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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허물기
말 들었어야 했는데... 내가 살던 집과 내가 사는 이유 다시 집으로 꿈에 그리던 집 플로이드의 오래된 집 나의 집 작업 우드척과 다람쥐 할 줄 모르는 일에 이름 붙이기 중년의 위기를 넘겨준 석고보드 모두 무너졌다. 가설발판 존과 툴리의 멋진 모험 분필로 그어진 선 마무리 작업 에필로그 - 또 다른 강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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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저녁 식사를 한 후에 아버지와 내가 부엌 식탁에 앉아 있을 때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할 계획인지 물으셨고 나는 궁색한 대답을 했다. 내가 대학에 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얘기를 많이 나누지 않았었다. 나는 일찍이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음악 학교를 가겠다고 결정한 상태였고 내가 아는 최고의 학교 두 곳에 입학원서를 냈다(예술전문학교에 대한 생각은 정말이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등록금이 조금이라도 더 싸고 스크랜톤에서 가능한 더 멀리 떨어진 학교를 다니기로 결정했다. 아버지는 나를 설득해서 마을에 있는 예수회 학교에 등록시키려 했지만 그것은 마음에 별로 내키지 않는 시도였다. 아버지는 정말이지 대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셨다. 아버지가 그날 밤 내게 말씀하셨다.
"몇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았는데, 너만 원한다면 전기기술자 조합에 견습공으로 넣어줄 수도 있어." 나는 아버지가 몸담은 세계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그냥 허튼 제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전기기술자는 높은 보수를 받고, 대체로 하는 일이 깨끗해서 건축 분야에서는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아들을 마피아의 세계로 초대하는 근엄한 아버지의 목소리로 그 제의를 하셨다. 아버지에게 있어 전기기술자가 된다는 것은 성공이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싫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전기기술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이유였는지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나도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지 모르는 어떠 것이었다. "트럼펫을 연주하고 싶다면, 최소한 비빌 언덕은 있어야지."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시에 나는 정말로 트럼펫을 연주하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비빌 언덕 같은 건 필요없다'고 말해 버렸다. 그날 밤 이후로 거의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나는 비빌 언덕을 갖는다는 말을 좋은 의미로 이해한다. 나는 그게 무엇이든지, 달려가고 있던 트랙에서 미끄러졌고, 20년 전의 그 끔찍한 겨울에 그랬던 것처럼 목적 없이 떠도는 느낌이다. 오늘 밤, 보드에서 못을 뽀는 일은 완전히 정상적이고, 유용하며, 만족감을 주는 듯하다. 장도리 갈고리에 끼인 못에서 삐걱거리는 경첩 소리가 난다. 그것은 편안한 소리이다. '퉁' 하고 울리는 부드러운 기타 선율만큼이나 편안하다. 트레비스 트리트는 노래한다. "그때에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 아버지께서 분명 내게 경고하셨어. 도시 생활은 힘든 거라고. 꿈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웃기지 않아? 옥수수가 자라지 않는 곳에서 말야." 나는 약간 목이 메었다. 맥주와 감상에 젖어 있을 때는 컨트리 음악만한 게 없다. 내가 일을 계속하는 동안 음악의 리듬은 점점 더 변해 가고 전체적인 작업과정은 갈수록 쉬워지는 것 같다. 나는 못을 더 쉽게 빼기 위해 작은 나무토막을 망치 머리 밑에 놓고 쐐기로 이용하는 법을 알아내고는 스스로 꽤 유능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나는 건축 노동자가 될 수도 있었으리라. 나는 깔끔하게 쌓아올린 나무 더미를 흰색 나일론 줄로 묶는다. 그 묶음을 머리까지 들고는 지하실로 가는데, 클램프 라이트가 지붕보에서 '툭'하고 바닥에 떨어져 전구가 박살난다. 내가 클램프 라이트의 전기 코드를 나무더미에 끼었던 것이다. 내 작업 공간은 다시 전구알만 있는 황량한 불빛으로 되돌아간다. 노래는 끝이 난다. 건축 노동자가 되려면 견습기간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길어질 것 같다. --- pp 146~1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