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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 루이뷔똥 2. 유리동물원 3. 그때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 4. 철가방추적작전 5. 거머리 6. 음치클리닉에 가다 7. 비밀의 화원 8. 풍납토성의 고무인간 해설 - 임규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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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방 해서 돈을 벌어? 은행을 터는 게 낫겠다, 이놈아."
나는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을 번다고? 그러면 나이트클럽 웨이트를 하거나 삐기를 해야지, 한달에 삼사십밖에 못 받는 이짓을 왜 해? 잘사는 집 애들은 집을 나와도 흥청망청 놀다 들어가는데 어째 너 같은 놈들은 나와서도 이렇게 지지리궁상이냐? 물좋은 데 삐끼는 한달에 이삼백도 번다고 하던데, 그래서 낮에는 할일 없어 술 마시고 밤에는 손님 잡고 기분내느라 또 술 마시고 그러다 몸 버리고 돈도 못 모은다곤 하지만. 그런 걸 다 아니까 이런 데 온 거겠지만, 녀석의 의뭉함이 또 징그러워져서, 일부러 장갑꾸러미는 못본 척하고 내려와버렸다. --- 철가방추적작전(p 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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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시계를 보았다. 바늘은 6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통때보다 15분 정도 일찍 일어난 셈이다. 이제 TV를 켜고 뉴스를 들으면서 냉장고에서 꺼낸 포도즙을 마시고 씽크대를 치운 다음 다 마른 빨래를 개켜놓고 오늘 입을 옷을 고를 것이다. 그러나 건조대에 널린 속옷들은 마르지 않았고 포도즙은 떨어진 지 오래고 개수대엔 밀린 설거짓거리가 가득했으며 입을 옷은 마땅치 않았다. 이러다 7시 20분이 되면 여자는 스쿼시 가방과 화장품 케이스와 핸드백을 메고 집을 나가 8시까지 스쿼시를 한 다음 바로 아래층에 있는 도장에서 8시 40분까지 단전호흡을 하고 그곳에서 화장을 하고 슈트로 갈아입고 바로 출근을 할 것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을 가면 삼성역에 도착하고 산업은행 앞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토스트와 커피우유를 사먹고 지하도를 건너 6번 출구로 나가 공항터미널 옆 사무실로 향할 것이다. 혹은 지하도 5번과 6번 사이에 있는 밀레니엄 광장을 지나 코엑스몰을 관통해서 나갈 수도 있다. 입구에 있는 외환은행 앞에서 왼쪽으로 돌면 선물가게, 화장품 가게들이 즐비하게 나오고 TGI 앞에서 한번 더 길을 꺾으면 현대백화점 지하 출입문을 등진 채 지상으로 올라올 것이다. 그렇게 가면 시간이 약간 더 걸리지만 여자는 그렇게 가기를 즐겼다. 쇼핑몰은 동물원과 같아서 매일 지나가도 별로 질리지 않았다. 어쨌든 사무실에 도착하면 9시 20분이 넘지 않을 것이다.
--- 유리동물원(pp. 4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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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신예작가 김윤영(金倫永)의 첫소설집 『루이뷔똥』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되었다. 김윤영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와 성균관대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에 「비밀의 화원」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2002년 문예진흥원 창작기금을 받은 우리 소설계의 젊은 유망주이다.
이 소설집은 등단작 「비밀의 화원」을 비롯하여 4년여간 발표된 여덟 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김윤영의 작품은 “요즘 사람들의 평균적 생활의 결들이 생생히 살아 있”어서(신인소설상 심사평) 당대성이 돋보인다고 평가된 바 있는데, 수록작품 모두 고른 성취를 보이며 다양한 세태를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표제작 「루이뷔똥」은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빠리로 날아와 루이뷔똥 수집상의 길로 들어선 ‘세미’와 프랑스 외인부대에 지원하여 시민권을 얻게 된 ‘판수’, 그리고 세미에게 온정을 베풀다가 끝내 사기를 치는 조선족 ‘영변댁’이 엮어내는 밀도 있는 단편이다. 빠리 루이뷔똥 매장에서 루이뷔똥을 사서 제3국으로 비밀리에 넘기는 일에 참여한 인물들을 둘러싸고 팽팽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관계된 인물들의 삶을 상호교차적 시점으로 그려내 선악의 윤리적 관점만으로는 섣불리 재단하기 어려운 현실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유리동물원」은 나름대로 생활에 잘 적응하며 살아오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남석희’의 삶을 다루고 있다. 실종된 남석희의 삶을 주변인들의 발언을 통해 다각도로 조명해보는데, 타자의 시선을 통해 축조된 그녀의 삶은 이질적인 평가들이 엇갈리면서 서로 모순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유능한 직장인이지만 신경쇠약증, 만성우울증을 앓고 있는 복잡한 사정이 차츰 드러나면서 도시적 일상에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생활공간이자 현대 도시문화를 대표하는 ‘코엑스몰’이 ‘유리동물원’이라는 상징으로 갈무리되는 결말이 의미심장하다. 가출한 학생을 찾아내어 학교에 돌아오게 하기 위해 맹렬한 추적작전을 벌이는 경력 30년차 중학교 교사의 하루를, 마치 수사관의 수사일기 같은 형식으로 엮어간 「철가방추적작전」은 가출청소년 문제를 둘러싼 착잡한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간 독특한 작품이며, 약물을 과용하여 심장마비로 죽은 한 여인의 빈소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거머리」는 종종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다단계판매(네트워크 마케팅)의 자본주의적 관계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고등학교 선생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다룬 「그때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는 겉으로는 실력이 우수한 수학선생으로 평가받고 있었으나 실제 학생들 앞에서는 비열한 짓을 일삼던 어느 선생의 삶을 다양한 등장인물의 진술 속에 담아내고 있다. 한성백제 말기 유물의 비밀을 캐는 데 병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오빠를 다루는 「풍납토성의 고무인간」에서는 과거에 형사에게 쫓기다 치명적인 화상을 입어 괴물처럼 변해버린 인물과 그 주변인들의 고통이 잘 드러난다. 「음치클리닉에 가다」에서는 음치클리닉이라는 독특한 공간을 무대로 노래를 잘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사람들과 모진 고문에 의해 정신병자가 된 인물이 등장한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망가져버린 인생을 다루는 두 작품의 분위기는 사뭇 대조적이어서 흥미롭게 읽힌다.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지닌 인물을 철저히 관찰자적인 시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음치클리닉에 가다」의 주인공 소정과 착잡한 연민과 애증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풍납토성의 고무인간」의 주인공은 모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보고자 애쓰는 작가의 분신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 또한 천재소녀의 눈에 비친 가족의 이야기를 시대적 상황과 함께 담아낸 「비밀의 화원」 역시 “80년대적 현실과 90년대적 일상의 미묘한 절충점에 독자적으로 둥지를 틀고 있는” 작품이다. (창비신인소설상 심사평) 김윤영 소설은 90년대 (여성)소설에서 “사적인 세계에 갇혀 내면 탐구에 시종하는 ‘골방’의 문학”이나 “현실변화의 구체적 실상에 손을 놓고 적당히 새로움을 찾는“ 추세와 차별성이 있다. 문학평론가 임규찬은 해설에서 “무엇보다 현실을 품에 안고 그 속에서 하나의 발견적인 기록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산문적 육체성이 건강하”며, 바로 그 지점에서 “살아 있는 삶의 이야기를 구성하고자 하는 현실주의 정신”을 엿볼 수 있고 “다양한 양식 실험도 상당한 신뢰감”을 주고 있다고 평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적인 시공간을 발빠르게 담아내는 묘사력, 그리고 그 소설적 육체가 펼쳐내는 다양한 동시대성”이 미학적 의미를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태를 실감 있게 포착하는 재치 있는 솜씨와 경쾌하게 서사를 이끌어가는 호흡은 김윤영 소설이 가진 또다른 장점이며, 이는 그의 작가적 역량과 더불어 성실한 취재가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명품 루이뷔똥 수집상들의 세계(「루이뷔똥」), 다단계판매망(「거머리」) 등을 삶의 현장에 밀착하여 써낸 역량이 돋보인다. 주목할 만한 신인의 첫 소설집 『루이뷔똥』은 새로운 돌파구를 갈망하는 우리 소설계에 신선한 청량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