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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천의 말
2. 들어가는 말 3. 멤버를레라 불리던 악동 4. 동굴이 있는 세계 5. 수도원의 학생 6. 정신병원 7. 이분된 생활 8. 보는 즐거움 9. 농부 시인 10. 예술과 조국을 위하여 11. 전쟁 속의 영혼 12. 혼돈 속으로 가는 길 13. 변신 14. 니논과 황야의 이리 15. 가해자와 희생자 16. 암울한 시대 속에서의 유희에 관하여 17. 고질적인 독일병 18. 유리알 유희를 했던 작가의 죽음 19. 저자 후기 20. 옮긴이의 말 21. 헤르만 헤세 연보 22. 참고문헌 23.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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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취리히에서접한 최초의 몇 주간의 체험들에 관해 짧은 글을 하나 썼다. 그 글은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발표되었다. 그것을 보고 아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소식을 전해왔다. 그들 중에는 부인 루트 벵어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유감을 표명했다. 헤세가 너무 염세적인 생각을 표출했고, 좀더 즐거운 것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헤세는 그러한 충고들에 대해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긍정적인 조항'을 따라야 하고, "위생사들이나 낙천가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만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는 자기 삶의 감정이 비록 세상에 대한 구역질, 자살하려는 생각, 요산성 관절염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비록 많은 독자들을 우울하게 만들지라도, 그런 자기 삶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자가 시인이었다. 헤세는 행복한 삶을 권유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신학자 크리스토프 슈렘프의 다음과 같은 말을 따랐다. "사람들이 나에게 '행복하라고' 하는 지긋지긋한 의무를 지우지 않고,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그럭저걹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헤세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집필하고 있었고, 교훈적인 독서물과는 거리가 멀었던 자신의 책에 관해 사람들이 얼마나 낯설어할 것인지 상상할수 있었다. 그 글은 그가 취리히에서 잠 못 이루는 시간에 썼던 시들을 소설 형태로 전개시킨 것이었다. 그 글은 한 마리 '황야의 이리'를 다루고 있었다. 게오르크 라인하르트에게 썼듯이, 그 황야의 이리는 "특이하게도 자신이 반은 사람이고, 반은 늑대라는 사실에 고통을 겪고 있었다." 헤세는 자신이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기 분열이었다. 취리히에서 생활한 이래로 자기 분열은 그를 삶의 가장 깊숙한 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했고, 삶에 지친 외톨이로 만들어버렸다. 쉰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바로 그때 그런 어두운 징조가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그는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받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정말 쓰디쓴 아이러니라고 생각했다. 프로이센 예술원은 그를 해외 거주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사무엘 피셔도 깜짝 놀랄 일을 생각해냈다. 공로가 인정되는 작가에게 전기를 헌정하는 것이 피셔 출판사의 오래된 관례였다. 사무엘 피셔는 그 사업에 헤세를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 247~2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