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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에필로그 『제이콥의 손』을 소개하며 옮긴이의 말 |
Aldous Hux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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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손으로 개를 계속 문지르는 동안 세 사람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흐른다.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축복이에요.” 여자가 감동한 듯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에릭슨은 개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조금 어두운 말투로 반문한다. “물론이죠. 왜 아니겠어요? 세상에 꼭 필요한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잖아요.” “동물만 치료하시나요?” 남편이 가만히 묻는다. “가끔 아이들도 하지요. 어린 아이들이요.” “어른은 안 하세요?” 에릭슨은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이제는 안 해요.” “왜요?” 에릭슨의 대답에 불만이 있는 것처럼 여자는 조금 따지는 듯한 말투로 묻는다. “왜냐구요?” 에릭슨은 그들을 쳐다본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에릭슨이 불쑥 말한다.
“성경을 한번 읽어 보세요. ‘다리가 마비된 병자에게 네 죄가 다 사해졌노라고 말하는 게 쉽겠느냐, 아니면 자리를 걷고 일어나서 걸으라고 말하는 게 쉽겠느냐.’라는 구절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는데 잘못될 일이 뭐가 있어요? 그럴 리 없어요.” --- pp.12~14 그를 바라보는 제이콥의 눈에는 깊은 동정심이 가득하다. 제이콥은 침대 가까이 의자를 끌고 가서 얼에게 바짝 다가가 앉은 다음, 한 손을 가슴 위에 얹고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런 생각들은 이제 보내 버려요. 당신은 지금 온몸이 묶여 있어요.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어요. 그건 자신에게 스스로 매달리는 것과 같아요. 너무 움켜주고 있어서 피가 안 통할정도예요. 겁이 나서 뭔가 붙잡고 싶어 꽉 잡았지만 당신이 잡은 건 당신 자신일 뿐이에요. 스스로 숨 막히게 목을 조르고 있어요.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보내 버려요. 할 수 있죠? 모두 보내 버려요.” 그는 용기를 북돋우려는 듯이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얼의 온몸을 두 손으로 잠깐 쓰다듬는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그의 손이 가슴으로 돌아와 멈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린다. “물에 빠진 사람과 똑같아요. 물에 빠지면 자기를 구해줄 것으로 생각하는 뭔가를 움켜잡죠. 하지만 그건 자신의 목이에요. 스스로 숨 막히게 조르는 거예요.” 제이콥은 손을 움직여 얼의 심장 근처를 부드럽게 두드린다. 한 번, 또 한 번 계속 반복한다. “보내 버려요. 보내 버리세요. 당신 자신에게 매달려서는 안 돼요. 보내 버려야 해요. 그래야만 병을 이기고 나을 수 있어요.” 얼은 팽팽하고 과민하게 솟아 있던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을 감자 늘 가쁘고 힘들던 숨이 한결 깊고 편안해진다. 얼은 머리를 베개 속으로 깊숙이 파묻고 온몸에서 힘이 빠지듯 편안한 상태로 자리에 누웠다. --- pp.86~87 “샤론, 내 사람! 왜 언제나 이렇게 지낼 수 없는 거죠? 우리 둘이서만, 즐겁게 말이에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요, 제이콥이요. 하지만 제이콥은 나처럼 당신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제이콥은 아무도 필요하지 않을 거예요. 그는 독립적인 사람이죠. 어디든 가고 싶은 대로 가고, 뭐든 하고 싶은 걸 하고요. 나는 한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요. 나 혼자서는 너무 외롭고 두려워요.?????.”얼의 말투는 아주 부드럽고 보다 간절해진다. “맞아요. 제이콥은 훌륭해요. 그는 아마 성인(聖人)이거나 그 비슷할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성인이 아니고 그렇게 되지도 못하죠. 우리는 젊고, 원하는 게 같고, 농담에는 똑같이 웃어요. 아마 당신은 나를 제이콥처럼 느끼지 않을 거예요. 나도 그걸 바라지 않아요. 당신은 나를 여자애가 남자애를 좋아하는 식으로 좋아해요. 바로 그러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해요. 왜 그래서는 안 되죠?나는 돈이 있고 그걸 당신에게 쓰고 싶어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내가 그렇게 하도록 해줄 건가요?” 샤론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자 얼이 그녀에게 더 바싹 다가간다. 그녀는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면서 생각에 잠긴다. 그가 달콤하게 속삭인다. “샤론, 나는 당신을 간절히 원해요. 난 당신을 가져야 해요. ‘예스’라고 말해요. 제발 예스라고 말해줘요.” --- pp.138~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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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샤론 스톤은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죽고 난 후 그의 일기에서 오래 전 올더스 헉슬리와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는 구절을 읽게 된다. 샤론 스톤은 헉슬리의 미망인에게 연락을 취하고 이후 헉슬리 집에서 이셔우드가 보낸 낡은 상자를 하나 발견한다. 그 상자 속에서 이셔우드가 언급한 헉슬리와 공동으로 쓴 시나리오를 찾아낸다. 그렇게 발견된 원고가 바로 이 책 『제이콥의 손』이다.
『제이콥의 손』은 짧은 단편소설 분량이지만 그 속에는 올더스 헉슬리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깊이 있고 철학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만일 나에게 병든 사람이나 동물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그것이 현대 의학의 놀라운 과학적 기술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체를 잡을 수도 없는, 믿어지지 않는 신비한 능력이라면 과연 어떻게 쓸 것인가? 이 책의 주인공 제이콥은 이 능력을 명예와 돈을 얻기보다는 자신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이나 ‘인간의 탐욕 세계에 오염되지 않은’ 동물을 위해 쓰고 싶어 한다. 올더스 헉슬리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남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치유할 것인가 말 것인가, 무엇을 혹은 누구를 치유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거듭했던 것 같다. 치유를 통해 눈으로 보이는 외부의 병은 고치더라도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에 깃든 병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느냐, 혹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의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가 남긴 마지막 작품. 『멋진 신세계』를 통해 세계적 문인의 반열에 오른 헉슬리는 젊은 시절부터 고도로 발달된 현대문명을 강하게 비판하는 메시지를 작품에 반영했다. 편리하고 쾌적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이 욕망과 과욕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의 본성을 잃으며 결국 미래는 더 행복한 삶이 아니라 더 많은 욕심을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이 작품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함께 문명 비판적이고 암울한 인간의 미래를 예고한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혀 왔다. 그 후 30여 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흐르고, 혈기 왕성하고 강한 메시지를 주장하던 작가는 어떻게 변했을까? 패기 넘치던 작가는 어느새 불혹을 넘어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노작가로 변했다. 영국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긴 세월 동안 영국 신사로 살아온 그는 이제 미국 캘리포니아로 삶의 터전을 바꿨지만 그가 믿었던 정신세계만큼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사이 헉슬리는 소설 외에도 수많은 시사 문제와 문명을 비판하는 글, 수필, 여행기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발표하며 더욱 왕성히 활동했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명상, 종교, 세계의 인구 문제, 영적 수련, 신비적 경험 등을 탐색하며, 영혼을 관통할 수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늦추지 않았다.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을 바꿔줄 희망을 모색한 것이다. 그리고 말년에 신봉했던 ‘탐욕스러운 세계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을 이 책『제이콥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