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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ter Wilhelm Grass,Gunter Gr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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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너무 빨리 키가 커버린 데다가 안경을 끼고 곱슬머리를 한 그애는 스스로 원고가 되어 법정에 서 있었다. 그애는 열일곱 살보다 어려 보였지만 아주 조숙하게 말을 했기 때문에 마치 단기 코스로 압축해서 인생 경험을 한 것처럼 보였다. 예컨대 그애는 자기 부모의 공동 책임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너그럽게 미소 지으면서 그애가 말했다. "제 어머니는 아주 괜찮아요. 계속 아우슈비츠 이야기를 하셔서 이따금 짜증나게 만들긴 하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재판은 제 아버지를 빨리 잊게 만들 겁니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왔듯이 아주 깡그리 말입니다."
내 아들은 나를 미워해 왔던가? 코니는 도대체 미워할 능력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그는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여러차례 부인했었다. 나는 콘라트의 증오심을 사물화된 증오심이라고 부르고 싶다. 희미하게 타오르는 증오. 지속적으로 타오르는 난로 같은 증오. 열정도 없이, 자웅동체의 방식으로 증대되는 증오. (...) 그러고 나서 소년 담당 검사가 상당히 집요하게 유대인들에 대한 경멸의 이유를 묻자, 그애가 대답했다 "완전히 잘못 보신 겁니다! 원칙적으로 저는 유대인들에게 아무 반감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빌헬름 구스틀로프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은 아리안 족 내부의 이물질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들 모두는 원래 자기들이 속한 이스라엘로 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적대적인 주변 나라들과 맞서기 위해 그들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 pp 229~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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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가 이 소재를 채택한 이유
그라스는 이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매 시대마다 발생한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양한 서술 방식으로 다루어왔다. 그러나 이번 소재는 이미 독일 언론에서 공론화되었다시피 우익편향적 정치권이나 단체, 지식인에게 자신의 이념을 정당화할 구실을 제공하고 나아가 신나치주의의 등장을 가속화하고 그 범위를 확산시킬 우려가 있는 건이었다. 왜냐하면 전 독일에서 이 참사를 암묵적으로 금기시한 것은 전쟁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나치의 만행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전시국가로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고 인류에게 끔찍한 고통을 준 데 대한 응당한 대가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귄터 그라스 또한 그런 입장의 대변자였다. 1958년『양철북』을 발표한 이래 1990년 독일 통일 당시까지도 전범의 무한 책임을 느낌과 동시에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아우슈비츠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던 게 정치적으로 좌파적 입장을 띤 그라스의 작가로서의 윤리 의식이었다. 그런 입장의 그라스가 자칫 극우주의자들의 선전적 입장과 동일시될 수 있는 소재를 다룬 것은 이들 죽음이 단순히 자료로만 활용되었을 경우(특히 인터넷 활용 세대인 현재, 미래의 세대) 그들이 겪은 고통이 왜곡되고 은폐되어 전달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바에 제대로 알고 역사의 한 장으로 자리매김하자, 라는 의도이다. 이런 의도는 작품에 보다 상세히 기술된다. 작품에서 귄터 그라스는 '그 노인', '고용주' '그' 등으로 지칭되며 '나'라는 화자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고 주문을 하는 동시에 '나'의 의견을 듣기도 한다. 이런 행위가 중요한 이유는 그라스가 이 소재를 다룸에 있어 그 자신의 정치적 시각에 의존하기보다 객관적으로 중립적인 인물 '나'를 상정해 놓고 그로부터 이 사건의 정치적 함의나 해석을 제거한 채, 사건 자체만으로 바라보고 서술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노인(귄터 그라스를 가리킨다 : 인용자)은 그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는 동프로이센 피난민들의 참상을 기록하는 것이 원래 자기 세대의 과제가 아니었겠느냐고 말한다. 엄동설한중의 서쪽으로의 행렬, 눈보라 속에서의 죽음, 노변에서의 비참한 죽음, 얼어붙은 석호가 폭탄 투하와 마차의 무게 때문에 깨어지기 시작했을 때 얼음 구덩이에 빠져 죽게 된 개죽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일리겐바일 쪽으로부터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인들의 복수에 대한 공포심으로 끝없는 설원 위를 지나갔다...도주... 백색의 죽음... 자신의 죄9나치의 만행 : 인용자)가 너무나 크고 그 오랜 세월 동안 참회르 고백하는 것이 너무나 절실한 문제였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처럼 많은 고통에 대해 침묵을 지켜서는 안되며, 또한 그 기피 주제를 우파인사들에게 내맡겨서도 안된다. 이러한 태만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실제로 그라스는 이 참사에 대해 "얼마나 늦게, 주저하면서 전쟁 동안 독일인들에게 부가되었던 고통에 대해 떠올렸는지" 고백한 바 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까닭에 대해 집중적으로 묻고 서술에서의 도덕적인 어려움을 누차 강조한다. 이런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그라스는 게걸음 치는 식의 서술 기법을 고안하였다. 게걸음 치는 식의 서술 기법 : 단선적인 사고가 불러일으킬 역사 왜곡에 대한 경고 이 작품에서 귄터 그라스는 그의 다른 소설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서술 태도를 내세워 그것을 견지한다. 이번에는 바로 '게걸음'과 같은 방식으로, 우왕좌왕 옆으로 걸으면서 느릿느릿하며 머뭇거리는 듯하지만 모든 측면을 되살펴보고 결과적으로는 신속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런 서술 방식을 표제로까지 직접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그라스는 57년 동안 금기시되어 온(극우파를 제외하곤) 터부를 깨고서 그것을 역사의 전면에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자면 자신이 그 동안 견지해 온 좌파적 성향과는 다른 방식의,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mode를 제시해야 했다는 게 일반적인 추리이다. 둘째, 게걸음이 갖는 함의는 다음 세대, 즉 현재와 더불어 미래를 주도할 세대의 직선적이고 단서적인 사고를 교정함과 동시에 그런 사고가 불러일으킬 역사 왜곡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는 데 있다. 귄터 그라스 이후의 세대는 작중 인물인 '나'의 아들 콘라트로 대변된다. 콘라트는 '순교자 사이트 www. blutezeuge.de'를 운영하며 직접적이며 선동적인 문구와 수치, 그림 등의 자료를 활용하여 저 참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다. 그렇지만, 작중 화자이자 작가 귄터 그라스의 주문을 받기도 하는 '나'는 자신이 의식하든 하지 않던 간에 신나치주의로 흐르는 아들의 견해에 수긍할 수 없다. 특히나 아들이 그 시대를 살아온 '나'와는 달리, 왜 자료적 가치만 적극 활용하여 일면적인 사고에 빠지게 되었나를 생각해 볼 때도 '나'의 진술 태도는 퍽이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때로는 더듬이를 세워 역사의 전방위적인 진행 국면과 그 속에서의 개인적 삶이라는 미시적 차원을 교차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뒷걸음질 쳐 역사의 시간을 전개하거나 또 현재의 시간으로 복귀하는 등 다각적인 시선을 견지하여 역사의 퇴행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의 피를 증언해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하지만 나는 우선 이것을, 다음에는 다른 것을, 그러고 나서 이런 저런 인생의 경로를 차례대로 풀어가야 할지, 아니면 시간을 비스듬하게 가로 지르면서, 마치 뒷걸음질하며 옆으로 비켜가느 듯하지만 사실은 상당히 신속하게 전진하는 게걸음의 방식과도 유사하게 서술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의 사실만은 분명하다. 자연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발트 해는 앞으로 여기서 보고하게 될 그 모든 일을 이미 50년 이번부터 묵묵히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선동적인 문구가 갖고 있는 위험성, 수치가 은폐하는 죽음의 표정들, 그림과 삽화가 환기하는 감정적인 반응들에 대한 경계 그리고 역사의 전방위적인 차원을 고려하지 않고 한 면만을 부각시켜 의견을 개진할 경우 엄청난 역사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경고가 이 서술 방식을 채택하도록 만든 것이다. 역사 해석에서 단선적인 시각을 지양하기 위해 역사의 거시적 차원과 역사의 속알맹이를 이루는 개인들의 삶으로 되돌아가, 역사 속의 개인에 주목하는 것, 그것이 '게걸음'이 뜻하는 또 하나의 의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