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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a Okja K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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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아메리칸 북어워드(American Book Award)’를 수상했으며 '로스엔젤레스 타임즈'에 그해의 최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던 『종군위안부Comfort Woman』라는 소설의 한국계 미국인 작가 노라 옥자 켈러의 두 번째 작품인 『여우소녀』가 출간됐다. 한국계미국인 여성이 미국에서 영어로 한국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다른 언어로 전하는 우리의 현대사 이야기”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작가는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치부되는 디아스포라적 존재로 전직 위안부, 사생아, 흑인 혼혈아가 매춘으로 유입되는 과정을 공감 있게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1960~70년대 한국의 미군 기지촌을 배경으로 자란 두 소녀 현진과 숙이의 여성으로의 성장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얼굴에 검은 반점을 갖고 태어난 가게 집 딸 현진과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흑인 혼혈 소녀 숙이는 아이들의 놀림에 굴하지 않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절친한 친구로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숙이 엄마가 성병진료소에서 양성판정을 받아 다른 치삔소로 수용되고 몇 날을 굶던 숙이가 엄마를 찾아온 미군에게 몸을 팔기 시작하면서 참혹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숙이를 말리기 위해 숙이와 미군의 아파트로 찾아간 현진은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와 숙이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출생의 비밀을 듣고 충격에 휩싸여 아버지에게 대들다 엄마에게 쫓겨난다. 오갈 데가 없어진 현진은 학교 친구인 로베토의 도움을 받아 천막에 거주하게 되지만, 현진은 그곳에서 미군 세 명과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매춘을 시작한다. 하와이의 한 인권집회에서 일본군 위안부였던 황금주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첫 작품 『종군위안부』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성노예로서의 삶을 가슴에 묻고 침묵 속에 살아가는 어머니와, 그녀가 죽고 나서야 그녀의 삶을 이해하는 혼혈인 딸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모두가 외면해왔던 아픈 역사를 정면으로 다루어 미국 내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 그 후속편 격인 『여우소녀』는 전쟁의 피해자인 또 다른 어머니들과 그 딸들에 관한 이야기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군 위안부로, 한국전쟁 후에는 미군 기지촌의 성매매 여성으로 살아가는 어머니와 살아남기 위해 어머니와 똑같은 삶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다음 세대 아이들의 모습을 전한다. 혼혈, 사생아, 그리고 창녀의 딸. 살아남기 위해 성매매를 선택한 미군 기지촌 아이들의 이야기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전쟁의 피해자였지만, 잊혀졌던 여성들인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전 세대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역사 속에서 외면돼왔던 기지촌 여성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들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이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 여성들의 시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음을 발견했고, “기존 자료들에서는 기지촌의 아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종군위안부 문제와 같이 이어지는 침묵과 외면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작가의 역할은 전에 만나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타인들에 대해 공감하거나 통찰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켈러는 기지촌 여성들과 그 자식들의 생존을 위한 사투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낙인을 찍지 않는다. 그저 그곳에서 살았던 그네들의 고단한 삶을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한 필치뾔 묘사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하기’는 주인공들의 ‘한풀이’이면서, 이들을 감싸 안아야 하는 독자들, 우리 모두의 ‘한풀이’이기도 하다. “이미 피 속에 흐르는 걸. 모든 사람의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 결정되어 있다고요.” 피는 못 속인다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주인공 현진의 어머니는 기지촌 사람들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편견을 보여준다. 얼굴에 큰 반점을 갖고 태어난 현진, 미군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는 덕희의 딸인 혼혈아 숙희, 그리고 역시 혼혈아로 태어나 기지촌에서 돈이 될 만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하는 로베토, 이 세 아이들은 끊임없이 ‘혼혈, 사생아, 창녀의 딸’로 낙인찍혀 기지촌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은 클럽에서 남자를 받거나, 손님을 끌어오는 호객행위뿐이다. 그들은 결코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도 같은 굴레를 쓰게 된다. 그 암울한 현실 속에서 꿈꿀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신의 남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우는 일, 좋은 미군을 만나서 결혼하는 일, 혹은 돈을 더 많이 모아서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떠나는 일이다. 끔찍한 현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희망, 기지촌 외의 다른 현실을 꿈꾸는 상상력도 잃고 만 그들의 팍팍한 삶은 그곳, 기지촌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의 끔찍한 현실이다. “이건 죽은 소녀의 가죽을 쓰고 다니는 여우의 이야기와 같아. 어쨌든 생활 속에서 우리는 여우소녀처럼 되어야 해.” 주인공 숙이의 어머니인 덕희는 2차대전때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것으로 암시되고 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곧 한국전쟁이 일어나 남쪽으로 내려와야 했고,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이웃집의 씨받이로, 기지촌의 성매매 여성으로 살아야 했다. 10살된 딸아이 숙이를 성매매에 끌어들여 아이를 보호하는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방기해야 했고, 덕희는 결국 가장 낮은 곳, 성매매촌의 유리방에서 잊혀져간다. 소녀의 가죽을 쓰고 다니는 여우처럼 그녀는 화장으로 자신을 감추고 클럽에 나간다.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여우소녀’ 이야기는 그 이야기의 화자에 따라 덕희이기도 하고 숙이이기도 하고 현진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활 중 하와이에서 빠를 운영하는 마담의 도움으로 현진과 숙이는 미국으로 향하게 되지만 현진은 숙이의 아기를 맡아 기르다 결국 빠에서도 쫓겨나게 된다. 곤경에 처한 현진을 떠밀며 숙이는 다시 한 번 여우소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우는 잘 살고 있었지, 숲이라는 데서. 당신네는 그걸 어떻게 부르지? 나무와 풀과 야생동물이 많이 있는 곳. 하지만 이 작은 여우는 행복하지 않았어. 암 여우는 질투가 났어, 마을에 사는 인간이 부러웠지. 암 여우는 내내 울었어. 어린 여우는 인간으로 변장하자고 결심했어. 그래서 인간 소녀처럼 변장하고는 누군가가 그녀를 발견할 때까지 길가에 앉아 있었어. 한 농부가 그녀를 발견하여 집으로 데려가서 딸처럼 그녀를 사랑했어. 여우소녀는 사람처럼 살려고 노력했지만 절대 드러낼 수 없었던 비밀을 가지고 있었어. 육식성 허기. 어느 날 밤,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그녀는 농부의 돼지와 닭을 잡아먹었는데도 배가 고팠어. 노새까지 먹었어. 그런데도 배가 고파 농부를 먹어야만 했어.” 그녀가 말하는 여우소녀 이야기에서 여우는 참을 수 없는 허기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심지어 자신을 구해준 농부까지 잡아먹어야 했다. 피폐한 현실에 지쳐 자신의 아이까지 방기하고, 탐욕스럽게 변한 숙이는 그렇게 현진을 버리고 미국인을 따라간다. “…로베토는 미국을 자신의 꿈이 당연히 실현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메리의 랜드, 혹은 랜드 오브 메리를 자기 아버지의 미국인 아내 이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의 아버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로베토는 기지촌의 또 다른 혼혈아다. 그는 기지촌 내에서 성매매 여성을 관리하고, 손님을 데려오는 속칭 삐끼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돈을 모으는 그는 더 많은 돈을 모아 자신의 아버지가 있는 나라, 미국으로 가뼉고 한다. 갈 곳 없던 현진을 돌보아 주지만, 그녀를 업소로 보내 몸을 팔게 하고 자신은 돈을 챙기며,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갖자 몰래 유산시켜 버리기도 한다. 그 역시 또 한 마리의 여우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면서, 기지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엄마 얼굴은 지도야, 엄마. … 엄마 얼굴은 세계야!” 주인공들은 이해와 소통의 과정이 없다. 그들은 모두 저항할 수 없는 현실에 지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을 무력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현진은 숙이의 아이 뮤뮤를 위해 성매매를 다시 시작하기도 했고, 뮤뮤를 지키기 위해 아메리카 타운의 클럽에서 쫓겨나서도 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한국을 떠나올 때 아버지가 전해준 삼촌의 주소지를 기억해 하와이 어느 농장으로 숨어든 현진은 여전히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아이에게 자신의 반점을 세계 지도라고 말해주며 딸과 함께 새로운 무대를 찾고 생을 견뎌 나가는 노력을 계속한다. 그리고 그 지도 안에 새겨져 있는 숙이, 로베토, 덕희 그리고 아버지의 흔적을 그녀는 잊지 않을 것이다. 생명과 가족에 대한 그녀의 애착은 ‘잊지 않는 것’ 그리고 딸에게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세대를 잇고 가족을 만드는 끈질긴 노력으로 작가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