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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서문 / 들어가는 글 chapter 1. 아버지에 대한 기억 chapter 2. 링컨이 남기고 간 흔적 chapter 3. 기숙학교 생활 chapter 4. 준비의 덫 chapter 5. 헐하우스, 첫 시작 chapter 6. 헐하우스 초기 사업 chapter 7. 빈곤의 문제 chapter 8. 논쟁의 시간들 chapter 9. 일리노이 노동법 chapter 10. 이민자와 그 자녀들 chapter 11. 톨스토이즘 chapter 12. 공공활동과 조사활동 chapter 13. 시민의 활동 chapter 14. 사회단체의 가치 chapter 15. 교육의 대중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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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 최초의 사회복지기관, 헐하우스
1889년, 시카고의 대표적 빈민 지역인 사우스홀스테드가 800번지 낡은 주택에 작은 기관이 들어섰다. 어릴 적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된 스물아홉 살의 여자, 제인 애덤스가 세운 빈민들을 위한 인보관이었고, 1856년 이 주택을 지은 찰스 G. 헐의 이름을 따 「헐하우스」라고 이름 지었다. 그 단순한 행위가 낳은 반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처음에는 유치원으로 문을 열었으나 곧 일일보육원과 유아보호 센터로 확장되었고,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교육하는 야간학교로 성장했다. 이후 찰스 헐이 지었던 낡은 집 외에 12채의 건물이 생겨났고, 운동장과 큰 야영지까지 갖추게 되었다. 뿐만 아니었다. 헐하우스가 일으킨 반향은 시카고 빈민가를 넘어 미국 전역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910년이 되자 미국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회개혁가들이 헐하우스로 집결했다. 그들은 미국이 ‘산업발전’이라는 명목하에 시민들에게 지나친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데 불만을 가졌고, 이제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아동 노동 폐지, 노동시간 및 여성 노동조건 법제화, 청소년 관련 법률 개혁 등 헐하우스 안에서 이뤄진 노력은 결국 아름다운 열매를 맺음으로 그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후에도 헐하우스는 여러 개혁을 일으키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헐하우스에서 20년》은 제인 애덤스와 그녀의 친구 엘렌 스타가 ‘선한 이웃’이 되고자 시카고 빈민가에 세운 낡은 인보관의 시작,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북아메리카에 세워진 최초의 사회복지기관 헐하우스가의 20년 역사가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된 이유에 대해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제인 애덤스 공화당 상원의원이었으며 링컨의 친구이기도 했던 아버지 밑에서 제법 부유하게 자랐던 제인 애덤스는 록퍼드 여자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까지는 매우 평탄한 삶을 살았다. 의학 공부를 하던 그녀가 건강상의 문제로 학교를 그만두고 선택한 2년간의 유럽 여행, 그리고 그때 방문했던 영국 사회복지기관인 토인비홀(Toynbee Hall)은 그녀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친구 엘린 게이츠 스타와 함께 미국식 토인비홀을 세우겠다는 꿈을 안고 돌아왔고, 자금을 모으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또 실천한 것이다. 제인 애덤스는 헐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여성 참정에 관한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쳤다. 남녀평등 사상에 평화주의를 접목시켰고, 그에 관한 여러 사회운동을 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녀는 정부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이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및 국외 급진주의자들에 대한 기소 반대, 그리고 독일인 전쟁 희생자를 위한 식량 배급에 앞장서는 활동으로 인해 반역자로 매도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1931년에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 대신 ‘성녀 제인’으로 부활했다. 스톡홀름까지 가는 여정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업적과 열정 덕에 미국 내 공동체의 권익은 한층 향상되었다. 제인 애덤스를 만든 유년의 기억, 그리고 아버지 항상 그렇듯이 이번에도 나는 아버지에게서 위안을 얻었다. 아버지는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지적해주셨다. 현명하신 아버지는 죽음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도 독단적인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나는 이런 아버지와 죽음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면서 친밀감을 느꼈다.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에게 되도록 죽음이나 슬픔과 관련된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어른들을 자주 본다. 삶의 고통은 언젠가는 찾아오기 마련이므로 어린 시절에는 행복한 것들만 보고 듣게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런 태도에 분개한다. 아이들도 가파른 계단을 스스로 힘겹게 올라가고 싶어 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싶어 한다. 홀로 있는 고요한 시간이면 존재의 문제가 화두로 찾아오는데, 그런 경험을 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본문 중에서) 제인 애덤스를 『헐하우스에서 20년』을 집필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유년의 기억을 1장과 2장에서 언급한 뒤 그는 바로 헐하우스를 설립한 나날로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유년의 기억이 자신의 삶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할만큼 그녀에게는 어린 시절이 중요하게 자리 잡았다. 어린 시절 중에서도 가장 튼튼하게 뿌리 박혀 있는 기억은 바로 ‘아버지’이다. 그녀는 언급하는 기억의 편린들은 모두 아버지와 관계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차지했으며 윤리 의식과 삶의 지표를 제시해준, 지금의 제인 애덤스를 만든 사람인 것이다. 어릴 적 앓았던 병으로 인해 안짱다리에 곱사등을 갖게 된 자신의 모습이 혹시라도 아버지에게 해가 될까봐 일부러 삼촌과 더 친한 척하며 걸었다는 그녀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는 그녀가 얼마나 아버지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코 못생기고 장애를 지닌 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더 큰 신뢰를 불어넣어주었다고 회고한다.아버지를 따라 빈민촌을 방문하던 일이 잦았던 제인 애덤스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가난한 자에 대한 마음이 애틋했으며 아버지 친구였던 링컨의 영향도 크게 받고 자라 평등 의식에 대한 갈망이 컸다. 그런 어린 시절 덕에 빈민을 위한 희망의 공간을 만들었고, 남녀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여성이 참정권을 갖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사회 개혁’속에 묻어 있는 제인 애덤스의 손길 빈민 사업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콩과 밀가루가 담긴 종이봉투를 가득 안고 시립복지원에서 돌아오던 모란 부인이란 사람이 떠오른다. 콩과 밀가루는 굶주린 아이들의 배를 채워줄 소중한 양식이었다. 차비가 없었지만 소중한 식량을 들고 있던 부인은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갑자기 봉투가 찢어지면서 밀가루가 튀고 콩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차장은 모란부인이 차비까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격분해 모란부인을 쫒아냈다. 모란부인은 버스에서 떠밀려 생필품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그날 내린 비나 차장, 혹은 교도소에 있는 남편을 저주하지 않았다. 다만 가난 때문이라며 가난을 저주했다. 모란 부인은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본문 중에서)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에 태어난 제인 애덤스는 신생국가였던 조국의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았다. 피로 얼룩진 내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산업혁명의 부작용이 시대를 덮쳤다. 노동 착취 공장, 아동 노동, 열악한 작업 환경, 그리고 절망적인 빈곤. 거기다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늘어나 도심 빈민층이 확대되었다. 잇따라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경제공황이 그 뒤를 이었다. 부유한 독일계 영국인 부모의 다섯 딸 중 한 명으로 태어난 애덤스는 숨을 거둘 때까지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발생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헌신했다. 시카고에 자리를 잡은 그녀는 굶주린 이들을 위해 빵을 구웠고 공정한 노동 법률의 제정을 위해 로비를 벌였으며,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조직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부모를 따라 퀘이커 교도가 된 그녀는 국제적인 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평등 사회 이렇게 시카고는 산업사회의 문제를 논의하고 그 해결책을 고민하는 데만 10년을 보냈다. 10년의 논의 과정이 끝나고 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기간을 지금 돌아보면 가슴 속에 품고 있던 희망을 현실로 바꾼 사람들은 사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에 맞춰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추상적 사변을 하던 사람들은 세상에 굴복하거나 신념을 꺾었지만 일상적 일에 충실했던 현실적인 사람들은 추상적 사상을 구체적 현실로 만들어냈다.(본문 중에서) 노동자들의 일일 8시간 노동 시간 보장, 여성 참정권, 2세대 이민자들의 인권 보장, 아동 노동의 폐지 등 그녀가 벌였던 운동을 보면 가장 큰 줄기는 ‘약한 자들의 편’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평등과 평화를 추구했다. 빈민, 노동자, 여성, 아이 등 그녀가 편들어주었던 약한 자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예수 그리스도’와 닮아 있다. “내가 빈민굴에 온 것은 내 의지가 아니고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에 여기에 왔다”는 그녀의 말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헐하우스에서 20년》을 읽는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입으로만 평화와 평등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행위로 보여주는 사람. 곱사등의 장애를 지닌 몸 하나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글을 읽는 내내 뼛속같이 깊이 체험하게 될 것이다. 『헐하우스에서 20년』은 미국의 지성사와 사회사를 통틀어 손에 꼽을만한 고전이며 도발적인 사회 이론의 풍성한 보고이다. 제인 애덤스는 용감한 활동가인 동시에 독창적인 사상가이다. 우리는 애덤스의 삶과 글에서 사고와 행동을 통합한 인물의 전범을 본다. 애덤스와 헐하우스 식구들은 당대의 개혁 운동뿐만 철학적, 사회학적, 정치적 사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세심한 관찰, 일상에 대한 성찰, 공공 정책에 대한 처방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중요한 논설을 가득 담고 있다. 오랫동안 자서전으로서의 가치와 역사적 가치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헐하우스에서 20년』은 뛰어난 통찰력, 예리한 분석, 우리를 사로잡는 비전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베레니스 A. 캐럴 1910년 미국에서 『헐하우스에서 20년』이 발간되자 큰 성공을 거두었다. 평가는 호의적이었고 일부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첫 해에만 6쇄가 발간되었다. 출간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학자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꾸준하게 책을 찾고 있다. 이 책은 제인 애덤스의 자서전만도 아니며 헐하우스 초기 역사를 다룬 글만도 아니다. 실제로 둘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아주 독특한 책이다. 제인 애덤스라는 개인이 없었다면 헐하우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동시에 그녀가 헐하우스를 설립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제인 애덤스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