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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프롤로그 1장. 이미지/텍스트 커뮤니케이션, 현대미술의 창작과 비평 사이 I. 들어가는 글 II. 이미지라는 미술 III. 이미지+텍스트, 고정과 중계 IV. 이미지+텍스트, 주정보와 잉여정보 V. 이미지/텍스트 커뮤니케이션, 보기와 읽기 VI. 이미지를 코드화(codification)하는 이름 짓기 VII. 이미지+텍스트를 탈 코드화(d?codification)하는 관람하기 VIII. 나오는 글 2장. 비주얼커뮤니케이션, 해석의 프락시스와 상호작용 사이 I. 〈Seeing & Showing〉展의 이해 II. 보기(Seeing)와 읽기(Reading) III. 보이기(Showing)와 해석하기(Interpreting) IV. 행하기(Doing)와 상호작용(Interactivity) 3장. 비평적 방법론에 의한 전시기획 I. 들어가는 글 II. 비평적 방법론의 의미 III. 미술사와 미술비평 IV. 상상력과 창의력 V. 나오는 글 4장. 멀티플 아트(Multiple Art), 증식과 해체 사이 I. 들어가는 글 II. 멀티플의 시작 III. 복제의 멀티플, 증식(multiplication)의 구조 IV. 복수의 멀티플, 해체(deconstruction)의 구조 V. 창작의 장에서의 멀티플 VI. 나오는 글 5장. 신체, 그 테마로서의 현대미술 I. 들어가는 글 II. 신체의 탄생 1. 2. 3. 4. 5 III. 신체와 미술 1. 2. 3. IV. 신체테마와 현대미술 1. 매체,소재로서의 신체 2. 성(性)으로서의 신체 (1). 성정체성 (2). 생물학적 성(sex) (3). 문화적 성(gender) 3. 민족, 인종으로서의 신체 4. 생태적 관심으로서의 신체 5. 과학, 의학에서의 신체 V. 나오는 글 6장. 한국실험예술의 테마-퍼포먼스 혹은 행위예술에 기초하여 I. 들어가는 글 II. 현재 한국에서의 ‘실험예술’이라는 용어의 의미 1 실험미술 2 실험예술 III. 한국 실험예술의 상부 테마 1 아방가르드와 실험 2 소통과 참여- 놀이, 인터랙션 IV. 한국 실험예술의 하부 테마 1. 친자연, 환경, 반문명 2. 현실저항과 반미학 3. 총체성과 탈장르 4. 상징, 은유 5. 몸, 성, 페미니즘 6. 자생성, 제의, 신명, 해학 7. 현장성, 동시성, 일회성, 우연성, V. 나오는 글 7장. ‘아방가르드의 실험예술’과 ‘대중지향의 예술제’ 사이 I. 들어가는 글 II. 아방가르드와 실험예술로서의 퍼포먼스 III. 참여와 소통 사이-퍼포먼스 예술제의 의미와 향방 8장. 현대구상조각의 한국성-인체 탐구에 기초하여 I. 들어가는 글 II. 구상조각의 가능성 III. 구상조각의 의미 IV. 한국의 구상조각 V. 한국성과 구상조각 VI. 인체탐구를 통한 한국성 모색 방향과 과제 VII. 나오는 글 9장. 한국 민화의 자생적 미래 I. 거리에서 만나는 민화 아닌 민화 II. 서민을 위한 서민의 그림 III. 보기와 쓰임새 사이, 실용화로서의 민화 IV. 민화의 종류 V. 민화의 자생적 미래 10장. 한국미학, 미술사 번역의 제 문제 I. 해외의 한국미학, 미술사 연구 성과 II. 한국미학, 미술사의 자발적 번역의 필요성 11장. 현대한국화가 당면한 미래지향적 커뮤니케이션 I.들어가는 글 II.동양화, 한국화, 현대한국화 그리고 현대미술 III.현대한국화의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일반 매체소통론 IV. 현대한국화의 소통 확장을 위한 메타 매체소통론, 거시적, 미시적 접근 IV-1 ‘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 창립 당시의 사회문화적 상황과 그룹의 의미 IV-2 현대한국화그룹의 메타 매체소통론 V.나오는 글-현대한국화 그룹의 미래지향적 소통과 매개자 역할론 12장. 한국 미술소그룹운동의 단면, A氏부터 K氏까지 I.A씨, D씨, G씨, K씨 II.모씨 에필로그 출전 따로 읽기/ 김성호 평론에 대한 메타 비평 - 김복영, "뵐플린과 크로체적 충고에 대한 충실한 노력 돋보여..." (5장 메타비평) - 김백균, "김성호의 한국화에 대한 인식론과 그 체계에 대한 단상" (11장 메타비평) 따로 읽기/ 짧은 서평과 추천의 글 부록/ 김성호 평론 목록 ABSTRAC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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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컨템퍼러리 비주얼아트의 창작 커뮤니케이션
『창작의 커뮤니케이션과 미술비평』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비주얼아트의 창작 커뮤니케이션과 미술비평의 관계에 대해서 조망한다. 특히 이미지를 텍스트로 번안해서 그것에 기대어 이미지를 이해하려는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분석하고 있는 이 책에서 필자는 '이미지/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의 복잡 미묘한 관계항을 퍼즐 맞추기 식으로 분해했다가 이어 맞추기를 거듭하면서 그 상관성을 읽어내려고 시도한다. 관람객들이 흔히 던지는 다음과 같은 말, "아이! 현대미술은 너무 어려워요"라는 푸념을 우리는 익히 들어왔다. 비주얼아트 읽기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말이다. 미술전문가의 경우에도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창작자의 의도대로 작품을 읽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늘날 순전히 관람자 혹은 수용자의 몫으로 떨어진 비주얼아트의 수용에 있어서 이미지를 텍스트로 번안해서 이해하려고 한다거나 이미지/텍스트의 복합체로 인식하려는 노력들은 이러한 '컨템퍼러리 비주얼아트' 읽기의 어려움을 시사한다. 그런 만큼 필자는 동시대에 관객의 몫으로 떨어진 '비주얼아트 커뮤니케이션'의 초점을 관객으로부터 다시 창작자에게로 옮겨와서 소통의 역할론을 모색하는 것으로 이 책을 꾸미고 있다. 비주얼아트의 장에는 창작자의 '보이기(showing)'라는 갈망과 관람객의 '보기(seeing)'라는 욕구가 늘 교차한다. 속눈썹을 붙여 실재의 눈썹을 속이거나 주근깨를 덮어내는 화장의 기술처럼 비주얼아트의 보여주기의 갈망은 위장의 전략에 기초한다. 결점을 감추고 장점을 과장하는 보여주기의 기술은 그것의 진실을 보고자 하는 이들의 욕구를 처음부터 좌초시킨다. 그러나 비주얼아트는 관객에게 다른 '보기의 욕구'를 자극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비주얼아트의 보이기의 의미론이 있다면 보고자 하는 이들의 '표상화된 욕구' 아래 잠자고 있던 '잠재 욕구'를 그들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비주얼아트의 보이기의 갈망은 종종 방만하고 무책임하기조차 하다. 예술이란 이름으로 용인되는 이러한 위장의 전술을 관람객이 수용하기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모든 것이 관객의 몫으로만 남았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무엇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비주얼아트의 커뮤니케이션을 논하는 이 책에서 다시 창작자의 자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이러한대 왜 당신들이 시도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이러한가를 이 책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창작자가 감당해야 할 비주얼아트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책무는 그 어디에도 없다. 텍스트 소통만큼 정형화되길 강요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갈망하고 있는 비주얼아트가 창작의 장에서 '적어도 이랬으면' 하는 바람을 비평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 책에서 바지런하게 실어 나르고 있다. 필자는 이 책에서 '창작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미지 생산으로부터 이미지/텍스트 생산 나아가 비주얼아트의 생산까지를 포섭하면서 비주얼 창작과 관련한 모든 유형의 소통행위들을 열거한다. 이 책의 1장, '이미지/텍스트 커뮤니케이션-창작과 비평 사이'나 2장, 비주얼 커뮤니케이션-해석의 프락시스와 상호작용 사이'같은 글은 이미지로부터 비주얼아트의 생산까지를 포함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비주얼아트의 커뮤니케이션을 비평적 관심에서 논하는 자리에는, 신체를 테마로 하는 미술이라든가 멀티플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미술 등 특정 성향의 비주얼아트를 따로 떼어놓고 관객과 벌이는 커뮤니케이션의 전략들을 꼼꼼히 따져보기도 한다. 애초부터 관람객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인 퍼포먼스와 같은 장르의 커뮤니케이션도 분석한다. 그것이 아방가르드와 대중지향의 예술제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상황들도 점검한다. 한편, 필자는 '매개 커뮤니케이션'을 '창작 커뮤니케이션'에 포함시켰는데, 그런 까닭은 생산자(창작자)와 수용자(관람자) 사이의 매개 활동 역시 커뮤니케이션의 생산 활동에 다름 아니라는 견해 때문이다. 이러한 매개 커뮤니케이션은 메시지 생산의 주체인 '이미지'나 '이미지/텍스트'와 더불어 미적 가치 생산의 주체인 '비주얼아트'를 전시기획이나 미술비평의 방식으로 소통시킨다. 이러한 매개 커뮤니케이션은 다분히 '비상업적 매개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책의 3장 '비평적 방법론에 의한 전시기획'과 같은 글은 비상업적 매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비상업적 매개 커뮤니케이션 외에도 비주얼아트를 오브제화된 상품성으로 인식하면서 벌이는 '상업적 매개 커뮤니케이션'도 창작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넓은 범위 안에 넣는 것을 빠뜨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 II. 한국적 상황에서의 창작 커뮤니케이션과 미술비평 우리들에게 이미 익숙한 기호학적 접근에 기대거나 커뮤니케이션학의 관점을 빌어 창작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논의를 시도한 만큼, 이 책의 '비주얼 아트 창작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대상 분석을 넘어서 해석과 비평의 차원을 제기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후반부는 한국적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창작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해석과 비평으로 구성되었다. 한국의 퍼포먼스 창작과 그것이 갈망하는 대중과의 소통의 문제, 현대구상조각의 창작이 화두처럼 틀어쥐고 있는 전통의 문제와 소통론, 한국 민화의 현대적 계승과 모색, 한국미학과 미술사의 대외적 소통, 현대한국화의 장르적 한계를 끌어안고 모색하는 미래지향적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소주제들이 그것이다. 컨템퍼러리 비주얼 아트가 한국적 상황 속에서 전통의 원형을 고수하는 것만이 명분이 아닌지는 오래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비주얼아트 창작자의 고민은 전통의 현대적 계승과 더불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수용자와 끊임없이 벌이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에 놓여 있다. 비주얼아트가 아무리 이미지/텍스트로 수용자와 교감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근간은 이미지에 있다. 이미지를 창작하는 비주얼아트의 커뮤니케이션은 역설적이게 그런 차원에서 일상의 텍스트커뮤니케이션의 세계보다 훨씬 풍요롭다. 그 풍요로움을 메시지가 아닌 다른 차원으로 수용자와 교감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모색하고 있는 이 책의 비주얼커뮤니케이션 논의들은 결코 매개 커뮤니케이션과 별리될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전시기획과 같은 매개행위는 물론이며 이미지를 텍스트로 번안하는 미학, 미술사의 한 축인 매개행위 역시 조명되어야 했다. 한국이란 물리적 공간에 사는 비주얼아트 창작자들은 만유 공통어인 이미지를 통해서 지구촌의 타자들과 언제까지나 소통을 시도할 수 있지만, 한국의 현대비주얼아트가 언제까지나 이미지 소통에 머물러 있을 수만 없다. 이미지를 해석하는 텍스트를 지구촌에 유통시켜야 하며, 비평의 문제들을 담론화시켜내야 한다. 외부에서 가져오는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로 가져가는 번역의 문제가 절실해지는 지점이다. '해석이나 번역에 저항하는 창작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가능하지만 창작을 매개하는 커뮤니케이션은 텍스트커뮤니케이션의 힘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미학, 미술사 번역의 문제는 시급하다. 더욱이 현재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비평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창작의 커뮤니케이션에 무수히 딴죽을 걸고 그것에 개입하는 비평의 매개 커뮤니케이션, 혹은 텍스트커뮤니케이션 행위는 매우 유의미하며 주요하다. 미술비평을 미술창작에 빌붙어 기생하는 행위로 폄하하는 이미지 생산자가 있는 한, 창작의 커뮤니케이션 자체는 요원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창작의 커뮤니케이션은 매개 커뮤니케이션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라 하겠다. 필자는 마지막으로 이 책에 한국의 한 미술소그룹운동을 묘사하는 '팩션'을 실었다. 여기서 필자는 창작의 커뮤니케이션이 요청하는 매개 커뮤니케이션을 창작자 스스로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비즈니스의 차원이며 그것은 어찌 보면 허망한 이미지들을 텍스트의 차원으로 묶어내는 매개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그런 면에서 그룹 차원에서의 매개 행위와 개별 차원에서 창작 행위가 병행되어야 할 '창작/매개 커뮤니케이션'의 가능한 혹은 가능할 것이라 여겨지는 지점을 허구의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성토한 셈이다. 창작 커뮤니케이션과 미술비평이라는 매개 커뮤니케이션은 분명코 동지이자 친구일 터인데 적처럼 여겨지는 일부 미술현장의 상황들이 못내 갑갑해 보인다. 더 나은 내일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며 이 책의 내용에 대한 모든 판단을 이제 독자들의 몫으로 넘긴다. (에필로그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