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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
미처 탐구되지 않았던 쇼핑에 대한 뜻밖의 기록
이충걸
위즈덤하우스 2008.05.30.
베스트
감성/가족 에세이 top100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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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글 살기 위해 산다

1장 매장의 미아
매장에서 생긴 일|세일, 현대의 마법|백화점, 박물관에서도 고해소에서도 살 수 없는 것|오래된 상점의 냄새|거리에서|앉아서 하는 쇼핑|누가 누가 먼저 내나|타인과 쇼핑할 때 예상할 수 있는 것들|새벽에서 황혼까지|소비의 네 가지 유형에 관한 짧은 언급|이별이 쇼핑에 미치는 두 가지 영향|쇼핑중독자들의 비밀|빚과 그림자|쇼핑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

2장 트렌드를 소비하는 야비한 방법들
패션 공화국 시민들에게|복제 도시와 청담동에 관한 노트|참을 수 없는 유행의 고루함|철새는 날아가고|패션 스토킹|패션은 왜 피곤한가|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셀러브리티라는 이름의 광고|나이의 위선|탈의실 거울은 무엇을 비출까|럭셔리 베이비|소비의 유산

3장 괴로운 부르주아 세계
그 여자 그 남자가 ‘사는’ 법|새 나라의 남자는|여자의 일생에 잡지가 무슨 소용인가|브랜드를 좋아하세요?|명품의 데카당스|이미테이션, 진짜 가짜|어디서 온 물건인고?|소위 패션 피플들에게|포장지가 숨긴 것|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새로운 럭셔리의 기준|사치의 이중성|대한민국 상류는 어디 숨었나|부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사랑보다 힘센 것

4장 무엇을 위한 죄의식인가
크리스마스의 악몽|선물의 의미에 대해 프로이트가 말해주지 않은 것들|50평짜리 아파트와 0.5평짜리 관棺|작은 차로는 멀리 떠날 수 없네|술이 페티시로 변할 때|유기농 무기수|청바지에 입이 있다면|지구를 사랑하지 않은 죄|시간 사용법|사회 부적응자의 노래|환전의 추억|선택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이유

부록 소비 조정자들과의 인터뷰
조르지오 아르마니|크리스 뱅글|필립 스탁

저자 소개 1

그처럼 개인적이고 체계가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조직 생활’을 했는지 의아하다는 세간의 평이 떠도는 가운데 이충걸은 [행복이 가득한 집], [보그] 에디터를 거쳐 [GQ KOREA] 초대 편집장으로 18년 간 일했다. 서양문화의 첨병인 패션 잡지 안에서 언어 포함, 한국적 가치를 사수하는 이율배반적인 시간이기도 했다. 몇몇 사회 문화적 사안들에 나름대로 참견하는 한편,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전공을 배경으로 도시 생태학을 지속적인 지큐 콘텐츠로 다루었다. 한편 그는 오래된 책과 옛날 작가, 작은 자동차와 진한 술을 좋아하고, 어떤 사치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
그처럼 개인적이고 체계가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조직 생활’을 했는지 의아하다는 세간의 평이 떠도는 가운데 이충걸은 [행복이 가득한 집], [보그] 에디터를 거쳐 [GQ KOREA] 초대 편집장으로 18년 간 일했다. 서양문화의 첨병인 패션 잡지 안에서 언어 포함, 한국적 가치를 사수하는 이율배반적인 시간이기도 했다. 몇몇 사회 문화적 사안들에 나름대로 참견하는 한편,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 전공을 배경으로 도시 생태학을 지속적인 지큐 콘텐츠로 다루었다.

한편 그는 오래된 책과 옛날 작가, 작은 자동차와 진한 술을 좋아하고, 어떤 사치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의 글에 세속의 어수선함과 산골짜기 같은 무구가 동시에 섞여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가끔, 되풀이해서 문장을 읽어 볼 땐 행간에 서려 있는 어떤 고요에 놀라기도 한다. 이충걸의 글은 회상과 상상에 의한 '스토리'라기보다는 그 스스로 정체성을 부여한 사물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그의 글감이 되는 사물이란 단번에 정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이상한 언어 감각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은,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2011년, 첫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을 펴낸다. 처음 쓴 소설 속에서 그는, 서사를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실험적인 현대 문학의 방식이나, 위대한 서사를 통해 세상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듯한 화법을 주장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표현하면서 속도를 유지하는 것, 현기증이 날만큼 화려하면서 마침내 공동(空洞) 같은 허무를 보여주는 문장이 그에겐 서사이기 때문이다. 이충걸이 팽팽한 문장으로 써내려 간 이야기들은 순수한 픽션이라고 하기에는 어리둥절할 정도로 작가와 닮아 있다. 오래된 가구의 모래색, 애들 색종이에 쓰이는 초록색, 학자의 흰머리 같은 회색이 공존하는 그의 문장은, 번번이 몸 안의 신경을 죄다 일으켜 애매하고도 생경한 피로를 느끼게 한다. 간혹, 중학교 동창에게서 받은 편지 같기도 하고, 돈 없는 사람의 눈앞에서 지금 막 불을 켠 쇼윈도 같기도 하고, 침통한 마음을 덮어주는 얇은 담요 같은 문체는 딱히 표현하기 곤란한 원초적 따뜻함으로 지글댈 때도 있지만.

저서로는 첫 소설집 『완전히 불완전한』을 비롯, 어머니라는 우주를 조촐하게 기록한 아들의 글 『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일생 동안 겪은 숱한 이별의 순간을 들추어 추억한 『슬픔의 냄새』 인터뷰집 『해를 등지고 놀다』 외에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에 이르는, 일관되지 않는 산문집 몇 권을 썼다. [11월의 왈츠], [노래처럼 말해줘], [내 사랑 히로시마], [여덟 개의 엄숙한 노래] 같은 연극 대본도 썼는데 모두 배우 박정자와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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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51쪽 | 610g | 153*224*30mm
ISBN13
9788960861060

책 속으로

매일 쇼핑에 대한 새삼스러운 사실들을 배운다. 쇼핑은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합리화라는 것부터, 내가 산 것들은 늘 분별과 후회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든다는 것, 때로 연애나 스포츠, 비즈니스보다 더 큰 힘으로 동기를 부여하거나 빼앗고, 자극하거나 낙담시키며, 정체성을 지탱하거나 제한한다는 것, 결국 시간처럼 차라리 삶 자체를 판단한다는 것까지. 하지만 나는 어떤 자기 성찰도 쇼핑 경험보다 못하다고 믿는 속물이라서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사고 싶은 걸 안 사면 내 돈이 외로워할까봐.
--- p.6, '머리글' 중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아주 자유로우면서 이성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그러나 세일 때만은 아니다. 세일은, 한 발 비켜서서 보면, 필요하거나 사고 싶었던 게 아닌 ‘싼’ 물건을 사는 행위지만,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 않았던 것들을 거두는 일일 뿐이다. 한바탕 유행했던 팬츠를 눈 돌아가도록 싸게 산다고 해도 그건 이미 한물간 것이다. 결국 세일 매장을 배회하는 이들은 백화점도 어쩌지 못했던 재고를 치워주는 호의적인 소비자에 불과하다.

물론 우린 다들 미적지근한 일상을 확 뒤집을 횡재수를 그리워하는 가련한 존재들이다. 그토록 원하던 캐시미어 재킷이, 그것도 딱 맞는 사이즈가, 4만 원짜리 가격표를 붙인 채 눈앞에 있을 확률, 즉 잭팟을 터뜨릴 확률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도박꾼들은 잔뜩 취할 수밖에 없다.
--- p.28, '세일, 현대의 마법' 중에서

우주의 질서가 불길하게 삐꺽대는 토요일, 마음속의 반란을 확장시키는 3시였다. 이대 서브웨이 앞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입으려다 만 것 같은 울퉁불퉁 패딩 코트를 입고 그녀가 나타났다. 대학 졸업식 날 레이스 달린 투피스를 입었던 그녀도 벌써 아이가 둘이었다. 겨울 내내 이 코트만 입었어,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패딩의 실용성을 따지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가벼운 커피 한 잔과 트레인 스포팅이었다. 우린 오늘 관광객이야. 아무 데서나 방심한 듯 막 사버리는 거야.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하지 말기.
--- pp.71~72, '새벽에서 황혼까지' 중에서

중독이란 게 무엇이든 한 가지만 줄곧 생각하는 어떤 열정적인 상태라면, 아주 멋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쇼핑중독자들은 열심히 번 돈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개선하는 동시에 사회 경제가 굴러가게 만드는 사람들이며, 쇼핑백에 희망찬 내일을 담는 사람들이며, 영원히 정열을 불태우는 사람들이며, 쇼핑만이 시든 욕망에 다시 불을 당길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아는 순수한 사람들이 아닐까? 굳이 그들과 나를 위로하는 말이긴 하지만…….
--- p.98, '쇼핑중독자들의 비밀' 중에서

사실 쇼핑이 너무나 고통스럽다면 두 가지 옵션과 맞닥뜨려야 한다(방법을 찾기만 한다면 정책 입안자들이나 정치 사색가들을 매료시킬 것이다). 율리시스가 사이렌의 노래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배를 돌린 것처럼 아예 쇼핑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아주 조금만 하는 것.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건 매장에서 지갑이 다 털렸는데도 다음 날 또 쇼핑하며 살아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 우긴다. 돈은 쓰라고 있는 거고, 헛된 소비의 기쁨도 없이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그게 오히려 현명한 소비라고.
--- p.109, '쇼핑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 중에서

옛날 어른들은 말했다. 볕이 잘 드는 앞뜰이라면 오동나무보다 대추나무를 심으라고. 어울리는 것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 신성한 융합이 이루어진다. 물론, 베라 왕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지구는 잘만 돌아간다. 엉뚱한 부분의 솔기가 핼무트 랭의 장기란 걸 몰라도, 밴드나 줄무늬 간격에 민감하지 않아도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제대로 고른 화이트 셔츠가 인생을 바꿔놓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차디찬 부엌 타일 벽에 비스듬히 기대 서 있을 때조차 어느 순간 주의를 끌게 만드는 것이 패션인 것이다. 여전히 잔혹한 변덕 위에 매달려 있다고 해도…….
--- p.149, '패션은 왜 피곤한가' 중에서

‘아내’ 말고 ‘여자’에게 예산 내에서만 쇼핑하라는 것은 부모가 허락한 남자하고만 사귀라는 말과 똑같다. 그래서 현자(賢者)들은 여자에게 신용카드를 맡기지 말라고 충고한다. 1년의 어느 때가 되면 여자들은 쇼핑에 더 노골적이 된다. 중요한 모임은 좋은 옷을 원한다. 그건 해가 바뀌기 전에 남자를 만나리라는 희망 쇼핑이자, 초라한 나를 위해 지갑을 여는 거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점원들에겐 무릎을 꿇고서라도 더 팔아야 하는 고객이지만, 남편에게는 기회만 있으면 돈 쓸 궁리부터 하는 여편네들은 세일 때 쇼핑한 것 가지고도 핀잔하는 남자에게 역습한다. “오늘, 내가 오히려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는지 알기나 해?”
--- pp.188~189, '그 여자 그 남자가 ‘사는’ 법' 중에서

워낙 난이도가 높은 패션과 화장품을 소비하는 도시의 스트레이트 남자들은 교양과 취향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추고 있었다. 중요한 건, 섬세한 남자들의 제한된 ‘남성적 뷰티’가 아니라, 보통 남자들의 평균적 약진이다. 구찌 쇼 모델처럼, 배까지 풀린 단추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복근과 매끈한 뺨, 부드러운 몸통을 가진 남자들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꾸며라, 더 꾸며라. 그들은 원시 남자 조상만큼 단단한 남성적 확고함을 이미 지녔으니 더 이상 그것을 증명하는 데 인생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 pp.191~192, '새 나라의 남자는' 중에서

아무튼 나는 로고 전쟁에서 빠지고 싶다. 퀵 아저씨 오토바이에 부딪혀 쓰러졌을 때 사람들이 내 셔츠를 보고, 세상에 파코 라반 씨가 다쳤어,라고 할까봐(그 회사가 나에게 자사 광고 모델이 되길 원한다면 비싼 모델료를 감당해야 할 거다). 그래서, 눈에 확 띄는 원산지 표기나 고집스러운 메시지도 안 보이고, 성적으로 소구하지 않으면서도 신중해 뵈는 로고 없는 제품을 보면, 가격도 합리적이란 믿음까지 덩달아 생긴다. 가끔, 스스로 일용할 생활 일습들을 만들었던 옛날 가내 수공업 시대가 그립다. 동력을 이용한 산업혁명이 광범위한 완제품 공급의 사슬을 갖추게 했지만, 옛날 사람들이야말로 산업에 예속되지 않은 순결한 디자이너들이었다. 그렇다고 나더러 동대문에 가서, 가는 면사와 지퍼, 단추, 리본과 핑킹 가위, 핀 박스를 사서 내 취미에 맞는 옷을 직접 지어 입으라고 하진 않으시겠지.

--- p.220, '이미테이션, 진짜 가짜'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책은 남성잡지 『GQ KOREA』의 편집장이자 낯선 이미지와 생경한 언어들을 조합한 ‘이충걸식 글쓰기’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저자의 쇼핑에 대한 뜻밖의 탐구 보고서이다. 소비문화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좀더 멋내고 살기를’ 종용하는 잡지 에디터로 살아가지만 때로 백화점 명품관보다 길거리 좌판을 애호하고, ‘1년이 힘들 정도’의 시계를 ‘갖고 싶어서’ 사버리지만 그 안에서 죄의식을 발견하는 저자는 쇼핑에 대한 난폭한 폭식과 잔인한 절식 사이를 오가며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글쓰기를 완성하고 있다.

샤넬이 비록 인생을 바꾸진 못할지라도 우리는 쇼핑하는 그 순간의 행복, 찰나적 기쁨, 짜릿한 죄책감을 끊임없이 탐하고 꿈꾼다. 눈은 높고 본 건 많은데 가진 게 없다는 진실에 둘러싸인 채 하루 24시간 ‘소비하는’ 세상을 살아간다. 이 책은 대한민국 소비문화에 대한 전방위적 탐구 보고서인 동시에, 갖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인생, 그러나 가질 수 없는 건 더 많은 우리 인생에 보내는 조용한 응원이다.

이충걸이 바라보는 백만 가지 소비 풍경

개명한 스타일의 남자를 위한 잡지 『GQ KOREA』의 편집장으로 매달 문화 전반에 걸친 강렬한 콘텐츠를 빗발치듯 퍼붓는 이충걸은 사실 물욕의 화신이자 불굴의 쇼핑 애호가이다. ‘물질’이 주는 일련의 기호들에 쉽사리 들뜨는 그의 쇼핑 목록엔 스티클리 가구, 그라함 시계, 올라퍼 엘리아슨의 사진 같은 ‘있어 보이는’ 것도 있지만, 80년대에 만들어진 세신 스테인리스 밥공기와 2천 원짜리 빈티지 넥타이처럼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자기의 먹이가 나뭇잎인지 물고기인지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는 동물처럼, 그는 어떤 물건이 자기 것인지 본능적으로 파악한다.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그는 병아리를 노리는 솔개같이 돌변한다. 그게 쇼윈도 안에 있으면 한니발이 되어 돌격하고, 행여 다른 사람이 갖고 있으면 간단히 한 마디 한다. “그거 나 줘.”

그렇다면 이충걸이야말로 ‘소비’가 주제인 글의 적자(嫡子)인 셈. 그는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제대로 탐구되지 않았던 쇼핑에 대한 독야청청한 견해를 피력한다. 쇼핑에 대한 그의 전혀 새로운 지적은, 지금부터 ‘소비 저널리즘’의 생생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남자, 쇼핑을 말하다

이충걸은 남자다. 물론 패션잡지 에디터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졌지만, 어쨌거나 불혹을 넘긴 대한민국 ‘아저씨’다. 그런 ‘아저씨’가 쇼핑하는 세상에 대한 발칙대담한 생각을 늘어놓고 있다. 그의 글에선 스틸레토, 구찌 백, 에르메스의 ‘H’ 로고 등등이 술술 흘러나온다. 게다가 몇몇 주제의 글들은 여성의 시점으로 서술했다. ‘여자들이야말로 백만 개 소비의 결을 들춘 다음 그 가운데로 헤엄쳐 들어가 온몸으로 그 극단적 감정들과 맞서온 생존자들이기 때문’이라는데, 여자도 미처 몰랐던 여성의 내밀한 소비욕망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파고들고 있다.

‘쇼핑’이 여성들만의 전유물이며 남성들은 그저 엄마나 애인, 아내, 나아가 딸이 사다주는 옷과 신발과 시계를 착용하면 되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와 같은 속도로 질주하면서도 따로 외모를 가꾸는 시간을 내는 것에 자극받은 ‘새 나라의 남자’들이 소주 대신 호가든 맥주를 마시고, 골프 셔츠를 테일러드 셔츠로 바꿔 입으며, 며칠이 걸려도 기어코 마음에 드는 진을 사기 시작했다. 이 책은 화성과 금성까지 가지 않고도 남자와 여자가 ‘사는’ 법의 차이를 밝혀내는 동시에, 신종 남자들의 도래를 반갑게 환영하고, 더불어 점점 더 대담하고 노골적으로 ‘진화’하는 여성들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들여다본다.

핫하고 시크하고 싶은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

이 책은 쇼핑을 ‘즐기는 것’이 젊은 여성들이나 돈 많은 귀부인들만의 영역이라는 세간의 오해를 풀어준다. ‘도대체 제일 비싼 수트가 빼빼 마른 중학생 애들이나 입을 만한 사이즈란 게 말이나 되냐며’ 툴툴대던 중년 여성은 ‘탈의실 거울에 비친 이 아름다운 여자를 이렇게까지 해서야 만나게 되다니’라며 한숨 어린 기쁨을 내뱉는다. 전에는 아무도 예순 넘은 할아버지가 손자와 똑같은 셔츠를 입을 수 있다거나 입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이충걸은 일흔 살이 되자 인생의 서막이 시작되었음을 알았다던 오노 요코의 말을 빌려 나이를 먹는 게 부도덕한 일이 되어버리는 패션 세상에 일침을 가하고, 새로운 개혁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한다.

옛날 문화는 음악과 문학과 건축으로 정의되었지만, 후기 산업사회의 모든 도회적 삶은 쇼핑으로 침윤되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아닌 소비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 21세기는 ‘소비’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사회, 패션과 문화와 음식과 주택과 자동차, 심지어 정치와 경제, 환경까지 소비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소비’라는 단어로 관통한 첫 번째 책인 동시에, 남자가 말하는 여자의 소비욕구를 처음으로 다룬 책이면서, ‘핫하고 시크하고 싶은 남녀노소의 욕망’을 인정하고 박수를 보내는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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