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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kung, 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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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주는 '사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남자다. 그 사내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장대한 덩치, 그 큰 몸집답지 않게 주변을 깊이 배려할 줄 아는 섬세함, 좌중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걸출한 입담, 두주불사의 주량...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의 굵고 진중한 삶의 무게에, 나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유용주에게는 녹록치 않은 삶의 힘이 묻어 있다. 그는 충남 서산에서 출근을 하는 아내를 대신해서 '전업주부'로서 살림을 꾸리고, 글 쓰고, 술 마시며, 바쁘지만 알차게 살고 있다. 유용주를 알기 전 내게 서산은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마애불의 서산'일 뿐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 그곳에서 끔찍했던 2박3일의 악몽(?)을 겪은 후엔 '유용주의 서산'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유용주의 곁엔 그와 똑같이 생긴 무시무시한 이들이 포진하고 있다. 소설가 한창훈과 시인 이정록이다. 이들은 문학과 삶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면서 팔씨름이나 옆차기, 근육자랑 등을 하면서 논다. 고작 한잔 술에 취해 재담이나 떨줄 아는 나는 그들의 과격한 술자리가 공황 그 자체였다. ... 유용주는 누구보다 절절한 '삶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자신이 걸었던 길의 흔적의 편린을 당당하게 세상에 드러내었다. 자신이 걸어왔던 길의 중간 보고서를 작성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는 간난신고를 이겨내고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앞으로 그는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지... 유용주의 장서표를 만드는데 시인 이정록이 참견을 하며 거들었다. "그냥 생긴 대로 그려요. 릴라."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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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991년 첫번째 판화개인전을 열 때였다. 그 무렵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한 직후로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재중동포들이 서울역 등지에서 우황청심환이나 조잡한 잡화를 판매하기도 할 때였다. 그 무리에 묻혀 들어 온 일행 중에는 판화가들도 있었다. 나는 중국의 신흥목각화 운동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시장으로 찾아 온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때 그들로부터 장서표(藏書票)라는 작은 판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전교조 사업단의 문화상품에 들어가는 판화의 제작을 맡고 있으면서 미술의 대중성에 대해 고민하던 중이었다. 장서표야말로 그 고민의 일부나마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매체로 여겨졌다. 그리고 나의 문학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행복한 시도가 될 것도 같았다. 사실 그때 나는 첫 개인전이 마지막 개인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심한 자책에 빠져 있었다. 이미 작업의 의욕을 잃고 있었고, 나 자신의 작가적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서표 작업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창작욕구가 생겨났다. 장서표 작업을 하면서 다른 분야의 종사자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들의 내면세계를 접하면서 내 의식도 확장 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장서표를 국내에 보급하고 알리는 일을 해오면서 절망의 시기를 극복하였으니 내게 있어 장서표와의 대면이란 판화가로서의 새로운 전환점이랄 수도 있겠다. 그 뒤 로 여러 차례 장서표 전시를 기획했고 1995년에는 장서표만을 가지고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이 책은 이태 전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원고를 정리해서 묶었다. 장서표를 새기고 그에 관해 글을 쓰는 일은 즐거웠다. 그 일을 통해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반추했고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또 많은 지인과의 새로운 만남의 기쁨이 있었고, 그들의 내면세계를 접하면서 많은 지혜의 양분도 섭취했다. 시공간의 제약으로 더 많은 이의 장서표를 이야기 할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연재의 특성상 책을 항상 가까이 하는 시인, 작가, 학자 위주의 글쓰기가 되었다. 연재를 하던 당시 또 다른 기쁨과 감동을 만나기도 했다. 당신에 관한 글을 보신 리영희 선생님이 엽서를 다시 보내주셨는데, 엽서를 받아 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불편한 몸으로 손수 쓰신 어린아이 같은 글씨체 때문이었다. 지금 그 엽서 역시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 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이번에 책으로 묶으면서 원고를 대폭 수정해 볼까도 했지만 당시 장서표를 새길 때의 느낌을 살리고자 조금 수정하는 선에서 마무리 하였다. 표주(藏書票主)의 사유의 깊이를 따라가는 것은 내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므로 이 책은 ‘왜 아무개의 장서표는 이렇게 만들었는가’ 정도의 글 모음집이라고 보면 될 성싶다. 보잘 것 없는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하며 동시에 책을 더 가까이 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