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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발의 꽃
2. 오타즈 님 3. 에도르 4. 지바 도장 5. 구로후네의 내항 6. 사창가 7. 스무 살 8. 음탕 9. 호랑이 해의 큰 이변 10. 악바리 야타로 |
Ryotaro Shiba,しば りょうたろう,司馬 遼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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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무사의 아들에서 일본 최고의 영웅이 된 사카모토 료마!!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는 1835년, 우리에게 낯익은 ?도사견?의 땅 도사한에서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울보 료마, 멍청이 료마라 불리며 어디서나 바보의 전형이 되다시피 한 인물이었다. 학원과 도장에서도 쫓겨나기 일쑤였고, 그의 막내누나인 오토메는 료마를 교육시키기 위해 많은 애를 쓰지만 집안에서도 료마는 거의 내놓은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료마가 열아홉 살 때 에도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검술 수업을 쌓기 시작한다. 에도에 올라온 첫해 우라가에 내항한 미국의 구로후네에 자극을 받은 료마는 미토 양이론자와 교류를 쌓으며 서서히 근대화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윽고 일본 최고의 검술 달인이 된 료마는 마침내 에도 바쿠후를 무너뜨리려는 바쿠후 타도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야말로 적수공권. 각지를 돌아다니며 척화와 양이, 개방과 국제화 사이에서 고민하며 국내외 정세에 눈을 뜨게 된 료마는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세계를 누비는 종합상사라 할 가이엔타이(海援隊)를 결성하고, 장사를 통한 이익을 매개로 서로 견원지간 관계에 있던 당시의 최대 세력 사쓰마와 조슈한의 바쿠후 타도 연합을 성사시킨다. 이것이 바로 메이지 유신의 기폭제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어느 누구도 바쿠후 타도 후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때 료마는 이른바 ?선중팔책?(船中八策:배 안에서 구상한 여덟 가지 방책)을 제안하는데, 이 선중팔책이 근대일본의 국가적 기틀을 마련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했다. 사카모토 료마라는 인물이 당시 일반 사무라이(무사)들과 다른 점은 해외에 눈을 돌렸다는 점과 철저한 행동력을 갖췄다는 것에 있다. 극히 보통의 늦자라는 아이일 뿐인 료마가 근대화에 앞장서서 온몸을 불사르다 서른세 살의 나이에 자객의 칼에 암살되기까지, 그의 인생은 일본 근대화의 중추적 역할을 했고, 그가 격변의 세월을 통해 인간적, 인격적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은 민족과 조국의 앞날을 꾸려나가려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희망의 별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들은 한 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단연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사카모토 료마를 꼽는다. 『불씨』라는 소설로 유명한 도몬 후유지 같은 사람이 ?일본 근대사에 사카모토 료마라는 인물이 등장했다는 것, 그것 자체가 기적이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일본 벤처기업의 신화적 인물인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서슴없이 사카모토 료마를 꼽는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료마라는 인물의 가치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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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개항과 근대화의 대장정
바쿠후(幕府) 말기, 메이지 유신기는 도쿠가와 가문의 에도 바쿠후가 메이지 정부에 정권을 넘기기 직전의 시기로,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의 우라가 입항에서부터 1867년의 다이세이 봉환(大政奉還)까지의 시기를 일컫는다. 이 시기의 일본은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창설한 바쿠후가 최고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교토의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바쿠후 설립 이후 일본의 신분구조는 최고 통치자인 쇼군(將軍)을 정점으로, 녹봉 1만 석 이상의 한슈(藩主, 한의 영주)인 다이묘(大名)와 한슈에 속한 무사, 농민, 기술자, 상인의 순서로 서열이 매겨졌다. 무사는 다시 조시(上士)라 불리는 상급무사와 가시(下士), 고시(鄕士)라 불리는 하급무사로 나뉘는데, 이러한 신분구조는 일상생활까지 엄격하게 구분할 정도로 철저히 지켜졌다. 18세기 초부터 일본은 상업경제가 발전하고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활기찬 도시문화가 꽃피기 시작했으며, 궁극적으로 에도 시대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무사들의 검소한 생활방식도 변화시켰다. 동시에 주로 고정된 봉급을 받고 살아가던 무사들의 경제적 지위도 점차 악화되었고, 바쿠후 말기에는 높은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궁핍에 시달리는 무사 가족들이 더욱 늘어났다. 그러는 와중에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군함 네 척을 이끌고 우라가에 입항하여 일본에 개항을 요구한다. 서구 열강의 동아시아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에 미국이 무력을 앞세우고 일본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외국 오랑캐를 배척하자는 양이 운동이 거세지고, 개국으로 돌아선 바쿠후를 옹호하는 쪽과 천황을 정권의 중심에 놓고 바쿠후를 타도하자는 존왕양이파로 갈려 심각한 대치상태를 이룬다. 250여 년 간 이어져온 바쿠후 체제는 이처럼 서구 세력의 위협과 새로운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출세를 열망하던 하급무사들의 도쿠가와 체제 반대에 부딪히며 그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역사를 만드는 인간의 유형은 무엇인가? 시바 료타로는 이 작품을 쓰면서 내내 ?역사를 이루는 인간의 유형은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구로후네(黑船)가 일본에 들이닥쳤을 때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그리하여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던 도쿠가와 정권은 대포를 앞세운 외국 세력에 굴복하고, 그런 가운데 이른바 양이와 개국, 바쿠후와 천황 제도를 두고 민심이 크게 갈린다. 이런 상황에서 상상도 못할 큰 그릇 노릇을 한 사람이 바로 사카모토 료마이다. 단적으로 말해보자. 료마는 당시 일본 최고의 검객이면서 검을 버렸다. 아무리 검술이 뛰어나도 칼이 미치기 전에 한 방 총알로 목숨이 끊기고, 화살을 쏠 기회도 얻기 전에 대포로 초토화되고 마는 당대의 문명발전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양이(서양 오랑캐를 몰아내자)에서 결국은 개화(나라의 문호를 열어 외국문물을 받아들이자)로 과감하게 돌아서는데, 여기서 역설적인 것은 바로 그 개화를 통해 진정한 양이를 이룩하자는 것이었다. 그런 의식이야말로 근대일본의 정신적 자각을 이룩하게 해준 계기가 된다. 일본 근대사는 그런 면에서 극심한 신분제도를 토대로 한 봉건제도에서 국민국가로 넘어가는 경험을 한 시대를 말하고, 그 상징이 바로 1868년의 메이지 유신이다. 이 시기를 통해서 일본은 각 한(藩)에 뿌리내린 사농공상의 봉건적 계급질서에서, 이른바 '국민'으로 혹은 '일본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감명 깊게 떠오른 것은 그처럼 '역사를 일군' 중심인물인 료마가 조금도 그 과실을 따먹으려 하지 않았던 점이다. 즉 료마는 그 엄청난 역사를 이루고도 뒷일은 다른 동료들에게 맡겼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사이고 다카모리, 다카스기 신사쿠, 고토 쇼지로 등이 그들인데, 그들이 어느 날 료마에게 물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겠느냐고. 료마가 답한다. "글쎄 세계의 가이엔타이로나 나가 볼까??" 시바 료타로는 공을 이루고서도 자신이 그 공을 소유하려 하지 않았던 이 배포 큰 사나이의 삶을 통해 줄곧 묻고자 했다. 역사를 이루는 인간의 유형은 무엇일까? 진정한 사나이의 삶은 어때야 할까? 일본의 근대사를 알아야 21세기 패권의 향방을 안다. 물밀 듯이 밀려드는 서양의 세력 앞에 동양의 삼국은 어떻게 대응했나. 중국은? 일본은? 그리고 한국은? 중국은 철저히 유린당했지만 유구한 투쟁 끝에 ?이제는 잠에서 깨어난 사자의 포효소리?를 울리고 있다. 일본은 구로후네를 보고 법석을 떨었지만,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한 젊은 유신 지사들이 뜻을 모아 나라를 거듭나게 했다. 한국은 현재와 미래를 함께 살피는 기민한 대응이 늦어져 마침내 나라가 망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뒷날 6?25 전쟁까지 치르고 허리가 잘린 채 21세기를 맞았다. 지금 세 나라는 다시금 미래를 두고 각축하는 상태가 되었다. 혹자는 한국의 지금 상태가 지난 19세기 말의 환경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데, 어쩌면 그때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처지라는 판단도 가능하다.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는 그런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에 관한 적절한 나침반 노릇을 해줄 것이다. 특히 그가 이야기 전개 속에 담아놓는 ?여담?(餘談)이야말로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통찰력 있는 관점이 녹아 있다는 것이 정평이다. 어쩌면 일본인 시바 료타로와 함께 근대사를 항해해보는 것은 ?오늘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시의 적절하게 제기해줄 것이다. 시바 료타로는 ?사카모토 료마야말로 세계에 보편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평을 한 바 있다. 우리는 일본의 근대사를 알아야 21세기 세계 패권의 향방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