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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식문화사
개정판
유희경 등저
교문사 200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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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체능/문화/기타 계열 top2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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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고대복식
고대한국복식의 원류
여러 부족국가 복식
삼국시대 복식
통일신라, 발해복식
수식(修飾), 의료(衣料)

2. 고려시대 복식
복식의 변천
남자복식
여자복식
금제(禁制)
의료(衣料)

3. 개화기 및 일제시대 복식
남자복식의 변천
여자복식의 변천
의료(衣料)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82쪽 | 188*254*30mm
ISBN13
9788936304423

책 속으로

족두리에 대해서는 이미 고려사회 복식 귀부녀복 두식에서 알아본 바 있으며, 이것이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화관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 형식이 작아지고 아래 위가 밋밋하게 비슷하였으며, 관모라기 보다는 미적 장식품으로서 수식이 되었다. 이것은 머리를 그대로 가발하여 장식하려던 여인들이 화관 · 족두리 등 관식 이외에 머리 그 자체의 미를 좀더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족두리는 일명 족아 또는 족관이라고도 하였는데, 모양을 좀더 설명하면, 검은 비단으로 만들어 아래는 둥글고 위는 6모로 되었다. 솜을 넣어 만든 것도 있고 종이 백비로 만들기도 하여 가운데를 비게 하여 머리에 쓴 것으로, 장식이 없는 것을 '민족두리', 옥판을 밑에 받치고 산호주와 밀화구슬과 진주를 꿰어 만든 것을 '꾸민족두리' 라 하였다. 그리고 어여머리의 밑받침도 족두리라 하였는데, 이것은 솜으로 안을 채운 솜족두리로 관모로서의 족두리는 아니었으며, 일명 어염족두리라 하였음은 앞의 머리모양에서 언급한 바 있다.

--- p.260

조선시대 여자 복식은 500년 동안에 그다지 많은 변화를 겪지는 않았다. 왕비복의 경우,조선 초 명의 사여관복을 통하여 이루어진 중국제 그대로의 왕비복을 예복으로 하여, 우리 나라 고대복의 인습 속에서 시체에 따라 변해온 저고리. 치마 등의 이중구조 속에서 전승되어 왔다. 그러므로 국초의 의궤로 <세종실록> 예지나 <국조례의> 역대왕 실록에 산견되는 예제의 기록과 인조대 이후 잔존하는 가례의 의궤를 보더라도 그 사이에는 별로 변동이 없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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