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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y Kurkov(Andrej Kurk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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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아파왔다. 이미 그에게는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한 번도 실제로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을 걷는 것과 유사했다. 몇 걸음만 잘못된 방향으로 옮겨도 그의 인생은 끝장날 수 있다. 낯선 사람의 죽음, 펭귄이 없는 장례식, 호기심 그리고 포로…… 빅토르에게 현재 일어나는 기묘한 사건들이다. --- p.92
조금 전만 해도 빅토르가 가스레인지 옆에서 수선을 떨었다. 자신과 보스를 위해 커피를 끓이면서. 그런데 이제 자신은 파샤의 거대한 등을 보고 있다. 파샤는 자신과 빅토르를 위해 커피를 끓여달라는 부탁을 할 만한 자격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누군가 자기자신과 파샤를 위해 커피 물을 올릴 것이다.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와 관계는 커피를 끓이는 관계의 사슬로 나타난다. 문명화된 인간들 사이의 계급은 ‘커피 만들기의 순서’일지도 모른다. 커피가 다른 사물로 대치되면 인간들 사이의 적나라한 계급관계가 드러난다. --- p.143 빅토르는 다시 한 번 위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는 생존의 문턱에서 3미터 떨어진 곳에 묶여있었다. 3미터 위로 가야 살아날 수 있다. 삶과 죽음을 나누는 이 거리가 비이성적인 것처럼 보였다. 지표면의 높이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지만 일상적인 삶은 지표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아주 잠시 지표보다 높은 하늘로 몇 시간동안 치솟기도 한다. 그리고 삶을 마감한 뒤에는 표준 무덤 깊이로 땅 속으로 내려온다. 빅토르는 보통 주검을 묻는 깊이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어쨌든 빅토르는 산 자들보다 죽은 자들에게 더 가까운 입장이었다. 깊은 구덩이의 벽을 타고 느껴지는 한기와 빅토르가 두려움으로 느끼는 한기는 빅토르에게 자신의 삶과 작별을 고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 p.390 체첸인들은 차에 올랐다. 빅토르는 고개를 돌려 눈으로 파샤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자동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자동차는 시동을 걸고 헤드라이트를 켰다. 자동차는 후진으로 도로 위까지 올라갔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조그마한 물체가 나타났다. 빅토르는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바로 펭귄 미샤였다. 낯선 곳에 내려져 당황한 듯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미샤!” 빅토르가 소리를 쳤다. “미샤! 나 여기 있어!” 빅토르는 미샤가 있는 쪽으로 갔다. 펭귄은 사람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 다리를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미샤는 서두르지 않고 걸었다. 두 사람은 다리 위에서 만났다. 정확하게는 조금 전 체첸인들의 차가 서 있던 쪽에 가까운 곳에서 만났다. 빅토르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미샤를 끌어안고는 빅토르 스스로도 예기치 않은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두 뺨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뺨 위로 눈이 떨어져 잠시 머문 뒤 눈물과 섞여 눈물을 차갑게 만들었다. 마치 빅토르 자신이 말 못하는 외로운 펭귄이 되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입장이 되어 헤매다가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나 자신을 동정하며 안쓰러워하는 주인을 본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바로 그 순간 빅토르는 미샤도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샤의 눈길에는 따스함이 넘쳤고, 반가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 p.497 펭귄은 그곳에 없었다. 빅토르는 놀라서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갔다. 불을 켰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펭귄이 식탁 아래 타자기 옆에 있었다. 미샤는 슬픈 듯한 표정이었다. 미샤는 잠을 자지 않았다. 불이 켜지자마자 미샤는 식탁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리고 눈길로 빅토르를 발견했다. 빅토르에게서 조그마한 두 눈을 떼지 않았다. --- p.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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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펭귄의 우울》에서 펭귄 미샤 대신 남극으로 향했던 주인공 빅토르는 수개월간의 남극 생활을 접고, 우크라이나 키예프로 돌아온다. 빅토르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펭귄 아닌 미샤’의 딸 소냐와 보모 니나에게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니나는 이미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 페오파니야 병원에서 심장을 치료받았던 펭귄 미샤도 온데간데없다.
소속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빅토르는 ‘십자가’ 사건에 휘말리기 전부터 자신과 함께 했고, 자신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펭귄 미샤를 찾아 고향 남극으로 데려다주려고 결심한다. 잃어버린 펭귄을 찾기 위한 그의 여정은 키예프에서 시작해 모스크바를 거쳐, 전쟁지역인 체첸에까지 이르게 되고, 드디어 펭귄 미샤와 상봉하게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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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펭귄의 우울』에 대하여
우울증에 걸린 펭귄과 고독한 작가의 희한한 동거! 그리고 미스테리한 사건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자본주의 물결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작은 도시 키예프. 빅토르는 여자 친구가 떠나가버린 후, 우울증에 걸린 펭귄 ‘미샤’와 함께 살게 된다. 어느 날 그에게 특별한 청탁이 들어온다. 키예프의 유명 신문에 언젠가 죽을, 미지의 인물들을 위해 조문을 쓰는 것. 독자들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그러나 신문에서 처음 자신의 글을 발견한 순간, 자부심은 즉시 놀라움과 공포로 변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십자가’,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 그리고 장례식. 빅토르와 미샤는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함정으로 빠져드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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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유럽이 격찬한 『펭귄의 우울』에 이은 또 하나의 역작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낯선 우크라이나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 세계 주요 32개 언어로 그의 작품이 번역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작가다. 1961년 러시아 레닌드라드에서 태어나 그는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변화를 직접 체험한 그는 키예프 국립외국어대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했으며, 오데사에서 간수로 군복무를 하기도 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해 수십여 편의 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고, 14편의 소설과 5편의 어린이 책을 출간했다. 전작 『펭귄의 우울』(2006, 솔)은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잇는 러시아어로 쓰인 작품인 동시에 현대 동유럽의 문학을 서구인들에게 깊게 각인시켰던 작품이었다. 추운 날씨를 그리워하다 우울증에 걸린 펭귄 미샤와 자신도 모르는 새 ‘암살 지령’을 숨긴 부고 기사를 썼던 작가 빅토르의 독특한 이야기에는 카프카식 초현실성으로 포장된 우크라이나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과감한 풍자가 담겨 있다. 이번에 출간된 『펭귄의 실종』은 『펭귄의 우울』의 후속편으로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특징인 블랙유머와 풍자가 한층 더 강화되었다. 주인공 빅토르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수동적이고 반체제적이지만, 잃어버린 미샤를 찾기 위해 키예프, 모스크바, 체첸, 발칸반도를 헤매고 다닌다. 그 와중에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자선사업가로 이미지메이킹을 하는 전 마피아 보스의 보좌관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자본주의 물결에 휩쓸린 모스크바의 모습에 놀라며, 전쟁 중인 체첸에서 러시아 정부군과 체첸군의 시신을 태우는 화장장에서 일하기도 한다. 그의 눈으로 보는 동유럽 사회는 부조리하고 혼란스럽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동정적으로, 가끔은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사람이 사는 데는 그다지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야.” 세르게이 파블로비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의 음식, 조금의 돈 그리고 머리 위를 덮을 수 있는 작은 집 정도면 충분하지. 달팽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달팽이의 법칙이라는 것을 지켜야 해. 들어보았나? 자네는 작은 달팽이야. 나는 좀 더 큰 달팽이라고 할 수 있어. 자네에게는 조그마한 집이 있어야 하고, 나에게는 보다 더 크고 튼튼한 집이 필요하지. 그런데 말이야, 내 몸집이 더 커지면 몸에 맞는 집을 새로 만들어야 해. 달팽이에게 집이 없으면, 그저 힘없는 연체동물로 남게 되거든. 보호막이 사라진 연체동물에게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은가?” 〈본문 중에서 92쪽〉 세르게이 파블로비치가 말하는 ‘달팽이의 법칙’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이후 혼란기의 동유럽의 상황을 반영한다. 실제로 90년대(특히 해체 직후인 1992-1995년 사이) 많은 예술가들은 마피아의 후원을 받았고,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소시민들조차 마피아와 연계된 ‘지붕’이 있었을 정도로 무법천지였다고 한다. 작가 자신도 당시 이러한 일을 직접 경험했다고 2005년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고백한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그의 첫 소설을 출간한 쿠르코프는 거리에서 포스터를 목에 걸고 직접 책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키예프의 가장 유명한 거리에 나가 책을 팔고 있으니, 한 남자가 다가와 보호를 해주겠다는 것. 그렇게 엉겁결에 ‘지붕’을 갖게 됐고, 감사의 표시로 저자 사인이 된 책을 선물하려 했으나 정작 ‘지붕’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음울함과 유머로 표현되는 포스트 소비에트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들!! 힘의 법칙을 파악한 주인공 빅토르 역시 더 큰 ‘지붕’ 밑에서 생존하려고 한다. 작가 스스로는 빅토르를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의 전형적 동유럽 지식인 남성으로 평가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어느 정도는 반체제적이며 수동적인 인물이다. 소비에트 시대 이후의 변화를 받아들이기에는 적극성과 준비성이 부족한 90년대 세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빅토르를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펭귄 미샤이다. 미샤는 빅토르를 둘러싼 사회의 부정부패와 대조적으로 정직함과 진실성을 갖고 있다. 잃어버린 펭귄은 잃어버린 빅토르의 정직함과 진실성이며 그는 간절하게 그 회복을 원한다. 펭귄을 찾고 남극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을 위해 그는 국회의원이라는 ‘지붕’의 권력과 돈을 이용한다. 마피아의 행동대장이었지만 폭발사고로 장애인이 되어버린 레샤를 돕고, 보육원의 고아들에게 기부를 하기도 하며, 장애인 암레슬링 팀을 만들기도 한다. 역자 양민종 교수(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는 전작에서 키예프에 한정되어 있던 공간을 동유럽 전체로 확대시키고, 빅토르가 순례하는 여정을 그림으로써 “격변기를 살아남은 슬라브인들의 새롭게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펭귄의 실종의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는 잃어버린 펭귄을 찾아 고향인 남극으로 데려다 주는 과정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난 세기 90년대를 살았던 슬라브인들에게 바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작가의 마음은 격동의 시기에 스러져간 자들에게는 진혼곡의 형태로, 그리고 생존한 자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 항해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모스크바와 키예프를 비롯한 구 소비에트 지역의 1990년대와 현재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