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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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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마주한 그녀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녀였다. 순간 터무니없는 착각에 빠졌지만 분명 루시아나였다. 세월을 망각한 끔찍한 오해였다. 클로스터는 언젠가 작품에서 언급했었다. 여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세월이라고.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재회한다면 그것이 여인에 대한 가장 잔인한 복수가 될 수 있다고. 정말 그랬다.…… 정말 소름 끼치는 것은 내가 알던 예전 그 얼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아득한 과거 속에, 세월의 고랑에 파묻혀 버린 듯했다. 그녀는 절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도 세월의 참혹한 절단 수술로 자신의 매력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아는 듯했다. --- p.36
루시아나는 복도에서 사라져 방 안으로 들어갔다. 2~3분이 흘렀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손목 위까지 올라오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 커다란 책을 몸 앞에 받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비밀 종교의식에서 깨지기 쉬운 유물을 나르는 고귀한 여사제 같았다. 팔 밑엔 네모난 마분지 상자를 끼고 있었다. 그녀가 테이블 위에 책을 내려놓은 다음 상자를 내게 내밀었다. “대학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장갑이에요.” 나의 의아한 시선을 의식한 듯 그녀가 말했다. “페이지마다 클로스터의 지문이 묻어 있고, 그건 제겐 그를 궁지로 몰아세울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지문을 묻히고 싶지 않아요.” --- pp.85~86 커피 한 잔을 부탁하자 그녀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어요. 등을 활처럼 구부리며 목에 손을 갖다 댔는데, 그때 제가 그토록 기다렸던 그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죠. 저는 그녀 바로 곁에 서 있었고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그녀가 신호를 보내는 거라고, 암호가 아직 통하는지 시험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기회였죠. 전 양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려놓고 제 쪽으로 돌려세운 다음 키스하려고 끌어당겼습니다. 하지만 그건 치명적인 실수였죠. --- p.145 “사실 문학에서 종래의 고전적 우연성이 고리타분하긴 하지만, 저는 문학적 관점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 넷이 죽었다면, 저 또한 불안해하며 납득할 만한 다른 이유를 찾으려 들 겁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제 말은, 픽션과 현실을 정말 구별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좋든 싫든 이 소설을 시작한 이래 제게 최대의 난점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헨리 제임스는 ‘픽션은 삶과 경쟁한다’라고 말했고, 그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픽션이 삶이라면, 픽션이 삶을 창조한다면 죽음 또한 창조할 수 있죠. 파울리를 묻고 난 후 전 시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시체는 새 삶을 꽃피울 수는 없어도 죽음을 창조할 수는 있습니다.” --- p.175 “그럼, 당신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클로스터가 단호하면서도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믿어야 한단 말입니다. 좀 다른 이유에서지만. 몇 시간 전, 이곳에 오기 전에 전 바로 그 장면, 요양원에서 일어나는 살인 장면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대충 틀만 잡아놓은 미완성 초고를 두고 나왔죠. 그런데 보시다시피, 다시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방법만 바뀌었을 뿐이죠. 마치 그가 자신의 날인을 찍고 싶어 하는 것처럼, 아니면 절 조롱하려는 것처럼 문체를 수정해서 말입니다. 매번 이런 식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쓰는 것뿐, 전 무조건 써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고 억지로 제 자신을 이해시키려 했습니다. 물론 아주 기묘한 우연의 일치였죠. 너무나 딱 들어맞는. 그러나 구술은……이미 시작됐습니다. 말하기 나름이겠지만 그 소설은 공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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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그녀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루시아나 B. 한때 최고의 작가 클로스터와 작업하던 유능하고 매혹적인 타이피스트, 그녀에게서 생사가 달린 일이니 만나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10년만의 재회, 그러나 한때 눈부신 미모로 마음을 설레게 했던 풋풋한 루시아나는 온데간데없고, 세월의 고랑에 파묻힌 듯 추레하게 망가진 여자 하나가 눈앞에 나와 있다. 나는 루시아나의 변해버린 외모에 충격을 받고, 냉소적으로 축 쳐진 그녀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이야기에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지난 10년 간 그녀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차례차례 목숨을 잃었으며, 그 배후에 천재 소설가 클로스터가 있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다는 나의 반응에 루시아나는 어디선가 책 한 권을 꺼내오고, 손목 위까지 오는 라텍스 장갑을 낀 채 검은 가죽 장정을 펼쳐 보이며 그와 있었던 10년 전 그 사건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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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의 소리 없는 살인,
사건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전 세계 30개국 출간! 2009년 영화화를 앞둔 초대형 베스트셀러! 스페인어권 최고의 젊은 지성 기예르모 마르티네스의 최신 화제작 플라네타상, 만다라체 상 등 스페인어권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남미 문학의 차세대 대표 작가로 손꼽혀온 기예르모 마르티네스의 최신 장편소설. 수리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수학자 출신 소설가답게 지금까지 ≪보르헤스와 수학≫≪옥스퍼드 살인 방정식≫ 등 치밀한 두뇌게임과 논리전개를 필요로 하는 지적인 추리소설을 써온 그가 이번에는 예리한 심리 게임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사악할 정도로 글을 잘 쓰는 천재 작가와 매혹적인 여비서 타이피스트를 둘러싼 10년간의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미국, 영국, 독일, 멕시코 등 전 세계 30개국에 소개, 번역되면서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살인자의 책≫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2009년 전 세계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천재 소설가와 편집증 타이피스트 간의 숨 막히는 심리 게임 순문학과 스릴러 독자들의 감성을 사로잡을 최고의 심리 서스펜스 - 《퍼블리셔스 위클리》 사악한 괴물처럼 흡입력 있는 글을 써온 작가, 작품을 쓸 때마다 은둔하여 여타의 작가들을 당황시키고 위협하는 작가 클로스터는 어느 날 소설이 제대로 풀리지 않자 책상에 앉아서 집필하는 대신 구술로 창작을 하기로 결심한다. 우연히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의 전기를 읽던 도중 어깨 통증에 시달리던 그가 속기사를 고용해 구술로 소설을 썼다는 기록을 읽은 것이다. 그리하여 신문광고를 통해 맞춤법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실력 있는 타이피스트 루시아나 B를 고용하고, 풋풋한 열여덟 살의 그녀와 함께 매일 아침 비밀 암살단원들에 관한 소설을 쓴다. 그녀와의 작업은 순조로웠다. 아내와 딸아이가 있는 클로스터는 루시아나와 냉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고용주로서 본분을 다했고, 그녀 또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이야기를 받아 적으면서 놀랄 만한 창작 속도를 낸다. 하지만 그들의 균형 관계는 우습게도 루시아나가 뻣뻣하게 굳은 목운동을 하면서, 길고 가느다란 목으로 유혹적인 ‘우드득’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깨지고 만다. 호감에서 애정, 질투에서 혐오로 이어진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싸움은 결국 법정다툼을 거쳐 클로스터 딸아이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그로부터 10년간 루시아나 가족들은 연쇄적인 의문사를 당한다. 루시아나는 클로스터가 범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를 살인자로 지목할 만한 근거는 없다. 무엇보다도 동시대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눈코뜰새 없이 바쁜 소설가에게는 그런 일을 사주할 만한 시간이 없어 보인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가 루시아나를 주인공으로 한 추리소설 한 편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어쩐지 그 소설의 다음 행보가 수상하다. 기묘한 우연의 일치인가, 치밀한 완전 범죄인가 확률에 대한, 복수에 대한, 문학에 대한, 인간 감성의 잔인함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 -《인디펜던스》 동전을 열 번 던졌을 때 연속해서 앞면 혹은 뒷면이 서너 번 나올 확률은? 의외로 높다. 그렇다면 10년에 걸쳐 가족 네 사람이 연이어 목숨을 잃을 확률은? 클로스터는 루시아나에게 찾아온 비극은 수년간 그녀에게 계속해서 동전의 뒷면이 나온 경우와 같다고 주장한다. 불행하게도 그건 비극적인 우연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루시아나는 클로스터가 의미심장하게 건넨 구약성서 창세기의 한 구절, “카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를 들먹이며 그가 우연을 가장한 치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항변한다. 루시아나가 연이은 불행으로 미쳐버린 걸까, 아니면 클로스터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영리한 연쇄살인범인 걸까? 기예르모 마르티네스는 전작 ≪옥스퍼드 살인 방정식≫에서 연쇄살인 사건의 플롯 안에 기호와 수학 이론을 적절하게 버무렸던 수학자다운 면모를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우연성과 확률 이론은 10년간의 기이한 죽음들에 그럴 듯한 근거로 작용하고, 작가는 영리한 클로스터의 입을 빌어 세상이 얼마나 기막힌 ‘우연’과 흥미로운 ‘확률’로 가득한지를 설명한다. 그리하여 어느덧 클로스터의 논리에 설득되어갈 무렵,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죽음 앞에서 사건은 우연과 필연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헨리 제임스, 에드거 앨런 포, 카프카 등의 문학 레퍼런스를 풍부하게 결합해, 독자들의 순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복수와 잔혹한 인간 본성의 심리를 예민하게 묘파해낸 이 작품은, 범죄소설의 질을 한 단계 높인 고급 서스펜스라는 찬사와 함께 지금껏 본적 없는 새로운 유형의 심리 추리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