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is Sepulv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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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예전에는 잘 날아다녔단다. 하지만 지금은 날 수가 없구나. 옛날에, 그러니까 너희 달팽이들이 이 들판에 살기 훨씬 전에는 나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지. 너도밤나무, 밤나무, 떡갈나무, 호두나무, 참나무 등등, 셀 수 없을 정도였어. 그때만 해도 모든 나무들이 다 내 집이나 마찬가지였단다. 밤마다 나무들 사이를 자유자재로 날아다녔지. 사라져 버린 나무들에 대한 추억이 쌓이면서 몸이 너무 무거워지는 바람에 이젠 날 수조차 없구나. 보아하니 넌 아직 어린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까지 네가 본 것, 쓴맛이든 단맛이든 네가 여태껏 맛본 것, 그리고 비와 햇빛, 추위와 밤, 그 모든 것들이 너와 함께 움직이다 보니 무거울 수밖에. 그 무게를 다 감당하기는 아직 네가 어리기 때문에 몸이 느린 거란다.」
「이렇게 느려 터져서 뭘 한단 말이에요?」 달팽이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어.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해줄 말이 없구나. 그 대답은 너 스스로 찾아야만 해.」 --- p.20~21 껍질 안은 칠흑처럼 깜깜했어. 그 좁은 공간 속에 몸을 다 밀어 넣다 보니 그의 목과 머리, 그리고 더듬이와 눈이 하나로 뒤엉켜 껍질과 똑같은 모양이 되었지. 하지만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어. 든든한 납매나무와 친구들을 떠난 게 실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목소리 ─ 분명 자기 목소리는 아닌데 ─ 가 그의 귓전에 계속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거야. [달팽이들이 느린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리고 네 이름, 그러니까 너만이 갖는 이름은 너라는 존재를 특별하고 분명하게 만들어 줄 테고. 생각해 봐!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 p.32 「어르신들의 말씀이 맞아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새로운 민들레 나라를 찾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여기서 얼마나 더 가야 되는지도 모르니까요. 더구나 가는 도중에 우리가 어떤 위험에 부딪힐지,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다 같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찾는 새로운 민들레 나라는 앞에 있지, 뒤에 있지는 않다는 점이에요. 어떤 일이 있어도 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저와 함께 가든지, 아니면 우리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든지 알아서 결정하세요.」 말을 마친 반항아는 느릿느릿, 아주 느릿느릿하게 앞으로 나아갔단다. --- p.71 「이젠 모든 게 끝장이로군요. 전 결코 달팽이들을 새로운 민들레 나라로 데려다주지 못할 거예요. 제가 수리부엉이님만큼 아는 것이 많았다면……. 하지만 저는 그저 느린, 그것도 아주 느린 달팽이에 지나지 않는걸요.」 「내가 주변을 관찰하고 뭔가를 파악할 줄 아는 건 타고난 본성이란다. 달팽이 네게도 좋은 점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느리다고 한탄만 하고 있어서야 되겠니? 내가 [반항아]라는 이름의 달팽이를 알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네가 몇 걸음 가다가 뒤에 누가 쫓아오는지 보려고 고개를 돌리는 거북이처럼 느린 덕분 아니겠니. 넌 코앞에 닥친 위험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서 그들을 구하려고 애를 쓰는 용감한 달팽이란다. 그러니 반항아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테니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봐.」 --- p.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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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들은 왜 이렇게 느린 걸까?”
세상에서 제일가는 느림보 달팽이의 방황과 성장 그리고 느림의 가치가 이루어 낸 대장정의 기적! 이 작품의 헌사에서, 세풀베다는 어느 날 정원에 있는 달팽이를 지켜보며 [달팽이는 왜 이렇게 느리게 움직이는 거예요?]라고 묻던 손자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 위해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노라고 밝힌다. 이처럼 손자에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듯 친근한 말투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옛날이야기처럼 쉽게 읽히지만, 그 속에 담긴 성찰과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을 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달팽이의 삶은 그다지 평탄치가 못하다. 평소 남들이 하지 않는 이상한 질문들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달팽이들이 그저 당연한 사실로 여기고 사는 [달팽이들이 그토록 느린] 이유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가 하면, 서로를 그저 [달팽이]라고만 부르는 달팽이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이름]을 애타게 가지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는 이 고민들을 다른 달팽이들에게 계속 털어놓곤 하지만, 쓸데없는 질문으로 성가시게 하지 말라며 차가운 멸시와 조롱을 받을 뿐이다. 결국 외톨이가 된 달팽이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정든 고향 [민들레 나라]를 떠나오게 된다. 홀로 길을 떠난 달팽이는 여행 도중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인간들의 거주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인간들이 아스팔트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동물들이 사는 소중한 터전들을 마구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민들레 나라]의 동료들 역시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하루 빨리 이 위험을 동료들에게 알려서 함께 탈출할 것을 결심하게 되는데……. 달팽이는 과연 무사히 동료들을 구할 수 있을까? 이 막막한 여정에 나선 달팽이가 깨닫게 된 진정한 느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작품은 이처럼 고독한 여정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해 가는 어느 유별난 달팽이의 방황과 성장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그 여정 속에서 달팽이는 느린 덕분에 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듣고, 기억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깨달아 가며, 더 많은 무게들을 짊어지고 가게 된다. 그 무게가 달팽이의 걸음을 더 느리게 만들지만, 그것이 또한 그가 앞을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그 여정을 따라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만남들을 통해, 세풀베다는 자연스레 그가 그 안에 숨겨 놓은 속 깊은 성찰들과 깨달음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간결한 서사 속에 녹아 있는 세풀베다의 삶과 사상 달팽이는 [느림]의 대명사다. 느릴 뿐만 아니라 몸집도 작다. 그렇다 보니 온몸을 움직여 제 몸의 몇 배만큼 걸음을 옮겨도 나아간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달팽이의 여정이 특히나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는 이유는, 그 작은 몸으로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면서도, 누구보다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달팽이의 굳은 의지와 삶의 태도 때문이다.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인간들을 피해 다른 달팽이들을 이끌고 새로운 [민들레 나라]를 찾아 떠나는 여정 속에서, 모두에게 따돌림을 받는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던 달팽이는 어느새 위기로부터 침착하게 동료들을 구해 내는 성숙한 리더로 성장해 간다. 때로는 방황하고, 자신감이 떨어져 위축되고, 자신을 오해하는 동료들 때문에 마음의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방황과 고민의 순간마다 새로운 답을 찾아내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치 성서의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대장정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는 민주화 투사이자 환경 운동가로서 신념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삶을 살았던 세풀베다 자신의 삶과도 겹쳐지며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이 작품의 [달팽이]처럼, 앞선 작품들 속에서도 세풀베다는 그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이름도 없고 눈에 띄지 않지만 공식적인 역사의 뒤편에서 치열하게 이 세상을 움직여 간 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작품을 써왔다. 보이지 않는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천천히, 천천히, 그러므로 반드시 세상을 바꾸어 가는 기적이 되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끈기 있게 자신의 신념을 관철해 간 세풀베다 자신의 삶의 태도와 직결되며, 이에 기반을 둔 그의 작품들이 특유의 투명한 진솔함을 드러내며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동화처럼 쉽고 간결한 서사 속에 세풀베다의 삶과 사상들을 압축적으로 녹여 낸 이야기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달팽이의 긴 여정을 통해, 독자들은 세풀베다가 그의 손자들을 비롯한 다음 세대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소중한 메시지들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