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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죽은 아들을 만나러 가다
┃1┃ 진달래 꽃밭의 두 소년 ┃2┃ 살기 위해 지울 수밖에 없는 기억 ┃3┃ 어둠에 얼어붙은 집 ┃4┃ 끝나지 않는 악몽 ┃5┃ 뜻하지 않은 곳으로의 여행 ┃6┃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7┃ 어둡고 긴 터널 속을 지나며 ┃8┃ 그저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 ┃9┃ 고통에 중독되다 ┃10┃가슴에 묻은 얼룩 같은 상처를 지울 수 있을까 ┃11┃소년 A의 잔인한 변신 ┃12┃가슴에 칼을 품고 에필로그 ┃ 그들의 고통을 세상이 이해하게 되기를 옮긴이의 말 ┃ 40년 전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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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살해당한 후, 남은 가족이 겪은 수십 년 고통의 세월,
그리고 변호사로 ‘갱생’한 살인자를 추적하다! 1997년 일본 고베에서 14세 소년이 초등학생을 잔인하게 죽인 엽기적인 살인사건(일명 ‘사카키바라 사건’)이 일어났다. 프로 저널리스트인 오쿠노 슈지는 이 사건을 계기로 30년 전에 있었던 유사한 사건을 알게 되었고, 당시 미성년자였던 가해자 소년의 행방과 피해자 유족을 덮친 비극을 세밀하게 추적하기 시작한다. 작가가 9년간 피해자의 가족과 사건 관련자들을 수십 차례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밝혀낸 가해자의 행방, 그리고 피해자 가족의 고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피해 가족들의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며 그 고통의 참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런데 오히려 사건 당시 가해자 소년은 ‘갱생’이라는 미명하에 가벼운 처벌만 받고 사회로 복귀했으며 완벽하게 신분을 세탁한 후 변호사로 성공한다. 실화라고 믿기 힘든 이 소설 같은 사건을 혼신의 힘으로 추적해 완성한 충격논픽션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를 통해 작가는 예기치못한 범죄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그 가족원이 사회의 무관심과 망각 속에서 겪는 고통과 후유증의 심각성, 피해자의 인권은 보호하지 못하는 현행법의 문제점을 사회에 널리 알려 경종을 울린다. “아이가 죽은 그날, 나도 죽었다” 살인의 기억보다 더 끔찍한 남은 가족의 고통 지난 3월 22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안양 초등생 유괴살인 사건의 현장검증이 있었다. 피의자 정모 씨의 현장검증이 시작되자, 피해학생 이혜진, 우예슬 양의 가족들은 차마 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신문과 TV를 통해 이 장면을 보았던 수많은 국민들 또한 가슴 아파하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사건에 국민적인 관심이 몰리자 경찰에서는 부랴부랴 구멍 뚫린 수사망에 대한 대비책을 검토하고, 앞으로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언론에서는 더 이상 이 사건을 조명하지 않았고 그렇게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다. 그러나 곧 다가오는 5월 5일 어린이날과 매해 맞이할 딸의 생일에, 혜진? 예슬 양의 부모는 얼마나 참담한 마음이 될 것인가. 평생동안 환기되는 자식에 대한 기억으로 부모는 상처 아물지도 않은 채 끊임없이 고통을 반복하지는 않을까. 하루가 멀다하고 살인 같은 강력범죄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나와 우리 가족’은 안전하다고 여기며 피해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타인의 고통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여기 억울하게 죽어간 우예슬?이혜진 양 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훨씬 전부터 당하고 그 사건으로 인해 수십 년간 고통 속에 있는 한 일본인 가족이 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벌어진 사건이고, 일본 사회의 문제이긴 하나 결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 것은, 가족을 잃은 슬픔이 나라와 민족을 초월한 인류 공통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이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난 후 겪는 가족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지속적이며 전사회적인 관심을 쏟았으면 한다. 30년이 흘러도 끝나지 않는 악몽, 히로시 가족의 이야기 1997년 일본 고베시에서 한 초등학생이 사체로 발견된다. 이 잔악무도한 사건의 범인에 대해 경찰관계자들은 정신파탄자이거나 사회에서 낙오된 부랑아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건의 범인은 자신의 이름을 왜 틀리게 적었냐고 항의하면서 앞으로 계속 범행을 저지를 것이라고 당당하게 밝힌 <범행성명서>를 신문사에 보내는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범인이 잡혔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범인은 놀랍게도 중산층 부모를 둔 14살 중학생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일말의 가책은커녕 살인을 즐기고 있다고 말하는 이 광기의 소년을 조사하다 오쿠노 슈지는 30년 전 1969년에 같은 반 친구에게 살해당한 한 고등학생의 사건에 주목하게 된다. 이 살해당한 고등학생의 이름이 바로 가가미 히로시다. 히로시는 화창한 봄날 학교 근처 진달래밭에서 평소 장난치며 지내온 같은 반 A군에게 총 47군데를 칼로 난자당한 채 이유 없는 죽임을 당한다. 소년 A는 키가 150cm에 불과한 왜소한 체격에 콤플렉스가 있었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훤칠한 키에 늘 친구들에 둘러싸여있는 히로시와 어울리고 싶어했다. 그런데 왜 소년 A는 히로시를 죽인 걸까? 사건 후 A가 작성한 성격 및 행동 상태 조사표에 따르면 A는 아버지의 가혹한 가정교육 탓에 때때로 사디즘적인 격한 감정이나 동물적인 반응을 보이고 흥분하면 앞뒤 구별이 없어진다고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배려하지 못했고 결국 요코하마 가정재판소는 소년 A를 ‘정신분열증 기질의 정신장애자’로 판정했다. 이 끔찍한 광기를 품은 소년은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거짓말을 반복했고 일말의 가책이나 반성을 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 후 미성년자이기 때문에‘장래를 위해 교육적인 조치로 교정해야한다’는 소년법에 따라 소년원으로 송치되고 3년 후 출소한 후 행방이 묘연해진다. 작가는 30년 전의 사건을 추적하여 그 소년이 변호사로 성공했다는 것에 놀란다. 하지만 저자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 사건이 피해자의 가족에게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었다. 30년 넘는 긴 시간이 흐른 후에도 남겨진 가족들은 그 사건을 잊지 못하고, 아마 평생 동안 떨치지 못하고 살아갈 것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합니다” 어머니 구니코 저자는 몇 년간에 걸쳐 히로시의 어머니인 구니코를 인터뷰하는데, 그녀는 사건 발생 후 2년간에 대한 이야기를 함구한다. 히로시의 어머니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사건 발생 후 2년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다 못해 입을 연 딸 미유키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그 2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구니코는 수면제를 먹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만 잤기 때문이다. 엄마로서는 도저히 깨어 있을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일어나면 알아듣지 못할 헛소리를 늘어놓았고 잠이 들면 악몽에 신음했다. 아들이 떠오르는 순간마다 수도 없이 혼절했다가 일어나 알 수 없는 대상들을 향해 여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생리도 멈추었고 머리카락이 단숨에 뭉텅이로 빠졌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이 클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기억을 잃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라는 데 저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지극한 헌신이 일반적인 유교권 나라인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의 죽음이 배우자를 잃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한 자녀의 죽음을 한번 경험했던 부모들은 TV나 신문을 통해서 유사한 사건을 접했을 때 간접적인 재충격을 받게 된다. 끊임없이 상처 받으며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이다. 히로시의 여동생인 미유키의 경우 간호학원에 다닐 때 지도 선생님이 동작을 품평하듯 뚫어지게 쳐다보면 엄청난 공포감이 솟구쳐 올라 패닉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고 했다. 멀리서 냉정하게 주시하는 듯한 시선을 느낄 때마다 미칠 것 같았는데, 이것은 오빠 사건 후에 자신을 주시했던 매스컴이나 세간의 시선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남은 것이다. 어린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피해 부모들은 좀처럼 지울 수 없는 상처 때문에 하루하루를 ‘이미 죽었다’고 느끼며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아들을 잃고 백발이 되어 반쯤 미쳐버린 아내와 어린 딸을 가장으로서 지켜야 했던 히로시의 아빠는 어떠했을까? “나는 가족 앞에서조차 울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 츠요시 하루 종일 잠을 자지 않으면 욕설을 퍼붓고 기절하기를 밥 먹듯이 하는 아내와 아무렇지도 않게 팔목을 긋고 자해에 빠진 딸을 돌보는 것은 가장인 츠요시로서도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붕괴직전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고통과 분노는 마음속에 가두어 두었던 그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충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죽고 난 후 몇 개월 뒤부터 그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신앙생활에 매진했다. 가족에게는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거라고, 아버지가 세례를 받은 이유는 오빠를 죽인 A를 향한 살의 때문이 아니었겠느냐고 딸은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츠요시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은 츠요시는 아들이 죽은 시점부터 시간이 멈춘 것 같았고, 마치 산송장처럼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았다고 전한다. 파친코와 낚시에 빠지기도 했고 아들의 묘지에 가기 위해 생전 관심도 없던 운전면허를 땄던 아버지 츠요시는 아내와 딸이 조금 안정을 찾게 되자, 불현듯 찾아온 췌장암이라는 병으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뜨게 된다. 늘 참기만 하고 가족들 앞에서는 차마 눈물 흘리지 못하고 홀로 고통을 삭였던 것이 암이라는 질병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도 그 사건을 안고 사느냐고요?” 여동생 미유키 사건 후 팔목을 칼로 긋는 등 수도 없는 자해행동과 반항으로 점철된 청소년기를 보내고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히로시의 여동생 미유키는 오빠를 잃고 살아온 가족들의 그간의 삶을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가족이었다. 단 한 발의 총성으로 눈사태가 일어나듯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가족관계도 내가 흘린 눈물 한 방울로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그런 생각에 나는 울기를 포기했다. 웃음도 잃어버렸고 분노도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 사건 후 30년 동안 우는 것을 잊어버렸다.’사건이 일어난 지 수십 년이 흘렀고 이미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그 사건을 안고 사느냐는 작가의 말에 미유키는 그 사건 이후로 가족 마음 속에서는 시간이 멈추어버렸다고 한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오빠를 잊을 수는 없다. 30년 동안 오빠의 죽음을 놓고 생전의 아버지는 물론 엄마와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나도 누구에게도 이 얘기를 꺼내고 싶었던 적이 없다.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잊은 것은 아니다. 말하고 싶지 않아서 봉인해두었을 뿐, 오빠는 늘 내 마음 안에서 누름돌처럼 눌러앉아 있었다.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그 사건을 안고 산다. ’ 미유키는 가슴에 묻은 얼룩 같은 상처를 지울 수 있다면 그것은 오빠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났을 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결말을 위해 언제라도 대결할 수 있도록 자신은 30년 남짓한 세월을 가슴 속에 칼을 품은 채 살아왔다고. 언젠가는 그와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만난다면 내 목숨을 건다는 각오로 만나고 싶어요.” 누구를 위한 법인가? : 가해자의 인권을 지키는 법만 있고 피해자의 권리를 지키는 법은 없다 경찰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자녀가 목숨을 잃었다거나, 붙잡힌 범인에 대해 사법부가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고 느낀다면 피해자 가족은 사회 전체를 불신할 수도 있다. 급기야 정부나 제도 자체에 불만을 갖다가 반사회적인 성격으로 변하거나 이민을 결심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1999년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전 국가대표 하키선수가 선수시절 받은 훈장을 정부에 반납하고 이민을 간 경우가 대표적이다. 범행 당시 15세였던 히로시 사건의 A는 당시 일본 소년법 조항에 따라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 조항으로 인해 A는 살인자라는 범죄 경력은 소년원을 출소한 시점부터 사라지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었다. 소년원 시절부터 ‘육법전서’를 보며 새 인생을 준비했던 A는 소년원을 나온 뒤 최고 학부에 들어가 사람들이 선망하는 변호사가 되는데 성공한다. 살해당한 가가미 히로시의 인생은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지만 살인자 A는 새 출발해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15살 소년의 ‘광기’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피해자 가족들은 아직도 30년 전의 슬픔을 치유하지 못한 채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수십 년이 흘러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면 받아주겠다는 피해자 엄마의 말에 중년이 된 A가‘뭣 때문에 내가 사과를 해야 합니까?’라고 대답하는 장면(본문 P.247 <소년 A의 잔인한 변신>중)에서 과연 우리 사회와 법이 지키고자 하는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 누구의 인권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세부 조항에서 일본과 한국이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소년법 적용 연령이 10세 이상으로까지 하향 조정되고, 국선보조인제도가 도입되는 등 2008년 소년법 개정의 방향이 소년범의 인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한국에서는 이 가가미 히로시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점점 잔악무도해져가는 한국 청소년 범죄 상황을 생각할 때 과연 소년범의 인권을 강화하는 법안을 만들고 그들을 교화하는 데에만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 피해자의 인권, 피해 가족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현 사회적?법적 시스템 속에서 피해 가족의 원통함은 대체 어디서 풀어야 할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적절히 처벌하지 않고 교화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예비된 성인 범죄자로 방치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경각심을 갖고 대안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그들의 고통을 세상이 이해하게 되기를…. : 세상의 무관심과 망각 속에서 신음하는 피해자 가족 오쿠노 슈지는 이 사건을 오랜 시간 추적하면서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피해자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에 경악했다. 특히 놀랐던 건 모녀 모두 가해자를 원망한 적이 없다고 말한 점이다. 그들이 가해자를 원망하지 않았던 것은 본래의 가족으로 되돌아가는 일에 온 정신을 쏟느라 가해자를 원망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다시 한 번 그 사건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통감했다. 유족은 지금도 삶의 기로에 서 있다. 범죄 피해자가 입은 충격은 삼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위로받지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아무 이유 없이 범죄에 휘말려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은 결코 히로시 집안만이 아니다. 지금도 날마다 범죄 피해자가 생기고 있고,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남몰래 견뎌내고 있다. 그들의 고통을 세상이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부디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홀로 싸우고 있는 피해가족들의 아픔이 널리 알려지기를, 그래서 그들을 위한 지속적인 배려와 관심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