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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부 비오는 밤의 사건
얼굴을 베이다 판결문과 진정서 초안 3명의 병문안객 범인의 누나 흉터도 내 몸의 일부 반점이 있는 여자 신데렐라의 구두 잊을 수 없는 사람 제 2부 잠수함장의 딸 출생의 비밀 구레, 군항의 마을 이호 제 27 잠수함의 침몰 여자들만의 집 히로시마 2현 여학교 2학년 서반 제 3부 자유에 대한 동경 오오노, 오쿠에츠의 작은 쿄토에사 탈출시도 후쿠이 대학에서의 2년 '기미가요'에 쫓기듯 제 4부 민족과 사상의 벽 도쿄, 그 한 구석에서 조선 청년과의 만남 결혼, 민족을 초월하여 내 이름은 나돈향 일본인이 아니었다면 '혁명'과 '사랑'의 틈 헤어지고 난 후 제 5부 여성사 연구에의 길 신주쿠 풍월당 마로니에 가로수 밑에서 가사. 육아. 공부 나의 1960년 문하생으로서의 나날 아시아여성교류사연구회 산다칸 8번가 창녀촌 맺음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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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의 생각을 존중하고 싶었다. 속옷조차 살 수없는 지금의 가난한 형편이 견디기 힘들고 싫었지만, 그래도 내 인생의 반려자가 사는 보람을 잃는다는 것은 더욱 더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몇 시간 후 가난한 생활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으니 걱정 말고 그만두라며 밤새 설득해서 그가 그곳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게 하였다.
중간에서 소개를 시켜준 아오치씨에게는 면목이 없었지만 다음 날 남편은 오오야시와 아오치씨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렇게 해서 이 일은 이것으로 끝나게 되었고, 우리 부부에게는 다시 또 가난한 생활이 계속되기 시작했다. 그러데 가끔 우리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오오야시의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것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그 후 우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남편인 카미 쇼이치로는 글을 쓰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기에 매스컴 평론을 나름대로 잘 써서 그 분야에서 이름을 떨쳤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노동자와 농민, 여성 등 차별받는 사람들 보다 더욱 무시받고 있는 사회적 계층으로서의 '어린아이'들의 문화와 이해에 관한 연구자는 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 p.2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