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오늘의 팔레스타인 분쟁 배후에는 예루살렘의 역사가 있다
|
|
서문
축복받은 예루살렘, 저주받은 예루살렘 1부 유태인 역사에서 본 예루살렘의 의미 1. 시온, 다윗의 도시 2. 파괴된 성전 3. 시온으로의 귀환 2부 그리스도교인들의 분쟁과 축복으로 얼룩진 예루살렘 역사 4. 예수의 발자취들 5. 신의 뜻입니다! 6. 그리스도의 무덤은 누구 것인가? 3부 이슬람 역사에서 본 예루살렘의 거룩함 7. 이슬람, 예루살렘에서 이기다 8. 전갈로 가득 찬 황금그릇 9. 오스만의 무관심 4부 예루살렘의 미래, 분할이냐 통합이냐 10. 탄생과 배반 - 예루살렘을 향한 투쟁, 1917~1967 보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어떻게 볼 것인가? 부록 중동지역 약사 / 왕계표 / 참고연표 / 참고문헌 / 찾아보기 |
|
예루살렘의 역사가 오늘의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예루살렘의 역사를 보면, 이 땅이 고난의 땅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그곳에는 계속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의 첫주인은 가나안 원주민인 예부스인들이었고, 다윗이 그들을 몰아낸 후 그곳은 유태인들의 땅이 되었다. 그러나 유태인들이 이 땅의 주인이었던 것도 기나긴 예루살렘 역사에서는 한 단편에 불과할 뿐이다. 오히려 그곳에서 더 오랜 기간 그 땅을 일구며 살았던 사람들은 아랍인들이었다. 638년 우마이야조가 예루살렘을 통치하기 시작한 후 1917년 영국이 이 땅을 위임통치하기 전까지 십자군 지배를 받았던 약 90년을 제외하면 그곳에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여러 민족들이 어우러져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 역시 때때로 반목하고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사람이 사는 땅에 그 정도의 반목과 갈등은 늘 있어왔다. 오늘날처럼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만큼 특별한(?) 갈등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갈등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갈등의 직접적인 계기는 역시 위임통치 시기에 영국이 한 약속에서 찾아야 한다.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취하고 있던 영국은 오스만 투르크를 몰아내기 위해 메카의 샤리프였던 후세인에게 오스만 정부에 대항하는 반란을 아라비아 반도에서 일으켜 주면 팔레스타인에 아랍 국가를 설럽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곧이어 1917년에는 잘 알려진 밸푸어 선언으로 유태인들에게 그들의 '보금자리'를 팔레스타인에 마련하게 해준다고 약속했다. 이런 상반된 약속은 순전히 영국으이 정치적 실리에 따른 것으로 그 지역 주민들의 정서나 다른 어느곳보다 높은 종교적 열정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책 『예루살렘』에 자세히 나와 있는 것처럼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예루살렘에 대한 숭상은 오랜 기간에 걸친 역사적 과정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그들의 종교적 열정과 순수성의 결과물이다. 이 책의 저자도 말하듯 자신들이 믿는 신이 그곳에 거주한다고 느끼면 누구든 그 땅을 차지하고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므로, 다윗과 예수와 알라의 숨결이 고스란히 간직된 예루살렘이 종교적 열정을 가진 이들의 각축장이 되어 왔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종교적 열정으로 인한 반목이 제국주의적 야심 때문에 더욱 깊어지고 지금은 석유를 둘러싼 이권 문제까지 겹쳐 유혈폭력과 기아, 난민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은 분명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신문 국제면에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등장하는 중동 지역의 분쟁, 그 중심에는 예루살렘의 역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