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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물두 살에 인생을 걸었다
김만중
거송미디어 200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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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첫사랑의 실패가 춤에 대한 열정으로 - 이사도라 던컨

스물두 살에 그는 완전히 절망했다 - 유진 오닐

스물두 살이 마흔다섯 여인과 사랑에 빠지다 - 오노레 드 발자크

서른과 마흔의 경계 사이에 죽다 - 딜런 토마스

비둘기를 잡아먹던 시절 - 어니스트 헤밍웨이

정말 언제쯤이면 청혼하는 것이 지치겠어요 - 월리엄 버틀러 예이츠

한 서점 여주인의 희생으로 꽃핀 소설 - 제임스 조이스

미친듯한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 - 헤르만 헤세

그가 떠나던 날 마지막 모습 - 앙트완느 드 생텍쥐페리

살아 있는 자는 누구나 용서를 -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강물은 말없이 흘러갔다 - 버지니아 울프

창밖을 내다보는 일조차 두려웠다 - 마르셀 프루스트

당대 지성知性을 키운 신비한 여인 - 루 살로메

점쟁이를 경악시킨 시인의 얼굴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친부親父살해의 죄의식과 간질병 - 도스토예프스키

나는 그녀 때문에 러시아를 알았다 - 막심 고리키

친구로 인해 내 인생은 바뀌었다 - 폴 세잔느

9백 통의 편지 속에 담긴 사랑 -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녀는 악녀이지만 평생 나와 함께 했다 - 샤를르 보들레르

고독을 즐겨했던 까만 옷의 사내 - 프란츠 카프카

루소, 바랑부인과 사랑에 빠지다 - 장 자크 루소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될래요 - 모딜리아니

코끼리와 비둘기가 결혼을 하다 - 프리다 칼로

저자 소개

저자 : 김만중
출판기획자 및 번역가. 월간중앙 한경리쿠르트 등에 역사 속의 인물들의 리더십과 관련된 글과 조선의 성풍속을 기고하기도 했다. 작가의 시선은 항상 고전과 그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즐겨 다루고 있다. 그는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가장 좋아하고 그와 같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딜런 토마스를 비롯한 아일랜드 작가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책으로는 <조선을 뒤흔든 성스캔들> <군주리더십> <조선군주 정치기술> <시로 사랑을 말하다> <검은 나폴레옹 샤카 줄루> 등이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2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71쪽 | 49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7948720

출판사 리뷰

스물두 살, 모든 것을 사랑에 걸 나이이기도 하다
이사도라 던컨이 스물두 살, 파리에서 무용학원을 열고 처음 만난 프랑스 남자는 무명의 작가 앙드레 보니에였다. 두 사람은 어색한 사랑을 나누었고 이사도라의 적극적인 구애에 놀란 보니에는 그녀와 헤어졌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열정 때문일까, 던컨은 수많은 남자들과 스캔들을 뿌렸다. 한편 스물두 살의 발자크는 자기보다 두 배나 많은 나이 드 베르니 부인을 만났다. 1821년 가을에서 다음해 봄 사이에 발자크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썼다. 발자크는 연애 경험이 많지 않지만 이 유부녀를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밀고 때로는 당기는 사랑 전술의 위력 때문인가 베르니 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1887년 1월 30일, 예이츠가 모드 곤을 처음 만났을 때, 예이츠는 햇볕이 내려 쪼이는 정원의 사과나무와 창가에 서 있는 낯선 아가씨의 얼굴이 그녀의 머리 뒤쪽에 피어 있는 사과 꽃잎과 똑같이 투명한 빛깔이었던 것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모드 곤을 만난 것이 예이츠 나이 스물두 살이었다. 그녀와의 만남으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30년 동안 계속되는 예이츠의 청혼을 번번이 거절한 그녀, 결국 예이츠는 쉰두 살에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1939년 1월 28일, 예이츠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내는 예이츠가 모드 곤에게 쓴 많은 옛날 편지들을 그녀에게 보냈다.

루 살로메가 니체의 청혼을 받던 때 그녀의 나이 스물두 살이었다. 하지만 이 당돌한 여인은 니체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버렸다. 니체는 한 여인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인생 최대 역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성했다. 또한 릴케 나이 스물두 살에 그는 루 살로메라는 러시아의 미인을 만난 것이다. 그녀는 이미 한 남자의 아내였지만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 엄청난 열기로 끌어당긴다. 루 살로메를 만나고 나서 릴케는 르네라는 아이에서 드디어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시인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4년간의 동거 생활. 루 살로메는 ‘나는 그의 아내’였다고 릴케가 죽고 난 뒤 그를 추억했다. 한 시대 가장 탁월한 남성들과 사랑을 했던 루 살로메, 그녀를 통해 어떤 남자들은 자살을 택했고, 어떤 남자들은 위대한 철학자와 예술가로 삶의 방향을 잡았다.

고리키는 스물두 살에 열 살이나 나이가 많고 딸 하나를 둔 유부녀 올가 카민스카야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1891년 4월, 반은 미치고 반은 병들어 니즈니 노브고르드를 떠나 긴 방랑의 여행을 떠난 이유도 올가에 대한 사랑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유럽 귀족출신인 이 여인은 고리키의 민중문학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고리키는 그녀와 3년간의 동거를 정리하고 서둘러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난다.

1733년 가을, 스물두 살의 루소에게 바랑부인은 자신의 몸이 탐이 난다면 가져도 좋다는 허락을 한다. “육체의 소유처럼 남녀를 굳게 결합시키는 것은 없다.” 바랑부인이 자신의 몸을 허락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쾌락을 맛보았을 뿐이다.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억누를 수 없는 슬픔. 그 쾌락은 독약처럼 나에게 스며들었다. 부인은 나를 팔로 껴안고 눈물로 내 가슴을 적셨다. 그리고 흥분하지도 않고 조용하고 다정히 그 일을 했다. 그녀는 전혀 관능적이지 않았으며 쾌락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루소는 태어나서 9일 만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그의 나이 열 살 때 가출을 해버린다. 그는 결국 숙부 집에 들어가 양육되었다. 루소는 공장에서 심부름 따위를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16세 무작정 가출을 하여 제네바에서 전전하다 바랑 남작부인을 만나 모자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이 기묘하게 뒤섞인 것 같은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가 걸어가야 할 길을 발견한 것이다.

스물두 살에 그들은 가난과 절망감으로 가득한 나이였다
스물두 살, 유진 오닐은 선원이었고, 술주정뱅이였고, 돈 없는 건달이었다. 그는 노숙자처럼 잠자리를 찾아 공원의 벤치를 돌아다녔고, 낮이면 부둣가 싸구려 술집에 쳐 박혀 지냈다. 그러나 그는 “나의 극작가로서의 진정한 출발은 학교를 그만 두고 뱃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게 된 때부터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찬란한 문학적 성과는 그 젊은 시절 방황의 결실물이었다. 스물두 살의 무명작가에게는 아무도 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헤밍웨이는 신문사 일을 그만 두고 허기에 시달리는 날이 많았으며 배고픔을 견딜 수 없을 때면 그는 룩상부르그 공원을 갔다. 그곳에서 그는 헌병의 눈을 피해서 가장 살찐 비둘기에게 접근하여 재빠른 동작으로 목을 비틀어 죽인 다음 그 죽은 비둘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의 양식으로 해결하곤 했다. 당시 비둘기 고기로 헤밍웨이는 굶어 죽는 비참함을 면할 수 있었다.

세잔느가 파리로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발길을 옮기자 그의 가장 절친 한 친구 에밀 졸라는 세잔느에게 가슴 아픈 솔직한 말을 전해준다. “난 자네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는 하지만 화가로 성공할 것이란 말을 차마 하진 못하겠네.”라고 희망에 찬 친구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졸라가 문학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유명한 작가로 활동하고 있을 때, 세잔느는 인정받지 못한 가난한 화가로 남아 있었다. 졸라는 이런 세잔느에게 “자네 그림은 10년 뒤에야 인정받을 걸세.”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데 그 저주는 10년이 아닌 30년이 되어서야 풀렸다. 세잔느는 1886년 4월 17일 어느 문예지를 보고 그만 화를 억누르지 못한다. 그 글에는 졸라의 작품이 온전히 화가 세잔느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기사에는 ‘친구가 자신을 자꾸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데, 폴은 무엇을 느꼈을까?’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이후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서로를 외면한다. 세잔느는 스물두 살 화가의 꿈을 갖고 시작한 뒤 43년 동안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비웃음을 받으며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추구한 비극적인 예술가의 표본이었다.

3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화가 모딜리아니, 그가 파리로 온 것은 스물두 살이었다. 모딜리아니는 청년 시절 이탈리아 피렌체 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그래서 이 이탈리아 풍의 청년은 처음 파리의 몽마르트의 방식에 물들지 않고 고고한 척 허름한 여인숙에서 머물면서 파리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1906년 11월, 어느 가을 날. 스물두 살의 모딜리아니는 점차 무명의 화가 생활에서 오는 무료함과 권태, 그리고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주점 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 주점에는 스페인 출신으로 파리의 무명화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던 피카소가 감기 기운을 이기려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파리의 생활 6년 동안 그는 점점 보헤미안 기질로 변했고, 술집을 전전했으며 오랜 무명 생활로 인한 불안과 초조감을 술과 마약으로 해소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작가로서의 자존심은 버리지 않았고, 술값 대신 종종 자신이 그린 그림을 맡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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