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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크리세이스 테르시테스 헬레네 판다로스, 아이네이아스 유모 네스토르 아킬레우스 디오메데스, 오딧세우스 파트로클로스 사르페돈, 텔라몬의 아이아스, 헥토르 포이닉스 안틸로코스 아가멤논 강 안드로마케 프리아모스 데모도코스 후기:제2의 아름다움, 전쟁에 관한 사설 |
Alessandro Barr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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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를 매혹시킨 21개의 모놀로그, 일리아스
2004년 가을, 이탈리아에서 차를 타고 귀가하던 사람들은 차마 차에서 내리지 못해 주차장을 서성여야 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서 귀를 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이 이탈리아 전역에서 일어났다. 이런저런 이유로 집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라디오의 볼륨을 끌어올렸다. 같은 시기, 이 텍스트가 낭독되던 낭독회장은 10만여 명의 유료관객들로 북적거렸다. 특별한 인기스타도, 요란스런 비주얼도 없는 낭독회와 라디오 방송에 이토록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비교적 드문 일일 것이다. 비록 낭독하는 작품이 서양 문학의 고전이며, 각색한 작가가 알레산드로 바리코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원작의 제목을 말하면 조금 더 놀라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 제목은 누구나 알고 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트로이 전쟁을 다룬 그 태곳적의 대 서사시이다. 일리아스, 3000년을 뛰어넘은 폭력의 위대한 대 서사 “나는 태고의 야만적인 시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리아스」를 각색하며 작가가 내비치는 속내는 단호하기까지 하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시대는 그저 마음 편하게 ??일리아스??를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리고 「일리아스」를 대중 앞에서 낭독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니다. 다시 작가의 말을 빌리면 ‘대단히 미묘하면서 충격적인 유형’의 시대, 전쟁과 일상적 폭력이 공존하는 바로 이 시대에는 ‘아주 사소한 일들도 특별한 의미를 띄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초등생 살인사건이나, 시위에 관한 폭력, 비폭력 논쟁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테러, 아니 휴전이라는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는 우리의 거창한 상황, 나아가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늘 손쉽게 폭력에 굴복하는 인간 본성에 관한 이런저런 성찰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저자가 보기에 「일리아스」는 전쟁 이야기, 그것도 전쟁하는 인류를 칭송하기 위해 지어진 전쟁의 기념비, 그 중에서도 세월을 뛰어넘는 걸작이다. 일리아스 속에는 뛰어난 전사, 고귀한 죽음, 훌륭한 무기에 대한 찬사가 가득하다. 사실 「일리아스」를 각색하며 저자가 떠올린 의문 역시 그와 관련된 것이었다. 왜 우리는 전쟁 이야기에 열광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 전쟁 이야기에 몰두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각색을 위해 텍스트를 꼼꼼히 검토하는 동안 저자는 이 전쟁 이야기 속에 그리스인들이 숨겨놓은, 아니 그리스인이 예전에 직관으로 알아차리고 소중히 간수해두었지만 끝내 실현시킬 수 없었던 그 무엇을 발견해낸다. 「일리아스」라는 전쟁의 서사 속에 감춰져 있던 그것, 그것은 평화를 바라는 어떤 문명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그리스인의 직관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의무감까지 느끼며 각색해낸 작품이 이 작품, 『호메로스, 일리아스』이다. 그리고 저자가 바라는 것은 폭력과 전쟁으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할 수 있는 또다른 아름다움, 그것이다. 신이 사라진 인간의 서사 그렇다면 이런 「일리아스」를 우리 앞에 다시 제시하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가 바란 것은 날것 그대로의 「일리아스」이다. 그러나 「일리아스」는 현대의 관중들이 편안히 앉아서 듣기엔 지나치게 긴 분량이다. 문체 역시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힘들다. 사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일리아스」의 각색을 시도하지만, 그저 그런 축약본에 머물고 마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런 난점을 바리코는 이야기 전체를 1인칭 시점을 구사하는 스물 한 개의 모놀로그로 나누는 것으로 재치 있게 해결해낸다. 그 결과 원본의 이야기를 훼손하지 않으며, 태곳적의 전쟁 이야기가 우리 곁으로 자연스레 날아든다. 줄거리뿐이던 이야기가 등장하는 인물의 시선을 타고 생생하게 제시된다. 그리고…… 바리코의 「일리아스」에는 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이 말은 틀린 말일 것이다. 사실 바리코의 「일리아스」에는 신이 등장한다. 다만, 이야기 속의 인물이 신을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신은 늙은 현자 네스토르의 모습으로, 헬레네의 늙은 유모의 모습으로, 때론 전장의 전사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이야기 속의 인물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리고 이는 저자의 말을 빌면 이야기의 관점에서 무척이나 효과적인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원본에 조금이지만 자신의 해석을 더했다. 본문 중에서 조금 흐리고 기울어진 글씨로 표시된 부분이다. 이런 부분은 밋밋하던 「일리아스」의 인물에 분명한 성격을 부여하여, 멀고 먼 과거의 인물들을 주변의 인물처럼 생생하게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일리아스」의 숨겨진 부분, 그리스인들이 행간에 숨겨 놓았던 「일리아스」 속의 숨은 의미를 발견해내게 된다. 책장을 넘겨보자, 그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 시대의 영웅들을, 복잡한 수사와 신성을 벗고 이제 우리 곁에 다가와 친숙해진 영웅들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