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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gua
‘라틴 해방구’에 들다 식민의 도시에 샘솟는 시간의 향기 우기의 하숙집 커피향을 맡다(바람처럼 사라진 문명의 기억) 바람을 뿜는 화산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상형문자 계단에 숨겨진 마야의 비밀 나의 아미고스 Atitlan 마야의 숨결에 빠지다 색동무늬에 스민 마야의 숨결 잠자는 화산 속 성자의 마을 평화를 긷는 깊은 우물, 아티틀란 역사의 나날을 헤아렸던 땅에서 밀림의 바다에 뜬 신화의 등대 호수 위로 무거운 공기가 흐른다 피라미드는 파도에 젖고 카리브 해가 부르는 ‘서머 크리스마스’의 유혹 푸른 산호초 속 열대어 Habana 시거향에 취하다 아바나에서 보낸 첫날밤 아바나 비에하를 걷다 쿠바에서 공짜는 없다 시거의 향기 페소의 경제학, 1달러로 할 수 있는 것들 쿠바 젊은이 절반은 대학생, 절반은 시거공장 노동자다 1959년산 시보레 자동차의 향수 Santa Clara 체 게바라를 만나다 그들은 늘 길 위에 서 있다 꽃분홍 담장 따라 거닌 태양의 도시 달러가 천대받는 사회 사탕수수밭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다 푸른 바다와 하늘, 바람이 담긴 술 한 잔 체 게바라를 만나다 수고스런 삶의 짐을 내려놓다 헤밍웨이는 카리브 해로 떠나고 파도가 영혼을 적시는 말레콘의 방파제에 앉아 Ucatan 마야에 작별을 고하다 ‘시간의 짐’을 지고 있는 마야의 피라미드 저녁놀에 불타는 차크의 매부리코 돌 속에 들어앉은 마야의 미소에 작별을 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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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보다 맑고 투명한 카리브 해와 달콤하고 강렬한 마야의 유혹에 풍덩 빠져라!
이책의 저자 김산환 기자에게 여행은 곧 길이다.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길 위에서 산을 만나고 바다를 만났다. 열혈청년의 시기를 배낭과 함께 했고, 배낭 속에 세상을 담아왔다. 하지만 시나브로 파인더 속에 또 다른 세상을 만들고 있다. 내가 만난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앞으로 만날 세상도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다. 과테말라의 작은 도시 안티구아가 얼마나 생소하게 느껴질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아무리 지구본을 돌려봐도 나오지 않는 이름이니 말이다. 과테말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저자 역시 첫걸음의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섰으니 말이다. 십 년이 넘게 배낭을 메고 세상을 누벼온 저자지만 마야를 찾아가는 걸음이 쉽지는 않다.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마야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꽤 오랜 시간을 소비한다. 그러나 마야인이 계산한 시간에는 역사 저편으로 이미 흘러간 시간과 미래의 어느 날에도 흘러갈 시간이 담겨 있다. “마야인은 ‘시간의 짐’을 지고 당대의 시간과 무관한 그 시간들을 떠올리며 존재에 대해 성찰하지 않았나 싶어.” 저자가 문득 득도하듯이 깨우친 마야인들의 단상이다. 마야인들은 당장 주어진 시간에만 주판알을 튕기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한한 시간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간 거야. 시간은 우기가 기억하는 만큼 길어지는 고무줄 같은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여정을 옮겨 저자는 쿠바로 향한다. 쿠바에서 악사를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작은 레스토랑에서도 3~4명이 짝을 이룬 악사들을 만난다. 쿠바의 빈약한 경제는 1달러의 팁만으로도 악사들에게 연주를 하게 만든다. 그래서 쿠바에 가면 어쩌면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살아야하는 문명인에게 너무 긴 평화는 고통일지 모른다. 우리에게 이 한없이 아름다운 호수는 지친 영혼이 잠시 머무르는 쉼터일 뿐이다. 그러나 마야인은 아니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고, 묻힐 마야인에게 아티틀란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들이 먼먼 조상부터 그래왔듯. 카리브 해의 뜨거운 바람은 쿠바인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야자수가 바람에 흔들리듯 뜨거운 피가 흐르는 그들의 몸은 언제라도 흔들릴 준비가 돼 있다. 어디서고 음악만 흘러나오면 그들의 몸은 격렬하게 흔들려. 춤은 그들의 본능이고, 그들은 몸이 흔들릴 때 살아있음을 느껴. 그게 쿠바인이다. “체 게바라는 틀에 박힌 사회주의자가 아니야. 약자를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휴머니스트였고, 진실에 목말라했던 지성이었어. 적들의 겨눈 총보다 무서웠던 천식으로 고통 받는 순간에도 책을 놓지 않았던 지독한 책벌레였고, 시인이었고, 고고학자였어. 그는 또 언론인이자 사진가였고, 체스와 럭비에 열광한 운동선수였어. 그렇게 그는 신념과 용기를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떠났어. 그가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형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가 라틴을 여행하는 동안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던 체 게바라는 나침반의 지표처럼 늘 함께했고 여행의 중심축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마야를 찾아 떠돌았던 길이 50년 전 체 게바라가 먼저 훑고 갔던 길이고, 저자가 깊은 감동에 사로잡혔던 마야의 유적들이 그에게 혁명의 길을 일러주었다는 사실이다. 라틴이 궁금하다면 낯선 세상을 탐험해온 김산환 기자의 마음을 따라가 보라. 세상의 끝에 대한 유달리 관심이 많아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북극 캐나다 이누비크나 남아프리카 희망봉, 에베레스트 BC, 타클라마칸사막 등을 찾아갔다. 앞으로도 물리적인은 지구의 끝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세상의 끝까지 찾아가볼 계획을 갖고 저자의 여행벽은 가히 놀랍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신문사)을 2년간 휴직하고 한국인의 발길이 자주 닿지 않던 남미로 떠났다. 그것도 달랑 배낭하나와 카메라가 유일한 친구였다. 과테말라가 어디야. 미국 밑에 멕시코, 그 밑에 과테말라가 있다고 말하면 그제야 ‘아 거기’ 하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근데 마야는 또 뭐야. 멕시코 남부와 과테말라 등 유카탄 반도에 피어났던 고대 문명이라고 말하면, 뚱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쪽에도 고대 문명이 있었겠지 하는 식으로. 그게 전부다. 우리에게 과테말라나 마야 같은 이야기는 너무 멀다.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는 나라와 문명에까지 우리의 상상력은 닿지 않는다. 지구본을 돌려봐도 과테말라라는 나라는 좀처럼 찾기 힘들고, 세계사 책을 뒤적여도 마야라는 문명은 몇 줄 등장하지 않는다. 그곳을 가려고 했던 김산환 기자 또한 그랬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넉 달간 과테말라와 유카탄 반도, 쿠바를 여행하면서 인식의 지평이 확 트이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는 참 아름다운 문명과 자연이 있었다. 우리는 피라미드가 이집트에만 존재하는 줄 알고 있다. 신과 인간을 잇는 신전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에만 있는 줄 알고 있다. 또 스포츠는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만 즐길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마야문명이 지배했던 유카탄 반도에도 피라미드가 있고, 신전이 있고, 공놀이 경기장이 있었다. 유럽인들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자랑스럽게 떠벌렸던 시절보다 훨씬 앞서 그들이 ‘미개인들이 사는 땅’이라 불렀던 아메리카 대륙에는 천문학과 건축에 능했던 아름다운 문명이 꽃피었다. 마야문명은 13세기 무렵 하나둘씩 도시를 버리고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당대 어느 문명보다도 뒤지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문명이 신비롭게 사라진 것이다. 그 비밀에 한 걸음씩 다가가면서 저자는 고고학 산책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새삼 느꼈다. 과테말라나 마야에 비해 쿠바는 우리에게 한층 친숙한 이름이다. 그곳을 가본 이들은 많지 않아도 체 게바라라는 사내와 드라마틱한 혁명, 살사와 맘보로 말하는 카리브 해의 정열 넘치는 음악 등에 솔깃한 이들은 많다. 나 역시 이번 여행에서 체 게바라만큼은 제대로 만나고 싶었으니까.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던 스무 살 언저리에 만났던, 베레를 삐딱하게 눌러쓰고 아이처럼 천진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 사내. 볼리비아의 고원에서 죽은 뒤에도 오히려 세상에 더 큰 소리로 외치는 그 사내가 보고 싶었다. 저자는 여행을 마칠 때쯤 예기치 못한 깨달음을 얻었다. 서로 다르게만 보였던 두 개의 끌림, 마야와 체 게바라가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체 게바라에게 혁명의 이상을 심어준 것은 밀림 속에 잠들어 있던 마야문명이었다. 체 게바라는 백인들이 쓴 침략의 역사를 끝장내려 했고, 그의 고고한 이상의 뿌리를 마야에서 찾았다. 이 책은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면서도 늘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준, 마야라는 문명에 새롭게 눈뜨길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띄운 편지를 모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