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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ARA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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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보는 그림의 미술사를 위하여
다르게 본다는 것은 다른 것을 본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새로운 미술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도대체 어떤 미술사일까? 멀리서 보는 미술사가 아니라 가까이서 보는 미술사이다. 멀리서 보는 미술사 혹은 통사적, 거시적으로 보는 미술사가 흥미 없다는 뜻은 아니다. 멀리서 보는 거시사는 대단히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어떤 양식들이 왜 연속해서 나타났는지, 그 필연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그 양식들의 결과물은 무엇인지. 가령 회화, 건축, 조각을 모두 아우르는 마니에리스모로 그 정점을 보여줬던 16세기는 통사적 시각에서 대단히 흥미진진한 시대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나타나고 지속적 생명력을 갖는 어떤 양식들은 분명 깊이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역사적 현실 그 자체다. 이런 연구 방법이 통사적, 거시적 미술사이다. 그런 면에서 미술의 사회사 역시 대단히 흥미롭다. 이렇게 멀리서 통사적으로 보는 미술사 안에 또 다른 미술사적 연구 방법이 있다. 그건 철저히 예술적인 맥락이다. 가령 이탈리아에서 그려진 수태고지 그림들을 통해 원근법 문제를 제기한 것이 그런 예에 해당한다. 이런 방식도 통사적 미술사에 속한다. 250년이라는 제법 긴 기간 동안 그려진 상당수의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다 다루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는 식의 그림 분석은 상당히 세밀한데 반해 다루는 작품 대상은 종합적이다. 이런 미술사는 작품에 밀착하듯 가까이 접근해서 기술될 수밖에 없다. 개별 작품들의 세부를 꼼꼼히 관찰하고 정밀하게 옮기려는 다니엘 아라스의 노고는 청취자가 귀로 그림을 보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그는 무려 1시간 동안 머물면서 관람 위치를 살짝 변경한 것만으로 라파엘로의 [식스투스의 성모]를 ‘제대로 봤다’고 토로하는가 하면, 샤르댕 그림을 본 순간 공쿠르 형제가 내지른 ‘그림이 일어섰다’는 탄성을 인용하며 머리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감상법을 권한다. [수태고지]에서 성모의 대사를 가린 기둥을 구세주의 육화, 즉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하는 풀이의 경우가 그렇다. 세심한 관찰력으로 ‘가까이에서 보는 그림의 미술사’라는 미술사 방법론을 창안한 저자의 연구 대상은 대부분 근대 이전 작품들에 해당하지만, 마지막 장인 ‘현대미술을 보는 눈’에서 밝혔듯이 동시대 미술??접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림 읽어주는 남자, 다니엘 아라스 지식과 직관이 풍부했던 다니엘 아라스는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지식을 전달하고 납득시켜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일반 학자들과 달리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품의 신비를 포착하며 바라볼 줄 알았다. 이처럼 이론적 지식이 그의 최종 목표는 아니었기에, 그의 해석은 작품의 숨을 죽이거나 빛을 잃게 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하나의 결정적인 미술 이론을 따르지 않으며, 철학, 기호학, 정신분석학 같은 다양한 인접학문들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활용해 그림을 텍스트처럼 읽어낸다. 이러한 방법은 객관적인 미술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화가의 의도가 작품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보통의 독자들과 눈을 맞춘 것이다. ‘서양미술사의 재발견’이라는 거창하다면 거창한 제목을 달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아, 그림은 이렇게 감상하면 되는구나, 작품 감상에 무슨 왕도가 있는 것은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저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화가가 무엇을 그렸는지, 또 화면 속 인물들의 손짓, 눈길, 세부, 색채와 구도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그림과 친해지고 미술사에 다가??첫걸음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럼 이제 다니엘 아라스가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혼신을 다해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줬던 그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