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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풍경미학에서 새로운 풍경미학으로
부산 풍경의 재발견 고가도로, 풍경을 편집하는 길 터널, 도시의 변환장치 광안대교, 그 경관공학적 아름다움 항구, 테크노스케이프의 전시장 항구의 산, 부산의 얼굴 성지곡 댐, 대한제국의 꿈 외양포, 시간이 멎은 공간 방파제, 항구의 성채 산복도로, 항구 조망의 특등석 영도다리, 근대 교량기술자의 경연장 다대포, 멀리 있어서 아름답다 부산은 항구다 일출, 겨울 부산의 제철 풍경 행복의 섬, 부산 명도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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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한가운데를 고가도로가 관통하고 그 위를 대중교통이 경적을 울리며 질주하고 있다. 고속철은 예리한 칼날처럼 도시를 절단하면서 질주하고 있다. 그 질주의 속도만큼 깊은 골짜기가 삶의 공간을 단절한다. 공장은 뒤늦게 증식하기 시작한 주거지 속에 섬처럼 잔존한다. 그래서 주거와 생산이 한데 엉켜있다. 그래서 부산에서는 망치질 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교향한다. 산자락을 허물어뜨리고 건설되는 고층 주택은 그 산 능선보다 높이 솟아오르고 있다. 산과 들과 강으로 이어지던 산하의 맥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게 되었다. 태풍이 불면 집 가까이 파도가 들이치는 곳이다. 홍수 때면 언제나 강은 범람했고 저지의 농경지는 침수되었다. 상업지역이 아니라고 해도 건물 파사드를 가득 메운 간판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 p.6
지금 우리 눈앞에 드러난 공업적 풍경은, 우여곡절은 있을지언정, 전원 풍경이 그랬던 것처럼 풍경의 고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에펠탑의 아름다움을 부인한 당시 프랑스 예술가처럼 전원 풍경만이 풍경미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고전적 풍경미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공업적 풍경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싶었다. --- p.8 이런 풍경 앞에서 당혹스러워지는 것은 도시가 지금까지의 풍경관으로는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생장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부산의 풍경이 우리의 고전적 풍경관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전위적이라면 우리의 풍경적 감수성을 예리하게 연마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관을 설정해야 이 착잡한 부산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으며, 그래야 부산에 걸맞은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예를 들어 산자락을 가로막고 있는 고층 주거지를 산하의 맥락을 무시한 악풍경의 대명사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산 위에 올라서야 볼 수 있었던 부감경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누구나 손쉽게 가질 수 있게 했고, 그로 인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내려다보는’ 시선과 광활한 원망을 일상의 풍경으로 되돌려주었다는 점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도심을 관통하는 고가교를 지역 분단의 원흉만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지면에 붙박이로 생활하던 그때까지와는 다른 시점을 우리에게 제공했고, 그래서 그 무중력적인 시선 덕택에 도시의 색다른 면모를 체험하게 되었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 p.21 한눈에 쏙 드는 그림 같은 광안대교를 보려면 금련산 정상 부근이 좋다. 여기에서는 광안대교가 수평각 15도, 수직각 3도 정도로 보인다. 거기에다 우리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두는 곳(부각 9도 부근)에 광안리 해변이 보인다. 그러니 해변에서 수평선까지 넉넉하게 펼쳐진 해수면 속에 광안대교가 마치 보석처럼 박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금련산이다. --- p.62 차를 타고 컨테이너 부두 풍경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은 충장로에서 신선대부두로 이동하는 동서고가로가 아닌가 한다. 자동차 핸들에 순응하듯이 완만한 곡선으로 휜 고가도로를 타고 오르는 순간 오른쪽으로 보이는 6부두가 그것이다. 온순한 동물처럼 엉덩이를 내밀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거대한 배와 쉼 없이 먹이를 물어 나르는 어미새처럼 그 위로 컨테이너 크레인이 철제 박스를 운반하는 광경을 손에 쥘 듯이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다. --- p.78 항구의 풍경을 조망하는 길로 남부민동의 해돋이 길도 빼놓을 수 없다. 항구 풍경을 손에 잡을 듯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심지어 항내를 순회하는 순시선에서 안전 운항을 촉구하는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을 정도다. 조선소에서 현장 기술자를 부르는 확성기 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린다. 물살을 가르는 예인선의 엔진소리가 천마산과 영도 사이를 서라운드 음향으로 울릴 때면 마치 항구를 주제로 한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 p.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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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도시를 보는 새로운 풍경미학
해운대, 태종대, 달맞이고개, 자갈치 시장, 광안대교. “꽃 피는 동백섬에~”로 시작해 조용필을 영원한 오빠로 만들어준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 부산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부산은 그저 큰 도시라고 하기보다는 ‘항구도시’라고 해야만 할 것 같고, 사람과 컨테이너와 크레인, 방파제 등이 뒤엉켜 소란스럽고 혼잡하기만 한 것 같다. 부산은 절대 추하거나 잡연한 도시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을 쓴 경관공학자 강영조 교수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고 일본 유학시절 몇 년을 빼고는 부산을 떠나 살아 본 적이 없는 원조 부산 토박이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의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힘껏 만든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아름답다고 말한다. 부산의 이 잡연한 모습도 우리가 만든 것이라면 결코 추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공업화시대에 이상으로 삼았던 고전적인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그에 걸맞은 새로운 풍경미학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공업사회의 여러 산물들이 얽혀 마치 공업적 풍경의 전시장과 같은 부산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좋은 풍경은 무엇인가 혹시 고즈넉한 들녘이나 산에 둘러싸인 호수를 그린 전형적인 풍경화 속 이미지? 앞에는 내가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는 천혜의 자연 속에 자리한 OO 고택?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풍경을 동경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강영조 교수는 “전원을 아름답다고 하는 고전적 풍경관은 농업 환경의 반대편에 있는 도시민이 만들어냈다”(8쪽에서)고 하면서 공업사회를 지나 정보화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 눈앞에 고전적인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따라서 이에 걸맞은 새로운 풍경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산자락을 가로막고 있는 고층 주거지는 산 위에 올라야만 볼 수 있는 내려다보는 풍경(부감경)을 손쉽게 가질 수 있게 해주었고 도시의 흉물로 치부되곤 하는 고가도로는 지면과는 다른 시점을 우리에게 준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부산 풍경 읽기 강영조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분야인 경관공학적 측면에서 도시를 들여다보고 있다. “경관공학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풍경을 논리적인 지표로 해석하고 이를 설계 작업에 제공하는 학문이다.”(59쪽에서) 경관공학적으로 좋은 풍경은 형태적으로 보기에 좋고 그것이 주위 풍경과 잘 어우러지면서 보기 좋은 위치에 있어서 눈에 잘 보일 때 형성된다고 한다. 경관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고가도로는 부산의 풍경을 편집하는 길이 될 수 있고, 터널은 도시의 변환장치가 될 수 있으며 광안대교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마찬가지로 항구를 가득 메운 갠트리 크레인과 컨테이너들은 현대도시의 새로운 풍경관이 될 수 있는 테크노스케이프의 전시장이 되고, 알록달록한 집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어 복잡해 보이기만 하는 산복도로는 항구 조망의 특등석이 된다. 이밖에도 근대 교량기술자의 경연장이었던 영도다리, 대한제국의 꿈을 담은 성지곡 댐, 일제시기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멎은 외양포도 부산의 풍경에 한몫을 한다. 일출은 동해에서 보는 것이 제 맛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강영조 교수의 생각이다. 동지에 해는 거의 동남쪽에서 뜨는데 부산이 바로 우리나라의 동남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겨울에 부산에서 보는 일출은 그 어느 곳과 비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산 토박이 저자와 사진작가의 만남 글을 쓴 강영조 교수와 사진을 찍은 이희섭 작가의 만남도 우리가 새롭게 접한 부산 풍경만큼이나 눈여겨볼만하다. 강영조 교수는 우연히 알게 된 이희섭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뻔뻔하게 자연을 점령한 채 서있는” 교량 사진을 보고 먼저 연락을 한다. 그 사진에서 “뻔뻔함”보다는 새로운 풍경관에 걸맞은 좋은 이미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일학년 이후로 쭉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을 꼼꼼히 담아보지 못했다는 이희섭 작가 역시 “부산 풍경을 제대로 담아보자”는 강영조 교수의 제안에 원고도 보지 않고 함께 작업할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는 강영조 교수의 원고를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글이 전달하는 대로 사진을 찍은 것 같아 보이면서도 사진 자체가 새로운 풍경을 얘기해주는 또 다른 원고를 완성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이렇게 하나의 시선을 가진다는 것은 흔치 않다. 아마도 부산에는 지금껏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어떤 풍경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이 어떤 풍경이 이 책에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