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월요일 - 기적은 있다 화요일 - 건강한 무기력은 황금이다! 수요일 - 사람과 사람 사이 목요일 - 오늘도 무사히! 금요일 - 승리의 그 날까지 토요일 - 길 위에서 일요일 - 사색의 시간 묻는 사람은 없어도 나는 답한다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Horst Evers
|
이것이 진정 제가 한 일이옵니까?
문득 내가 지금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나 싶다. 늘 모든 일을 사전에 충분히 심사하고 숙고하는 나 같은 사람이. 나라는 사람은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아주 확실한 방법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집안 구석구석에 할 일을 적은 쪽지를 붙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 쪽지들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 수가 늘면서 점점 내 신경을 죄어온다. 지금도 줄잡아 60~70개가 곳곳에 붙어 있다. ‘호어스트! 제발 세무신고 좀 해! 어서, 제발, 당장!!! 대체 어쩌려고 그러냐? 질질 끌지만 말고 할 일은 좀 하면서 살자고, 이 화상아! 꼭 그렇게 막차를 타야 직성이 풀리냐? 1997년이 지난 지가 도대체 언제냐! 그러다 정말 큰코다친다. 지금이야, 바로! 해, 하라고!’쪽지들은 악몽, 그 자체다. 이런 환경에서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도 버틸 수가 없었으니. 결국 나는 이렇게 해서 벌써 9일째 밖으로 돌고 있다. 물론 집을 나오기 전, 이미 그 일에 착수는 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2백만 개쯤 되는 영수증, 각종 서류, 종이쪼가리들을 책상, 테이블, 방바닥에 와르르 쏟아부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네 시간 동안 두손놓고 앉아 그 종이산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침내 좀 쉬었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피자를 주문했다. 탁자마다 종이가 수북했으므로 바닥에 앉아 피자를 먹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정복해야 할 아이거 북벽의 위용에 눌려 반쯤 먹다 말고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처음 1주일은 우연을 가장해 친구들 집을 순회했다. 매일 집을 바꿔가며. 그러나 얼마 못 가 친구들끼리 서로 그 사실을 확인하기 시작하면서 그것도 여의치 않아져, 별수없이 One-night-stand, 즉 하룻밤의 사랑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러나 1주일 넘도록 옷을 갈아입지 못한 내게 넘어올 코가 꽉 막힌 여자는 베를린에 없었다. 독감도 걸리자고 덤비면 피해간다더니, 한 마디로 ‘불행’그 자체였다. … --- |
|
요즘 TV 뉴스에는 직장인들의 ‘출근기피증’에 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뭣 때문일까? 정말 뉴스에서처럼 컴퓨터로 너무 오랜 시간 업무를 하기 때문일까? 하긴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의 논리는 있는 듯도 하다. 너무 오래 사람이 아닌 기계에 집중해서 일을 한다면 정말 정서장애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컴퓨터가 우리 생활에 바짝 붙어선 인터넷 세상에 약간은 나른한 의식구조와 생활방식으로 다가오는 독특한 이방인이 있다.
이름은 호어스트 에버스, 독일인이고 베를린에 살고 있으며 직업은 음... 뭐 여기에 대해서는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게 없는 듯하다. 머리카락이 좀 듬성듬성하고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몸이 좀 불었다나? 또 늘 빨간 코르덴 셔츠를 유니폼삼아 입고 다닌다. 하루하루가 늘 무료하기를, 또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고 게으름 피울 수 있기를 희망하는 나름으로 행복한 남자! 『세상은 날마다 금요일은 아니지』는 우리의 시선으로는 그리 비범하지 않은 인물 호어스트의 1주일이다. 그의 엉뚱함과 나태함, 무력함, 그리고 그 속에 숨어 있는 그의 재기발랄한 논리는 우리를 때로는 미소짓게 때로는 진지한 자기성찰로 이끈다. 사람들은 흔히 독일식 유머를 썰렁한 유머에 비유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분명 독일인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또한 호어스트가 주장하는 ‘험악한 주둥이에 마음은 따뜻한 세계 속의 베를린’이 불현듯 그리워지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은 날마다 금요일은 아니지』는 그저 웃기는 이야기들의 모음이 아니다. 이 책에서 지은이 호어스트 에버스는 때로는 시니컬하게 때로는 엉뚱하기까지 한 베를린식 사고로 읽는 이들에게 각자 삶을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유지하며 품위(?) 있게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개중에는 지은이 호어스트가 정말 할일도 없고 하고픈 일도 없는 백수쯤 되는 게 아닐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분들을 위해 그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주변 상황들을 묘사한다면 그는 분명 직업도 있고 아이도 있고 부인도 있고 강아지까지 있다. 하긴 또 이런 말들을 하면 몇몇 사람은 그가 그렇게 헐렁하게 사고하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정작 자신은 하루하루 바쁘고 알차게 생활하는 정상인(?)이 아닌가 하고 배신감마저 느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가 뭘 이야기하고 싶어했을까 다시 한번만 생각해보시라. 스스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게으름을 피울 수도, 나태함을 만끽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자신의 현재 상태와 여건들을 모두 자신로 의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그 무엇이 감히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겠는가? 바람도 차고 날도 추운데 기분까지 영 말이 아닌가? 혹은 자신에 대한 불만으로 폭발 직전인가? 그렇다면 화장실 귀퉁이도 좋고 만원의 전철 모서리도 좋다. 우선 호어스트 에버스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라. 만일 그의 그 긴 수다를 다 듣고 나서도 여전히 자신의 심란함의 근원을 알 수가 없다면 그가 늘 하듯 ‘내 앞 가만히 바라보기’에 몰입해 보시라. 마음 한귀퉁이가 나사가 풀리듯 좀 헐거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사에는 바람도 살랑이고 가끔 퍼붓는 소나기도 들이칠 정도의 공간은 늘 필요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