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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청년패스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
한국현대사와 함께한 방우영의 신문 만들기 55년 양장
방우영 저
김영사 2008.01.11.
베스트
언론학/미디어론 top100 2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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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장/ 선배님들 물러나 주십시오
1)빚더미 신문사로 돌아오다
2)“선배님들 물러나 주십시오”
3)조선일보 제호만 빼고 다 바꿔라
4)시위대와 함께 농성하는 기자들
5)“조선일보는 분명히 반대했습니다”

제2장/ 신문전쟁이 시작됐다
1)4등 신문의 설움
2)신문전쟁이 시작됐다
3)하네다공항의 비밀 공수작전
4)활자를 뽑고 납을 녹이며
5)한국 최초의 컬러신문을 만들다
6)6년 만에 갖게 된 사장실
7)현대건설 정주영 사장과의 배짱 담판
8)1등 신문이 되다

제3장/ 시대의 빛과 그림자
1)선우휘?·이영희 필화사건
2)신문사 사장이 끌려가 맞은 게 무슨 자랑이오?
3)캠페인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4)울음으로 부르짖은 함석헌
5)연산군이냐 대원군이냐
6)신문에 ‘세계’를 넣어라
7)10월유신과 언론 암흑의 시대
8)주필의‘반란’
9)언론 담당 장관들과의 전쟁과 평화
10)청룡야구와 프로야구
11)월간조선의 탄생

제4장/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멍에
1)기자들의 신문제작 거부
2)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멍에
3)깨어진 잔칫상
4)말 많고 탈 많았던 언론청문회
5)조선일보 불매운동이라니
6)재벌이 정권까지 잡는다면
7)가마니 깔고 신문 만들 각오

제5장/ 조선일보의 가장 큰 재산
1)25시를 사는 제제다사(濟濟多士)
한국의 게리 쿠퍼, 홍종인/‘앵선생’이라 불린 깐깐한 원칙주의자, 성인기/전화기 내던지는 33세 편집국장, 천관우/멋쟁이, 그러나 빈털터리 진보 정치인, 고정훈/‘天才 위의 夫才’, 부완혁
2)‘사설이 강한 신문’을 만든 논객들
20세기 ‘언론자유 영웅’, 최석채/여권 받고 감격한 ‘상처받은 언론인’, 조덕송/투사가 된 선비 ‘송진사’, 송건호/세상 휘저으며 바람처럼 산 풍운아, 송지영
3)신문에 미친 신문쟁이들
너무 인간적이라 허점도 많았던 선우휘/내가 화내면 조용히 참을 ‘忍’자 건네던 유건호/‘사장, 편집국에 그만 좀 내려오세요’ 하던 신동호/이규태의 ‘삼불(三不) 원칙’/정보부가 뗀 목 청와대가 붙인 안병훈/천생 기자인 ‘별종’, 김대중/아버지는 ‘반동’인데 아들은 ‘용공’, 류근일/신문을 끓게 만든 ‘최틀러’, 최병렬
4)조선일보 기자가 되려면

제6장/ 내가 본 대통령들
1)내가 뱀띠라 천성이 차갑습니다(박정희)
2)귀거래사를 읊던 고독한 대통령(최규하)
3)사람 하나는 기막히게 쓸 줄 아는 사람(전두환)
4)북방정책 홍보 잘해달라고 부탁(노태우)
5)배짱, 고집, 예민한 감성(김영삼)
6)“대통령 되려면 세 가지 해결하라”(김대중)

제7장/ 편집국장이 꿈이었지요
1)나의 경쟁자, 나의 스승
2)지당 장관, 낙루 장관, 병신 장관
3)기자의 쓴맛과 단맛
4)첫 해외취재의 추억
5)나 장가 안 갑니다
6)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7)세상을 요리한 요정들의 이야기

제8장/ 나를 키운 것은 어머니의 기도
1)일등 다음으로 또 번영해라
2)‘못된 망종’ 소리를 듣던 반항아
3)“큰놈은 빨갱인데 작은놈은 내 편”
4)나를 키운 것은 어머니의 기도
5)넘을 수 없는 큰 산, 계초 방응모

제9장/ 신문 밖의 인생
1)신문협회의 안과 밖
2)시대를 함께 부대낀 신문 발행인들
3)연세대 동문 ‘돈우영’입니다
4)그해 여름 중국으로 간 까닭은
5)내 인생의 여백
6)낚시 예찬
7)사냥, 기다림의 싸움
8)연설공부 하는 남자
9)“무식한 놈이 좋은 책은 다 있네”

저자 소개 1

언론인이자 경영인. 1928년 1월 22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소학교 교사인 방재윤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금광 사업으로 큰돈을 번 조부(계초 방응모)가 1932년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방우영은 ‘신문사 집 아이’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경신고를 거쳐 연희전문 상과를 졸업한 후 1952년 조선일보 공무국 견습생으로 신문사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편집국 교열부 기자를 거쳐, 사회부·경제부 기자로 8년간 활동하다 1960년 조선일보 방계회사인 아카데미극장 대표를 맡아 청춘영화 전성시대를 열면서 빚더미에 빠져있던 극장을 흑자로 돌려놓았기도 했다. 1962년 조선일보 상무로 신문사
언론인이자 경영인. 1928년 1월 22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소학교 교사인 방재윤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금광 사업으로 큰돈을 번 조부(계초 방응모)가 1932년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 방우영은 ‘신문사 집 아이’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경신고를 거쳐 연희전문 상과를 졸업한 후 1952년 조선일보 공무국 견습생으로 신문사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편집국 교열부 기자를 거쳐, 사회부·경제부 기자로 8년간 활동하다 1960년 조선일보 방계회사인 아카데미극장 대표를 맡아 청춘영화 전성시대를 열면서 빚더미에 빠져있던 극장을 흑자로 돌려놓았기도 했다.

1962년 조선일보 상무로 신문사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해 이후 전무, 사장, 회장을 거치며 탁월한 경영 감각과 강한 추진력으로 조선일보의 비약을 일궈냈다. 1962년 6만 5천 부에 불과하던 조선일보 발행 부수는 3년 후 20만 부로 늘었고, 1970년대 중반 정상에 올라 1979년 100만 부, 1992년 200만 부를 돌파하며 1등 신문의 자리를 확고히 하였다.

방우영은 ‘기자 같은 경영자’이다. 스스로 수많은 기획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조선일보에 24년간 연재된 「이규태 코너」도 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그는 기자들의 반항적 기질을 높이 샀고, 글쟁이들의 괴짜 기질을 좋아하고 품어주었다. 대학 시절 복싱부에서 활동한 만능 스포츠맨이면서 늘 책을 끼고 있는 독서광이기도 하다. 40여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써 온 그의 일기는 곧 현대사의 기록이다. 그는 선이 굵은 보스이면서도 꼼꼼하고 눈물도 많다. 권위와 허식을 싫어하고 어디서나 말하는 데 거침이 없다.

현재 조선일보 명예회장을 맡고 있으며, 연세대 재단이사장과 고당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연세대 명예동문회장, 대한골프협회 명예회장, 한독협회 명예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1월 1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28쪽 | 616g | 144*215*30mm
ISBN13
9788934927945

책 속으로

손이 모자랄 때는 나도 직접 지프차를 몰고 서울시내 신문 발송을 맡았다. 그런데 지프차가 워낙 고물이다 보니 툭하면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고 말썽을 일으켰다. 그럴 때면 내 나름의 ‘묘책’이 있었다. 소주를 사다가 일단 한입 마시고 브레이크에 들이붓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말을 잘 들었다. 일이 끝나면 운수부원들과 어울려 막걸리 잔을 나누었다.

아침이 밝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독자들은 자신들의 답답증을 후련하게 풀어준 사설에 환호했다. 일격을 당했다고 생각한 중앙정보부는 부랴부랴 조선일보 회수작업에 들어갔지만 신문은 이미 독자들 손에 들어간 뒤였다. 잠적한 선우휘 주필에 대해선 ‘검거령’이 내려졌다. 그날 저녁 늦게 선우 주필의 행방이 파악됐다. 우리는 보자마자 서로 껴안고 울었다.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이심전심이었다. 함께 밤을 지내고 아침에 헤어지면서 선우 주필이 나에게 물었다. “사장, 내가 그 사설을 써서 보여주었다면 신문에 나갈 수 있었을까요?”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노(No)!” 신문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선우 주필의 행동이 자칫 신문사의 운명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는 모험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언론인으로서 보여준 용기와 기개는 두고두고 나의 가슴에 남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해 조선일보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이자 박 대통령이 나와 신문사 간부를 청와대로 불러 종이에 도면을 직접 그리며 한 시간 반 동안 설득했다. 박 대통령의 열변을 들으면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의 용모는 이빨만 두드러진 게 별로 잘 생긴 축에는 못 든다. 그런데 가느다란 눈에서 안광(眼光)이 번뜩이는데 아주 매서웠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따져가며 설명하는데 구체적인 수치와 공정을 파악하고 있는 정도가 건설 기술자 이상이었다. 쇳덩어리 몇 톤이 필요하다는 것까지 정확히 짚어냈다.

어머니는 늘 나에게 “너는 야곱 같은 아이니까 교회에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야곱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삭의 아들로 쌍둥이 형 에서를 속여 장자권(長子權)을 빼앗았으나 후에 신의 축복을 받아 이스라엘로 개명(改名)한 인물이다. 내가 장자인 형님에게 집안 어른의 사랑을 빼앗겨 반항적인 기질이 자라고 있으니 그걸 신앙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만큼 살아왔다. 어머니의 기도의 힘이 아니었다면, 인생의 그 무수한 고비들을 내가 어떻게 헤쳐나올 수 있었겠는가.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태평로의 특종, 방우영이 바라본 한국현대사의 희망과 눈물

-빚더미 신문사를 개혁하기 위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신문사 원로들에게 “선배님들 물러나주십시오” 하고 쓴 눈물의 편지. ‘조선일보 제호만 빼고 다 바꾸자’ ‘화려한 편집과 특종만이 살 길이다’라며 과감한 혁신을 추진, 4등 신문을 대한민국 1등 신문으로 탈바꿈시킨 방우영의 신문 혁신과 생존전략.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한밤중에 들이닥쳐 윤전기를 멈춰 세운 선우휘?이영희 필화사건, 10월유신 언론암흑의 시대에 김대중 납치 규탄 사설을 싣고 잠적한 주필의 ‘반란’, 5공 시절 신문기사에 빨간 줄 쳐가며 신문사 발행인들에게 따지던 장세동 안기부장, 한 줄의 기사로 촉발된 평민당의 ‘전쟁’ 선포와 조선일보 불매운동 등 권력과 언론의 숨 가쁜 대결과 알려지지 않았던 내막.

-하루 25시를 살며 치열한 토론과 논쟁으로 신문 지면을 펄펄 끓게 만든 열정의 신문쟁이들, 최고 권력자의 고독과 순박함?고집?열등감 등 인간적인 내면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내가 본 대통령들’, 효자동 청운각?청진동 장원 등 세상을 요리한 당대 최고의 요정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정치야화 등 55년차 신문인이 낚아 올린 생생하고 진귀한 이야기들!
리뷰 총점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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