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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놀 지는 마을
양장/2008 청출협 추천도서, 양장
바움 200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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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유모토 카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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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zumi Yumoto,ゆもと かずみ,湯本 香樹實

도쿄음악대학 작곡과 졸업. 대학 은사의 권유로 오페라 대본을 쓰기 시작하여, 그 후 라디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였다. 소설 데뷔작인 『여름이 준 선물』로 일본 아동문학자협회 신인상, 아동문예 신인상을 수상했다.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한 이 책은 세계 1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미국에서는 배첼더 상, 보스턴 글로브 혼 북 상을 수상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포플러의 가을』 『봄의 오르간』 『여우의 스케이트』등이 있다.
역자 : 이선희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일본어교육과에서 수학했다. 부산대학교 외국어학당 한국어 강사를 거쳐 삼성물산, 숭실대학교 등에서 일본어를 강의했다. 현재 SBS 아카데미 일본어 영상번역 과정 강사로 있으며, 외화 및 출판 번역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주요 소설에는 『천국까지 100마일』『못생긴 꽃』『흑소소설』『독소소설』『괴소소설』『방황하는 칼날』『산타 아줌마』『비밀』『변신』『검은 집』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7월 06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57쪽 | 288g | 112*152*20mm
ISBN13
9788958830597

책 속으로

어머니는 한밤중에 손톱을 깎았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짱구영감의 옆에서 천천히 또각, 또각……. 그것도 최대한 큰소리로. 몸을 구부리거나 혹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또각, 또각……. 이불 위에 엎드려서 팔꿈치를 세우고 깎는 일도 있었다. 때로는 손톱만 깎기도 하고, 때로는 발톱까지 깎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가 똑같이 손톱을 깎으려고 하면 커다란 눈을 치켜뜨고 이렇게 소리쳤다.
“한밤중에 손톱을 깎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임종이 뭐야?”
“그것도 몰라? 죽음 말이야, 죽음. 드라마에서 의사가 ‘임종하셨습니다.’라고 말하잖아.”
다음 순간, 나는 무서운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손톱깎이를 다다미 위로 떨어뜨렸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무 일 없는 듯 그 손톱깎이를 주워 들고 별로 자라지 않은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대낮처럼 밝은 형광등 아래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짱구영감의 코앞에서. “고생하면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고, 편하면 손톱이 빨리 자란단 말은 거짓말이군.”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짱구영감은 어떤 심정으로 그 소리를 들었을까? 아무리 졸려도 결코 잠들 수 없게 만드는, 항상 타이밍이 어긋나는 그 소리를…….
_ 7~8쪽 중에서

짱구영감이 나타나고 며칠 후, 어머니는 도쿄(東京)의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길 어떻게 알았을까? ……응, 걱정하지 마. 난 엄마처럼 뜯기지 않을 테니까.”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석에 앉아 있던 짱구영감의 몸이 움찔거렸다. 어머니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노려보자, 짱구영감은 한쪽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채 헐떡이듯 물었다.
“뜯기다니, 그게 애비한테 할 소리냐?”
그렇게 말하는 동안 짱구영감의 몸은 계속 들썩거렸다.
“사실이잖아요.”
“너도 그 뺀질이 녀석한테…….”
어머니가 한숨을 토해내며 재빨리 짱구영감의 말을 가로막았다.
“미안하지만 그땐 뜯길 만한 돈이 없었어요. 이봐요,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죠?”
그제야 겨우 짱구영감의 들썩이던 몸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안 웃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불그죽죽한 얼굴을 들었지만 감겨진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_ 14~15쪽 중에서

짱구영감은 나에게 담배를 사오라고 할 때 복대 안에 몰래 감춰둔 오징어 색 쌈지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주었다. 50엔짜리 피스를 사오라고 하면서 “잔돈은 너 가져라.”라고 거만하게 말하며 50엔짜리 동전을 주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몇 번뿐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피스 한 갑 사와라.”라고 말한 후, 굵은 눈썹 밑의 강렬한 눈에 한층 힘을 주며 쌈지주머니를 꺼내기 기다리는 나를 노려보았다.
“뭐야?”
“……돈은요?”
그러면 짱구영감은 바다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참 쓸쓸한 녀석이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인디언 저금통에서 잔돈을 꺼내 담배를 사러 달려갔다. 짱구영감의 그 한 마디는 마법지팡이였다. 그때까지 나를 ‘○○한 녀석’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말은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쓸쓸한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는 짱구영감이 차차 가르쳐주리라.
_ 26~27쪽 중에서

“짱구영감이 초밥집에서, 경주마 목장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지…….”
“경주마 목장이요……? 정말이에요?”
“물론 아무도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지.”
삼촌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어머니의 유영遺影을 힐끔 쳐다보고 나서 “누나 말고는 말이야.”라고 덧붙였다.
짱구영감이 다시 집을 나간 이후, 삼촌은 성홍열로 인해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다. 그때 어머니가 삼촌의 베개맡에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곧 짱구영감이 좋은 말들을 이끌고 올 테니까 여기서 죽어서는 안 된다고.
“누나는 내 베개맡에서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속삭였지. 노부아키, 조금만 참아. 조금만 참으면 우린 목장 주인이 될 거야, 라고……. 그건 나를 격려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어. 누나는 목장 주인의 딸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손톱만큼도 의심하지 않았지. 난 그때 생각했어. 여자는 정말 무섭다고. 딸이 저렇게까지 진심으로 믿는데 짱구영감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을까, 라고 말이야.”
_ 49~50쪽 중에서

차분히 하나씩 물어보자 짱구영감이 입을 열었다. 우선 오늘 먼동이 트기 전에 집을 나섰다고 했다. 그리고 어두운 길을 걷고 또 걸어서 아침에 시멘트 공장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짱구영감은 그 마을의 모래펄에서 피조개를 캔 다음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 낮잠을 자고, 밀물이 밀려올 무렵에 다시 걸어서 집에 온 것이다. 시멘트 공장이 있는 마을까지는 전차를 타고도 3, 40분은 족히 걸린다. 더구나 집에 올 때는 무거운 양동이를 두 개나 들고 있지 않았던가. 짱구영감은 단지 다리가 튼튼한 것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를 가진 집념의 투사인 것이다.
선명한 오렌지색 조갯살을 입에 넣은 순간, 입 안에 바다의 맛이 퍼져나갔다. 잠잘 시간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나와 어머니는 젓가락을 계속 움직였다.
“그런데…… 왜 전차를 안 탔어요?”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짱구영감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전차비가 없었겠지, 뭐.”
어머니는 이 말을 내뱉고는, 최근의 식욕부진은 어디로 사라졌냐고 말하고 싶을 만큼 입을 크게 벌리고 볼이 미어지도록 조갯살을 먹었다.
“우아! 맛있다!”
_ 103~104쪽 중에서

나는 창가의 스팀 위에 발을 올리고, 손으로 조개껍데기를 만지작거리며 밖을 내다보았다. 겨울의 새하얀 하늘 밑에서 나뭇가지가 혈관처럼 뻗어 있다. 피조개가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다니……. 짱구영감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태어나지 못한 내 동생보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입은 육체의 상처다……. 짱구영감의 그런 마음을 새삼스레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딸을 위로하는 방법치고는 조금 독특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 조부인 짱구영감은 이상한 사람이다. 그렇게 먼 곳까지 타박타박 걸어가서 모래펄의 강렬한 햇살 밑에서 모자도 쓰지 않고 오직 조개를 캐고 또 캐고……. 그리고 결국 무거운 양동이 두 개를 기다란 막대기 끝에 매달아 어깨에 메고 온 것이다. 누구의 눈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늙고 지친 노인이……, 실제로도 육체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는데.
돌연 눈동자 안쪽이 뜨거워져서 나는 손가락 끝으로 미간을 꼭 잡았다. 아마 어머니는 알고 있었으리라. 그것이 짱구영감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_ 109~110쪽 중에서

출판사 리뷰

짱구영감과 어머니, 그리고 나의 이야기

1970년 기타큐슈의 K마을, 어머니와 주인공 가즈시가 살고 있는 집에 짱구영감이 나타났다. 20여 년 전 도쿄로 떠난 후 곤궁한 가족을 돌보지 않고 제멋대로 세상을 떠돌아다며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해온 짱구영감이 나타난 것이다. 짱구영감은 이 집에 온 후 깨어 있을 때나 잠을 잘 때나 방 안 한구석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런 짱구영감보다 이상한 것은 평소 그에 대해 좋지 않은 말만 늘어놓던 어머니의 이중적인 태도다. 청소기로 짱구영감을 툭툭 치거나 화장실 가는 척하며 짱구영감의 발을 밟기도 하지만, 입맛이 없다는 짱구영감을 위해 좋아하는 반찬을 늘어놓기도 하고 자고 있는 짱구영감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코끝을 발갛게 물들인 채…….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 서로에게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어머니는 한밤중에 짱구영감과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소리 죽여 울음을 터뜨린다. 뜨거운 여름 주말 내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앓던 어머니는 계속 안색이 좋지 않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아침에 짱구영감이 사라지는 일이 일어난다. 하루 종일 보이지 않던 짱구영감이 어두워진 후에야 비를 맞으며 피조개가 가득 담긴 양동이 두 개를 들고 집으로 들어선다. 세 사람은 볼이 미어지도록 피조개 회를 먹고 또 먹는다. 몇 시간을 걷고 또 걸어 모래펄에서 캐온 피조개, 그것은 아기를 중절한 어머니의 약해진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짱구영감만의 독특한 사랑법이었다.
그 후 짱구영감은 나날이 쇠약해져 병원에 입원하지만 수술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새해를 맞는다. 입춘이 지나 의식이 없는 상태로 매일 피를 쏟아내던 짱구영감이 마지막 날을 맞이한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마지막 남은 빛마저 잃어버린 짱구영감에게 어머니는 조용히 말을 건넨다. “오랫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유모토 가즈미 ‘가족’의 사랑을 이야기하다!

전쟁과 가난으로 가족을 떠나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었던 짱구영감, 떠도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늘 불안하고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 부모의 이혼으로 일곱 살 이후 도망치듯 어머니와 함께 표표히 떠돌아야 했던 주인공인 나. 가슴에 깊이 패인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던 세 사람이 세 평짜리 좁은 방에서 함께 살게 된 일 년 남짓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 함께 생활하지만, 이들 사이에서는 상냥한 말이나 따뜻한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들 사이의 좀처럼 메워질 것 같지 않던 깊은 골이 서서히 메워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따뜻한 사랑으로. 그들은 어느 한 사람 말로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에게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몹시 낯선 일이다. 그들은 그저 문득문득 그것이 사랑의 표현임을 자신도 모른 채 행동으로 마음을 드러낼 뿐이다.
‘한밤중에 손톱을 깎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라고 말하며 한밤중에 무서운 표정으로 손톱을 깎던 어머니는 어느 순간 아픈 짱구영감을 위해 매일 밤 바지락 된장국을 끓이고, 갑작스럽게 들이닥쳐 뻔뻔한 얼굴로 “그게 애비한테 할 소리냐?” 하고 투덜거리며 좁디좁은 방 안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은 짱구영감은 몸이 상한 딸을 위해 멀리 떨어진 모래펄까지 하루 종일 걷고 걸어 피조개를 캐오고, 발등을 가로지르는 상처자국이나 온몸을 뒤덮은 문신 때문에 마음 편히 짱구영감을 대할 수 없던 주인공은 어느새 어머니 몰래 자신의 용돈을 털어 짱구영감에게 담배를 사다준다.
이렇게 그들 각자의 마음속에 있던 미움과 미안함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을 부대끼며 함께 사는 동안 서서히 변화되고 치유된다. 그리고 마침내 여기저기로 떠돌던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어머니와 가즈시는 짱구영감을 중심으로 안정을 되찾아 절망에서 빠져나갈 힘을 얻고, 짱구영감은 보다 편한 마음으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게 된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미움과 증오의 감정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치유해가는 과정을 능숙하게 그리고 있는 『저녁놀 지는 마을』. 독자는 이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세 사람의 감정의 변화를 따라가며 자신의 마음 속 상처가 치유되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저물어가는 짱구영감의 삶을 배경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어머니와 가즈시의 모습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이 선물하는 희망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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