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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교향곡, 시대를 울리다
1. 감정 언어의 탄생 유럽 최고의 오케스트라 만하임의 황혼 궁정음악가의 고민 함부르크 교향곡 2. 자유의 길 빈의 교향곡 에스테르하자의 여름 별궁 새로운 계약서 런던에서의 성공 자유의 교향곡 하이든의 마지막 교향곡 예술로 진화하다 프리랜서 선언 교향곡 전성시대 모차르트, 자유를 택하다 화려한 날은 가고 주피터, 기악음악 최고의 승리 3. 불멸의 앙홉 천재를 알아본 후원자들 좌절과 고통 그리고 창조력의 폭발 어둠에서 광명으로 역사적인 초연 가장 낭만적인 예술 닮지 않은 쌍둥이 숭고의 절정 4. 거인의 그림자 숨겨진 보물, 그레이트 수난의 연속 완전한 미완성 라이프치히 전성시대 황홀한 도취 벗어날 수 없는 연인 기괴한 오케스트레이션의 비밀 5. 피할 수 없는 운명 누가 후계자인다 음악의 파우스트 과거에서 온 미래의 음악 한슬리크와 바그너의 미학 전쟁 바그너 사운드의 비밀 바그네리안의 출현 6. 교향곡의 구원자 제2의 황금기 베토벤 교향곡 제10번 더욱 먼 과거로부터 또 하나의 B 바그너 교향곡 최초의 성공 또 하나의 베토벤 10번 7. 시대의 황혼 지휘대 위의 독재자 음악 속의 냉소 종합과 해체의 대위법 모더니즘을 향하여 이별의 교향곡 교향곡, 우주를 담다 지도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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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바이러스’의 인기로 넓게는 클래식 음악, 좁게는 지휘자-오케스트라-교향곡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가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거느리고 교향곡을 연주하는 모습은 클래식이란 어떤 것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 지휘자, 오케스트라, 교향곡 사이의 연관 관계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간단하지 않다. 교향곡은 의례적(ritual) 기능으로선 음악활동의 절대적인 중심지였던 종교곡과 싸워 이겼고, 오락적 기능으로선 궁정의 실내악과 오페라를 누르고 오늘날의 지위에 오른다. 저자 최은규는 바로 이 역사적 과정, 공연 전에 관객들의 주위를 환기하는 역할을 하는 데 그치던 교향곡이 어떻게 전세계 콘서트 무대의 황제가 되었는지를 음악사적으로, 사회문화사적으로 추적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음악가의 사회적 독립, 시민사회의 성립과 이에 따른 공공연주회의 탄생과 함께 했음을 밝힌다. “함께 울린다”라는 뜻의 교향곡은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할 뿐만 아니라 시대와 역사와 함께 울려펴졌음을, 그래서 교향곡이 사랑과 함께 혁명도 노래했음을 이야기한다.
1. 18세기 콘서트홀의 풍경은 지금의 엄숙한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제자리에 앉아 있기는커녕 수다 소리가 음악을 방해했고, 심지어 개들이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이 어수선하고 소란스런 분위기를 반전시킬 빵빵한 음악이 바로 교향곡, 심포니의 시초이다. 교향곡이 독립된 작품으로 무대에 올려지기 시작하던 무렵 만하임은 초기 교향곡 시대의 중심지였다. “만하임 오케스트라는 근대적인 오케스트라 편성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편곡법과 연주법의 전통을 세웠”지만, 군주 카를 테오도르가 뮌헨으로 이주하자 순식간에 와해된다. 군주 개인의 취향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음악의 자율성이 디딘 기반은 허약했다.”(22쪽) 근대의 음악가들은 신분과 생활이 보장되는 궁정 예술가의 삶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하는 독립예술가의 삶 사이에서 요동친다. 저자는 후자의 길을 함께 걸었던 음악 장르가 바로 교향곡이라고 말한다. 2. 시간과 공간을 옮겨가며 굳건하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회화나 미술과 달리, 녹음 기술이 생겨나기 이전의 음악은 어찌할 도리 없이 특정한 공간에 일시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르네상스 이래로 후원자로부터 독립해온 조형예술과 달리 공연예술 음악은 18세기 말까지도 궁정에 철저히 얽매여 있었다. 하지만 특정한 공간에 얽매여 있어야 하는 조건은 음악가에게 구속과 속박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하이든은 지방 귀족 궁정의 조그마한 음악실에서부터 시민사회가 확립된 런던의 대형 공공 공연장까지 다양한 공간을 위해 교향곡을 작곡해야 했다.(46~47쪽: 공연장의 크기와 악기 편성의 관계) 이 과정에서 하이든의 후기 교향곡들은 오늘날의 대편성 교향곡으로 나아가는 절대적인 주춧돌을 놓는다. 당시는 공연장의 풍경뿐만 아니라 공연의 구성 자체도 완전히 달랐다. 소음제거와 주위 환기를 위한 역할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교향곡은 여전히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곡으로 대접 받지 못했다. 자유로운 음악 활동을 위해 추기경과 대립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던 모차르트조차 자신의 곡이 잘게 쪼개져서 연주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당시 공연기획자들은 청중의 귀를 사로잡기 위해서라면 한 곡의 교향곡을 두 동강 내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음악회 서두에 첫 세 악장을 연주한 후 음악회가 끝날 때쯤 마지막 악장을 연주하는 식이다.”(59쪽) 3. 교향곡이 클래식 음악의 절대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은 바로 베토벤이다. 넓게는 유럽 전체, 좁게는 독일어권에서 베토벤과 그의 교향곡 아홉 곡은 아름다운 음악을 넘어 범접할 수 없는 숭고의 경지에 이른다. 실제로 19세기 말에 이르면 베토벤은 독일 민족의 신으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베토벤 교향곡을 위해 건립하려고 했던 심포니하우스(100쪽)와 황금 갑옷을 입고 장검을 든 베토벤의 모습을 그린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이 책의 표지)는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큰 산은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 베토벤의 교향곡 아홉 곡은 19세기 음악의 방향성 전체를 틀지웠다. 그중에서도 특히 음악이 가사의 도움 없이도 숭고한 정신성을 표현할 수 있음을 베토벤이 입증해 보임으로써, 그리고 동시에 교향곡이 말을 자신의 내적 형식으로 포함시켜버림으로써 19세기 음악은 절대 음악과 표제 음악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하게 된다.(88~91쪽) 베토벤은 음악가의 삶에서뿐만 아니라 음악의 내? 형식에서도 자율성을 확보한 최초의 작곡가였다. 4. 19세기의 작곡가들은 베토벤의 유령과 대결해야 했다. 적어도 교향곡 분야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작곡가 대접을 받지 못했기에 베토벤의 아홉 봉우리를 피할 길은 없었다.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베를리오즈는 모두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베토벤의 유산을 물려받아 교향곡의 새로운 활로에 대해 모색했다. 그중에서도 베를리오즈는 독특한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표제가 있는 교향곡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시험했다. 저자는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의 표제와 프로그램을 상세히 서술하면서 이를 위해 작곡가가 어떤 악기와 연주 기법을 동원했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134~136쪽) 5. 18세기 중엽에 이르면 독일에서 음악은 민족의 정신을 표상하는 예술로 격상된다. 물론 그 중심에 교향곡이 있었다. 문제는 ‘베토벤의 유산을 어떻게 계승하느냐’였다. 베토벤의 교향곡으로 대표되는 순수한 기악곡이야말로 음악예술의 본원이라고 주장한 브람스와 한슬리크를 중심으로 한 세력, 그리고 교향곡의 시대는 저물었으니 새로운 표제 음악, 음악과 말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리스트와 바그너의 신독일악파가 충돌한다.(154~163) 이 논쟁은 음악계의 패권을 둘러싼 다툼이기도 했지만, 음악의 의미와 자율성을 둘러싼 치열한 미학 논쟁이기도 했다. 저자는 이 논쟁의 구도를 통해 19세기 음악계의 지형도를 그려보이면서, 동시에 이 논쟁이 이후의 음악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예컨대 오늘날에도 음악 미학 분야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책으로 손꼽히는 한슬리크의 『음악적 아름다움에 대하여』도 바로 이 논쟁의 한복판에서 탄생했다. “이 책에서 한슬리크는 음악이 독립적인 예술 작품이며, 그 아름다움과 의미는 오로지 음악적 의미에서 찾아질 뿐 음악 외적인 어떤 표현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피력했다.”(161쪽) 6. 19세기 말에 이르면 각 도시를 대표하는 공연장과 오케스트라가 설립되고, 명망 있는 지휘자가 작곡가 못지 않게 중요하게 부상하기 시작한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케스트라라고 해고 과언이 아닌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도 이 무렵 궁정 오페라극장에 소속되어 있다가 콘서트 전문 오케스트라로 독립한다. 이런 오케스트라를 위한 전용 극장도 생겨나기 시작한다. 교향곡의 승리가 절대적으로 추인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교향곡은 브람스, 브루크너와 함께 전성기에 달했다가 말러에 이르러 해체에 다다른다. 저자는 브람스와 브루크너가 어떻게 과거의 유산들을 받아들이며 작곡했는지를 당대의 상황과 함께 소개하고 연주자의 시선으로 꼼꼼하게 이 곡들을 분석한다.(178~198쪽) 교향곡의 무한한 확장과 해체의 무대는 오스트리아 빈이었다. 저자는 세기말 빈의 분위기 속에서 말러가 모더니즘을 향해 걸었던 길, 베토벤이 이룩해낸 위대한 교향곡의 전통을 완성하는 동시에 해체해 나간 과정을 소개한다. 저자는 말러와 함께 교향곡은 더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팽창한 뒤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교향곡이 이룰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담아냄으로써 역설적으로 교향곡이 나아갈 방향을 잃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20세기에도 교향곡이 작곡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글이 말러에서 끝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저자는 묻는다. “이제 교향곡의 시대는 저무는 것일까?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교향곡’이라는 이음의 음악이 왕성하게 생산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향곡은 우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과거의 유산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금도 역시 교향곡의 시대이다. 21세기 콘서트홀의 교향곡은 그 어느때보다 열정적인 청중에 의해 향유되고 있으니까 말이다.”(22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