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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옮긴이의 말ㆍ6
영문판 옮긴이의 서문ㆍ10
본문
1. 요가와 그 목적ㆍ15
2. 요가와 그 수행ㆍ101
3. 초자연적인 힘들ㆍ183
4 해방ㆍ213
옮긴이의 참고문헌ㆍ236

저자 소개 3

스와미 쁘라바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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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태어남, 1914년 켈커타 대학을 졸업하고 라마크리슈나 교단에 들어갔다. 서부 뱅갈에서 라마크리슈나 교단의 지부를 맡고 있다가 1923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샌프란시스코의 Vedanta Society의 보조 minister로 있다가 1930년 남캘리포니아에 Vedanta Society를 설립했다. 베단따에 관한 많은 저서들을 쓴 학자이자 스와미.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프레데릭 맨체스터의 프로젝터들을 도왔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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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opher Isherwood

1904년 영국에서 태어났고, 캠브리지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다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중퇴했다. 1922년부터 1933년까지 베를린에서 살았으며 1939년에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그곳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번역가, 전기 작가, 소설가, 극작가 등으로 다양한 글을 썼으며, 20여 권의 저서를 남겼고, 20세기 소설과 동성애 인권운동 두 분야에서 모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에 머무는 동안 집필한 소설 『베를린이여 안녕』(1939)이 크게 성공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2차 대전 직전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가난한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이
1904년 영국에서 태어났고, 캠브리지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다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중퇴했다. 1922년부터 1933년까지 베를린에서 살았으며 1939년에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그곳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번역가, 전기 작가, 소설가, 극작가 등으로 다양한 글을 썼으며, 20여 권의 저서를 남겼고, 20세기 소설과 동성애 인권운동 두 분야에서 모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에 머무는 동안 집필한 소설 『베를린이여 안녕』(1939)이 크게 성공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2차 대전 직전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가난한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 이 소설은, 《타임》지가 선정한 ‘현대 100대 영문 소설' 중 한 편으로 꼽혔다.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1935)와 『베를린이여 안녕』은 이후 1945년에 『베를린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한 권으로 묶였고, 1960~70년대에 크게 히트한 뮤지컬과 영화 〈카바레〉, 영화 〈나는 카메라다〉로도 만들어졌다.

『싱글맨』은 1964년, 크리스토퍼 이셔우드가 60세일 때 쓴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이 1962년이고 조지의 나이가 58세인 점에서, 그리고 생각과 관점에 있어서 조지와 작가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2009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 이셔우드 본인은 ‘싱글맨’이었던 적이 없었다. 이셔우드는 1953년에 서른 살 이상 차이가 나는 돈 바카디를 만나서 33년간 연인으로 지내왔으며, 이 관계는 1986년 81세의 나이로 이셔우드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2008년 다큐멘터리 영화 〈크리스와 돈: 러브 스토리〉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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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i Krishnadass,크리슈나다스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다. 197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다수의 직업을 거친 후 서울의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였다. 직장의 일보다는 신을 만나고자 하는 염원이 늘 가슴에 있었다. 어느 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명동 성당에 들러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신을 보는 삶을 주소서. 그렇지 않다면 이 삶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저의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한 적도 있었다. 회사 생활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몰랐다. 이 생활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충남에 있는 수덕사 근처에서 생활했다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다. 197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다수의 직업을 거친 후 서울의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였다. 직장의 일보다는 신을 만나고자 하는 염원이 늘 가슴에 있었다. 어느 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명동 성당에 들러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신을 보는 삶을 주소서. 그렇지 않다면 이 삶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저의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한 적도 있었다. 회사 생활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몰랐다. 이 생활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충남에 있는 수덕사 근처에서 생활했다. 덕산 성당 신부님으로부터 신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유받았지만, 신을 만나고픈 열정이 더 강했다. 그곳에서 몇 개월 지내다 서귀포로 가서 약 2년간 생활하였다.

부산으로 가서 대학교 강사 생활을 몇 년 하다가 창원에 있는 국립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가르치다가 명상을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래서 송광사 주위의 암자에 기거하기도 하였다. 법정 스님에게 제자로 받아달라는 부탁을 드리기도 하였다. 성당 고해소 신부님에게 “신이 어디에 계십니까?”고 질문을 하였다. 신부님은 “산과 들에 있지요.”라는 답을 하셨다. 세상에 산과 들이 얼마나 많은 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절망을 느꼈다. 1988년 말 붓다가 태어난 곳인 인도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뉴델리에 기거하면서 슈리 오로빈도 아쉬람에 자주 갔다. 그곳의 한 이방인에게 길을 물었다. “제가 어디로 가면 좋습니까?”그분이 답하였다. “알란디로 가세요.”그래서 여정이 시작되었다.

켈커타에서 마더 데레사의 축복을 받기도 했다. 비파사나 아카데미에서 명상을 하다가 마음 너머에 있는 것을 경험했다. 거기에는 찬란한 무엇이 있었다. 그곳의 성자분께서 그것을 사마디라 하셨다. 봄베이의 한 요가 연구소에서 외국풍의 연구원에게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을 물었다. 그는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는 아루나찰라 산입니다. 거기에 라마나 아쉬람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라마나는 신이라는 애칭을 가졌으며 동물들과도 대화를 나누시는 분이셨다. 이미 돌아가셨다. 말로의 대화가 없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고요만이 있었다. 그곳으로 순례를 온 스승과 한 무리의 제자들도 말을 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다. 다른 곳들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3호실의 나의 숙소로 가는 길에 남쪽의 파파지라는 별명을 가지신 나나가루라는 성자 분을 만나고 대화까지 나누었다. 그때는 그분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곳에서 한 달 가량 머물렀다. 깨닫는 것을 다음의 생애들로 미루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고국으로 돌아오고자 하였다. 돌아오기 직전에 북인도의 갠지스 강가인 하리드와르에서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 슈리 푼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께서는 북쪽의 파파지라는 별명을 지니신 분이셨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요지는 마음이 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이 현상계를 벗어나 빛이 끝없이 펼쳐진 하늘로 갔다. 다시 돌아온 옮긴이에게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 찾을 것이 더 없습니다.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십시오.”라고 말씀을 주셨다.

고국으로 돌아와 정기적으로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는 라마나 아쉬람을 방문하였다. 2016년에도 라마나스라맘으로 가서 저녁 찬송인 파라야나를 하였다. 온 사랑과 정성을 다하여 라마나님을 흠모하였다. ‘바리 바리 라마나 구루’라는 구절을 찬송하다가 또 마음 너머로 갔다. 나는 경전들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아루나찰라의 은총만으로 깨달음을 경험한 것 같다. 창원에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을 열고 소수의 사람들과 진리를 나누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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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386g | 153*225*14mm
ISBN13
9788991596658

책 속으로

1. 이제 요가의 가르침을 시작한다.
요가는 “합일”을 의미한다. 그것은 영어 단어 “yoke”의 산스끄리뜨
이다. 또한 요가는 영적 합일의 방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요가를 통해 개인은 이렇게 덧없어 보이는 우주의 바탕을 이루는
실재인 신성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많은 방법들 중 하나이다. 그런 합
일을 이룬다는 것은 완벽한 요가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기독교에는 이에 부합하는 용어인 “신비의 합일”이 있다. 그 용어는
비슷한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이 수뜨라들에 대한 고전 논평가들 중 한 명인 보자는, 빠딴잘리의
요가라는 단어 사용을 “아뜨만(실재)을 비아뜨만 즉 눈에 보이는 것과
분리하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하였다.
요가를 수행하는 사람을 요기라 한다.

2. 요가는 마음의 생각의 물결들의 정지이다.
빠딴잘리는 마음 즉 찟따는 마나스, 붓디, 아함까라라는 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마나스는 감각들에 의해 외부 세계로부터 수집된 인상들을 받아들
이는 기록 능력이다.
붓디는 이런 인상들을 분류하고 그것들에 반응하는 분별력이다.
아함까라는 스스로 이 인상들을 주장하고 그것들을 개별적 지식으
로 저장하는 자아 감각이다. …

3. 그러면 그는 자신의 진정한 성품(아뜨만)에 있다.
마음의 호수가 깨끗하고 잔잔해지면,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
항상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 자신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이 아뜨
만임을 알게 된다. …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옮긴이의 말

30대 후반에 박사학위의 논문 주제로 요가 수뜨라를 선택했다. 주
제는 잘 선택한 것 같았다. 관련된 책들도 많이 구했다. 보통의 연구는
충분한 자료가 있고 그것들을 문헌적으로 고찰하거나 실험을 하면 논
문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연구가 조금 진척을 보이자, 대상으로서의 연구가 아니
라 주체의 연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인간 정신의 최고봉인
사마디에 대한 것이 주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내용이다. 사마디도 여러 단계들이
있어서 그려볼 수조차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그것을 경험해보아야 옳게
전개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러한 경험들을 가지기 위하여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한 생애 동안의 노력으로도 가
능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논문을 더 이상 진행한다는 것은 불
가능했다. 그래서 포기하였다.
그것이 씨앗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마디를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
고 있었는가 보다. 그러다 인도의 고엥까 성자의 지도 아래 명상으로,
하리드와르에서 나의 스승님이 되실 빠빠지님의 은총으로 사마디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 경험들이 있은 후 많은 세월이 지나 이 책을 우연히 번역하게
되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이 여러 길에 대하여 다소라도 알고 가는 것
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길을 걸어본 사람
이 여러 길들을 소개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난 라자 요가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갔다. 그래서 사마디에 이르는
자세한 과정의 내용은 잘 모른다. 이 책에서는 자유에 이르기 위한 세
세한 수련들과 여러 사마디들을 너무나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
래서 나의 경험들을 되돌아보는 기회와 여러 수련들이 인간의 마음의
어떤 내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지를 선명히 알 수 있도록 해주어서
좋았다.
요가 수뜨라를 일찍 접했더라면 이론 및 경험들을 설명하는데 있어
서 많은 시행착오들을 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상이 머리를 스친다.
저자들께서는 적은 단어로 많은 것들을 설명해내는 탁월한 재능을
지니신 것 같다. 아니면 겸손, 아니면 지극히 절제된 성품을 지니신 것
같다. 요가의 전체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는 책자는 많지가
않다. 특히 사마디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른 책에서는 보기 어려
운 내용들이다.
이 책에서는 자연을 실체라고 전제하고 진행시켜 나간다. 다른 흐
름에서는 환영, 신, 혹은 신의 에너지, 신 그 자체 등으로 설명하면서
자신의 길을 설명해나간다. 그래서 요가 수뜨라와는 다른 접근의 논리
를 지니신 분들은 아마 혼란이 올 것이다. 물론 나중에는 모든 에너지
가 하나 속으로 흡수된다. 그러면 물론 자연은 환영이 된다. 그때까지
는 실체라는 견지를 결코 놓지 않고 있다.
두 번째로 여기에서는 궁극의 사마디에 이르기 위해서 낮은 몇 가
지 사마디들을 거쳐 가는 것으로 나와 있다. 물론 하나하나씩 밟아나
가는 구도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단숨에 높은 사마디에 이
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요가 수뜨라는 마음의 물결들의 정지가 목표이다. 즉 마음을 어떻
게 하는 길이다. 마음이 정지할 때 남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을 궁극의 존재라든지, 붓다라든지, 평화라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한 사랑의 길이나 다른 많은 길들이 있을 수 있다.
이 길들 모두는 물론 마음의 정지를 낳을 것이다. 모든 길들은 아름답
다. 그러니 자신의 기호에 맞는 길을 열렬히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어느 성자는 진정한 수행은 최종적인 사마디 경험 이후에 시작된다
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책에서 매 수뜨라의 괄호 안의 내용 중 많은 것들은 번역자가 내용
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붙인 것이며, 모든 주석들도 번역자가 단 것임
을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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