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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불이 꺼졌을 때 산은 봄과 여름의 푸른 산도 아닌, 가을의 단풍 산도 겨울의 하얀 산도 아닌, 시커멓게 타고 그슬린 산이 되어 매캐한 연기 속에 남았습니다.
새들은 그나마 불길을 피해 하늘로 날아올랐지만 둥지에 남은 알록달록 알과 하양노랑 풀꽃들은 온데간데없고, 숲 속을 누비던 온갖 짐승들은 아름드리 나무들과 함께 숯이 되어 있었어요. 그 해 여름, 사진기를 든 사람과 수첩을 든 몇 사람이 찾아와 몇 번 땅거죽을 헤집어 보고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봄. 잿빛 죽음의 땅에 언뜻언뜻 보이는 저 노랗고 푸른 것들은 ‥…? 아, 그것은 새순! 아, 그것은 꽃 ‥…! 아, 또 있었습니다! 운 좋게 불에 타다 만 나무줄기엔 연둣빛 고운 새순이 살포시 얼굴을 내밀었고, 나무 밑동에 난 가지에는 다복하게 잎이 달려 있었습니다. 히야, 신기하다! ---- pp.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