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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아픔
5분 자유발언|신분 상승|열린 맨홀 뚜껑|잔디야, 산책 나가자|어머니 당신은|번갯불|난 원숭이가 아니다|장애인 취업|봉자|천만다행|임대 아파트 관리비 체납|시내버스 정류장에서|봄 타는 남자|문전박대|왜 자장면 집만 가요|소통의 부재|소금 세례 1|소금 세례 2|어디까지 가세요|푸대접|미주 한인 장로집에 초대받던 날|여성장애인 성폭행|여성장애인 야학|인도 위에 파묻힌 지뢰들|혼자는 살 수 없다|산다는 게 참|배구 연습장에서|산행 안내|싫은 사람|정말 나쁜 사람들|시각장애인 등반하는 날|어떤 동창회|다람쥐야|시각장애인의 애환|태풍 나리|다문화사회|카세트테이프에게|꼬마 천사|분노 제2부 세상 속으로 정치인 복지|장애인 교육지원법 제정하라|연대사|장애인 일자리|시내버스 정보화 구축 사업|인력 시장 출근하던 날|시각장애인 사회적 일자리|화날 때|해외연수 유감|기자 유감|피 같은 예산|예산 확보, 부서 이기주의|돈 남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예·결 특위장에서|찾아가는 장애인 도서관 유감|미운 사람|열린우리당 해체|서럽다|스트레스|슬프면 우세요|눈이 안 보여 감사할 때|인터넷열차|후회막급|어떤 무시|중증장애인 시설 부지 답사하던 날|부탁해요, 음성 엘리베이터|정치인|준의원|발언대|구두 찾기|일본 우에노 공원|동경 관음사에서|하루무치 작업장에서|뻬삐보육원|무사시노 시립 도서관 방문 제3부 도전 봄바람에 취해서|방송 카메라|비에 젖은 양말|600km 완주|달리는 쾌감|빅듄|오아시스|피라미드|모악산 등반|용돈이 녹용으로 둔갑|고비 사막 가는 길|참 봉사|고비 사막의 홍시|고비 사막 롱데이|고비의 사계|지옥의 문|중국 고비 사막 마라톤 완주 후|촌장집에서 민박|찬미랑 한라산 등반|지리산 동계 종주|삶이란|봄여름가을겨울나기|내비게이션|재활|새로운 도전을 위하여|도전을 위한 몸 만들기|신발 끈을 바짝 조이자|일어나라 제4부 사는 게 희망이다 꽃샘추위|누워서 쓰는 글|행복이란|삼행시|서요|아내의 정성|기수가 장인 되던 날|화초 재배|무욕|말없는 약속|반주 한잔|딸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친구|내 방 가져 보는 게 소원|국무총리 표창장 수상|게으름|홍삼액|홍도에서 목포 오는 선상에서|광주 망월동 묘지 참배|쥐구멍|막내아들 녀석 마음|부부의 날|눈동자 문신 수술|거울 앞|나뭇잎|장애인과 장애우|마음을 비우면|고들빼기김치|간살스럽다|양심 불량|정성|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며|선운사 동백꽃|들꽃|감사하는 마음|부정(父情)|희망|집안 청소하는 친구|푸진 막걸리|이혼 사유|국기에 대한 경례|깻잎 장아찌|재수가 좋다는 말에|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얇은 지갑|살충제|어깨가 저릴 때|영아원 경식이|묵 먹기|문자 메시지|녹음기 애인|애인이 논다|시작(詩作)|점자책의 수난|가을밤|옹달샘 갈 때마다|점자책|아들 방에 홀로 누워|희망의 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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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급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이다. 그의 시를 통해 비장애인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장애인들이 겪는 아픔과 상처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상처투성이의 삶을 도전과 희망으로 바꾸어 가는 그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산다는 것의 의미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이 땅에서 장애인이라는 소수자로서 겪는 답답한 일상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삶을 긍정하고 삶에 도전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자 힘이기 때문이다.
여기, 4대 극한 마라톤을 완주해 그랜드슬램을 꿈꾸는 이가 있다. 사하라 사막(2005), 고비 사막(2007), 아타카마 사막(2008)을 횡단한 의지의 인물, 송경태. 놀랍게도 그는 1급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이다. 게다가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며, 전북 시의원이다. 입이 쩍 벌어진다. 무수한 도전의 자국이 찍혀 있는 그의 이력은 확실히 보통 이상이다. 몇 번의 방송을 통해 이미 알려져 있는, 그러니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가 이번엔 시인이 된다. 그동안 마음 안에만 꾹 눌러 감춰둔 이야기를 이번에 속 시원히 풀어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란 제목으로 첫 번째 시집을 출간하였다.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비장애인은 제 뜻대로 떴다 감았다 할 수 있는 ‘눈’을 ‘삼 일’만 뜨고 싶다는 그의 표현은 가장 진부하지만 진솔하다. 따라서 그의 ‘삼 일’ 또한 예사롭지 않다. 보통의 ‘삼 일’은 비장애인이 엉겁결에 지나쳐버리고 마는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이겠지만, 그에게는 세상의 전부이고 시작과 끝임을 의미한다. 이는 그의 일상이 비장애인의 시간과는 너무도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보도블럭, 입간판, 화장실 등이 그에게는 얼마나 큰 산이고 벽인지를 단 한 편의 시로 알게 한다. 이렇듯이 그가 드러내는 일상은 비장애인에게는 무던한 일일지라도 그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흉측한 상처투성이의 삶으로 전락시키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장애인에 대해 비장애인이 갖는 편견의 무게는 물론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비장애인들보다 크게 느끼는 책임감과 상실감을 묵직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풍자, 사회 제도의 불합리를 익살스럽게 꼬집어 내고 있다. 그러나 어둡지는 않다, 그의 시 세계는. 그의 관심은 일상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답답한 이 일상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삶을 긍정하고 도전한다.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스스럼없이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또 그에 대해 반드시 고마워한다. 그리고 즐거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그의 시에는 질긴 생명줄처럼 붙어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솔직해서 확실히 제대로 까발리고 있는 시어들과 발랄한 느낌을 주는 문체가 그 읽는 맛을 더한다. 그의 시를 읽으려면 ‘적어도 내게는 편견이 없겠지’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마저도 편견일 수 있다. 그리하여 다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지 않도록, 불필요한 배려로 불편을 주지 않도록, 나와 조금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이제는 아는 사람만 아는 게 아니라 모르는 이들까지 알 수 있도록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