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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호질 양반전 - 지혜의 샘 시리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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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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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양반전兩班傳
호질虎叱
광문자전廣文者傳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김신선전金神仙傳
마장전馬?傳
허생전許生傳
민옹전閔翁傳
우상전虞裳傳
하룻밤에 아홉 번 강물을 건너다[一夜九渡河記]
통곡할 만한 자리

저자 소개 1

朴趾源, 호 : 연암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
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이다. 18세였던 1754년(영조 30),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아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계층의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란 이름으로 묶었다. 1771년경 마침내 과거를 그만 보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결심,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지금의 종로구 견지동)에 은거하며 벗 홍대용洪大容 및 문하생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과 교유하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새롭게 창조하자’는 말로 집약되는 자신의 문학론을 확립하고, 참신한 소품小品 산문들을 많이 지었다.

1780년(정조 4) 삼종형三從兄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는 특별 사행使行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자, 연암은 그의 자제군관子弟軍官으로서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이 결과 지어진 것이 『열하일기』이고, 이는 완성된 전권이 나오기 전부터 열띤 반응을 받았다. 50이 된 1786년, 연암은 음직蔭職으로 선공감 감역繕工監 監役으로 관직을 맡게 되고 그 후 경상도 안의 현감安義縣監, 의금부 도사, 의릉 영懿陵令 등을 거쳐, 1797년부터 1800년까지 충청도 면천沔川(지금의 충남 당진)의 군수 등으로 재직하며 농업 장려를 위해 널리 농서를 구한다는 윤음綸音(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진상했다.

1800년 음력 8월 연암은 강원도 양양 부사襄陽府使로 승진했으나, 궁속宮屬과 결탁하여 양양 신흥사神興寺 승려들이 전횡하던 일로 상관인 관찰사觀察使와 의견이 맞지 않아 1801년 늙고 병듦을 핑계 대고 사직했다. 1805년(순조 5) 음력 10월 29일, 69세의 나이로 연암은 서울 북촌 재동齋洞(지금의 가회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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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엄인정
대학에서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교육학을 전공했다.
교육 관련 업무에 종사하다가 현재 도서 편집과 교정, 영한 번역 작업을 병행하며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데미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오만과 편견》,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톨스토이 단편 걸작선》, 《그리스인 조르바》, 《카프카 단편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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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5월 25일
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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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파일/용량
PDF(DRM) | 42.67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43쪽 ?
ISBN13
9791170291350

책 속으로

“가까이 오지 마라! 선비는 아첨을 잘한다더니 듣던 대로구나. 너희들은 평소에 천하의 온갖 악한 말로 나를 욕하더니 다급하니까 눈앞에서 아첨을 떠는구나. 그러니 누가 그 말을 믿겠느냐.” ---「호질」중에서

“제발 그만두십시오! 양반이라는 건 참으로 맹랑한 것이구려. 당신들은 지금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시오?” ---「양반전」중에서

아아, 슬프구나! 이렇듯 힘겹게 절개를 지킨 과부들이 세상에 있건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이름 또한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다. 과부가 절개를 지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기에 남편을 따라 죽지 않으면 그 위대한 절개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열녀함양박씨전」중에서

나는 세상에는 깨끗하다고 불리는 자들 중에서도 깨끗하지 못한 자가 있고, 더럽다 불리는 자들 중에서도 더럽지 않은 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먹고사는 일에 아주 어려운 처지를 당하면 언제나 나보다 못한 이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저 엄 행수를 생각하면 견디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 진실로 도둑질할 마음이 없는 자라면 누구나 엄 행수를 기특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좀 더 확대시켜 나간다면 성인의 경지에도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예덕선생전」중에서

어떤 책에는 ‘신선이란 산에 사는 사람이다.’라고 하였고, 또 어떤 책에는 ‘산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곧 신선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신선이란 너울너울 가볍게 날아오르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벽곡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신선은 아닐 것이며, 그들은 아마도 뜻을 얻지 못해 울적하게 살다 간 사람들일 것이다.
---「김신선전」중에서

“내 한평생 벗을 하나도 사귀지 못할지라도, 자네 말처럼 군자들과는 사귀지 못하겠네.” ---「마장전」중에서

“재물로 낯빛이 좋아지는 것은 소인들이지, 만 냥이 어찌 도道를 살찌우겠는가.”
---「허생전」중에서

“이 세상에 나 자신보다 두려운 것은 없다네. 내 오른쪽 눈은 용이고 왼쪽 눈은 범이라네. 게다가 혀 밑에는 도끼가 들어 있고, 팔은 굽어 활처럼 생겼으니, 깊이 잘 생각하면 갓난아기처럼 순수한 마음을 보존할 수 있지만 생각이 조금만 어긋나도 되놈이 되고 만다네. 이를 스스로 경계하지 못한다면 장차 자신을 잡아먹거나 물어뜯고 망쳐버릴 수도 있는 것이야. …중략… 나는 나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은 적이 없다네.”

---「민옹전」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주제는 ‘타락한 사대부들의 각성을 촉구하며 연암이 가하는 일침’이라 볼 수 있겠다. [예덕선생전]은 천한 역부임에도 곧은 마음과 높은 덕을 지닌 엄 행수를 ‘예덕선생’이라 부르며, 사리사욕만 채우며 만족할 줄 모르는 사대부들의 위선을 비판하고 있다. [광문자전]은 비록 거지이지만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성격 때문에 사람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는 존재인데, 이는 봉건적 위계질서가 중시되었던 조선사회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이기에 연암은 소설의 힘을 빌려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일야구도하기]는 연암이 중국에 다녀와서 보고 듣고 느낀 감상을 적은 기행문인 《열하일기》에 수록된 작품으로,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정신을 수양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외물外物이 주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암의 작품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해학이 담겨 있는 그만의 독창적인 ‘풍자’이다. 연암이 살았던 당대의 지배 이념인 유교는 더 이상 사회를 통제할 능력이 없게 되었고, 유교는 한낱 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로서만 존재할 뿐 객관적 현실은 이미 그 틀을 벗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와 같은 모든 상황이 연암에게는 풍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연암은 [마장전]을 통해 사대부들이 명리만 좇아 친구를 사귀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그들의 타락한 우도友道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민옹전]은 기인으로 묘사되는 실존인물인 민유신의 전기로, 능력은 있으나 불우하게 인생을 마친 그의 삶을 조명했다. [김신선전]은 품은 뜻이 있어도 마음껏 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조선사회에서 뜻을 펴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양반이란 한 푼어치도 안 되는 존재’라고 묘사된 [양반전]은 탁상공론만 늘어놓는 양반의 허례허식을 비판하고 있다. [우상전]은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시대를 원망하며 시대의 희생양이 된 우상을 통해 제대로 된 인재를 등용하지 못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열녀함양박씨전]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인 조선이 여성에게 강요한 윤리의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연암의 풍자는 《열하일기》 [관내정사]에 실려 있는 [호질]에 이르러 정점에 이른다. 북곽선생과 동리자의 패륜을 폭로하면서 당시 지배층의 이념이 얼마나 가식적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연암의 사상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용후생의 실학사상이다. 상공업의 진흥과 상품의 유통에 관심을 가졌던 연암의 이용후생학은 《열하일기》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열하일기》는 중국 청나라의 현실에 대한 연암의 견문과 이에 기초하여 전개된 그의 북학론(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이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연암의 견문과 북학론은 그의 독특한 인식론과 탁월한 문예적 기량에 의해 뒷받침됨으로써 ‘존명배청주의尊明排淸主義’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계몽적 효과를 거두었다. [허생전]을 통해 나라가 부를 축적하되 국내 유통구조를 확립해야 하고, 외국과의 교역으로써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끝으로 [통곡할 만한 자리]는 《열하일기》 중 [도강록]의 7월 8일자 일기이다. 연암은 이 글을 통해 인간이 가진 감정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며 아울러 ‘한바탕 울기 좋은 곳’이라는 비유를 통해,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세상을 넓게 보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연암은 고문古文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격식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았고, 소설식 문체와 조선 고유의 속어, 속담, 지명 등을 구사하여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남겼다. 소설은 어떠한 현상이나 사실을 고백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되며 자기반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타락한 양반층을 비판하고 조선사회를 풍자한 것은 부조리한 당대 현실에 대한 연암의 일침이었으며 동시에 조선의 사대부로서 살아갔던 연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부끄러운 고백이자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었을 것이다.

선구자적 근대의식과 개혁정신을 지닌 연암이 가야 했던 길은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보기엔 지극히 양심적인 유학자의 길이며, 찬사를 보내고 싶을 만큼의 가치 있는 일이었지만 그 이면엔 한 사람의 존재로서 감내해야만 했던 외로움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옹전]에서도 언급된 연암의 우울증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며 동시에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야 했던 외로움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부조리하고 비극적인 현실도 연암의 붓끝에선 씁쓸한 웃음이 된다. 조선사회의 유교라는 화석화된 이념 속에 가려진 가공되지 않은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해 내고, 육안이 아닌 심안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한낱 몽상가적 이상이 아닌 가능성 있는 미래를 설계한 연암이었기에 그의 문학과 사상은 세월의 경계를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감수성을 전율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가 연암을 마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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