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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혼하긴 너무 힘들어요
2. 진실 서약 3. 홀아비들 4. 외로운 밤 주막 5. 캐주얼 워터 6. 남편 가능자 7. 도모 아리가토 8. 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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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도시에서 인종적 적대감을 끊임없이 느꼈고, 그것은 계급과 피부색에 의한 뿌리 깊은 것이었다.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 상류층의 집회와 파티, 비즈니스 미팅 등에서, 그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백인이란 걸 절감하곤 했다. 그는 부유한 흑인들에 대해서는 은근한 동질감을 느꼈고, 동료들이 내뱉는 인종차별적 농담과 발언을 묵묵히 참는 자신에게 혐오스러움을 느꼈다. 리버럴한 성향을 지닌 고등교육을 받은 북부 사람들이 깜둥이라는 말을 쓰는 걸 들으면, 놀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놀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에 더 민감했다. 최근, 보스턴에서 인도차이나 계열의 이민이 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첨예해지는 문제였다. 그는 자신이 그 희생자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미묘했다. 한번은 로간 공항에서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었다. 그는 공항 바에 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옆 테이블에 세일즈맨 몇 명이 앉아 있었는데, 한 명이 가방을 열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헤이, 그 휴대폰 좀 쓰자. 홍콩에 전화하게. 짱깨 좀 갖다 달라고 말야." 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그 농담이 그냥 나온 것인지, 자신을 겨냥한 것인지 궁금해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어쨌든 그는 모욕감을 느꼈다. 어떤 때는 대놓고 욕을 하기도 했다. 신호등에 대기하고 있을 때, 옆차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한마디 했다. "씨팔, 동양인들 천지야." -- pp.297~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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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이민문학의 새 지평을 열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 후론 미국에서만 산 사람은 과연 미국인일까, 한국인일까? 《옐로》는 모두에 속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소외감과 고독함에 대해 말한다. 돈 리가 UCLA 공대를 거쳐 영문과를 졸업하고 에머슨대학교의 예술학석사를 받기까지, 황인종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그에게 제재가 가해진 적은 없었다. 차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편 〈옐로〉 속의 대니는 ‘유색인종은 견딜 수가 없다’는 이유로 데이트를 거절당했고, 여자 친구의 가족들은 그를 ‘동양 것’이라고 불렀다. 이런 일들은 그에게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들’이었고 그래서 연인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동양인들 천지’라고 대놓고 상스런 욕을 하고, ‘홍콩에 전화’해서 ‘짱깨 좀 갖다 달라’고 농담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돈 리의 모습을 본다. 미국에서 태어났고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인텔리다. 누가 봐도 사회의 ‘주류 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진짜’ 미국인일 수는 없었다. 영원한 이방인이고 국외자였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혈통적인 소속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한국인이 됐든 간에 모두 ‘노란 원숭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에게는 한국적 감성도, 핏줄에 대한 애정도 없다. 한국인으로서의 소속감이 없다. 즉 생김새와 핏줄만이 한국인일 뿐 ‘반편이 한국인’인 것이다. 그래서 소설 전반에서 혈통의 문제는 동양적인 것에 대한 철저한 부정 혹은 체념의 형태로 나타난다. ‘당신은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미국인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비웃음을 불러일으킬 따름이다. 백인들은, 아니 ‘동양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런 대답이 동양인들의 자기혐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난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입니다’라고 이야기한들, 동양인이 아닌 그 사람들은 그 차이가 무엇인지 모른다. 즉, ‘동양’이라는 말이 내포한 편견들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하는 문제를 돈 리는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다. ■ 동양적 미니멀리즘 《옐로》는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을 생각나게 한다. 돈 리가 ‘카버의 소설을 읽고도 어떻게 그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카버는 미니멀리즘적인 소설로 각광받았으며, 전미비평가상과 퓰리처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처음에 카버의 글은 소설의 플롯과 사건의 기복이 없다고 하여, 재미없고 밋밋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곧 카버의 글에서 매력을 느꼈다. 일상의 사소함으로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버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 〈발밑에 흐르는 깊은 강〉을 읽고 그의 작품에 감탄하여 단편집을 번역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루키는 그를 가리켜 ‘오리지널한 창작자’이며 ‘그가 아니고는 쓸 수 없는 세계를, 그만이 쓸 수 있는 말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돈 리의 소설에서 카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카버와는 또 다른 것이 돈 리의 소설에는 숨어 있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분위기, 그리고 동양적인 인내와 체념까지.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절실한 것이 되고 설득력을 지닌다. ■ 감상에 치우치지 않은 섬세한 문체 돈 리는 저널리스트답게 깔끔한 영어를 구사한다. 그의 영어는 어떤 미국인보다도 더 ‘미국적’이다. 다소 긴 듯한 문장의 호흡은 세세한 일상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적절하다. 그래서 소설을 차분히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로사리타베이의 정경이 눈에 잡힐 듯이 보인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과 작은 번화가,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시골 도시의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오는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조용한 시골이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얽히고설켜 살아간다. 여덟 개의 사건은 독립적이지만 그 속의 인물들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동양인과 ‘동양인 아닌 인종’의 이분법적 구조는 미국에서의 동양인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고 돈 리는 감정적으로 반응하지도, 동정하지도 않는다.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했더라면, 그의 소설은 호소력을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온전한 한국인으로서 여덟 편의 이야기에 가슴 아프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력 때문이다. 눈앞에 보는 듯한 사건 서술과 객관적이면서도 세세한 인물 묘사는 읽으면서 서서히 소설에 빠져들게 하며, 깔끔한 문체는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신문 기사를 읽는 것 같은 사실감과 더불어 세밀한 묘사는 여덟 편의 소설이 주목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