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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라시압 궁전지 벽화의 ‘고구려 사절’에 관한 연구 _ 권영필
Ⅰ. 머리말 Ⅱ. 6~7세기 북·동 아시아와 소그드 1. 6~7세기 북·동 아시아의 국제정세 2. 중국의 소그드 인식-발굴 출토품을 중심으로 3. 소그드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통로 Ⅲ. 고구려인의 서역관 1. 6~7세기 고구려의 대외교섭 2. 미술품을 통해 본 서역관 Ⅳ. 아프라시압 벽화의 세계상과 고구려 사절 1. 아프라시압 벽화의 특징 2. 벽화의 편년과 고구려 사렂ㄹ의 문제 Ⅴ. 맺음말 ▧고선지의 서역원정이 갖는 문명교류사적 의미 -종이의 전파를 중심으로- _ 정수일 Ⅰ. 머리말 Ⅱ. 종이의 개념과 발명 Ⅲ. 종이의 초전 1. 종이의 동전 2. 종이의 신장 전파 Ⅳ. 사마르칸드지 1. 아랍 사학자 아부 오스만 알 자히즈(Ab? Othm?n al-J?hiz) 2. 페르시아 출신의 사학자이자 시인인 아부 만수르 이스마일 앗 사알리비(Ab? Mans?r Ism?il al-Tha‘libi) 3. 아랍 철학자인 까즈위니(Zakriy? Ibn Mohammad al-Qazw?ni) 4. 독일의 무스타쉬리끄(Mustashriq, 아랍학 연구가)인 카라바세크(J. Karabacek, 喀拉巴塞客) Ⅴ. 종이의 서전 1. 종이의 아랍-이슬람 세계 전파 2. 종이의 유럽 전파 Ⅵ. 맺음말-‘종이의 길’ 설정 ▧고구려와 서역의 문화교류-고분벽화를 중심으로- _ 최광식 Ⅰ. 머리말 Ⅱ.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서역문화 Ⅲ.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의 고구려인 Ⅳ. 맺음말 ▧고구려 유민 고선지의 석국 원정의 문헌학적 고증 _ 지배선 Ⅰ. 머리말 Ⅱ. 고선지 장군의 석국 정벌 배경 Ⅲ. 고선지 장군의 제2차 석국 정벌 배경과 그 영향 1. 고선지 장군과 아랍 연합 세력과의 탈라스 전투 배경 2. 고선지 장군의 아랍 연합 세력에 패퇴한 후 그 영향 Ⅳ. 맺음말 ▧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벽화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해설 _ 장준희 Ⅰ. 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벽화의 발견과 연구경향 Ⅱ. 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벽화의 시대적 배경과 종족적 특성 1. 중세 중앙아시아의 국제관계와 벽화 2. 중아아시아의 종족적 다양성과 특성 Ⅲ. 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벽화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해설 1. 서벽 벽화 속 한반도 사신의 조우관에 대한 신화적 해설 2. 남벽과 북벽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Ⅳ. 맺음말-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벽화연구를 위한 제안 ▧중세 초기 차치의 역사-문화적 국제관계 _ 유리 F. 부랴코프 ▧7세기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에 대한 40년간의 연구결과 _ 루스탐 X. 술레이마노프 ▧도판 |
鄭守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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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이래 돌궐과 중국은 경제적 이권 확보와 영토 확장, 세력 균형 유지라는 대제국의 전략 차원에서 수시로 상호 개입하고 충돌하는 양상으로 역사를 점철해간다. 이 과정에 끼어들게 된 것이 소그드이고, 이를 그림으로 엮은 것이 아프라시압 벽화이다. 그 벽화의 일부에는 ‘고구려 사절’로 보이는 인물들이 있어 우리의 각별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상은 현지 사료보다 중국 문헌과 아랍 문헌을 통해 복원할 수밖에 없다. 현지에서는 고고 발굴품에 의해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데 아프라시압 벽화는 발굴 당시 일부가 파괴된 채로 수습되었기 때문에 그 내용을 해석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권영필'의 글 중에서
고구려 출신인 고선지는 다섯 차례 서역원정을 단행하여 중세 동·서 교섭사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였다. 특히, 비록 탈라스 전투의 패배로 종식되었지만, 마지막 5차 석국원정은 종이의 서전(西傳)이라는 의외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슬람 문명의 발달, 서구 문명의 부흥은 종이의 전파와 제지술 도입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고선지의 원정은 문명교류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다. ---'정수일'의 글 중에서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 있는 문양과 복식, 서역인의 모습, 줄타기와 장대장이 등 놀이, 춤추는 모습 등에서 서역과의 인적 교류와 문물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에 그려져 있는 두 사신을 통해 고구려와 서역의 관계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신들은 조우관을 쓰고 M자 문양의 환두대도를 차고 있으며, 절풍에 연주문이 그려져 있으므로 고구려 사신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당시 당과 대립하고 있던 고구려의 정치적 상황상 돌궐, 사마르칸드와 외교교섭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를 수용함으로써 고구려는 다양하고 국제적인 고급문화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최광식'의 글 중에서 제1차 탈라스 전투는 탈라스 성에서 벌어졌으나 케르룩 부중의 반란으로 당군이 탈라스 강 상류지역으로 후퇴하여, 아틀라에서 다시 2차 회전이 있었다. 그 후 탈라스 강 상류의 자일리간 평원에서 탈라스 톈산산맥을 넘어온 아랍 연합군과 케르룩 부중에 의해 고선지의 당군은 대패하였다. 이 3차의 전투로 인해 고선지가 이끄는 당군은 많은 희생을 치루었으나, 이때 포로로 끌려간 중국인 기술자들에 의해 종이를 비롯한 중국의 문화가 서방으로 전파되었다. 타지키스탄의 판치켄트로 끌려간 중국 화공들은 그곳에 중국적인 기법으로 그린 벽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지배선'의 글 중에서 아프라시압 벽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벽화가 제작된 시기에 대한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문화적, 역사적 연구 또한 폭넓게 병행되어야 한다. 아프라시압 벽화가 제작된 시기는 중앙아시아 지역이 주변국들과 활발하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때이며, 다양한 역사·문화적 특성들이 상존하는 복잡다단한 시대였다. 아프라시압 벽화에는 다양한 문화적 특성들이 녹아 있으며, 그 해석 또한 다양하다. 중앙아시아 벽화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와 함께 중앙아시아의 고대, 중세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확대된다면 아프라시압 벽화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접근과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장준희'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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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는 실크로드의 중심지역으로 동·서를 잇는 교류의 중심지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서역-중앙아시아와 직, 간접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었으며, 사마르칸드 아프라시압 궁전 유적에서 발견된 벽화에서 고구려인으로 추정되는 두 사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중앙아시아의 고구려 관련 유적 학술조사 및 연구-아프라시압 궁전벽화의 고구려 사절도와 고선지의 석국 원정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이 지역의 현지답사를 지원하고, 5인의 국내 학자와 2인의 우즈베키스탄 학자 총 7분의 연구 논문을 모아 『중앙아시아 속의 고구려인 발자취』를 발간하였습니다. 본서에서는 큰 줄기로 아프라시압 벽화에 고구려 사신이 그려진 배경을 추적하고, 당시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의 서역 원정과 이로 인해 이루어진 동·서의 문화 교류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기존의 연구 성과와 함께 현지답사를 통해 새로이 입수한 내용을 소개하고, 직접 촬영한 중앙아시아의 고구려 관련 유적 사진을 수록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중앙아시아와 고구려의 문화교류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활약한 고구려인들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기를 바랍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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