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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장 자랑하기
* 신통방통한 수원 화성 쏙쏙 정보 화성이 훤히 보이는 곳 장안문을 지나 서장대로 사통팔달 팔달문, 팔달문 시장 성벽 따라 걷기 화성 성벽, 서암문 아름다운 무지개 문 화홍문, 방화수류정 * 신통방통한 수원 화성 쏙쏙 정보 8일간의 행차 화성 세밀하고 값진 기록 화성성역의궤 * 신통방통한 수원 화성 쏙쏙 정보 공개수업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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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언제 챙겼는지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찬찬히 훑어보았어요.
“옳지. 서장대로 가면 되겠다! 서장대로 가는 길이 여럿 있다는데, 우리는 산길로 가자. 비 온 뒤라 산 냄새가 정말 좋을 거야.” 아빠는 내 운동화 끈을 세게 조여 주고 아ㅃㆍ 운동화 끈도 조였어요. 비에 젖은 산길은 무척 미끄럽고 질퍽거렸어요. 몇 걸음 안 걸었는데 어느새 운동화에는 진흙이 잔뜩 묻었어요. “아빠, 나무에서 자꾸 빗방울이 떨어지는 바람에 옷이 축축해요.” “그래도 흙냄새, 나무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흠흠.” 아빠는 뭐가 좋은지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불렀어요. “어어어…….” 그때 난 그만 발을 헛디뎌 뒤로 꽈당 넘어지고 말았어요. 재빨리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지만 시커먼 흙이 잔뜩 묻었어요. 그런데 울상이 된 내 얼굴을 보고 아빠가 실실 웃는 거 있죠? “아빠!” 나는 소리를 꽥 질렀어요. “하하. 미안, 미안. 네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그랬지. 어디 바지 좀 보자.” “아빠, 웃지 마. 난 기분 나쁘단 말이야.” 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팔ㅉㆍㅇ을 낀 채 앞으로 휙 걸어갔어요. “연수야, 같이 가자.” 아빠가 조금 멋쩍었는지 나한테 손을 내밀었어요. 나는 모르는 척하고 아빠가 내민 손을 잡았어요. 땀이 나서 조금 칙칙하지만 따뜻했어요. “새 학교 와서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 “많이는 아닌데 친한 친구는 생겼어요.” 아빠와 이야기를 하며 걸었더니 어느덧 꽤 높은 곳까지 올라와 있었어요. 나무들 사이로 탑처럼 우뚝 솟은 지붕이 보였어요. 아마 서장대인가 봐요. 안내문에는 ‘장수가 올라서서 지휘할 수 있게 서쪽에 높이 만들어 놓은 대’라고 써 있었어요. 아빠와 나는 서장대 앞 돌계단에 앉아 빵과 우유를 먹었어요. “아, 땀 흘리고 먹는 빵이 정말 꿀맛이다.” 아빠는 커다란 초코 빵을 한입에 넣어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어요. 나는 문득 사회 시간에 선생님이 한 말씀이 떠올랐어요. “아빠,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수원 화성이 우리나라 성곽의 꽃이래요. 왜 그런 거예요?” “그건 말이야. 저기…… 으흠, 오늘 갑자기 와서 준비가 덜 됐다! 으핫.” 아빠는 혀를 쑥 내밀었어요. “에이, 그게 뭐야.” 아빠는 뭐든지 다 알 줄 알았는데 아빠도 모르는 게 있나 봐요. “수원 화성에 대해 알아보고 아빠랑 데이트하러 내일 또 오자!” --- p.1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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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에 배어 있는 역사를 읽고 발전시켜 나가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우리의 문화유산에 관심이 높습니다. 수원 화성도 그중 하나이고요. 특히 이 책이 출간되는 2016년은 수원 화성이 축조된 지 220년이 되는 해인 까닭에 ‘수원 화성 방문의 해’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과 아이가 손잡고 둘러보기에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성곽을 따라 걷는 내내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되고, 건축물 구석구석을 관찰하며 궁금증을 해소하고 지식을 쌓을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그동안 가족끼리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도 성곽의 둘레만큼 풀어낼 수 있겠지요. 역사의 현장에서 그곳에 배어 있는 우리 문화와 정치, 경제 등을 살펴보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고 살아 있는 공부가 됩니다. 수원 화성은 조선 시대(1796년 완공)에 지어졌고 애석하게도 일제강점기에 불에 타거나 망가졌다가 1975년부터 복원되기 시작해 상당 부분 옛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뛰어난 건축물 자체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지만 수원 화성을 둘러싼 정치적 배경, 당시의 학문 성향과 과학기술, 백성을 사랑한 군주의 꿈과 열정을 함께 생각하면서 바라보면 새로운 시각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수원 화성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면 어떨까요? ‘수원 화성행궁’과 ‘화성성역의궤’에 대해 간단히 알고 가는 것도 좋습니다. 그곳에 배어 있는 역사를 읽고, 오늘날 우리 생활 속에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수원 화성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겠지요. 정조 임금의 꿈과 열정이 담긴 최초의 계획 도시 길이가 무려 5.7km에 달하는 수원 화성은 아름다움과 뛰어난 방어 시설을 갖추었고, 치밀하고 과학적인 설계 방식을 토대로 만들어져 성곽 건축의 꽃이라 불립니다. 땅의 모양을 살리고 백성들의 터전이 훼손되지 않게 신경 쓰면서 도시 전체를 성곽으로 둘러싼 데다 곳곳에 문과 각종 방어 시설을 갖추어 전쟁이 나도 산 위에 따로 성을 쌓지 않아도 되었지요. 성곽의 모양과 만들어진 과정을 살펴보면 당시 과학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외적을 막아 내려는 의지와 백성의 편의를 배려한 흔적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던 공사를 실학자 정약용이 유형거, 녹로, 거중기 같은 최첨단 기구를 사용하여 2년 8개월 만에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당시 과학기술이 대단히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해 줍니다. 수원 화성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문명의 발자취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축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동서양의 군사 시설 특징을 잘 결합한 독특함과 뛰어난 방어 기능, ‘화성성역의궤’라는 상세한 건축 보고서를 남긴 것이 선정되는 데 한몫을 했다고 하지요. 이밖에도 수원 화성의 특별함은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수원 화성이 만들어진 배경과 정조 임금의 개혁정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조는 어릴 적에 당쟁으로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었고, 임금이 된 뒤에도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력한 왕도 정치를 확립하려고 힘을 쏟았습니다. 강압적인 힘보다는 덕으로 다스려 백성들이 마음으로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려면 개혁을 펼칠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여기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명당이라고 알려진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싶었던 효심도 합쳐졌고요. 그리하여 조선 최고의 명당에 사방으로 길이 열린 경제 신도시이자 군사 신도시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수원 화성’은 수원 화성이라는 공간을 둘러싼 ‘성곽’인 동시에 정조 임금의 꿈과 열정이 담긴 최초의 ‘계획 도시’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