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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열며
주 한 고비 - 태어나기 아이는 낳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 저통사회의 가문 잇기와 아들 낳기 자지바위에 잉태를 빌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신할미께 비나이다 아들을 잘 낳는 여인상 아들을 낳기 위한 잠자리 방법 아들ㄹ이냐 딸이냐 태교와 금기사항 세상을 향한 첫발 몸 풀기의 지혜 짚을 깔고 출산하다 조상들의 분만 자세 순산 태반과 탯줄 왕실의 세태와 안태 아이가 세상에 온 표식, 금줄 궁중에서도 금줄을 달았을까 무탈하게 쑥쑥 자라라 백일떡은 백 명이 먹어야 장수한다 아이의 첫 생일, 돌 두 고비 - 인생의 봄, 관례와 혼례 어른이 된다는 것 머리만 굵다고 다 어른인가 가례, 초례, 자관자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장가가고 시집가다 왜 혼례는 저녁에 올렸나 신부 집에서 혼례를 올린 이유 기러기와 함께한 백년가약 청혼을 거절하기 위해 만든 궁합 궁합이 좋은 사이는 따로 있다 51만 8,400명의 운세로 본 사주 해로의 증표, 회혼례 전통의 혼례 규범, 육례 혼인 준비를 서두르다 신랑, 신부를 만나다 시집 문턱을 넘은 신부 세고비 - 죽음,상례와 제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절차 사례가 아니라 상례 만가와 저승길 안내자 상주와 지팡이 장사 때 최고의 부조는 만장 사흘 내 입관은 살인행위 갈수록 짧아지는 장례 기간 3년상은 부모 사랑에 대한 보답 혼백과 귀신 슬픔을 위로하는 상부상조 임금과 왕비의 저승길, 국장 왕릉을 짓는 데 든 인력 망자를 기리는 마지막 의식 제사는 우리 민족의 상징 집안 제사에는 어떤 종류가 있나 몇 대 조상까지 제사 지내야 하나 제사상 차림의 원칙 제사는 어떻게 지내나 차례는 산 자를 위한 축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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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 행위 외에도 특별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임신하려 하기도 했다. 산모에게 쌀과 미역으로 첫국밥을 해주고 그 대신 그 집의 쌀과 미역을 받아다 국밥을 지어 먹거나, 정월 초하룻날 낳은 달걀을 먹으면 아이를 밴다는 말이 있었다. 경북 지방에서는 남의 논에서 이삭 백 개를 주워 밥을 짓기도 했다. 또 황소나 수퇘지의 생식기를 몸에 지니거나 삶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어, 아들 낳기를 바라는 집에서는 아예 암컷은 먹지 않고 수컷만 먹기도 했다.
심지어 돌부처나 돌장승의 코를 문질러서 그 가루를 마시기도 했는데, 이 가루는 ‘비고산鼻高散’이라는 약재로 밀매되기도 했다. 남성에게는 강신제요, 여성에게는 보음제補陰劑라 하여, 특히 아이를 못 낳는 부인들은 이 약재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 pp.31~32 여자의 미색이 반반하다고 해서 반드시 아들을 잘 낳는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얼굴이 못났더라도 눈이 샛별 같고, 입술이 붉고, 복부가 도톰하고, 배꼽이 깊숙하고, 허리가 곧고 몸이 단단하면 귀한 아들을 낳을 상이라고 보았다. 또 마르고 여의었더라도 입술이 붉으면 아이를 잘 낳고, 올바른 행실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입술이 창백하거나 엷은 여인은 아이를 잘 낳지 못한다고 하여 기피했으며, 입술이 검거나 검은 기가 돌아도 색욕이 강하다고 하여 기피했다. 이로써 선조들이 여자의 입술을 자식의 잉태와 밀접하게 연관지었음을 알 수 있다. --- p.37 분만을 쉽게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임신부에게 남편의 허리띠를 둘러주거나 남편의 옷을 덮어주기도 했고, 남편의 이름을 쓴 종이를 임신부의 발바닥에 붙이기도 했다. 또 순산한 산모나 다산한 부인, 쌍둥이를 낳은 부인의 치마를 구해 입히거나, 이들을 불러와 임신부의 배를 문지르거나 허리를 잡게 했다. … 산모에게 특별한 음식을 먹임으로써 순산을 기원하는 일도 있었다. ‘계란 빠지듯이’ 아이를 쑥 낳으라고 날계란이나 참기름을 산모에게 먹이는 것이 그렇다. 경기도 강화 지역에서는 달이 차지 않았는데 태기가 보이거나 유산기가 있으면 송사리를 생으로 먹였다. 송사리는 물을 거꾸로 잘 타고 올라가므로 그것처럼 아이가 붙으라는 의미다. 또 호박 줄기처럼 잘 붙으라는 뜻에서 꼬불꼬불한 호박 줄기를 달여 먹이거나, 대문 빗장에 톱질을 하여 그 가루를 먹이기도 했다. --- pp.72~73 아이가 출생한 지 한 해가 되는 돌은 아기뿐 아니라 산모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람은 360여 마디의 뼈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360여 뼈마디가 전부 이완되어 원상태로 돌아가는 데 1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산모에게 그 1년이란 시간은 몸이 출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기간을 의미한다. 이는 아기의 수명장수 못지않게 산모의 몸조리를 강조한 의미가 크다. 이 기간을 잘 보내야 훗날 산후병으로 인한 고생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 p.110 일반 서민들의 성년식은 양반층의 관례와는 사뭇 다르다. 서민들은 성인으로 인정받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받는 품삯이 달랐다. 성인이 되면 품삯도 반값에서 온값으로 오르며, 품앗이도 반품에서 온품으로 인정받았다. 마을의 집회소인 사랑방을 출입할 수 있는 권한도 얻는다. 농경을 주업으로 한 전통사회에서 어른으로 대접받는다는 것은 생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겼다. --- p.114 가령 신부 집이 20, 3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가정하자. 신랑이 아무리 일찍 출발한다 해도 오후 한두 시쯤 되어야 신부가 사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게다가 마을에 도착해서 바로 식을 올릴 수도 없다. 먼 길을 왔으니 잠시 요기도 하고 휴식도 취하고 사모관대를 갖추려면 적어도 한두 시간은 걸린다. 사정이 이러니 지금처럼 대낮에 혼례를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었다. 혼례는 자연스럽게 신시, 즉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행하게 되었다. … 또 음양으로 볼 때 저녁 무렵인 신시는 음기가 때에 맞아 만물이 타고난 성질을 부여받는 시기다. 또 만물이 그 형체를 완성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신시를 지나 유시(酉時, 오후 5시~7시)가 되면 음양이 서로 같아져 조화를 이룬다. 즉 12시인 오시午後에 가장 많아진 양기가 점점 소멸하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음이 점점 성장하여, 신시가 되면 오시에 일어난 음이 3음으로 커졌다가 유시에 음양이 서로 같아진다. 그러므로 가장 이상적인 혼례 시간은 벌건 대낮이 아닌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저녁 무렵이다. --- pp.133~134 대표적인 결혼기념일이 결혼 60돌에 행하는 회혼례回婚禮다. 자손과 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60년 전 결혼식을 올렸을 때처럼 남자는 사모관대를 하고, 여자는 원삼 족두리를 쓰고 연지곤지를 찍어 새 신부처럼 차리고 옛날에 치렀던 것처럼 혼례를 되풀이하고, 자손들에게서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라는 기원이 담긴 술잔을 받고 큰 잔치를 벌인다. 부부가 결혼하여 60년을 함께 살기란 쉽지 않다. 이날은 60년 전의 감격과 기쁨을 다시 맛보는 당사자들에게는 물론 자손들에게도 대단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이 든 자손들일지라도 고운 색동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춤을 추고 축시를 지어 올리고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려 부모를 즐겁게 한다. --- pp.173~174 죽은 지 사흘이 지나야 시신을 관에 넣는 이유를 정리하면 이러하다. 첫째는 소생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혹 돌아가신 부모가 다시 살아날지 모르니 적어도 사흘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장례를 치르기 위한 물품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례를 치르자면 상복이나 관 같은 여러 물품이 필요한데, 이런 물품들을 준비하려면 적어도 사흘 정도는 필요하다. 셋째는 멀리 있는 친척들이 부음을 듣고 찾아오는 시간을 고려한 것이다. 미리 시신을 묶어 관 속에 넣어버리면 친척이나 자식이 돌아가신 부모의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래서 우리의 전통 상례에서는 입관하기 전까지 시신을 묶지 않고, 얼굴을 싸지 않았다. 혹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의를 입히고 염을 할 때 끈으로 단단하게 묶을지언정 매듭을 짓지 않는 것 역시 혹시라도 시신이 깨어나면 저절로 풀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사흘 후 입관은 생명존중 사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 pp.232~233 조문을 갈 때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역시 부의금이다. 옛날에는 종이나 포, 비단, 쌀, 만장, 돈 등 상가에서 필요한 물품으로 부조를 했다. 이웃집에서는 대개 팥죽을 쑤어다 주었다. 상을 당한 사람들이 슬픔에 잠겨 음식을 직접 끓여 먹지 못할 뿐 아니라, 상제들이 목이 메어 밥 같은 굳은 음식을 잘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부드러운 죽을 쑤어다 주는 것이다. 굳이 팥으로 죽을 쑤는 것은 팥이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상가에서 필요한 물건을 중심으로 부조한 것은 서로 돕는 문화에서 비롯했다. 조선시대에는 장례 기간이 길다 보니 장례를 한 번 치르면 기둥뿌리가 뽑히다 못해 빚을 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서로 상부상조하지 않으면 장례를 치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pp.257~258 오늘날에는 자신의 형편에 맞춰 제사를 지낸다. 바쁜 시절에 예전처럼 4대 봉사를 하는 집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상놈 집안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사실 한 집안에서 차례와 기제사를 다 지내기란 쉽지 않다. 장남이면 집안을 대표해서 차례며 제사를 혼자 책임진다. 하지만 요즘은 아들딸 가리지 않고 형제들이 제사를 나눠 돌아가면서 지내는 집이 있다. 혹자는 이것이 우리 풍속에 어긋난다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고려시대와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오늘날처럼 큰아들이 제사를 전담하지 않았다. 큰아들, 작은아들 또는 아들딸 구별 없이 모든 자녀가 돌아가면서 한 차례씩 제사를 맡아 지내는 ‘윤회봉사’를 했다. 심지어 ‘외손봉사’도 널리 행했다. 하지만 윤회봉사와 외손봉사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들어 성리학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점차 사라졌고, 오늘날처럼 모든 제사를 장자가 주관하게 되었다. ---pp.290~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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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 배경과 의미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 어른이 되고 평생의 배필을 만나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를 여의며 살다 죽는 것이 보통 한국인의 삶입니다. 우리 가정의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다양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이런 모습을 일반적이라고 여깁니다. 이렇게 일생을 살며 치르는 의식을 통과의례라고 하는데, 사회가 날로 커지고 다변화하면서 오늘날은 의식도 간소해지고 의미도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입니다. 명절 연휴에는 해외여행을 나가는 사람들로 공항이 인산인해고, 어른이 되는 의식인 관례는 행하지도 않습니다. 또 예전에는 며칠 동안 행하던 혼례가 결혼식장에서 1시간에 끝냅니다. 모양새도 달라졌지만, 의미마저 퇴색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사람의 한평생』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저자가 스물다섯 해 동안 통과의례의 현장을 발로 뛰어 채집하고 정리한 기록입니다. 어떤 이는 지금은 행하지도 않는 옛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저자는 우리의 지난 삶을 다시 되새기며 옛것의 정신은 지키고 모습은 조금씩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집스럽게 옛것만을 고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형편에 맞춰 조금씩 변화시켜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통과의례를 만들자고 합니다. 이 책은 출생, 관례와 혼례, 장례와 상례 이렇게 인생에서 중요한 세 시기를 나누어 장을 구성했으며,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례를 통해 매 시기 행해지는 의례의 본질과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기 위한 어머니들의 노력은 어떠했는지, 태교는 왜 중요한지, 궁합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60년을 함께 산 부부만 지낸다는 회혼례는 어떤 것인지, 3년상을 지내는 이유는 무엇인지, 제사는 몇 대 조상까지 모셔야 하는지 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주제를 통해 의례의 형식과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 사례에 어울리는 사진 95장을 함께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습니다. 막상 관행적으로 행해오던 것을 시대에 맞춰 바꿔보려고 해도 형식이나 의미를 몰라 여의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깊이 있는 의례의 상징과 본질을 다룬 이 책은 큰 도움을 주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1장_한 고비 태어나기 1. <아이는 낳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 전통사회에서 가문을 잇는다는 것이 가진 의미는 무엇이며 아들을 낳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는지, 잠자리를 어떻게 하여야 아들을 낳을 수 있는지, 어떤 여인이 아들을 잘 낳는지에 대해서 옛 문헌을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태중의 딸을 아들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등 오늘날의 과학적인 사고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아들을 낳고자 한 옛 여인들의 노력이 눈물겹습니다. 2. <세상을 향한 첫 발> 아이를 가진 여인들은 어떻게 아이를 낳았는지, 태반과 탯줄은 어떻게 처리해야 아이와 산모에게 모두 유익한지, 금줄의 의미와 백일, 돌잔치는 어떻게 치렀는지 알려줍니다. 아이를 건강하게 잘 낳아 무탈하게 쑥쑥 자라길 바라는 옛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2장_두 고비 인생의 봄, 관례와 혼례 1. <어른이 된다는 것> 갑오경장 이후 단발령이 내리자 행하지 않았고, 이제는 성년의 날 특별 행사로만 행하는 남성의 성년식 관례와 여성의 성년식 계례는 아이가 성인으로 대접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습니다. 성년식을 통과해야만 품삯을 더 받고, 남자는 상투를 틀고 여자는 쪽을 찌며 사회의 당당한 한 인간으로서 대접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5월 셋째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정해 20세가 된 남녀를 축하하고 있습니다. 2.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우리 조상들은 혼례를 인륜지대사라 하여 인생의 출발점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절차가 많고 까다로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 장에서는 혼례 절차들의 의미를 살피고 부부가 될 때 첫 마음을 간직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조상들의 노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3장_세 고비 죽음, 상례와 제례 1.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절차>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절차입니다. 이 장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 조상들이 어떤 의식을 행하였고, 그 의식의 담긴 의미가 무엇이며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또 국장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 <망자를 기리는 마지막 의식> 요즘은 제사 의식이 많이 간소해졌고, 종교적인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제사를 우리 민족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집안마다 지방마다 제사를 지내는 방식이나 진설하는 음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돌아가신 조상을 잊지 않고 모신다는 정신은 같을 것입니다. 이 장에서는 집안에서 지내는 제사의 종류와 제사상 차리는 법, 제사를 지내는 방법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현대 생활에 맞게 변모하는 제사 방식도 제안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