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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최고의 농사꾼, 우리 아버지 2. 네 번이나 집을 나가다 3. 복을 가져온 복흥 쌀 상회 4. 신용으로 일으킨 사업 5. 시간과 행동의 철학 6. 1등을 앞지른 2등 7. 대동맥 경부 고속 도로 8. 차 왕국을 꿈꾸며 9. 500원짜리 지폐와 배만들기 10. 코끼리를 이긴 개미 11. 생각하는 불도저 12. 땅은 넓을수록 좋다 13. 통일 국가를 꿈꾸며 시련 없는 성공은 없다에 대하여 정주영의 발자취를 따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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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4월, 전쟁이 끝나고 휴전(전쟁을 쉼)이 되었어요.
휴전과 동시에 나는 정부에서 발주한 고령교 공사를 맡게 되었어요. 고령교는 대구와 거창을 잇는 다리였어요. 공사비가 5천 4백 78만 환이나 되는 대규모 공사였어요. 나는 의욕을 가지고 다리 공사에 덤벼들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그 다리는 문제점이 많았어요. 전쟁중에 많이 깨어져 못 쓰게 된 새 다리를 짓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거든요. 공사는 더디게 진행되었어요. 게다가 물가가 계속 올라가는 아주 심한 인플레이션때문에 공사비는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갔어요. "형님, 포기합시다. 이대로 공사를 계속하다가는 회사가 망하겠어요. 빚쟁이들한테 시달리는 것도 지쳤다고요." 아우들은 공사에서 손을 떼자고 했어요. 나는 그럴 수 없었어요. 내 철학은 한번 손을 댄 일은 반드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으니까요. 나는 계속 자금을 끌어들여 마침내 고령교 공사를 끝냈어요. 그 공사에서 이익은커녕 6천 5백만 환의 적자를 내고 말았어요.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큰 손실이었어요. 나는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좋은 경험을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어요. 한번 손실을 입었다고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면 더 큰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현대 건설이 조금씩 커 나가기 시작한 것은 그 후부터였어요.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 고령교 공사를 끝내자 정부에서 현대건설을 높이 평가해 주었던거예요. 믿을 만한 회사라는 신용까지 덤으로 얹어 주었어요. 그 다음부터 정부의 공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요. --- pp.54-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