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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Ⅰ. 3단계 감정 학습법 1. 1단계 | 작품 읽기 2. 2단계 | 작품 알기 3. 3단계 | 작품 감정하기 ⑴ 진작과 위조 작품의 3단계 비교 분석 ⑵ 목감과 고증 ⑶ 오정된 작품의 감정 *부록 | 중국 위조자·감정가·상인의 속어 Ⅱ. 위조 작품의 진위유형 분류법 - 위작·변종위작·진위혼작·진작 1. 위작의 유형 ⑴ 모본 위작 ⑵ 임본 위작 ⑶ 방본 위작 2. 변종위작의 유형 ⑴ 위(위)작 ⑵ 추(위)작 ⑶ 중위작 ⑷ 조본 위작 3. 진위혼작의 유형 ⑴ 탁진배위본 진작 ⑵ 탁진배위본 위작 ⑶ 탁진배위본 진위혼작 ⑷ 우협설본 진위혼작 4. 진작의 유형 ⑴ 위조한 진작 ⑵ 대필자의 진작 ⑶ 위조자의 진작 소루가 위조한 김홍도·엄치욱·신윤복·이수민 작품 권돈인이 위조한 김정희 작품 조면호가 위조한 김정희 작품 나수연이 위조한 이하응 작품 김용진이 위조한 장승업 작품 오세창이 위조한 김정희 작품 *부록 | 13세기 이전의 서화창작 몸자세 Ⅲ. 위(위)작 임상강의 - 이가염의 물소 그림을 대상으로 1. 위작 2. 모(위)작 3. 임(위)작 4. 방(위)작 *부록 | 중국의 서화위조 유형과 감정 교육 1. 중국의 서화위조 유형 2. 명대 중후기의 서화위조 3. 중국의 서화감정 교육 남은 말 후기 |
李東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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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서당>, <주막>… 진짜일까? 가짜일까?
훈장님에게 혼이 나서 훌쩍이는 아이와 키득거리고 있는 아이들 , 지붕에 기와를 이는 사람들, 벼를 타작하는 풍경, 길쌈하는 여인들, 자리를 짜고 있는 사람들…….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친근감 있게 그린 김홍도의 대표작 《단원풍속화첩》(보물 527호)국립중앙박물관 은 학교 교과서를 비롯해 여러 매체나 전시회 등을 통해 우리 눈에 매우 익숙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다. 25작품 가운데 <서화 감상〉·〈씨름〉등 6작품만 진작이고 나머지는 모두 위작이다. 조선시대 여인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신윤복의 작품 중에서 <아기 업은 여인>국립중앙박물관, <파안흥취>동아대학교 박물관(*진작/위작 비교 사진 첨부) 등도 그의 작품이 아니다. 또 진짜와 가짜 그림이 섞여 있는 《여속도첩》 중 <연당의 여인>국립중앙박물관, <전모를 쓴 여인>국립중앙박물관, <거문고 줄 고르기>국립중앙박물관 등은 위조자의 솜씨다. 김홍도, 신윤복, 김정희, 정선 등 국보급 명작들 태반이 가짜? 추사 김정희 작품의 위조는 그 명성만큼이나 심각해 보인다. 김정희 종가에서 가지고 있는 〈김정희의 칠언시 「시골집 벽에 쓰다」>(보물 제547호)를 비롯해 제주특별자치도가 소장하고 있는 〈시골집 벽에 쓰다>(보물 제547-2호), 전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제주시에 기증한 《김정희 편지 모음집》, <시의정>개인, 〈자화상〉선문대학교 박물관, <예서>간송미술관 등 그 수를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 진경산수화풍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인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고려대학교 박물관, <독서여가>간송미술관, <설평기려>간송미술관, <산수도>서울대 박물관 등도 가짜다. 또 《해악전신첩》간송미술관은 진작과 위작이 섞여 있는데 <정자연>, <피금정>. <시중대>, <사선정> 등 위작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권위 있는 경매사도 위작 유통에 한몫? 사진이나 영인본(影印本), 목판수인본(木版水印本) 등 정교한 복제본을 원작으로 잘못 보는 경우도 미술품 유통 시장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더욱이 권위 있는 미술품 경매사에서 이러한 위작을 진작으로 보증하여 출품하기도 한다. 2007년 국내 모 경매에서 추정가 8000~9000만 원에 출품된 ‘북산 김수철, 우봉 조희룡, 대산 강진’의 <산수도>개인 는 원작이 아니라 사진을 확대한 인쇄물이었다. 2005년에 추정가 3000~4000만 원에 출품된 고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개인 는 원작과 똑같은 크기, 비슷한 재질로 제작된 영인본이 버젓이 경매시장에 나와 진품 행세를 한 경우다. 흥선대원군이 기녀 속치마에 난을 그렸다는 속설의 진실? 속설에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기녀 속치마에 난을 그렸다는 얘기가 있다. 이것은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소한 중국제 서화 창작용 소릉이 처음에는 명주로 오인되었고, 호사가들에게 기생의 명주단속곳으로 기억됐을 것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또한 현전 조선시대 서화작품을 살펴보면, 흥선대원군 이전에 소릉을 사용한 진작은 전혀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소릉을 처음 사용한 서화가는 흥선대원군이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총난도>개인 등 그의 소릉 작품 창작 연도를 통해, 김홍도의 〈섭쉬쌍부도〉개인, 김정희의〈팔곡병〉개인 등이 위조된 사실을 밝힐 수 있다. 중국제 서화용 소릉에 제작한 1880년대 이전 서화작품은 모두 위조 작품이다. 희게 칠한 그림이 검게 변하는 속사정? 안료가 가지고 있는 특징만으로도 수많은 위작을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백색 안료인 연분(鉛粉)은 조선시대 회화 작품의 창작 시기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조선시대 작품은 19세기 중기까지는 주로 조개껍데기로 제작한 합분(蛤粉)을 백색 안료로 사용했고, 19세기 후기 장승업(1843-1897)을 전후해서는 연분을 사용했다. 그런데 백색 연분은 오랜 시간 빛과 습기의 영향을 받으면 짙은 갈색 또는 흑색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어, 쉽게 위작을 가려낼 수 있다. 이러한 반연 현상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위작은 김홍도의 《단원절세보첩》(보물 782호)삼성미술관 리움. 꽃과 새에 사용한 연분만으로도 이 그림이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위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신사임당(1504-1551)의 《초충도8곡병》국립중앙박물관 중 〈맨드라미와 쇠똥벌레〉, 정선의〈독서여가〉간송미술관, 심사정의〈화접도〉서울대학교 박물관·〈연지쌍압〉삼성미술관 리움, 변상벽의 〈묘도〉국립중앙박물관·〈국정추묘〉간송미술관·〈묘〉일본 동경박물관, 신윤복의〈두 여인〉서울대학교 박물관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무지한 위조자, 이에 못지않은 유명 미술사가들? 미술품 위조자는 때로 시대별 창작 재료에 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작품을 위조하기도 한다. 즉, 원작이 창작될 당시의 종이, 비단, 안료 등을 쓰지 않고, 위조자 자신이 활동하는 시기의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다. 그런데 어이없는 일은 미술 전문가 역시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현실이다. 문화재청장을 지냈던 미술사가 유홍준은 그의 책 『완당평전2』와 『김정희: 알기 쉽게 간추린 완당평전』에서 유별난 ‘완당의 종이’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완당은 종이의 선택에서도 매우 섬세하게 신경 썼다. 자신의 작품에 걸맞은 아름다운 종이를 고르기도 했고, 붓에 잘 맞는 종이, 먹을 잘 먹는 종이를 그때그때 면밀히 검토해보곤 했다. 완당이 좋은 종이를 얼마나 좋아했고, 중국제 화전지를 얼마나 애용했는지는 그의 〈연식첩(淵植帖)〉이라는 작품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연식첩〉개인 에 사용한 종이는 중국에서 20세기 초에 제작한 호피선지(虎皮宣紙)로서, 당연히 김정희 생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종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20세기에 만들어진 위작이다. 기본 소양조차 없는 위조자, 그것도 모르고 칭찬하는 미술사가들? 『진상-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을 넘기다 보면 작품 감정 능력에 대한 우리 현주소를 전체적으로 짚어볼 수 있다. 특히 위조자가 작품의 기초 지식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작품을 위조하는 경우에도, 전문가가 이를 눈치 채지 못하거나 되레 위작을 칭찬하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작가는 인장이 없다고 해서 작품에 인장을 그리지는 않는다. 서화작품에서 붓으로 인장을 그리는 경우는, 부본(副本) 제작을 목적으로 후대 작가가 선인의 그림 · 글씨 ·인장을 모두 본뜨거나, 위조 작품을 만드는 경우밖에 없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묘길상〉은 후자의 예로, 서화창작의 기본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위조자가 당시 특정 수요에 맞게 제작한 것이다. 그러나 미술사가 이태호는 작품에 작가 명관(名款)이 없고, 인장은 붓으로 무슨 글자인지 모르게 그려진 것을 작가의 진작으로 오인했을 뿐 아니라,『김홍도의 진경산수화』에서 〈묘길상〉을 이렇게 칭송하고 있다. “마치 살아 있는 인물을 그린 듯한 불상의 선묘와 공양드리는 두 선승 표현, 선묘를 쌓은 암준법과 특징적인 수묘법 등 역시 김홍도의 능숙한 수묵담채의 구사와 필치이다.” 수준 낮은 위조 작품, 이것조차 가려내지 못하는 미술사가들? 위작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어떤 부분은 가치를 인정받기도 하지만, 조본(造本) 위작은 백해무익하다. 위조자가 작품을 본 적도 없이 작품에 대한 기록이나 소문만으로 날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미술사 서적에서는 이들 조본 위작을 명품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안휘준 문화재위원장은 『한국회화사』에서 전기의 〈계산포무도>국립중앙박물관 를 명작으로 손꼽으며 “전기가 만 24세 때인 1849년에 독필을 휘둘러 장난하듯 그려 낸 그림으로 지극히 간일하고 거칠면서도 선미(禪味)가 감돌고 있다. 구도와 운필은 김정희의 해석을 거친 예찬(倪瓚) 계통의 것이다. 왼편 위쪽에 전기가 쓴 추사체의 관지가 있어 더욱 김정희로부터의 감화를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 회화사 연구』에서도 “전기의 대표작으로는 〈계산포무도〉, 〈매화서옥도〉국립중앙박물관, 〈매화초옥도〉국립중앙박물관 를 들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전기의 〈계산포무도〉는 조본 위작이고, 〈매화서옥도〉와 〈매화초옥도〉역시 변종된 위작이다. 100년 전 어느 위조자의 양심선언? 이동천 박사가 찾아낸 100년 전 위조자들 이야기는 추리소설보다 재미있다. 보물 782호로 지정된 《단원절세보첩》삼성미술관 리움 을 영락없이 김홍도의 그림으로 믿게 할 정도로 그린 이는 누구일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소루 이광직이라는 위조자다. 그는 2005년 미술품 경매시장에 출품된 김홍도의 《화첩》·〈섭쉬쌍부도〉 <월하고문> 간송미술관 등을 비롯해 엄치욱의 《가장첩》국립중앙박물관, 신윤복의 <수하인물도〉, 이수민의 〈강상인물도> 서강대학교 박물관 등 수많은 유명 작가의 위작을 남겼다. 소루는 이따금 자신의 위조 작품에 인장 ‘소루(小樓)’를 남겨, 작품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위조의 책임을 전가하는가 하면,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이광직인(李光稷印)’을 김홍도 작품을 위조한〈월하고문> 간송미술관 에 남기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범인은 가까운 데 있다? 한편 미술품 위조가 소루 같은 전문 위조자에 국한되지 않고, 평소 작가와 가까이 지내던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준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이 그의 저서 『완당평전1』과 『김정희-알기 쉽게 간추린 완당평전』에서 “완당이 귀국한 지 3년째 되는 1812년 봄에 옹방강이 완당에게 써서 보내 준 현판으로, 완당에 대한 옹방강의 애정이 물씬 배어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 <시암> 간송미술관 은 옹방강이 아닌 막내아들 옹수곤이 대필한 작품이다. 옹방강의 <행서> 간송미술관, <주학년역원보유도> 일본 징회당미술관 등도 마찬가지다. 극히 드문 경우이지만,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서 어느 날 우연히 우상의 예술세계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이를 우상의 작품으로 위조하기도 한다. 김정희의 〈검가>개인 는 오세창이 89세 때 자신의 작품을 김정희 작품으로 위조한 것이다. 위조자들이 이 책을 가장 먼저 본다? 이동천 박사는 이처럼 위작을 다시 위조하는 연쇄 위조, 즉 ‘위작→위작의 위작→위작의 위작의 위작’이 거듭되다 보면 나중에는 작가의 작품세계가 사라져버리게 된다고 경고한다. 반복되는 위조 과정에서 위조자의 위조 수준, 창작 습관, 실수 등이 축적되어 결국 작가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변종위작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진상』은 시대가 변하고 위조자의 항감정기술(감정에 대비한 새로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위작이 얼마나 지능적이고 다양하게 나타나는지를 실제 여러 작품들을 예로 들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한 작가의 예술세계가 위작의 위작을 거듭하면서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도 여러 변종위작들을 보면서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이 위조자들에게 이 책이 필독서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몽유도원도’는 없다? 『진상-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은 위작과 진작을 가려내는 작업을 통해 발견한 엄청난 학문적 오류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기억하고 있음직한 이름이다. 이 작품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도원을 당대 최고 화가인 안견에게 그리게 한 조선시대 대표작 중 하나로, 현재 일본 천리대학교에 소장돼 있다. 저자는 이 작품이 장표돼 있는 형식과 작품 안에 써 있는 발문, 제첨, 시문 등을 감정학적으로 하나하나 분석해가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몽유도원도’라는 제목 글씨가 안평대군의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이 멋대로 붙여놓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안휘준 문화재위원장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뿐 아니라 「안견과 〈몽유도원도〉」라는 책에서 ‘안평대군의 글씨’라고 밝힌 내용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옛날엔 서서 그림을 그렸다? “옛날엔 손으로 종이를 들고 글씨를 썼다?” “13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서서 그렸다?” “오늘날처럼 책상과 의자가 한 쌍이 되어 사용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다. 이동천 박사는 “미술작품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작품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는 창작 당시의 여러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과거 서화 창작 자세와 사용 가구 등을 예로 들어 그 상관성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해준다. 또 오랜 역사와 높은 수준의 감정문화를 자랑하는 이웃나라 중국의 “서화위조와 감정 교육”, “중국 위조자·감정가·상인 사이에 통용되는 속어”에 대해서도 귀한 정보를 들려준다. 이처럼 『진상』은 한 장을 넘기면 다음 장을 넘기지 않고는 잠들지 못할, 미술품 감정의 비밀이 가득 들어 있다. 우리 사회에는 낯설기만 한 ‘감정’이라는 전문영역을 체계적인 학습서로 정리해놓은 전문서이지만, 누가 읽어도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 한 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귀한 정보의 양이란 가치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 희귀 도판을 포함해 800장이 넘는 작품 도판들이 들어 있고, 3권짜리 책으로 나누어 낼 것인가로 마지막 순간까지 출판사를 고민하게 했다는 <부록> 내용만 읽어봐도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미술품 위작을 가려내고 폭로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미술품 감정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감정’ 학습서다. 또한 ‘미술품 감정’이라는 블루오션을 학문적으로 정립해놓은 국내 최초의 감정 전문서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작품들이 진실의 심판대에 올랐고 새롭게 그 진·위를 드러냈다. 감춰졌던 진실과 대면하는 순간,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 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된 흥분과 혼란스러움으로 세상은 떠들썩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이 책에서 가짜라고 말했기 때문에 진짜였던 것이 가짜가 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것은 가짜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진상(眞相)’이다. 또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감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