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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감사의 말 들어가는 말 1부. 별의 죽음에 관한 논쟁 1. 스물네 살 인도 과학자의 위험한 아이디어 2. 인도와 영국, 두 세계 사이의 여행 3. 천체물리학계에서 경쟁하는 거인들 4. 에딩턴의 야심 5. 링 위의 과학자들 6. 에딩턴의 불만, 찬드라의 의지 7. 미국이라는 모험 8. 한 시대가 끝나다 2부. 핵무기 개발과 별의 물리학 9. 별은 어떻게 빛을 내다 죽는가 10. 하늘의 초신성과 지상의 핵폭탄 11.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3부. 블랙홀, 끝나지 않는 수수께끼 12. 찬드라가 옳았다 13. 모네와 일반 상대성의 풍경 14. 찬드라 망원경이 보여준 블랙홀의 신비 부록A. 시리우스 A 이야기(속편) 부록B. 현재의 초신성 연구 간단한 전기 용어 정리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
Arthur I. M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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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은 우리 우주가 어떻게 발전했으며, 자연이 그 가장 극단적인 차원에서는 어떻게 움직일까를 이해하는 열쇠를 블랙홀이 쥐고 있다고 믿는다. (중략) 블랙홀은 궁극적으로 물질의 미세 구조와 우주의 운명을 밝혀줄 것이다. 이 중력 구멍 속에서는 원자가 깨져서 본래의 구성 성분으로 돌아가거나, 또는 존재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고, 우리가 아는 물리학 법칙이 완전히 깨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26
에딩턴의 주장이 근거가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학계는 아웃사이더보다 그를 지원하는 을 택했다. 그것은 에딩턴의 명성과 개성의 힘이었다. (중략) 찬드라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그의 발견을 잘 이해한 사람이 에딩턴이었기 때문에 찬드라는 이 모든 일을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에딩턴의 통찰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지만 그는 물리학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는 자연에 맞서 자신의 선입견에 머물렀다. ---p.51 별들에 대한 생각은 에딩턴이 하는 작업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는 점점 더 모든 것을 감싸는 하나의 원대한 이론을 탐색하는 일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원자부터 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을 말한다. (중략) 이는 과학이 시작된 이래 과학자들의 마음을 붙잡았던 질문이기도 했다. 이른바 ‘모든 것의 이론’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기반 이론(fundamental theory)’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그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아 수많은 일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했다. 하얀난쟁이별의 운명도 그중 하나였다. ---p.134 찬드라의 주된 걱정은 밀른이 자신의 결과를 공식화해달라고 압력을 넣는 것이었다. 밀른은 그렇게 해서 찬드라가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게 하려고 했다. (중략) 그는 찬드라의 한계 질량 개념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중략) 밀른의 생각으로 별이 한없이 움츠러들어 사라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략) 찬드라는 밀른이 끼어든, 에고들 사이의 몹쓸 싸움에 자신이 볼모가 되었다고 느꼈고, 자기 차례가 언제가 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p.159~160 에딩턴이 찬드라의 이론에 반대한 진짜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기반 이론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에딩턴의 목적은 일반 상대성 이론과 특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을, 미세 구조 상수를 만들어내는 수학을 이용하여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중략) 찬드라의 작업에 대한 반응으로, 에딩턴은 1935년에 자신의 기반 이론을 아주 단단히 여며서 찬드라의 결과가 절대적으로 틀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기반 이론의 전체 구조가 붕괴될 판이었다. 에딩턴은 가장 많은 판돈을 걸고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기반 이론은 그의 생애의 업적 중에서도 절정을 이루는 것이었고, 그는 언제나 그것을 진실에 대한 탐구라고 여겼다. ---p.196~198 당신이 하얀난쟁이 별을 포기해야 한다고는 조금이라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많은 참석자들은 아서 경보다 당신의 말을 듣고자 합니다. (중략). 찬드라의 동시대 사람들이 이제 에딩턴이 아니라 찬드라가 하얀난쟁이별의 권위자라고 여긴다는 넉넉한 증거였다. (중략) 하지만 그 누구도 논리적 결론, 즉 다 타고 난 뒤 태양보다 훨씬 큰 질량을 갖는 별은 완전히 붕괴되어 상상할 수도 없이 작고 밀도가 높은 점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p.228~229 거기에는 상당한 정도의 식민주의 정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정서는 허세와 예민함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결과는 똑같다. 인도인을 대하는 영국인의 태도에 나타나는 기본적인 요소였다. 제국주의 시인 러드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은 동은 동, 서은 서, 그 둘은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고 썼다. ---p.253 찬드라는 하얀난쟁이별에 대해 설명하고, 스트룀그렌은 별들의 수소 함량에 대해 발표했다. 누구나 융합 과정이 별들에게 동력을 주고, 빛을 내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에는 동의를 했지만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반응을 생각해야 하는가라는 점에서는 어쩔 줄 몰라 했다.---p. 279 오펜하이머와 그의 그룹은 찬드라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진짜 물리학자가 아니라고 여겼다. 중성자별에 대한 논문에서 오펜하이머와 폴코프는 에딩턴이 현대 천체물리학 분야를 연 사람이라고 찬양하고 란다우의 연구를 검토했지만, 찬드라의 논문은 각주 단계로 끌어내렸다. ---p.287 아하, 수수께끼의 핵심 부분이 무시되고 있었네. 그러니까 중성미자의 흐름에서 엄청난 퇴화 압력이 기대되는데 말이지. 천체물리학계의 흥분은 대단했다. 동료들은 너그럽게 시간을 내주고 충고를 해주었다. 정말로 모든 단계에서 과학이 중요했으며 아무도 질투하지 않았다.---p. 344 블랙홀은 이제 존재하는 가장 완전한 거대 물체라고 여겨졌다. 이것은 1935년 1월 11일에 있었던 일과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찬드라는 연구를 시작하면서 괴로움과 아이러니가 뒤섞인 심정으로 에딩턴의 유명한 거부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는 오늘 한참 전에 헛소리로 여겨 무시되었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p. 367 과학은 추상적인 개념과, 우리 인간의 생활을 난쟁이로 만드는 거대한 우주의 문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고 생애의 대부분을 계산과 이론에 빠져 지내는 존재는 바로 인간들이다. 그들은 비합리적인 충동에 이끌릴 수도 있다. 에딩턴이 자신의 우주관과 일치하지 않는 결론을 믿으려 하지 않았을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긴밀한 공동 연구를 하려 할 때면 정열과 질투와 두려움과 야망과 실망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찬드라는 개인적인 평화를 영원히 탐색했지만 그것은 실현될 수 없었다. ---p.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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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별의 죽음에 관한 논쟁
- 블랙홀 이론의 개척자 찬드라세카르 1935년 1월 11일, 영국천문학회 모임에서 찬드라는 획기적인 이론을 발표한다. 별이 연료를 다 태우고 나면 자기 안으로 무한히 붕괴하여 사라질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과학자들은 별이 빛을 다하면 폭발하여 작은 파편이 되어 사라지거나 작고 밀도가 높은 불활성(不活性) 돌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빛을 잃고 사라져가는 희미한 별들이 바로 하얀난쟁이별이다. 찬드라는 이런 하얀난쟁이별의 질량에 상한선(일명 ‘찬드라세카르 한계’로 태양 질량의 1.4배)이 있어, 그 상한선을 넘어갈 경우 별은 자신의 중력 안으로 무한히 붕괴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냈다. 그는 이 생각을 5년 전 인도에서 영국으로 건너오는 배 위에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을 이용해 단 10분 만에 증명해냈다. - 식민지 출신 ‘애송이’ 과학자를 무시한 에딩턴과 영국 천체물리학계 부푼 가슴으로 발표를 마친 이 젊은 과학도는 뜻밖에도 천체물리학계의 최고 권위자 에딩턴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자기들이 누리는 특권적인 삶의 권리를 완전히 확신하던 시대의 인물(83쪽)”이었던 에딩턴은 자신의 기반 이론을 위협하는 인도 출신 ‘애송이’의 견해를 귀담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에딩턴의 권위에 눌린 다른 과학자들도 오류를 알면서도 에딩턴의 견해를 맹목적으로 지지했고, 심지어 찬드라의 친구들조차도 사적으로는 찬드라를 격려했지만 누구 하나 공식적으로 지지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사실 찬드라는 케임브리지로 온 이후 줄곧 보이지 않는 차별과 수모를 겪어왔다. 인도에서는 명문 프레지던시 칼리지에 다니며 노벨상 수상자인 삼촌 라만의 실험실을 드나들고, 인도를 방문한 조머펠트에게 조언을 구하고 하이젠베르크를 직접 수행할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었지만, 케임브리지에서는 인종적인 편견과 무관심, 당시 과학계의 정치적인 싸움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찬드라에게 관심을 보였던 거의 유일한 인물인 에드워드 아서 밀른은 에딩턴, 진스와의 물고 뜯는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찬드라에게 자기 이론에 반하는 연구를 그만두고 자기가 지정한 주제를 연구하라고까지 했다. -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을 정립하려는 에딩턴의 야심 1935년 1월의 운명적인 그날 이후 찬드라와 에딩턴의 대립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에딩턴은 찬드라의 수학에는 이의가 없지만, 물리학은 맞지 않는다는 이상한 주장을 계속 펼쳤다. 찬드라의 물리학이 정면으로 대립하는 두 이론, 곧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의 결합에 바탕을 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에서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상대성 이론에 정통했던 에딩턴은 고집스럽게도 찬드라 이론의 근거인 ‘상대성 퇴화’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 미국이라는 모험 찬드라는 이런 논쟁을 겪으며 거인들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또 한 명의 거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강의를 한 최초의 인도인이 되었고, 미국의 하버드 천문대에서 강의를 해줄 것을 제안받았다. 케임브리지의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분위기에 넌더리가 난 그는 1935년 말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신세계’에서 그는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다. 그를 초청한 하버드는 물론, 시카고 대학교의 여키스 천문대에서도 연구원 자리를 제안했다. 결국 그는 자신을 인정하고 환영해준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여키스 천문대로 자리를 옮겼다. 1939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 천문학 콜로키엄에서 찬드라와 에딩턴의 마지막 대결이 있었다. 두 사람은 또 한 차례 극단적인 대립을 보였지만, 당시의 찬드라는 이미 케임브리지 시절의 잔뜩 주눅이 든 애송이 과학자가 아니었다. 찬드라는 삼촌 라만의 추천으로 1944년에 영국학술원 특별 연구원으로 선출되었고, 1948년에는 노벨상 후보로 추천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찬드라의 발견이 제대로 인정받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제2부 핵무기 개발과 별의 물리학 - 별에 대한 새로운 이해 과학계에서 거부되었던 찬드라의 이론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데는 핵물리학이 큰 역할을 했다. 핵물리학은 1932년 중성자의 발견으로 시작되었는데, 스위스 태생의 물리학자 츠비키와 관측 천문학자 발터 바데는 중성자가 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신성이 갑자기 타올라서 수십만 배나 밝아진 것을 초신성, 초신성 폭발 뒤에 남는 단단한 알맹이를 중성자별이라고 명명했다. 츠비키는 초신성이란 질량이 큰 별이 아주 강력한 힘으로 폭발하여 작지만 밀도가 대단히 높은 상태로 응축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러시아에서는 란다우가 물리학의 입장에서 밀도가 높은 별의 알맹이(core)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차가운 퇴화 물질로만 이루어진 별 모델을 만들어, 이런 종류의 별 중에서 태양 질량의 1.5배보다 큰 별들은 불안정하며 무한히 붕괴하여 무한히 밀도가 높은 한 점이 되려는 성향을 가질 것이라는 결론을 산출했다. 하얀난쟁이별의 질량에 대한 찬드라세카르의 한계를 다시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란다우 역시 현실의 별들은 이런 성향을 보일 리가 없다고 즉시 선언했다. 1938년 3월 워싱턴에서 ‘별들은 어떻게 빛을 내는가’라는 주제로 학회가 열렸다. 모임에 초대된 사람 중에는 찬드라도 있었고, 핵에 양자역학을 적용해 알파 입자(헬륨 원자핵)가 우라늄 핵의 강력한 양전하가 만들어낸 장벽을 통과할 수 있음(터널링 이론)을 밝혀내고 그것을 별이 빛을 내는 방식에 적용한 가모브, 별의 내부를 구성하는 원소들의 핵이 극도로 높은 온도에서 터널링을 통해 서로의 내부로 들어가면서 일으키는 핵반응이 별에 동력을 공급한다고 제안한 후터만스와 앳킨슨 등 천체물리학과 물리학계에서 그 주제를 건드린 중요한 인물이 거의 다 모인 자리였다. 이 모임 이후 물리학자 한스 베테는 태양보다 질량이 크고 밝은 별들에 동력을 주는 핵반응이 수소를 태워 헬륨으로 바꾸는 과정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 찬드라의 발견을 실증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오펜하이머 그렇다면 별들이 수소를 다 태우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핵물리학과 일반 상대성을 결합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의 작업은 질량이 큰 별들이 하얀난쟁이별이나 중성자별로 끝나거나 아니면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찬드라도 오펜하이머와 비슷한 주제를 연구한 적이 있었지만, 그는 에딩턴과 밀른에게서 보았던 파괴적인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고전적인 천체물리학의 방식에 따른 논문을 발표했고 물리학자들은 그 논문을 무시했다. 찬드라가 발견한 상한선을 넘어서는 질량의 하얀난쟁이별이 엄청난 밀도를 가진, 상상할 수도 없이 작은 점으로 줄어든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 것 역시 오펜하이머였다. 오펜하이머와 스나이더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 질량이 매우 큰 별들은 핵연료를 모두 태우고 나서도 최대 질량 한계 아래로 줄어들 수 없기 때문에 안정적인 중성자별을 만들어낼 수 없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중력의 당기는 힘이 너무 강해서 아무것도, 심지어는 빛조차도 도망칠 수 없게 되는 지점인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특정한 조건 아래서 질량이 큰 별은 안으로 폭발해 슈바르츠실트 반지름보다 더 작아지고 주변의 공간을 잡아당겨 우리 눈앞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찬드라의 발견이 마침내 실증된 것이다. 그사이 전쟁의 어두운 구름이 유럽 대륙을 덮었다. 오펜하이머는 20세기 최대의 과학 기획의 관리자라는 일을 찾아냈다. 로스앨러모스에 본부를 둔 맨해튼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그는 원자폭탄을 생산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인재를 모집했다. 찬드라도 1944년에 프로젝트에 참여하라는 편지를 받았으나 인종차별에 대한 두려움과 절차상의 문제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 - 별의 폭발을 모델로 한 수소폭탄의 개발 1950년대 찬드라의 새로운 주제는 유체역학과 자기 유체역학의 안정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엔리코 페르미의 도움으로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에 정식으로 임용되어 핵 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찬드라의 새로운 관심사는 원자폭탄 이후의 새로운 무기인 수소폭탄 개발을 개발하는 데 핵심적인 지식이었다. 중성자로 우라늄 핵을 쪼개 원자폭탄(분열폭탄) 개발의 길을 연 페르미는 분열폭탄이 수소 원자의 융합에 필요한 온도를 만들어 수소폭탄(융합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융합폭탄은 별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별은 수소 핵들이 서로 융합하여 빛을 내기 때문이다. ‘슈퍼’라는 이름을 얻은 이 융합폭탄은 에드워드 텔러의 집착에 가까운 연구로 1952년에 마침내 완성되었다. 융합폭탄을 연구하던 또 하나의 집단인 프린스턴 심층 연구소의 휠러는 폭탄과 별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잘 알고 있었다. 휠러는 매니악 컴퓨터를 이용해 질량이 매우 큰 별은 상상할 수도 없이 작고, 밀도가 높아질 때까지 움츠러든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나 휠러 역시 선뜻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 콜게이트의 초신성 연구와 중성자별의 발견 휠러의 결과를 부정할 수 없게 해준 것은 콜게이트의 초신성 연구였다. 콜게이트는 동료 화이트와 별의 폭발에서 중성미자가 하는 역할에 주목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그것이 폭발이 일어나도록 돕는가를 알아보았다. 콜게이트는 휠러와 찬드라의 수학, 즉 별들이 실제로 밑도 끝도 없이 붕괴를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의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낸 숫자로 입증했다. 그리고 1967년 수학적으로는 입증되었지만 여전히 가설로만 존재하던 중성자별이 천문학자들에 의해 마침내 관측되면서, 하얀난쟁이별 이외에 별이 죽어가는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질량이 큰 별이 죽는 또 다른, 그리고 더욱 극적인 방법이 남아 있었다. 하얀난쟁이별이나 중성자별이 되지 않고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것,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1970년대 초 마침내 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제3부 블랙홀, 끝나지 않은 수수께끼 - 의심할 수 없는, 블랙홀의 존재 1966년에 콜게이트와 화이트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별이 붕괴되는 실제 메커니즘을 탐구하던 무렵, 영국의 수학자 로저 펜로즈가 별이 사건의 지평선을 통과하여 사라지면 특이점에 이를 때까지 영원히 붕괴한다는 것을 위상 수학을 통해 증명했다. 그리고 1967년에 휠러가 붕괴된 별들이 빠져드는 공간 영역을 가리키는 ‘블랙홀’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제는 누구도 블랙홀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고, 연구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찬드라도 블랙홀 연구에 합류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블랙홀의 구조와 전자기와 중력파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하기 위해 복잡한 계산으로 빠져들었다. - 우울증과 끝없는 학구열 사이를 오갔던 찬드라의 말년 1970년대 후반, 찬드라는 자신의 블랙홀 연구 결과를 정리해서 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자신을 괴롭혔다. 그는 노벨상을 제외한 모든 중요한 과학상을 다 받았지만, 하얀난쟁이별의 질량 상한선을 발견한 일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불만스러웠다. 1982년에 《블랙홀의 수학 이론》을 완성하고도 내내 우울증에 시달렸다. 1983년에 마침내 노벨상을 받았지만, 선정 이유가 ‘하얀난쟁이별의 구조 연구’였기 때문에 찬드라는 몹시 기분이 상했다. 그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평생을 바쳐 연구한 몸통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은 화려한 영접과 관리직으로 옮기라는 초대에 압도당해 연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찬드라는 정반대였다. 그의 생산성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생애의 마지막 즈음에는 뉴턴에 매료되어 《일반 독자를 위한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출간하고, 모네의 그림과 일반 상대성에 대한 에세이도 완성했다. 동료들은 크게 놀랐다. “세상에 찬드라는 다음에 무엇을 할 생각인가? 어떻게 한 페이지 전체를 차지하는, 일반 상대성의 난해한 방정식들이 아름다울 수가 있단 말인가?” 찬드라의 대답은 이러했다. - 찬드라 엑스선 망원경이 보여준 블랙홀의 신비 찬드라는 1995년 아내 랄리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했다. 찬드라가 죽고 4년이 지난 1999년 7월 23일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 호가 블랙홀을 찾는 임무를 띤 찬드라 엑스선 망원경을 싣고 발진했다. 찬드라 엑스선 망원경은 지금껏 두 블랙홀의 합체나 퀘이사에서 나오는 제트 기류, 은하계 중앙의 거대한 블랙홀 사수자리 A*, 회전하는 블랙홀 등 우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블랙홀은 과학자들에게 우주에 대해 숨 막힐 듯한 전망을 열어주었다.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블랙홀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고, 블랙홀을 머나먼 은하계로 여행하는 문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블랙홀이 시간 여행의 통로가 될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수학적인 기만이나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찬드라가 1980년 8월 아라비아 해에서 얻은 번득이는 영감도 그러했다. 찬드라의 순간적인 영감이 우주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듯, 오늘날 과학자들이 하고 있는 ‘비현실적인’ 연구들도 언젠가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세계, 전혀 다른 우주를 열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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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새로운 물리학이 열릴 가능성
세계 최고의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서는 2008년 주목할 만한 과학 이슈의 하나로, 올 여름 완공될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를 꼽았다. 이 가속기의 주요한 목적은 초대칭 입자와 힉스 입자의 실존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실험 과정에서 강한 에너지들이 부딪칠 때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는 ‘미니 블랙홀’을 관찰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주 과학 분야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개념인 블랙홀은 우주 생성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서 과학자들에게 매력적인 연구 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 선진국들은 블랙홀을 찾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1999년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 호를 통해 15억 달러짜리 최첨단 우주 망원경 ‘찬드라 엑스선 망원경’을 우주 공간에 설치했다. 이 망원경의 주요 임무는 블랙홀에서 나오는 엑스선을 탐지하여 블랙홀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00년 초대형 블랙홀을 발견한 이래로 우주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잇달아 밝혀내고 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블랙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관여하는 에너지의 크기가 인간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엄청난 값을 갖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에너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의 여러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새로운 물리학을 열 가능성과 블랙홀이 거대한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블랙홀 이론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20세기 과학의 역사 - 블랙홀은 누가, 언제, 어떻게 발견했는가 《블랙홀 이야기》는 찬드라와 에딩턴의 대립으로 첨예화된 별의 죽음에 관한 논쟁에서 시작해, 과학계에서 철저하게 무시되었던 찬드라의 이론이 2차 대전과 냉전 시기 수소폭탄과 원자폭탄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다시 빛을 보기까지, 그리고 핵무기 개발에 적용된 초신성 폭발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중성자별이 발견되고 마침내 블랙홀의 존재가 입증 및 관측되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이야기와 이론, 두 측면 모두에서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 - 20세기 과학의 주요 성과와 그 핵심 인물들 이 책의 1차적인 저술 동기는 블랙홀이 발견되는 과정에서 찬드라가 초석의 역할을 했음을 분명히 밝혀주는 것이지만, 그것을 상세히 서술하는 과정에서 20세기의 주요한 과학적 발견과 사건들이 포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상대성 원리와 양자역학이 여러 과학 분야에 적용되면서 새롭게 발견된 사실들, 20세기 전반기 에딩턴이 주도하고 있던 영국 천체물리학계와 케임브리지의 분위기, 라마누잔이나 찬드라와 같은 천재적인 젊은이들을 영국으로 보내 자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로 키우려던 식민지 인도의 의지, 코펜하겐이나 괴팅겐 등 유럽 과학 중심지들의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격랑 속에서 희생당하거나 급부상한 과학자들의 운명, 핵무기 개발 경쟁 등 이 책 한 권만으로도 20세기 과학의 주요 성과와 그 핵심 인물들의 활약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 과학의 사회적 성격 저자는 철저하게 무시당했던 찬드라의 이론이 약 40년 후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을 제국주의 시대 영국과 인도의 관계, 세계 대전과 냉전 시기의 정세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입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의 발전을 촉진하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하는 과학자 개인의 전기(傳記)적 사실과 성격까지도 꼼꼼하게 밝혀냈다. 이를 통해 독자는 과학이 그것에 참여하는 개개인의 특성과 그 배경이 되는 사회 전반의 흐름에 영향을 받으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더디게 발전해가는 것임을 확인해볼 수 있다. 과학자가 ‘과학자로서의 윤리’를 저버렸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 - ‘서구 과학계의 권위자’ 에딩턴은 끝까지 ‘과학자’였어야 했다 과학자들은 명백한 오류 앞에서는 뒤로 물러나는 법을 익힌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째서 에딩턴은 과학자의 존재 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던가. 저자는 그에 대해 몇 가지 추측을 내놓았다. 하나는 에딩턴이라는 인물이 체화하고 있던 제국주의 시대 영국인의 전형적인 생각과 태도이다. 에딩턴이 찬드라에게 직접적으로 인종 차별적인 언행을 보인 적은 없지만, 그는 무의식중에 인도에서 건너온 새파란 젊은이의 의견을 무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찬드라에게 최신 계산기까지 사 주며 연구를 격려하던 에딩턴이 공개 석상에서 그의 견해를 헛소리로 치부하며 무시했으니, 그 공격은 거의 계획적이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또 다른 추측 한 가지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인 ‘기반 이론’을 수립하려는 에딩턴의 야심이다. 퀘이커 교도였던 에딩턴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연결에 열광했다. 그는 수학을 통해 이 두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려 했다. 그런 목적에서 나온 것이 바로 원자부터 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하나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덩어리로 묶는 기반 이론이었다. 찬드라의 견해를 수용할 경우, 에딩턴의 기반 이론은 성립할 수 없었다. 자신의 연구 인생 전부를 건 기반 이론을 지키기 위해 에딩턴은 상대성 이론을 약간 손질해 자기만의 버전을 만들었고, 찬드라의 견해를 무참히 짓밟았다. 이러한 집착은 결국 에딩턴 자신이 기초를 놓고 일으켜 세운 현대 천체물리학을 다시 자신의 손으로 주저앉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 과학자가 ‘개인’을 뛰어넘어 ‘과학자로서’ 갖춰야 할 윤리 에딩턴은 과학자가 과학자이기 때문에 지녀야 할 윤리를 지키지 못하고 ‘약한 개인’으로서의 판단과 행동에 머물 때, 그 개인은 물론 과학의 발전을 얼마나 훼손할 수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또한 한 시대의 인식적 한계나 편견이 과학의 행보를 어떻게 가로막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예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데이터를 조작해 거짓 성과를 낸 한 과학자와 그것을 맹목적으로 지지했던 사회 전체가 과학의 발전과 사회 전반에 끼친 악영향을 떠올리게 된다. 20세기 전반기를 지배했던 팽팽한 긴장감과 모순이 에딩턴이라는 개인을 통해 터져 나왔듯, 21세기 초입에 일어난 황우석 사건은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요구하는 사회와 그 앞에서 판단이 흐려진 한 과학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비교를 더해 읽는다면, 《블랙홀 이야기》는 블랙홀 이론의 발전사뿐만 아니라 과학의 발전에 미치는 개인과 사회의 영향이라는 문제까지 고민해볼 수 있는 한층 깊이 있는 독서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