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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산에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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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청춘의 나날
산을 향해서
알프스의 바위와 눈
아침노을에 물든 고줌바캉
마터호른의 검은 십자가
아프리카의 하얀 탑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안데스 산맥의 주봉
뗏목 타고 60일간 아마존에서
산의 왕자, 에베레스트
5대륙 최고봉 답파
지옥의 벽, 그랑드조라스
후기
해설―유쾌한 방랑자의 초상
연보

저자 소개

저자 : 우에무라 나오미(植村直己)
1941년 효고 현에서 태어나 메이지 대학을 졸업했다.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세계 최초로 5대륙 최고봉에 올랐다. 1974년 개썰매를 몰고 2년에 걸쳐 북극권 1만 2000킬로미터 단독 횡단, 1976년 또다시 개썰매를 몰고 북극점 단독행과 그린란드 종단에 성공했다. 그때의 공으로 1979년 3월 영국에서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에게 주는 국제 스포츠 용맹상을 수상한다. 1984년 2월 북미의 매킨리 단독 등정에 성공하였으나 하산 도중 실종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북극을 달린다』 『북극권 1만 2천 킬로미터』 『북극점 그린란드 단독행』 등이 있다.
역자 : 김성연
일본어 전문 번역가. 드라마 <고쿠센> <인간의 증명>, 영화 <철도원> <박치기>, 뮤지컬 <백설공주> <오즈의 마법사>, 애니메이션 <도전자 허리케인> <요리왕 비룡>, 다큐멘터리 <세계의 민족> <세계의 오지> 등 주로 영상·공연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4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340쪽 | 444g | 153*224*30mm
ISBN13
9788996000570

책 속으로

남극대륙 단독횡단! 남극대륙을 혼자 개썰매를 몰고 건너가는 것이 나의 마지막 꿈이다. 나는 지리학자도, 물리학자도 아니다. 남극에 들어가더라도 과학적인 연구조사나 활동을 할 만한 자질도, 지식도 없다. 단지 나의 한계를 시험하며 무언가를 찾아내고 싶다. 이미 남이 해낸 일을 뒤따라 흉내 내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본래 모험이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 p.325

출판사 리뷰

20세기 최고의 모험가, 우에무라 나오미의 모험기
1970년 한 산악인에 의해 세계 등반사에 새로운 역사가 쓰인다. ‘세계 최초로 5대륙 최고봉 등정. 등정자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모험가, 스물아홉 살의 우에무라 나오미.’ 산악인 우에무라 나오미(1941~1984)는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그의 생생한 육성이 담겨 있는 《청춘을 산에 걸고(靑春を山に賭けて)》는 메이지 대학 산악부 시절부터 5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다음 그랑드조라스 북벽을 동계 완등한 1971년까지 10년 세월을 다룬다.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우에무라 나오미는 1966년에 유럽 최고봉 몽블랑과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에 오른다. 이어 1968년에는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 정상 등극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그리고 1970년 마침내 일본 산악회 대원으로서 아시아 최고봉이자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북미 최고봉 매킨리. 그때까지 4인 이하의 등반을 금지하고 있던 미국도 에베레스트까지 오른 이 희대의 산악인에게 예외적으로 단독등반을 허락한다. 이때가 1970년 8월 26일, 나오미는 인류 최초로 5대륙 최고봉을 오른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다. 더욱 놀랍게도 에베레스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단독등반이었다.
그의 꿈은 산에 머물지 않았다. 아마존의 원류에서 하구까지 6000킬로미터를 뗏목을 타고 60일 만에 주파하는가 하면, 에스키모인들과 1년간 극지 생활을 한 후 이제 막 결혼한 신부를 남겨두고 개썰매를 이용해 북극권 1만 2000킬로미터를 단독 종단함으로써 북극점 최초 단독 도달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일본 열도 3000킬로미터를 도보로 종단해 52일 만에 완주하기도 한다.

살아 있는 전설 우에무라 나오미의 유쾌한 초상
그의 전설적인 모험담은 전 세계 산악인들뿐만 아니라 모험을 갈구하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도전정신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그때까지 등산은 서양인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었기에 그가 이룬 에베레스트 정상 등극은 더욱 값진 기록이었다.
개썰매를 이용하여 북극권 12000킬로미터를 세계 최초로 단독 종단함으로써 북극점 최초 단독 도달이라는 기록을 세웠을 때 영국에서는 가장 용감한 사람에게 주는 국제 스포츠 용맹상을 수여한다. 5척 단신의 동양인이 이룬 성공치고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오미 사후에 일본은 이 국가적인 영웅에게 국민영예상을 주어 그의 정신을 기린다. 뿐만 아니라 나오미의 종적을 좇는 젊은이들은 지금도 그가 마지막 사라진 길을 되짚어 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사후 20주년을 맞은 지난 2004년에는 대담집을 쏟아내는 등 일본에서 우에무라 나오미는 여전히 국민 영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도 끊임없이 회자되며, 앞으로도 많은 산악인들의 맏형으로 가슴 깊이 새겨질 것이다.
살아 있는 전설 우에무라 나오미의 최초의 모험담을 담은 《청춘을 산에 걸고》는 1971년 일본에서 발간되어 현재까지 절판되지 않고 꾸준히 쇄를 거듭해 읽히고 있다. 국내에는 1970년대 평화출판사에서 《내 청춘 산에 걸고》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했으며, 1994년 포켓북으로 펴내기도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절판되어 있었으나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 속에서 이번에 산악인 심산이 편집인으로 있는 마운틴북스에서 새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하게 되었다.
북극 횡단에 도전해 무려 17개월에 걸쳐 1만 2000킬로미터을 주파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담은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평화출판사, 1989년) 역시 지금은 절판된 상태다. 나오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글 모음집인 《아내여, 나는 죽으러 간다》(신원문화사, 2003년)가 출간되어 있다.

세계를 무대로 모험한 작은 거인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나오미의 모험은 매킨리에서 중단된다. 마흔넷이 되던 해인 1984년 2월 13일, 세계 최초로 매킨리 동계 단독등반에 성공한 다음 하산하던 중 아사히 텔레비전과의 교신을 끝으로 소식이 끊긴 것이다. 그가 파놓은 설동도 발견되고 그가 떨군 장비들도 수거되었지만 시신만은 끝끝내 찾을 수 없었다.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도전이라고 아내를 안심시키고 떠난 그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어쩌면 그의 갑작스럽고도 불행한 죽음이 없었다면 그의 모험담은 쉽게 잊혔을지도 모른다.
산악인 심산은 해설글에서 “그의 시신이 끝내 발견되지 않은 것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지금도 그가 이 별의 어느 후미진 오지를 예의 그 소년같이 천진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마냥 걷고 있을 것만 같다”고 말했다.
그는 눈구덩이에 빠져서나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에 빠져 생사를 오갈 때마다, 이렇게 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신에게 되물었다. 그 역시 가능한 한 길고 질긴 삶을 살고 싶어 했다.
뗏목을 타고 아마존 강을 떠내려가겠다고 결심할 만큼 나오미는 무모할 만큼 용감했다. 그러나 차비를 절약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그 방법을 택했을 만큼 가난이 언제나 그의 발목을 잡았다. 뱃삯을 치르고 나면 빈털터리가 되기 일쑤였다. 그의 아지트가 된 장 바르네 씨가 운영하는 스키장까지 약 400킬로미터를 히치하이크를 해서 찾아가곤 했다.
제2의 고향이 된 프랑스 스키장에서 산행자금을 모으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도 어느새 짐을 싸 짊어지고 25여 개국을 돌아다녔다. 창문도 없는 4등 선실에 짐짝처럼 실려 이동하면서도 다음 산행을 위해 남들이 먹다 버린 음식을 수거해 썩지 않게 소금을 뿌려 저장해두는 걸 잊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마침내 정상에 서서 누리는 잠깐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는 창피한 줄도 몰랐다. 그리고 그의 방랑 유전자는 그를 한시도 머물러 있게 하지 않았다.

이런 데서,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는 않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은 산에서 죽어야 제격이라고 얘기하지만, 난 그렇게 죽기 싫다. -본문 51쪽

나는 펜바 텐징보다 두 배쯤 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대로 황천길로 간다면 내가 펜바 텐징보다 먼저 죽을 게 틀림없었다. 꿈에서 깨어보면 여전히 덜덜 떨면서 펜바 텐징이 입고 있는 따뜻한 오리털 파카를 끌어안고 있었다. -본문 90쪽

혼자 계획하고, 혼자 준비하고, 혼자 행동했던 단독등반가
책은 5대륙 최고봉을 등정하고 산에서 내려온 나오미가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성공담에 앞서, 이 책에서는 산에 오르는 능력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겸손함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는 대학 산악부 시절부터 1년에 130여 일을 산에서 산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할 생각은 없었다. 오로지 일본에는 없는 얼음으로 뒤덮인 외국 산을 올라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는 공사판 노동자로 일해 번 돈 110달러를 가지고 무작정 미국으로 간다. 캘리포니아 포도농장에서 잡역부로 일하다 미국 이민국에 검거되지만 강제 출국을 간신히 모면하고 프랑스로 날아가 스키장 경비로 일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의 산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방랑이 시작된다.
대학 산악부에 입회해 처음 산에 오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오미는 팀을 짜 동고동락하며 산에 오르는 합동등반에서는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 일본 산악회 대원으로서 에베레스트에 올랐을 때도 자신을 정상에 올려놓기 위해 뒤에서 애써준 대원들의 업적을 가로챈 것만 같아 부끄럽기까지 했다.
혼자 계획하고, 혼자 준비하고, 혼자 행동하는 단독등반이야말로 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이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그것을 극복해서 끝까지 오른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크레바스에 빠졌을 때 끌어 올려줄 산행 동지 대신 허리에 장대를 묶어 추락에 대비했다. 그렇게 그는 터벅터벅 두려움 없이 미지의 험로를 혼자 떠돌아다녔다.
자유와 방랑을 갈구했던 떠돌이, 도토리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아담한 체구, 때 묻지 않은 소년의 이미지를 가진 청년…… 우에무라 나오미에게 지구는 작은 놀이터였는지도 모른다.

“과거에 이룬 성공에 만족하고 안주할 수가 없었다.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대학 산악회에 입회하다
나오미는 1960년, 대학에 갓 입학해 산악부실을 기웃거리다 선배들에 이끌려 강제로 산악회에 입회한다. 멋모르고 합숙산행을 따라갔다가 눈사태 등의 조난사고보다도 훨씬 더 두려운 합숙훈련을 받는다. 다른 신입부원보다 경험이나 체력에서 뒤떨어졌던 그는 멍청하게 굴다간 맞아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아침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절 뒤편에 나 있는 9킬로미터쯤의 산길을 뛰어 체력을 쌓는다. 그렇게 산을 타던 그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저 산 생각뿐이었다.
나오미는 대학 4학년 시절 동료가 알래스카에 가서 빙하로 뒤덮인 산을 즐기고 돌아온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나오미는 한 번만이라도 외국 산에 오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외국 산에 가기 위해 일본을 떠나다
일본에는 없는 얼음으로 뒤덮인 산을 오르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그를 찾아왔지만 수중에는 돈이 없었다. 영어 학원에 다니면서 공사판에서 일해 겨우 110달러를 손에 쥔다. 그 돈으로 무작정 미국으로 날아갔지만 산행 자금을 모으기는커녕 당장 먹고살 길도 막막했다. 어떻게든 돈을 모아야 했던 그는 불법 노동자 신세로 캘리포니아 포도농장으로 숨어들어 멕시코인들 틈에서 포도 따는 일을 한다. 대학에서 농산제조학을 전공한 덕에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다 결국 붙잡혀 강제 추방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눈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만약 이대로 일본으로 돌아가면 부모님 얼굴도 친구들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자살이라도 하고 싶었다. 만일 죽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면 규슈나 홋카이도의 탄광에서 평생 광부로 숨어 살면서 두 번 다신 아는 얼굴을 마주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크레바스에 빠지다
그러나 산행 자금을 모으고 있었다는 그의 말이 받아들여져 다행히도 강제 추방만은 면할 수 있었다. 대신 곧바로 알프스로 날아가 등산을 하라는 조치가 뒤따른다.
1964년 10월, 나오미는 몽블랑 봉우리가 우뚝 솟은 알프스의 샤모니에 들어간다. 몽블랑 봉우리가 보이는 숲 속에 일본에서 산 2인용 텐트를 치고 낙엽을 모아 불을 지펴서 코펠로 감자를 삶아 먹으며 산행을 꿈꾼다.
샤모니에 들어온 지 2주 후, 일주일 치 식량을 사고, 25킬로그램이 나가는 가방을 메고 몽블랑 봉우리 단독행에 도전한다. 정상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보송 빙하를 건너던 나오미는 그만 크레바스에 빠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깜깜한 어둠 속. 운 좋게 크램폰(미끄럼 방지를 위해 등산화 밑창에 대는 등반장비)의 발톱이 벽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살아 있었다. 피켈을 이용해 기어올라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팀 등반이 아니었기에 사고가 일어나도 끌어 올려줄 사람이 없었다. 작은 크레바스라 다행이었지 만약 조금만 더 폭이 넓었다면 영영 살아날 수 없는 무서운 빙하 속에 갇혀 죽어갔을 것이다. 처음으로 등산의 위험과 대면한 그는 등산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서둘러 하산한다.

은인 장 바르네 씨와의 인연
나오미는 이곳에서 평생의 은인 장 바르네 씨를 만난다. 그와의 인연은 나오미가 스키장 아르바이트로 고용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장 바르네 씨가 운영하는 스키장에 스키를 즐기기 위해서 전 세계 아마추어 스키어들이 몰려들었다. 정작 이곳에서 일하는 나오미는 스키를 탈 줄 몰랐지만 그의 성실함에 반한 장 바르네 씨는 나오미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다. 나오미는 외국 산을 돌아다니면서도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왔고, 장 바르네 씨는 그의 업적을 자신의 일처럼 자랑스러워했다. 나오미가 맘 놓고 산행 자금을 모을 수 있었던 유일한 곳도 바로 이 스키장이었다.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 신세로 황달에 걸려 한 달간 병상에 누워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에 빠졌을 때 병원비를 내준 것도 장 바르네 씨였다.
스키장에서 일하던 얼마 후 나오미는 메이지 대학 히말라야 원정대에 합류해 셰르파와 함께 몸을 묶고 고줌바캉(7646미터) 정상에 오른다. 두 사람은 수많은 크레바스가 널려 있는 미로를 헤쳐 나가야 했다.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려고 무전기를 켜자 곧바로 달려든 대장의 호통 소리.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이다.” 나오미는 그 소리에 차마 포기하겠다는 말을 못하고 죽을힘을 다해 정상에 오른다.
‘메이지 대학 산악부, 고줌바캉 등정! 등정자는 우에무라 나오미!’
그의 사진이 신문 1면을 장식했지만 그는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을 온전히 맛볼 수가 없었다. 전진할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를 스스로가 결정하지 못하고 그저 뒤에서 망원경으로 길을 내다보며 훈시하는 대로 착착 올라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일본인 중 유일하게 정상에 올랐으니 일본으로 같이 돌아가자는 대장의 권유를 뿌리치고 나오미는 그대로 외국땅에 머물리라 작정한다. 이후로도 그는 팀을 짜서 동고동락하면서 오르는 합동등반보다는 단독등반 방식을 고수하게 된다…….
리뷰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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