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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 Ke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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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는 화장수가 그를 완성시킨다고나 할까. 마치 센 불이 고기를 익히는 것처럼. 지금까지 그에게 부족했던 일관성을 갑자기 그에게 부여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화장수는 그에게 트레이닝 같은 역할을 해서, 몸동작에 볼륨을 주고, 보이지 않지만 은근히 관능적인 몸짓의 윤곽을 드러내면서 그를 포장했다. 그는 화장수를 쓰지 않으면 벌거벗은 느낌이 들었다. --- pp.12~13
엠므 씨는 자기의 냄새가 자신의 뛰어난 외모와 기품과 더불어 여자들을 정복하는 작전에서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뒤에도 그가 사귀었던 무수히 많은 여자들이 지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그에게 ‘당신의 냄새가 좋아요.’라고 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시각적인 외모에만 신경을 쓰던 것을 후각적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 p.26 향수는 그가 옷을 다 입고 있을 때에도 다 벗었을 때와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것은 매우 다행스럽게도 그의 신체적 외모, 매력적인 매너 그리고 몸 냄새를 감각적?시각적?후각적 통합체로 만들어서 매력과 유혹과 정복을 한순간에 이루도록 해주었다. --- p.28 얼마 동안, 엠므 씨는 스스로가 발정기 사향노루였다. 단지 얼마 동안만.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이제 시기 만료되었음을, 되도록 가장 감미로운 말투로 베르투 씨가 그에게 통고했기 때문이다. -48쪽 엠므 씨는 그때까지 기분 좋을 정도로 약간 불완전하고 약간 고르지 못한 천연 향수를 써왔고, 그것은 그의 몸 냄새와 조화를 이루었었다. 불순함이 특징이었던 향수. --- p.53 지금까지 엠므 씨는 자신의 냄새로 지탱되어왔지만, 이제 냄새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마치 돛배에 바람이 불지 않아서 움직일 수 없게 되고, 태양열판에 어둠이 내려서 무력해져버리듯이. 엠므 씨에게서도 냄새도 없어져서 이제 그는 더 이상 기운을 쓸 수 없게 되었다. --- p.94 그의 향수 머스크의 죽음은 문자 그대로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의 죽음과 시체 방부처리를 통해 다시 영원히 머스크 향기 속에서 지내게 될 것이고, 지금 그에게 부족한 우주적 조화를 되찾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 p.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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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상상력과 유머로 풀어낸 현대인의 불확실한 정체성
『머스크』는 2001년 『엠므 씨의 마지막 향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이후 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 꾸준히 재출간 요청을 받아온 작품으로, 집착과 죽음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인의 불확실한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하지만 소재의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기발한 상상력과 능청스런 유머, 잘 짜인 구성으로 인해 프랑스 소설 특유의 위트와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 정보부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다 은퇴한 69세의 아르망 엠므. 전직 스파이다운 은밀함과 세심함, 프랑스 신사로서의 우아함과 품위가 몸에 밴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철저한 자기관리를 해온 덕분에 69세의 나이에도 유부녀와 밀회를 즐기는 매력적인 노신사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에게는 천연 사향노루 분비물로 만든 ‘머스크’ 향수가 있다. 이 향기야말로 그의 자신감의 원천이자 여인들을 유혹하는 무기이다. 40여 년간 향수에 대해서만은 일편단심을 고수해온 엠므는 머스크를 뿌리지 않으면 벌거벗은 느낌이 들 정도로, 향수와 자기를 동일시한다. 하지만 ‘천연 머스크’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진다. 아껴 쓰기 위해 머스크의 양을 줄이면서 자신감으로 충만하던 매력적인 노신사는 점차 위축되고 초라한 늙은이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늙기를 거부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허영기에서 시작된 일이, 피할 수 없는 존재의 드라마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처럼 『머스크』는 철저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누려왔다고 생각한 모든 일상이 오히려 자신을 지배해버리는 상황, 어느 한순간 작은 사건 하나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자아를 상실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도 ‘과연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급작스런 비약으로서의 죽음, 가장 우아하고 완벽한 자살 이 책의 또 하나의 재미는 죽음을 ‘삶과 구분되는 비약적인 단계’로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과 유쾌하고도 리얼하게 묘사해가는 자살의 준비 과정이다. 누구보다 삶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던 엠므는 "서서히 꺼져가서 막다른 골목까지 몰려 죽음의 문턱을 넘을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전날의 생활과는 완전히 분리된 질적인 도약"으로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바라던 대로 가장 우아하고도 완벽한 죽음을 완성한다. 향수 하나 때문에 69세의 노신사가 자살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언뜻 터무니없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보이지 않는 실로 옷을 짜는 사람 같다. 현실성이 희박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머스크』는 잘 짜인 구성과 논리, 매력적인 캐릭터, 설득력 있는 심리묘사로 인해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특히 주인공이 자신의 죽음을 하나하나 준비해가는 과정을 이보다 유쾌하고 리얼하게 묘사한 작품은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 젊음과 아름다움 대한 욕망을 넘어 죽음 이후의 모습에까지 집착하는 주인공의 처절한 몸부림 속에는 품위와 체면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프랑스인에 대한 은근한 비꼼이 숨어 있다. 영국인 아버지와 레바논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도 공부한 이력이 있는 저자는 영어, 아랍어, 프랑스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세 나라의 문화적 특징들을 작품 속에서 재치있게 표현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정치 컨설턴트라는 저자의 특이한 직업적 경험은 적극적이면서도 은밀하고 집요한 전직 스파이 출신의 주인공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머스크』는 69세 노신사의 자살이라는 무거운 소재와 단순한 플롯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재치와 위트로 독자를 사로잡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다시 한 번 이야기를 곱씹게 만드는 힘 있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