소리로 남아 흘렀다. 그는 등지느러미를 바짝 세우고 파도를 향해 유형의 몸짓을 띄웠다. 윤활유가 발린 통로를 지나듯이 그의 몸이 날쌔게 파도를 갈랐다. 둘째는 아직도 제 어미의 탯속에서 그를 투시하며 있었다. --- pp.226-227 젊은 시기의 경계선 통과는 신비적인 흥분으로 내 몸을 들뜨게 했다. 무심코 통과한 30대에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사회생활에 만족했기에 관심 없이 스쳤다. 세 번째 통과한 사십대는 빗속과 마른 선에 대한 분역 지구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빈곤에 젖은 나에게 마지막 통과한 경계선의 의미는 무의미했고, 마른 옷이나 진 옷이나 내게는 그걸 고를 여유가 없었다. --- pp. 229-230 첨단문명과 교활한 문화로 물든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부터 온 나란 관조자가 그 어떤 술수로든 넘지 못할 경계선을 보고 있었다. 경계선 저쪽에는 나를 홀리는 붉은여우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바라는 희망들이 내 곁이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한다고 여겼다. 늘 경계선을 넘으려 한 것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본 그리고 내가 겪은 현재에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왠지 모른다. 풍부한 물질과 첨단 문명 속에 존재하는 나를 발견키 위해 나는 붉은여우가 거주하는 경계선을 넘었다. 그러나 나는 이 사회가 내세우는 그 문명으로 인해 근거지를 찾지 못하고 헤맨다. --- pp. 248-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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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 핸드폰
첨단 사회에 점령당한 인간의 근원을 지키는 몸부림을 그렸다. 작가는 물질적인 유혹에 움직이는 인간을 개미 떼의 움직임에 비유하고 현대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난 자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화자(話者)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극적으로 제시하면서 기계화로 인해 인간이 로봇으로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 편의점에서 긋는 곡선 비정한 사회에 의해 순애성을 상실하며 물질사회에 침식되어가는 과정을 잡았다. 단편소설의 미학을 보다 탁월하게 구체화한 작품이다. 특히 치밀한 갈등 구조를 가지고 독자들을 긴장감 속에 끝까지 끌고 가서 도덕성을 지닌 놀라운 반전의 효과를 보여주는 작가의 뛰어난 재능을 볼 수 있다. ● 무의 셈본 완벽한 구성과 통일된 주제, 주제의식이 탁월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무의 셈본」역시 치열한 경쟁을 위주로 한 한국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물신주의(物神主義)가 인간을 어떻게 마비시켜 죽음으로 몰아넣는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치가 물질 만능주의로 무너지는 과정을, 치매를 앓는 화자의 어머니가 동전을 셈하는 상징적인 은유를 통해 나타내고 있는 것은, 실로 놀라운 문학적 성취이다. ● 붉은 색실로 지은 시간 존재를 위해 일상적으로 위선을 해야 하는 오늘날 사람들의 보편성을 담았다. 이 작품의 플롯은 단순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감상적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플래시백(flashback) 기법과 불가항력적인 시대적인 흐름에 저항해서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를 지키려는 아버지의 처절한 노력에서 오는 긴장감에 대한 리얼한 묘사와 창백한 누님의 내면적인 고통과 슬픔을 지적인 언어로 형상화한 붉은 노을의 시간과 코스모스 꽃의 이미지들이 이 작품을 미학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 바람바퀴를 단 기형물 실존과 의식세계의 공존이 현실이라는 점을 그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화자의 비도덕적인 문제로 야기되는 심리적 갈등 문제를 지극히 난해한 은유적인 방법과 거울의 기능을 하는 병치적인 대위법(對位法)을 통해 미묘하게 조명하고 있다. ● 호떡 굽는 날 사람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몰락하는 현 사회의 물질문명의 폐단을 사실적으로 묘사, 돌출시킨 사회적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 하일 히틀러 물질보다 자연에 근속하려 드는 순수한 자가 몰락되어야 하는 근거를 보였다. 한국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물질주의와 그것이 가져온 환경 파괴가 인간 의식에 어떠한 외상(外傷)을 가하고 있는가를 극적으로 그림으로써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 금고기를 보내며 작가는 본능적인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지나친 물질적 탐욕에 몸을 맡기게 되면, 평화를 잃고 자멸하게 된다는 것을 시간을 초월한 동화적인 상상력을 통해서 보여주는 한편, 물질의 노예로 전락되는 현장을 부유시켰다. ● 숭선에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인간 가치가 지나친 물질적 욕망에 의해 무참히도 황폐화된 현실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잔인한 도시인 서울을 떠나 자작나무 숲을 지나 서 있는 오염되지 않은 땅, 숭선으로 가서 평화롭고 조화로운 자연을 품에 앉고 있는 두만강 건너 마을을 바라보며, 또 한 번 경계선을 넘어 새로운 삶을 꿈꾼다. ● 텔레비전 버리기 순수의 근원인 자연 질서를 지키는 자가 퇴보당하는 모습을 그렸다. 주인공은 상업주의적 경쟁사회에서 기능 상실로 버림을 당하는 과정을 비춰 주는 거울의 이미지 내지 객관적 상관물이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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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아일랜드의 위대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그의 첫 창작집 『더블린 사람들』을 쓰고 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의도는 조국의 도덕적 역사의 한 장(章)을 쓰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한 풍경으로 더블린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그 도시는 마비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강준용의 소설집 《숭선에서》역시 현실적 물질주의로 마비된 도시 서울의 풍경을 그의 독특한 시각과 수사학을 통해서 탁월하게 그리고 있다. 물론 이 소설집에 엮어져 있는 작품들은 각각 독립된 하나의 단편이지만, 근본적인 주제는 인간이 기계문명과 물질에 대한 본능적인 욕망의 덫에 걸려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인간 가치를 상실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에 초점을 두고 휴머니즘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또한, 인간 가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말하기 위해 지나친 물질주의에서 비롯된 정글 법칙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실상을 정확히 묘사한 작품집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작가 강준용은 다크호스로서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우수하고 한결 수준 높은 숨은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이 소설집에서 우리 사회에서 휴머니즘을 억압하는 광적인 물질주의 내지 상업주의가 가져온 반인간적인 현상을 사실주의적이면서도 지적으로 묘사하는 데 있어서 남다른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뿐만 아니다. 그는 일정한 관념과 이미지를 통해서 작품에 통일성을 부여함은 물론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지적인 충격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 수 있다. 200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베드」당선으로 왕성한 창작을 하고 있는 작가 유민(본명 김성군)은, 작가 강준용에 대해 “전설의 소설가”라고 하였다.‘순수문학을 목숨처럼 사랑했기에 하루 라면 한 끼로 얼음장 같은 세 평 남짓한 방안에 30여 년을 틀어박혀 곱은 손 입김으로 녹이며 글을 쓰던 소설가가 있었다.한때 땅을 밟지 않고 살았을만치 남부러울 것 없던 부잣집 아들이었던 그.연극에 미쳐 대학로를 평정하고 뒤이어 소설에 미쳐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했던 청년.이디오피아 난민을 본 적이 있는가? 뼈대만 남은 그들의 처절한 삶. 그를 떠올리면 이디오피아가 겹쳐진다.그를 볼 때마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를 떠올린다. 광기와 죽음 앞에서조차 처연한 순수문학의 정수로 외길을 걷던 문학청년, 그가 바로 강준용이다.’ -전설의 소설가에 대한 단상(斷想)<유민(소설가)>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