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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예이츠 서문
2. 기탄잘리
3.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2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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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indranath Tagore

인도의 시인·사상가·교육자. 아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인도의 문화와 정신을 세계에 알린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1861년 5월 7일 캘커타의 명문 브라만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고, 힌두 학교, 성 사비에르 학교 등을 잠깐씩 다녔으나 자연 속에서 배움의 시간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 데벤드라나트 타고르는 인도의 근대 종교 개혁을 이끈 브라마 사마지의 지도자였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와 함께 몇 달 동안 인도의 각지를 여행하며 전기, 역사, 천문학, 현대 과학, 산스크리트어를 섭렵했고, 특히 고대 인도의 시인 칼리다사의 시를 깊이
인도의 시인·사상가·교육자. 아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인도의 문화와 정신을 세계에 알린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1861년 5월 7일 캘커타의 명문 브라만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고, 힌두 학교, 성 사비에르 학교 등을 잠깐씩 다녔으나 자연 속에서 배움의 시간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 데벤드라나트 타고르는 인도의 근대 종교 개혁을 이끈 브라마 사마지의 지도자였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와 함께 몇 달 동안 인도의 각지를 여행하며 전기, 역사, 천문학, 현대 과학, 산스크리트어를 섭렵했고, 특히 고대 인도의 시인 칼리다사의 시를 깊이 연구했다.

15세 때 첫 시집 『들꽃』을 썼고, 다음해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되돌아온 그는 모국의 풍요로운 자연과, 그 속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깊은 애정을 느낀다. 특히 갠지스 강은 이후 타고르 문학의 중심 모티프가 된다. 그는 시, 소설, 희곡뿐 아니라 철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었고 깊은 정신세계를 소박하고 풍요롭게 표현해 냈다. 열성적인 교육자이기도 하여 샨티니케탄에 교육촌을 만들었고, 비스바-바라티 대학을 설립하여 문학 작품 활동으로 번 돈을 모두 기부했다.

심오하리만치 세심하고 신선하고 아름다운 운문에 절정의 기술을 더하여 자신의 시적 사상을 서구 문학의 일부로 자리매김한 그의 시 세계는 1913년 『기탄잘리』의 영역본으로 노벨상을 수상하며 더욱 빛을 발한다. 이후 1915년 영국으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받았으나 1919년 암리차르에서의 대학살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그 작위를 반납했다. 1941년 여든 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천여 편의 시를 쓰고, 3천여 점의 그림을 그렸으며, 2천여 곡을 작곡했다. 1930년 파리의 삐가르 화랑에서 개인 미전, 1931년 벨린 모래르 화랑에서 개인 미전을 열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기탄잘리』, 『차이탈리(Chaitali)』, 『황금 조각배The Golden Boat』, 『초승달The Crescent Moon』, 『정원사The Gardener』, 희곡 『치트랑가다(Chitrangada)』, 『암실의 왕』, 『봄의 윤회』, 『국가주의』, 『인격론』, 『붉은 유도화』, 『사 중주』, 『우체국The Post Office』, 『희생Sacrifice』, 소설 『고라Gora』 평론 『인간의 종교The Religion of Ma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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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i Krishnadass,크리슈나다스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다. 197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다수의 직업을 거친 후 서울의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였다. 직장의 일보다는 신을 만나고자 하는 염원이 늘 가슴에 있었다. 어느 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명동 성당에 들러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신을 보는 삶을 주소서. 그렇지 않다면 이 삶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저의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한 적도 있었다. 회사 생활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몰랐다. 이 생활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충남에 있는 수덕사 근처에서 생활했다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다. 1972년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다수의 직업을 거친 후 서울의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였다. 직장의 일보다는 신을 만나고자 하는 염원이 늘 가슴에 있었다. 어느 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명동 성당에 들러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 “신을 보는 삶을 주소서. 그렇지 않다면 이 삶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면 저의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한 적도 있었다. 회사 생활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몰랐다. 이 생활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충남에 있는 수덕사 근처에서 생활했다. 덕산 성당 신부님으로부터 신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유받았지만, 신을 만나고픈 열정이 더 강했다. 그곳에서 몇 개월 지내다 서귀포로 가서 약 2년간 생활하였다.

부산으로 가서 대학교 강사 생활을 몇 년 하다가 창원에 있는 국립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가르치다가 명상을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래서 송광사 주위의 암자에 기거하기도 하였다. 법정 스님에게 제자로 받아달라는 부탁을 드리기도 하였다. 성당 고해소 신부님에게 “신이 어디에 계십니까?”고 질문을 하였다. 신부님은 “산과 들에 있지요.”라는 답을 하셨다. 세상에 산과 들이 얼마나 많은 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절망을 느꼈다. 1988년 말 붓다가 태어난 곳인 인도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뉴델리에 기거하면서 슈리 오로빈도 아쉬람에 자주 갔다. 그곳의 한 이방인에게 길을 물었다. “제가 어디로 가면 좋습니까?”그분이 답하였다. “알란디로 가세요.”그래서 여정이 시작되었다.

켈커타에서 마더 데레사의 축복을 받기도 했다. 비파사나 아카데미에서 명상을 하다가 마음 너머에 있는 것을 경험했다. 거기에는 찬란한 무엇이 있었다. 그곳의 성자분께서 그것을 사마디라 하셨다. 봄베이의 한 요가 연구소에서 외국풍의 연구원에게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을 물었다. 그는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는 아루나찰라 산입니다. 거기에 라마나 아쉬람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라마나는 신이라는 애칭을 가졌으며 동물들과도 대화를 나누시는 분이셨다. 이미 돌아가셨다. 말로의 대화가 없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아루나찰라 산자락에 고요만이 있었다. 그곳으로 순례를 온 스승과 한 무리의 제자들도 말을 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다. 다른 곳들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3호실의 나의 숙소로 가는 길에 남쪽의 파파지라는 별명을 가지신 나나가루라는 성자 분을 만나고 대화까지 나누었다. 그때는 그분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곳에서 한 달 가량 머물렀다. 깨닫는 것을 다음의 생애들로 미루어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고국으로 돌아오고자 하였다. 돌아오기 직전에 북인도의 갠지스 강가인 하리드와르에서 라마나 마하리쉬의 제자 슈리 푼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께서는 북쪽의 파파지라는 별명을 지니신 분이셨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요지는 마음이 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이 현상계를 벗어나 빛이 끝없이 펼쳐진 하늘로 갔다. 다시 돌아온 옮긴이에게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대는 붓다입니다. 찾을 것이 더 없습니다.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십시오.”라고 말씀을 주셨다.

고국으로 돌아와 정기적으로 티루반나말라이에 있는 라마나 아쉬람을 방문하였다. 2016년에도 라마나스라맘으로 가서 저녁 찬송인 파라야나를 하였다. 온 사랑과 정성을 다하여 라마나님을 흠모하였다. ‘바리 바리 라마나 구루’라는 구절을 찬송하다가 또 마음 너머로 갔다. 나는 경전들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이 아루나찰라의 은총만으로 깨달음을 경험한 것 같다. 창원에 슈리 크리슈나다스 아쉬람을 열고 소수의 사람들과 진리를 나누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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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1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37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1596900

책 속으로

Thou has made me endless, such is thy pleasure. This frail vessel thou emptiest again and again, and fillest it ever with fresh life. This little flute of a reed thou hast carried over fills dales, and hast breathed through it melodies eternally new. At the immortal touch of thy hands my little heart loses limits In joy and gives birth to utterance ineffable. Thy infinite gifts come to me only on these very small hands of mine. Ages pass, and still thou pourest, and still there is room to fill. At the immortal touch of thy hands my little heart loses limits In joy and gives birth to utterance ineffable. Thy infinite gifts come to me only on these very small hands of mine. Ages pass, and still thou pourest, and still there is room to fill.

당신께서는 저를 영원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기쁨이십니다. 이 여린 그릇을 당신께서는 비우 시고 또 비우시어, 그것을 늘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당신께서는 이 작은 갈대 피리를 산으로 계곡으로 지니고 다니셨고, 그것을 통하여 영원히 새로운 선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당신의 불사의 손길에 닿으면 저의 어린 가슴은 기쁨으로 터지고, 형언할 수 없는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당신의 무한한 선물은 저의 이 아주 작은 두 손을 통해서만 제게 전해져 옵니다. 세월이 흘러도, 당신께서는 여전히 부어주시는데, 아직도 채우실 자리가 있습니다.

When thou commandest me to sing it seems that my heart would break pride: and I look to thy face, and tears come to my eyes. All that is harsh and dissonant in my life melts into one sweet harmony - and my adoration spreads wings like a glad bird on its flight across the sea. I know thou takest pleasure in my singing, I know that only as a singer I come before thy presence. I touch by the edge of the far spreading wing of my song thy feet which I never aspire to reach. Drink with the joy of singing I forget myself and call thee friend who are my lord.

당신께서 제게 노래하라 명하실 때 제 가슴은 자랑스러움으로 터질 것만 같습니다. 제가 당신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제 눈엔 눈물이 맺힙니다. 제 삶의 거슬리고 조화롭지 못한 모든 것들은 하나의 감미로운 가락으로 녹아듭니다. 그리고 제 찬미는 바다를 건너며 즐거이 날아가는 새처럼 날개를 펼칩니다. 당신께서 제 노래에 기뻐하심을 저는 압니다. 저는 단지 노래하는 사람으로서만 당신 앞에 다가갈 수 있음도 압니다. 저는 멀리 퍼지는 제 노래의 날개 끝으로 제가 닿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당신의 발에 닿습니다. 노래하는 기쁨에 취해 저는 저를 잃고 저의 신이신 당신을 감히 친구라 부릅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젊은 날에 영혼을 울린
두 권의 책이 있었다.
한 권은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이었다.
다 읽었다.

그 소설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그 알은 세상이다.”
알은 알로 있는 한
새는 없다.
나는 그 말에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
그러한 경지가
인간에게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또 한권의 책은 타고르의 기탄잘리였다.
1번의 시를 읽는데
“갈대피리”란 단어를 접하고
더 이상 읽지 못했다.

세월은 흘러 서울역 앞
아름다운 대기업 사옥에서 근무했다.
믿음이 가는 분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이 직업을 계속 가져도 될까요?”
그분의 답은
손가락까지 튕기면서
“아니요.”

남산의 국립국악원으로 가서 단소를 배웠다.
단소를 들고
나는 떠날 것이다.
나도 모르는 곳으로.....

수덕사로, 강원도로, 제주시로, 서귀포로, 부산으로,
창원으로, 다솔사로, 송광사로, 인도의 뉴델리로, 알란
디로, 이가타푸리로, 푸네로, 봄베이로, 브린다반으로,
아루나찰라로, 오로빌로, 타고르 마을 샨티 니케탄으로,
콜카타로, 하리드와르로.

하리드와르의 갠지스강가에서
어느 분이요
저를 사라지게 한 뒤
무엇을 보여주셨어요.

여정을 서둘러 멈추고
일터로 돌아왔다.

이제는 은퇴하고
시골집에서 기거한다.

붉은 파인애플 세이지의 꽃들이
만발한 공터에 앉아
기탄잘리를 마저 읽다가
나의 기탄잘리를 만들고 싶었다.

2020년 11월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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