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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꼬 여숙
최요안
중앙m&b 200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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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신씨 때문에 내가 미쳐, 미쳐!
한 겨울밤의 합창
정수가 기다리는 봄
윗집 신씨네의 새 천년
정수의 이별 연습
첫 미사 준비
첫 미사의 설렘
수로원 박씨와의 오찬
먹어도 먹어도 남는 것
할아버지, 또 올게요
산에서 내려온 친구
정말 결딴이 났으면 좋겠는데
드디어 '최씨'가 된다
여장규칙
마을 대청소하던 날
학교 앞 풍경
신씨 대문에 내가 미쳐, 미쳐!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
어른들의 왕따
하수관과 잡석 무더기의 변신
용수의 작은 꿈
두 팔이 좀 짧은 남자
황씨네 잔칫날
개신교 목사와 천주교 선교사의 입관 에큐메니컬
부끄러운 날
신씨네 집의 경사

2. 검은 스타킹의 성자
물놀이 보조교사
감자 라면
현우 스님과의 만남
검은 스타킹의 성자
여름의 산타클로스
성자에게서 받은 선물
시골 사진관 아저씨
비오는 날의 사랑 고백
옥수수와 고구마 품삯
사랑의 배달부
한나네 집의 고민
아, 행복한 가을!
야생동물은 살아있다
한나와 경민이의 선물
동가식 서가숙
산골의 설해
총각 반장님의 중국 나들이
눈 덮인 산골의 아이들
토끼, 꿩, 노루의 겨울
수희네도 자가용 샀다

3. 마지아 할아버지를 보내던 날
이거 예비자 교리반 맞아?
물아, 너 오랜만이다
오해는 하는 사람의 몫이라지만
때묻은 장난감 선물
축, 석가탄신일
마지아 할아버지를 보내던 날
다래끼 허러에 차고 이삭줍기
일일 '슈퍼 맨'
올 봄엔 왜 이리 궂은 일이 많은지
비 온 날 아침의 단상
서울서 내려온 단풍나무
아이들아 모여라!
의용소방대 신고식
수희네의 때 이른 바다 나들이
그렇다면 선교사이고 싶지 않다
현우 스님과의 재회
길고 긴 하루, 7.23 수재
별 일 없으세요?
수로원 · 집배원과의 한담

4. 이별 연습
'기적' 연습
운병이네 집의 다 아는 비밀
엄마 놀이
컴퓨터 수집 나들이
잠 못 이룬 10월의 마지막 밤
배추장사
명동에서도 미사가 똑같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빨간 소방차 나들이
젊은 운병이 엄마의 죽음
꽃상여 타고 가신 운병이 엄마
왜 손가락이 안 돌아가지?
불발로 그친 목욕 미팅
한가한 겨울 바쁘게 나기
겨울의 짧은 해
삶이 바쁜 농한기
가는 겨울이 아쉬운 까닭
이별 연습
말없는 동행들

저자 소개

저자 : 최요안
1957년 강원도 횡성군에서 태어났다. 1983년 조선일보 기자 생활을 시작으로 평화신문 편집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부장을 거쳤으며 1992년 재속 프란치스꼬회에서 종신서약을 한 후 1999년 가톨릭 교리신학원을 졸업했다. 교리신학원 졸업 후 천주교 기린성당 상남공소에서 2년 3개월 동안 선교사로 일했으며 2002년 6월부터는 중국에서의 선교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98쪽 | 501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3757784

책 속으로

제법 비다운 비가 왔다. 처음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칠 때도 기대하지 않았다. 지난주에도 마른천둥은 여러 번 쳤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간이 정확히 밤 11시. 얼마나 비가 귀했으면 빗방울을 세는 마음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거센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내리기를 한 시간. 오랜만에 들어보는 빗소리가 즐거웠다.

얼마나 빗줄기가 굵은지 혹시 이러다 큰 물 나는 것은 아닌지, 그 동안 가뭄에 푸석푸석해진 비탈밭도 쓸려 내려갈까 걱정되었다.

새벽까지 간간이 내리던 빗줄기로 아침 공기가 촉촉했다. 상쾌한 기분으로 호미를 들고 뒷산 다락밭에 올라갔다. 그동안 물도 주지 못해 감자싹 보기가 미안해 밭에 올라가 보기를 꺼렸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에 프란치스칸 친구들이 와서 김을 맸다고는 하지만 밭에는 감자 싹 반, 잡초 반이었다. 여기 저기 싹도 나지 않은 골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손에 전해 오는 촉촉한 흙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아픈 허리를 펴가며 한 고랑 한 고랑 김을 매고 북을 주었다. 감자 싹보다 더 크게 자란 쑥대며, 민들레며, 엉겅퀴를 뽑아내며 한 마디씩 해 주었다.

---p.187

출판사 리뷰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만들어 가는, 가슴 벅찬 길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최요안 선교사. 그가 어째서 선교사의 길을 택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정보는 그의 글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하느님의 종이 되겠노라고 다짐하고 다짐했다"(「부끄러운 날」)는 말로 미뤄 대강 짐작해볼 뿐이다. 하여간, 기자 생활을 때려치운 필자가 가톨릭 교리신학원을 졸업한 다음 부임한 첫 선교지가 바로 '상남'이었다. "추운 겨울이 달갑지 않은" 필자는 "따뜻한 겨울을 가진 남해안의 어느 야트막한 마을을 마음속에 그려보곤" 했었지만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결정된 선교지는 "장애물이 가장 많은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사실"(「저자 서문」)을 일깨워주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톨릭 선교사가 선교를 위해 부임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 이야기라 해서 종교적 색채가 강한 책이라 지레 짐작할 필요는 없다. 그의 직함은 분명 선교사이고 그가 상남을 찾은 이유 역시 선교 때문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책을 이루는 가장 큰 기둥은 신앙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프란치스꼬 여숙』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 종교가 장벽이 될 수는 없다. 천주교 선교사와 스님과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덜컹거리는 산길이 정겨웠다. 기쁘게 청을 하고, 기쁘게 청을 들어줄 수 있는 스님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이것을 도반(道伴)이라고 하는 것일까."(「현우 스님과의 재회」)

필자가 상남 사람들과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라는 직함을 기꺼이 포기하였기 때문이다. "선교사님이 아닌 이웃 젊은이처럼 최씨라고 불릴 수만 있다면 내 일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드디어 '최씨'가 된다」)한 필자의 '몸 낮추기'는 그에게 많은 친구를 안겨주었다. "열 살 때부터 죽어라 농사만 지어온 51세의 농군"(「신씨네 집의 경사」) 신씨를 형님으로 모시게 되었고 첫 영성체 교리를 가르친 하남초등학교 4학년 수희로부터는 "선생님, 언제 들어오세요? 빨리 들어오세요. 보고 싶어요. 저녁때 전화주세요. 꼬-옥"(「비오는 날의 사랑 고백」)이라는 메시지를 받고 행복해 하기도 하였다.

코 찔찔이 용수로부터는 "여기저기 때가 낀 플라스틱 장난감"(「때묻은 장난감 선물」)을 선물 받고 마음의 정표로 간직하였다. 소주가 두 병이나 들어간 수박주로 신고식을 톡톡히 치르기는 하였지만 의용소방대 입대를 허락 받기도 하였다.(「의용소방대 신고식」) 동네 사람들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시신 수습 등 험한 일도 가리지 않았다. "초년 기자시절에도 사체 보는 것을 별로 탐탁히 여기지 않았었"지만 "임시로 묶어 놓은" 정수 어머니의 "시신을 풀고 얼굴과 손과 발을 알코올로 닦기"도 했다. "장갑도 안 끼고 함께 쓱쓱 닦았"지만 초년 기자시절과는 달리 염을 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았다."(「개신교 목사와 천주교 선교사의 입관 에큐메니컬」)

하지만, 그에게도 때때로 절망과 고통의 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자신은 납중독에 걸린 상태에서 어머니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외지인에게 집까지 팔아 넘긴 정수를 보며 "연신 눈물을 훔치기도"(「정수의 이별 연습」) 하고 아이 한나를 도회지의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그동안 해온 농사도 정리하고 도회지에 가서 막노동이라도 하겠다는"(「한나네 집의 고민」) 젊은 부부를 보면서도 별다른 조언을 할 수 없어 답답해하기도 하였다. 선을 보기 위해 중국으로 떠난 총각 반장 민현기 씨를 비롯해 "상남에 숱하게 널려있는"(「총각 반장님의 중국 나들이」) 그 또래 안팎의 총각들을 보면서는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도 생겼다. 운병이 엄마의 죽음을 맞이하면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쏟았다. 선교사로 나오면서 죽음 앞에서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먹었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소위 '엘리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전에는 좋은 직장에 다니며 말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을 시켜 일을 처리할 수 있었고,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살았었다는 생각이 그들 앞에서 갑자기 초라함과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부끄러운 날」)기는 부끄러운 일도 있었다. 역경은 더 있었다. 시골이라고 해서 무조건 정이 넘치는 곳만은 아니었다. "홍천농고에서 회장도 하던 똑똑한 아이 장명배 씨는, 어느 날 남의 집 부고장을 돌리다 어느 집 화장실에서 '살'을 맞고 쓰려져 죽다가 살아났다. 살기는 했지만 정신이 이상해져 동네에서도 '미친놈' 취급을 당했던 장명배 씨는 지금은 정신이 완전히 돌아와 공공근로사업에 나가 일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정신나간 사람 취급을 하고, 상남 외곽에 있는 두부 공장에서 부부가 함께 일을 해도 정신병자 취급을 하며 두 사람 월급을 한 사람 몫인 백 만원 밖에 주지 않았다"(「어른들의 왕따」)는 말을 들으며 가슴 아파 하기도 했다. "천주교 선교사가 주일마다 방아다리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강제로 차에 태워 현리 성당으로 데리고 간다"(「오해는 하는 사람의 몫이라지만」)는 모함도 받았고 의용소방대 입대를 두고 "선교사가 어떻게 특정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가"(「그렇다면 선교사이고 싶지 않다」)라는 좋지 않은 소문도 돌았다.

최요안 선교사와 한참을 부대끼면서 사람들의 행동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알코올 중독자라며 폐인으로 취급해 동네 사람들이 상대를 안 하던 K씨를 프란치스꼬 형제가 거두었다. 자포대 집 가까운 곳에 비어 있던 집을 하나 구해 여름내 보살폈으며 농사일에 따른 일당도 저금통장에 꼬박꼬박 넣어주었다. 날이 추워지자 보일러도 새로 놓아주고, 가스레인지도 새로 사주고, 냉장고도 얻어다 주고, 수도도 새로 묻어주었다. 모세 형제는 결연사업을 주선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즉석에서 전화를 걸어 자신도 한 구좌 신청을 해 버렸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필자의 가슴은 '덜컹'했다.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너무나 엄청난 변화가 이들의 가슴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내린천 사람들을 뒤로하고 이제 최요안 선교사는 중국으로 선교를 떠난다. 그것이 "선교사라 살고자 하는 한 이 삶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더 안주하고 싶어지기 전에" 떠나야 한다. "안주는 선교사의 무덤이고, 집착은 삶의 올가미"(「이별 연습」)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뷰 총점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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