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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서문
1.1933년 여름 ~ 1934년 여름 2.1934년 여름 ~ 1936년 2월 3.1936년 3월 ~ 1937년 10월 4.1937년 11월 ~ 1939년 2월 5.1939년 3월 ~ 1939년 11월 6.1939년 12월 ~ 1941년 5월 7.1941년 6월 ~ 1942년 1월 8.1942년 2월 ~ 1943년 2월 9.1943년 2월 ~ 1943년 여름 10.1943년 여름 ~ 1944년 2월 11.1944년 2월 ~ 1944년 6월 12.1944년 7월 ~ 1945년 1월 13.1945년 1월 ~ 1945년 1월 14.1945년 3월 15.1945년 4월 ~ 5월 편집자 후기 자료 사진 참고 문헌 옮긴이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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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날 상대로 장난칠 수는 없어! 그자의 죽음은 드러나 있거나 숨어 있는 모든 적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야! 나는 케케묵은 보수주의자들의 수장이 아니라고. 난 히틀러야! 우리 당과 국가에는 단 하나의 보스가 있을 뿐이고, 그게 바로 나야!”--- p.22
이사벨라/펠릭스 작전은 1941년 1월이나 2월부터 개시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히틀러는 이 계획을 바로 파기해버리고 스페인의 공식 참전을 허용치 않기로 결심했다. 먼저 소련을 공격하기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었다. (중략) 바르바로사 작전에 따라 러시아를 침공하기로 결정한 다음, 히틀러는 이베리아 반도에 새로운 전쟁터를 만드는 일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스페인을 상대로는 우호적인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였다. --- p.108 독일 군대가 스탈린그라드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은 히틀러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개인 주치의 모렐이 하루걸러 한 번씩 아침식사 후 투여한 각성제가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히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신경성 위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그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링게는 모렐이 처방한 아편을 투여하면서 고통으로 몸을 뒤트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의 신경과민 발작은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갔다. (중략) 그는 화장실의 물탱크, 비누, 면도크림, 치약 등 모든 곳에 독이 들어 있다고 의심했으며, 그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검사하라고 명령했다. 그의 식사를 요리하는 데 사용되는 물 역시 검사를 거쳐야 했다. 히틀러는 손톱을 물어뜯었으며 피가 날 때까지 귀와 목을 긁어댔다. 불면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그는 구할 수 있는 수면제를 모두 복용했다. 그의 침대에는 전기담요와 쿠션이 설치되었다. 호흡하기조차 힘들어 한 그는 침실에 산소탱크를 설치하고 자주 산소를 들이마셨다. --- p.154 “나는 총리공관 정원 벙커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할 거야. 다른 방법은 없어. 우리 시신 위에 벤젠을 붓고 불태워주게. 어떤 상황에서도 내 시신이 러시아 군 수중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만 하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환호를 지르면서 내 시신을 모스크바로 가져가 골동품들과 함께 전시를 할 거야.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돼.” (중략) 히틀러가 덧붙였다. “내 숙소에 있는 물건들도 모두 없애주게.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네.” --- pp.359~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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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난 히틀러에 관한 가장 자세하고 정확한,
스탈린만이 볼 수 있었던 비밀문서! “결국 그의 삶도 이렇게 끝이 났군. 그를 생포하지 못했다니 유감인걸... 히틀러의 시신은 어디 있나?” 스탈린은 히틀러의 죽음에 대한 확신이 절실했다! 마침내 스탈린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히틀러의 삶을 기록한 413페이지짜리 최종 보고서를 손에 쥐게 되었다. 보고서의 제목은 『히틀러 북』. 보고서를 통독한 스탈린은 자신의 개인 문서를 저장해 놓는 ‘총서기 기록보관소’에 『히틀러 북』을 비치했다. 이 보고서는 현재 러시아 대통령의 개인 서고에 보관되어 있으며, 외국인에게는 열람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러시아 군의 전진부대가 몇 백 미터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한 상황에 제국 총리공관 지하 벙커에서 권총 자살했다. 그는 볼셰비키들이 자신을 우리에 가둔 채 ‘붉은 광장’으로 끌고 가 성난 군중들에게 린치당하도록 방치하게 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히틀러가 자살한 후에도 ‘히틀러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은 독재자 히틀러가 자살했다는 보고를 쉽사리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는 히틀러가 도주했으며, 서방 연합군이 비밀리에 그의 망명을 허용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연합군이 히틀러의 도움을 받아 소련을 상대로 전쟁을 계속하리라 믿었다. 히틀러의 자살 후에도, 히틀러의 죽음을 둘러싼 갖가지 해석들은 서로 상충했으며, 히틀러의 시신이 발굴되면서 이러저러한 소문들이 난무하게 되자 스탈린은 더더욱 불안감에 휩싸였다. 결국 그는 ‘내정인민위원회’(NKVD: KGB의 전신)로 하여금 제국 총리공관 지하 벙커에서 벌어진 최후의 순간을 재구성함으로써 히틀러가 분명히 사망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라고 지시했다. NKVD 요원들은 히틀러와 그의 정권에 관해 입수할 수 있는 모든 문서들을 추적 발굴했으며, 전쟁 포로들을 담당하는 부서의 관리들은 수용소를 뒤져 히틀러의 조력자들을 색출해낸 뒤 그들을 끊임없이 심문했다. 그리하여 1946년부터 4년 동안, 히틀러의 전속부관이었던 링게와 귄셰는 히틀러에 관한 정보를 토해내야 했다.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그들은 독재자 히틀러의 삶에 대해, 독일군 간부들과 그의 관계에 대해, 총통 사령부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야만 했다. 심문 기록을 토대로 히틀러에 대한 은밀한 비밀문서가 작성되었다. 2003년 독일 현대사연구소의 마티아스 울이 러시아 문서기록보관소에서 ‘파일’이라고 명명된 413매의 타이핑된 그 비밀문서를 발견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히틀러 북』이 씌어졌다. 『히틀러 북』은 매일같이 히틀러와 함께 생활했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와 가까울 수는 없었던 두 명의 개인 부관(장교)의 진술을 토대로, 소련의 비밀경찰요원들로 구성된 작가집단(히틀러의 전기를 집필하면서 4년이라는 세월을 보낸)에 의해 쓰여 졌다. 『히틀러 북』과 다른 문서들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요소는 이 기록이 작성된 실존적이며 위협적인 상황이다. 링게와 귄셰는 잘못되거나 부정확한 얘기를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음 날 끌려 나가 고문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독방에 수감되어 있었기에 서로 입을 맞추거나 방어 전략을 짤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목숨을 담보로 진실을 공개해야 했던 것이다. 조사관들 역시 수년에 걸쳐 심문하는 동안 기억상의 오류를 제거해야 했으며, 링게와 귄셰로 하여금 자신들의 진술을 거듭해서 검토하도록 만들었다. 일부 사건에 대해서는 링게와 귄셰가 유일한 정보원이었지만, 벙커에서의 생활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다른 수감자들의 협조를 받기도 했다. 『히틀러 북』은 히틀러의 정책 및 전투 지도력과 관련하여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히틀러의 측근들이 평가하는 그의 지도력에 대해 가공되지 않은 진실을 보여준다. 이 문서는 위대한 독일제국 총통으로서의 히틀러와, 잠시 동안이나마 자신의 영도하에 새로운 유럽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리하여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살육전 속으로 자신을 몰아간 한 인간 사이의 불화를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다. 『히틀러 북』 이후 1천 권이 넘는 히틀러의 전기가 발간되었으며, 국가사회주의 체제, 유럽 내 유대인의 학살,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해 1만 건이 넘는 저작물이 발표되었다. 1998년 이안 커쇼가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에 대해 상세한 전기를 발표하면서 히틀러라는 인간에 대한 연구는 잠시 주춤했다. 소련의 전제군주 스탈린에 대한 전기도 다수 발간되었으며, 앨런 불록은 1991년 두 사람의 삶을 비교 분석하기도 했다. 안톤 요하임스탈러는 여러 권의 저술을 통해 아직까지 히틀러의 삶에 대해 자세히 연구할 여지가 많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히틀러 북』만큼 완벽하고 진실하게 히틀러에 대해 기록한 것은 없었다. * 기존에 출간된 히틀러 관련서와 크게 다른 점은, 이 책은 히틀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전속부관(‘몸종’이라 할 만큼 히틀러에 밀착해서 다닌 장교)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된 문서이기 때문에 히틀러의 진솔한, 인간적인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료다. 해서 여타 히틀러 관련서들이 대부분 ‘정사’에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오히려 ‘야사’에 가까운, 그래서 야심가인 동시에 나약한 존재였던 히틀러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1차 자료이다. ** 책 말미에 있는 50장에 이르는 희귀 자료사진과 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