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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역시 스스로 콘센트를 뺀 것인지도 모른다. 오빠가 청소기의 콘센트를 꽂았을 때 비디오 속의 소년이 플래이시백(flash back, 화면이 짐시 다른 장면으로 바뀌었다가 원래 영상으로 돌아가는 영상 기법-역주)되어 오빠의 머릿속에 되살아났던 것이다. 그 순간 오빠는 자신이 왜 인간으로 살고 있는 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왜 방을 청소하고 그것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는지 그 필연성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빠는 스스로 콘센트를 빼고 만 것이다. 오빠는 콘센트를 뺐디. 그런데 도대체 콘센트는 무엇일까. 오빠에게 그리고 소년에게 콘센트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콘센트를 통해 받은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단절된 것은?
--- p.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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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오랜만에 아파트 근처에 있는 비디오가게에 들렀다. 어느 틈엔가 개장되어 전보다 선반이 넓었다. 도난방지를 위한 것인지 입구에는 어마어마한 탐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비디오를 몰래 가지고 통과하면 경보가 울리는 모양이다.
나는 탐지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심장 고동이 빨라졌다. 역의 자동개찰구에도 같은 느낌이었다. 자동개찰구를 통과할 때 늘 스트레스를 받곧 했다. '자동개찰기가 갑자기 닫힌 순간 쇼크사한 사람은 아직 없는 것일까. 이런 일에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오래된 외국영화코너로 가서 비디오를 찾았다. 『세계잔혹이야기』선잠에서 깼을 때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오빠는『세계잔혹이야기』라는 영화 속에 나오는 어떤 에피소드를 몇 차례나 말한 적이 있다.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꿈속에서 오빠 몸밖으로 늘어져 있던 콘센트를 보고 그것이 다시 의식 속으로 부상했던 것이다. 『세계잔혹이야기』는 1960년대의 작품이다. 오빠는 이 영화를 언제 본 것일까. 아마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당시 오빠는 고등학생이 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테마곡이 대히트했다. 나는 초등학생이었지만 그 곡은 기억하고 있다. '모아'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곡이었다. 선반에 진열된 비디오를 차례대로 따라가니『세계잔혹이야기』는 바로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세 개나 꽂혀있었다. '속편'과 '속속편'이 이었던 것이다. 잠시 망설였지만 세 편을 모두 빼들고 카운터로 가져갔다. 이 비디오 속에 오빠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있을지도 모른다.『세계잔혹이야기』라는 타이틀이 너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디오를 보기도 전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파란 비닐봉투에 넣은 비디오를 가방에 넣고 나는 시부야로 향했다. --- pp.88~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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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가 죽었어'
아버지였다. 순간적으로 바닥이 푹 꺼지고 그대로 내 몸무게가 실려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언제요?' 내가 묻자 아버지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벌써 썩어서 알아 볼 수도 없어.'하고 중얼거렸다. '아무튼 바로 내려와. 알겠지? 늑장부리면 안 돼. 여긴 지금 야단이다.' 아버지는 은근히 질책하는 듯 그렇게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수화기를 내리고 의자에 앉았다. 머리 속에 홍수가 난 듯 생각이 모두 넘쳐흘렀다. 콸콸콸-.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무척 투명한 기분이었다. 오빠가 죽었다. 아직도 술 냄새가 그대로 났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머리 속 혈관이 수축되어 파리하게 경련이 일었다. 어쨌든 오빠가 죽었으니까 집으로 가야만 해. 세탁소의 옷 커버로 씌워두었던 상복을 꺼내서 짐을 꾸렸다. 사무실에 오빠의 부고소식을 팩스로 보내고 나서 화장하고는 문단속을 한 뒤 천천히 문을 잠갔다. 방을 나와서 깜짝 놀랐다. 밖은 이미 한여름의 저녁을 맞고 있었다. 역 앞으로 이어지는 상점가의 술집에서는 생선 굽는 냄새가 났고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들뜬 걸음으로 재잘거리며 걷고 있었다. 세상은 죽음과 무관하게 기분좋은 황혼을 맞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감각이 아득해졌다. 현기증이 났다. 마치 나 혼자 흑백세계로 빨려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빠는 2개월쯤 전부터 행방이 묘연했다. 오빠의 죽음에 대해서 나는 무척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렇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랬다. 어쩌면 오빠는 어제 밤 러브호텔의 천장에서 내가 섹스 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죽어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더니 여동생은 만취해서 남자에게 안겨 있었던 것이다. 안아준 남자의 어깨 너머를 보다가 무표정한 오빠의 눈과 마주쳤다. 등골이 오싹했다.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는 언제나 눈을 감고 남자와 자는 지도 모른다. --- pp. 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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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정신적인 것의 단절 그리고 소통방식
소설에서는 타인의 감정에 감응하기 쉽고 거기에 적응하여 버리는 사람들을 '콘센트'라고 부르는 대목이 나온다. 그들은 '세계의 호스트 컴퓨터'에 독자적인 방법으로 액세스 해 그곳으로부터 타인과 연결되어 버린다고 한다. 그들은 새로운 OS(운영체계)로 움직여 주위의 사람들로부터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블라인드를 내려 주위를 셧아웃 해 버린다. "인격이 해리되거나 분열된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 마음을 이루는 성분이 다른 것 같아. 운영체계가 다르다고 할까." 이것은 유키와 재회하는 대학시절의 동기였던 정신과 의사 야마기시의 말이다. "최근 확실히 새로운 OS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늘었어. 그들은 상당히 감도가 좋아. 새로운 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이 OS에는 아직 매뉴얼이 없어. 사용할 수 있는 처리프로그램이 없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보통사람의 시각에서는 고장났다거나 불량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제 시작단계에 있으니 말이야." 조금이라도 PC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콘센트'라고 하는 존재를 어떻게 포착하고 있는지, 한순간에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심리학, 정신병 용어를 사용하거나 혹은 '문학적 표현'으로 에로틱한 존재에 비유하여 표현하기보다는 'PC'라고 하는 기능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존재의 출현을 현대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콘센트』에서는 자연과 샤머니즘 그리고 PC와 현대 사회 등 다양한 요소들이 차례차례 예상외의 곳에서 혹은 예상할 만 하면 다시 새로운 장면으로 연결되어 최종적으로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형성된다. 이 책은 치밀한 구성과 예측할 수 없는 전개, 질리는 일없이 단숨에 읽어지는 책이다. 저자의 주문에 걸리기라도 하듯 일순간 빠져드는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듯한 혼란을 겪고 난 후 찾아오는 평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