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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머리말 조선 말기 화단의 방랑자 가장 19세기적인 화가 명성과 신화 화가와 환쟁이 제1장 출생-유배지에서 태어난 화가 진도에서 태어나다 입도조 허대 용모와 성품 이름의 변화 과정 제2장 입신-화가의 길에 들어서다 대선사 초의 윤종민과 공재화첩 꿈같은 인연의 시작 - 조선 말기 남종화의 의미 - 허련의 산수화 제3장 추사-당대 최고의 인물을 스승으로 모시다 추사 문하의 증삼 서화 수업 김정희의 제주 유배 제주에서의 그림 완당선생해천일립상 신관호와 권돈인 제4장 몽연-꿈같은 인연의 연속 외로운 청년군주 헌종 용상 앞에서 그림을 그리다 예림갑을록 정학연과 정학유 변화하는 서울 - 서울의 서화시장 제5장 화업-예술의 정점에 오르다 운림산방 선면산수도 김흥근과 삼계산장 소치실록 호로첩 묵모란 허모란 지두화와 괴석 큰 미산, 작은 미산 제6장 전락-황혼의 비애 강남봉이구년 완당탁묵 흥선대원군 민영익 한묵청연과 운림묵연 금강산도와 노치묵존 부초 맺음말-예향의 원조 허련 회화의 의미 미산 없이 의재·남농 없다 - 운림산방의 빛과 그림자 부록 허련 가계도 허련 연보 도판목록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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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남종화의 마지막 계승자, 소치 허련의 삶과 예술
추사 김정희가 “압록강 동쪽에는 이만 한 그림이 없다”〔鴨水以東 無此作矣〕고 극찬했던 애제자 소치 허련(1808~1893). 궁벽한 유배지 진도에서 태어난 허련은 당대 최고의 학승 초의선사, 역시 당대 최고의 서화가로 불린 추사 김정희를 스승으로 모시며 이름난 화가로 입신했다. 19세기 화단을 부초처럼 주유했던 허련이 교유한 인물들은 당대 최고의 명망가부터 지방 유지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었다. 흥선대원군, 고위 관료 권돈인, 무인 출신 신관호, 당대 최고의 세도가였던 김흥근, 난초 그림으로 유명한 민영익 등 당대 최고의 명망가뿐 아니라, 헌종을 배알해 임금이 건넨 붓과 벼루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임금이 지방 출신의 한미한 화가를 이처럼 가까이 한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기에, 당시 허련의 명성이 얼마나 드높았던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허련이 이처럼 명사들과의 교유에 집착한 것은 문화적 소외 의식과 신분 상승에의 갈망 때문이었다. 지방의 몰락 양반가 출신이라는 신분에 열등감을 느꼈던 허련은 평생 중앙 문화계로부터 인정받기 원했으며, 이를 위해 명사들과의 교유 내역을 세세히 기록했다. 허련이 남긴 자서전인 『몽연록-소치실록』과 『속연록-소치실록』은 이러한 기록의 결정체이다. 이 책은 보기 드문 전통시대 화가의 자서전으로, 심지어 임금이 수라상을 드는 장면까지도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당시 조선 사회와 문화계의 단면을 생생히 보여준다. 화가이면서도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치밀하게 기록한 허련은 ‘19세기 조선 화단의 증언자’라 부를 만하다. 비록 말년에는 지방을 떠도는 유랑화가의 처지로 전락했으나, 그의 산수화와 묵모란은 여전히 큰 인기를 누렸다. 추사 김정희에게 전수받은 남종화에 평생을 매진했던 허련은 스승을 극진히 모신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정희가 9년간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3번이나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 도합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김정희를 모실 정도였다. 반면 가족에겐 소홀해 오랫동안 집에 제대로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고, 본부인을 두고도 이중결혼을 하는가 하면, 무능해 보이는 넷째 아들을 머슴처럼 부리다 뒤늦게 그림 소질이 발견되자 태도를 돌변하는 등 편벽된 성품을 보이기도 했다. 김정희가 황공망과 예찬의 화풍으로 대변되는 중국 남종화를 모범으로 삼아 조선의 진경산수화를 비판하자, 허련은 스승의 회화관을 받들어 문기 어린 남종화에 일생을 바쳤고, 이를 고향인 호남 지방에 전파했다. 때문에 그가 고향 진도에 건축한 운림산방은 오늘날 호남 남종화의 성지로 불린다. 허련이 거처했던 화실 이름에서 기인한 운림산방의 화맥은 넷째 아들 미산 허형(1862~1938)을 시작으로 손자인 남농 허건(1908~1987), 족손인 의재 허백련(1891~1977) 등 5대에 걸쳐 이어졌으며, 이들이 중심을 이룬 호남화파는 한국 근?현대 전통회화사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책은 19세기 조선 남종화의 화맥이 오늘날의 호남 화단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