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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넓은 의미의 내 선조, 최재형(오슬로대 한국학과 박노자 교수)
이국의 파르티잔 넘실넘실 흘러가는 볼가 강이여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꽃을 안고 주무세요 두만강을 건너 대륙으로 가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하여 시베리아, 내 사랑 능소화를 닮은 여인 사랑과 죽음은 같이 온다 붉은 깃발에 바치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방에 한 미인이 있어 나 홀로 길을 가네 나는 사직에 죽기로 맹세하였다 전쟁의 바람 그대 물결 따라 조국의 영광도 흐른다 태극기 바람에 휘날리고 영웅들의 전설 나는 태양을 쏘았다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대륙의 혼으로 사라지다 작가의 말|한국의 체 게바라, 최재형 역사 속으로|최재형과 그 시대 그 인물들(수원대 사학과 박환 교수) 연보|최재형의 실제 삶과 활동 |
Lee Soo-K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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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사단장에게 조선인 최재형을 체포하거나 사살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이었다. 전쟁을 하는 사단장에게 이런 지시를 내리다니, 도대체 최재형이라는 조선인이 어느 정도의 거물이기에 육군성에서 헌병수사대를 파견하는 것인가. 무카이 도케아시 제독은 숨이 막히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오오지마 중좌, 최재형이라는 자는 어떤 인물인가?” “조선의 상해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 일대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해조신문 발행을 지원하며 대동공보 발행을 주도했습니다.” “육군성에서 왜 이런 자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가? 대일본군이 이러한 자 때문에 출병한 것인가?” 무카이 도케아시는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 11개 사단 17만 5천 명의 일본군을 상륙시키는 전략의 하나가 최재형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최재형은 이토 히로부미 공을 암살한 안중근을 후원했고 러시아 항일무장 세력의 지도자입니다. 의병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우리 일본군을 수십 차례 공격했습니다. 현재는 러시아 적군에 가담하여 파르티잔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무카이 도케아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지마 중좌의 보고에 의하면, 최재형은 조선 독립군들 중에서 가장 거물이다. “하지만 그는 귀화한 러시아인이기 때문에 일본군이 검거하거나 사살할 수가 없었습니다.” “육군성의 계획을 알겠다. 육군성은 일본군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한 기회를 이용하여 조선인들을 대대적으로 섬멸하려는 것이다.” --- '이국의 파르티잔' 중에서 “아버지, 일본군이 대규모 작전을 전개했어요. 왜 돌아왔어요?” “러시아는 큰 나라란다. 일본군은 곧 철수할 거야.” 최재형은 울음을 터뜨리는 올가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여섯 살배기 막내아들을 포옹했다. 엘레나는 슬픈 눈빛으로 최재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아내는 젊은 미망인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신산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이 죽은 뒤에 아내가 보내야 할 외롭고 남루한 삶을 생각하니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듯 고통스러웠다. “일본군의 목적이 독립군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요?” 엘레나가 슬픈 눈으로 최재형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일본군의 목적이 그렇다면 벗어날 수가 없다오.” “모스크바로 피할 수도 있잖아요?” “내가 피하면 일본군은 우리 조선인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오.” “아버지, 제발 피해요.” “피하지 않을 거다. 소비에트 파르티잔이 일본의 작전을 묵인하지 않을 거야.” “일본 밀정이 있대요.” “잘 들어라. 내가 떠나면 일본 헌병들은 어머니와 너희들을 체포하여 고문하고, 나를 배반하라고 강요할 것이다. 나는 이미 늙었다. 내 영혼을 불사른 생애에 후회는 없다. 나는 죽을 수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살아야 한다. 나 혼자 죽는 편이 훨씬 낫다. 일본군의 고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다. 나는 이미 늙은데다 살 만큼 살았다. 죽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다.” 최재형은 엘레나와 아이들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최재형의 말에 가족들이 모두 울었다. “지금은 비가 오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일본군에게 포위되었으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 오늘 밤 떠나세요. 우리가 잠든 뒤에 떠나세요. 일본군이 고문해도 견딜 수 있어요.” --- '대륙의 혼으로 사라지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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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의 국모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의 작가 이수광,
‘한국의 체 게바라’ 최재형의 생애를 되살리다! 이 작품은 격동의 구한말, 러시아 연해주에 거주하면서 한인 사회를 근대화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러시아혁명기에는 가난하고 권력에 짓밟히는 동포들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이끈 최재형(崔才亨 또는 崔在亨, 1860~1920)의 일생을 조명한 역사 장편소설이다. 최재형은 헤이그 밀사들의 비장한 여정,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신채호의 민족 언론 활동에 물적?정신적 지주였던 거인이다. 함경도에서 노비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표트르 세메노비츠(Pyotr Semenovich)’란 이름으로 귀화해 살게 된 러시아에서 한인 동포들을 비롯해 고국의 항일 지사들, 러시아 황제에 이르는 만인의 신뢰와 존경을 받은 ‘전설적 영웅’의 발자취를 남겼다. 한국인의 정서가 깃든 감칠맛 나는 역사소설로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수광 작가가 아직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최재형의 생애에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취재하여 소설화했다. 최재형 생애의 전면을 재미있고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재현한데다 연해주 이민의 역사,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근대 풍경, 독립운동사까지 역동적으로 묘사해 소설 독자와 역사?인문 독자 모두를 매료시킬 것이다. 무엇보다도 독립, 민족, 호국인물 선양이라는 거창한 단어 뒤에 가려진 최재형을 좀 더 친근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먹물 개화파들의 이름에 가려진 ‘노비 자식’ 최재형의 빛나는 생애 친러 개화파인 최재형은 그동안 친미 개화파인 서재필이나 친일 개화파인 유길준만큼 우리나라 개화기의 상징적 인물이 되지 못했다. 그의 삶터와 활동 무대가 공산국가가 돼버린 러시아에서 활동했다는 특수성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당대 대부분의 개화?항일 인사들이 양반 출신인 데 비해서 최재형은 한문 글발이 없는 ‘노비 자식’이었기에, 아무래도 ‘먹물’을 숭상하는 고국에서 역사적 조명을 받기란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최재형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먹물 개화파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드라마틱한 인생과 헌신적?평등주의적인 리더십을 만날 수 있다. ▶ 조선의 노비 자식, 두만강 건너 러시아 땅을 밟다 최재형은 1860년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 최형백의 아들로 태어난다. 아홉 살쯤 되던 해 최재형의 가족들은 기근과 봉건 지주들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에 둥지를 튼다. 이주한 지 2년째 되는 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러시아학교에 입학하지만, 어려운 살림에 형수의 구박을 못 이겨 결국 가출한다. ▶ 소년 마도로스, 오대양을 누비며 세계의 근대 문명과 만나다 집을 나와 여기저기 떠돌던 최재형은 러시아 원양상선 선원들에게 발견된다. 땟국 흐르던 함경도 상놈 자식의 눈빛에서 총기를 읽은 선장 부인이 최재형을 선원으로 고용한다. 그로부터 6년간 최재형은 러시아 전 지역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남부 해안 등을 항해하며 세계 근대 문명을 체화한다. 이때 각지 주민들과의 활발한 교류로 러시아어뿐 아니라 영어?독어 등 유럽 언어에 능통해지고, 선장 부인의 보살핌과 교육을 받으며 폭넓은 견문과 교양을 쌓는다. ▶ 표트르 세메노비츠 최, 연해주 한인 사회를 돌보다 ‘표트르 세메노비츠(Pyotr Semenovich)’란 이름으로 러시아에 귀화한 최재형은 17세 무렵 선원 생활을 접고 약 3년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무역상회 직원으로 일한다. 아버지와 형 부부가 사는 얀치혜 집으로 돌아온 최재형은 그간 모은 돈으로 개인농장을 마련해 농사일에 전념한다. 그리고 얼마 뒤 러시아어에 능통하고 러시아 실정에 밝다는 이유로 러시아 군부와 치안 당국의 통역관으로 임명된다. 러시아 관원들의 신임을 얻은 최재형은 연해주 당국이 1884년 군사 목적으로 조선 국경까지 도로를 개설할 때 현장 통역관으로도 발탁된다. 이때 러시아인 감독들한테 불합리한 처우를 받던 한인 노동자들의 생명과 권리를 앞장서 보호해준다. ▶ 최도헌, 한인·러시아인들의 지지와 러시아 황제의 신망을 얻다 최재형은 러시아가 국가적으로 벌이는 사업에 통역관으로 일하면서 한인들과 러시아 당국 간 관계를 잘 조율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인 자치기관장인 ‘도헌’에 선출된다. 통역관으로 약 10년, 도헌으로 약 13년 일하면서 받은 봉급은 그때그때 저축하여 한인 거주지에 학교를 세우고 우수생들을 대도시로 유학 보내는 데 투자한다. 한편, 한인들의 가계를 더욱 풍족하게 하기 위해서 장과식물 재배, 가축 사육 같은 수익 사업을 창안하며 활발하게 전개하고, 거주지녹화?공원조성 사업도 벌여 한인들 삶의 질을 한층 높인다. 한인들뿐 아니라 러시아인 사이에서도 명망 높던 최재형은 1896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되는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초청되어 황제가 직접 하사하는 예복을 받는다. 러시아 한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이다. 아울러 러시아 정부로부터 수차례 훈장을 받는다. ▶ 페치카 최, 조선의 광복을 위해 여생을 불사르다 어느덧 한인들 사이에 ‘페치카(따뜻한 사람) 최’로 불리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된 최재형은 동포들에게 유익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금이 있어야 함을 깨닫고 사업을 활성화해 재산을 더욱 증식한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서슬에 조국의 운명이 위태로워지자 자기 재산을 연해주 의병활동에 아낌없이 내놓으며 항일 투사가 된다. 러시아로 망명해오는 항일 인사들의 생계와 활동비를 책임지고 군자금을 조달하며, 민족 언론지 ??대동공보??와 ??대양보??를 발행해 한인 사회의 독립의식을 드높이고, 한인 사회 실업을 권장한다는 명분으로 ‘권업회’를 조직해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을 추진하고, 1908년 동의회를 조직해 운영비의 50%를 책임지며 총재로서 국내 진공 작전을 주도하고……. 상해 임시정부는 연해주 독립운동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최재형을 초대 재무총장으로 추대한다. ▶ 구한말 만인에게 태산 같았던 영웅, 광막한 대륙에 잠들다 임시정부 재무총장 자리를 고사하고 현장의 동지들 곁에 남은 최재형은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자 얀치혜 집행위원장으로서 빨치산을 조직하고 연해주에서 해방운동을 벌인다. 일본은 1920년 4월 연해주 러시아혁명 세력과 한인 독립운동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체포?방화?학살 만행을 자행한 ‘4월참변’을 일으킨다. 당시 일본군에 납치된 최재형은 모진 고문 끝에 재판도 없이 총살된다. 자기가 이끄는 500여 명 병사들의 이름과 출신 등을 모두 알 만큼 동지들에 대한 애착이 각별했던 ‘전설적인 영웅’ 최재형이 유해의 종적도 안 남긴 채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