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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담家
2. 로빈슨 크루소의 종말 3. 산타 할머니 - 성탄절 이야기 4. 아망딘 또는 두 정원 - 入門 이야기 5. 꼬마 푸세의 가출 - 성탄절 이야기 6. 튀피크 7. 기쁨이 내게 머물게 하소서 - 성탄절 이야기 8. 붉은 난쟁이 9. 트리스탄 복스 10. 베로니크의 수의 11. 소녀의 죽음 12. 들닭 13. 은방울꽃 휴게소 14. 페티시스트 - 1인 단막극 후기 |
Michel Tourn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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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했다. 우선 마무즈 할멈이 지키고 있는 공중화장실로 갔다. 이번에는 남자 영역을 피하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대변기에 쪼그리고 앉아 소변을 보고 나왔다. 그때 소변기에서 한 남자가 막 볼일을 끝내는 참이었다. 그가 몸을 반쯤 돌렸다. 튀피크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그가 거무죽죽하고 물렁한 살덩이를 바지의 터진 부분으로 힘들게 집어넣는 중이었다. 어마어마했다. 저런 흉측하고 쓸데없는 고깃덩어리로 그는 무엇을 할까? 그가 마무즈 할멈의 접시 위에 동전 한 닢을 놓는 순간, 확고한 해답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버너 위에서는 여느 때처럼 냄비가 서서히 끓고 있었다. 마무즈 할멈이 나무 숟가락으로 냄비의 내용물을 휘휘 저었다. 순간적으로 튀피크는 냄비 안의 고깃조각들에서 조금 전의 남자가 바지 안으로 집어넣은 것과 같은 물렁물렁하고 거무스름한 물건을 알아보았다. 분명해, 틀림없어.
뒤이어 또 하나의 자명한 사시링 그의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그는 몇 달 전부터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조각상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우선 테세우스라는 이름과 그가 두른 치마에서 도미니크의 모습을 확인했다. 유사성을 부인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뒤로 벌렁 나자빠져 있는 미노타우로스의 실팍진 두 넓적다리 사이에서 물렁물렁하고 추한 살덩이를 뚜렷이 보았다. 공중화장실에서 본 남자의 물건과 똑같았다. 마지막으로 테세우스의 몸짓은 명확한 의미가 있었다. 테세우스가 칼로 겨냥하는 것은 바로 미노타우로스의 성기였다. 소변기 앞에서 몸을 돌리던 남자의 거무죽죽한 고깃덩어리와 마무즈 할멈의 냄비가 테세우스의 칼을 매개로 연상되었다. 그날 이후 튀피크는 침대를 적시지 않았다. 마리가 이런 변화를 확인하고는 흡족해했다. "외과 의사를 불러오겠다는 위협이 무서웠나보구나." 그녀는 말했다. "때를 잘 맞췄어. 정말 불러오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네." 튀피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바로 그날 마리와 튀피크는 다시 공원에 갔다. 마무즈가 튀피크를 보았다. 그는 마무즈에게로 다가가서 탁자 앞에 섰다. 그녀가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고 한 바로 그 순간에 튀피크는 호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냈다. 때때로 대검이라고 불리는 면도칼, 칼집에 자개가 박혀 있는 구식 면도칼이었다. 그는 칼날을 끄집어냈다. 다른 손으로 바지의 앞단추를 끌렀다. 조그만 아기 수도꼭지를 꺼내고는 거기에 면도기를 갖다댔다. 마무즈 할멈이 짐승처럼 괴성을 질렀다. 피가 솟았다. 튀피크는 오그라든 한점의 고기를 탁자 위로 마무즈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자 그의 눈에 공중화장실, 주위의 나무들, 데보르드 발모르 소공원 전체가 흔들리는 듯이 보이다가, 이윽고 도미니크의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는 의식을 잃고 푹 쓰러졌다. 접시와 동전들, 알콜버너, 냄비와 가금의 헤드렛고기가 함께 굴러떨어졌다. --- pp 99~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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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는 여호와를 닮았었다. 여호와가 자신의 모습을 본따 그를 창조했기 때문에. 그런데 여호와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다. 때문에 최초의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성의 젖가슴이 있었고, 배 끝에는 고추가 달려 있었다. 두 다리 사이에 작은 구멍이 있었다. 그것은 매우 편리하기조차 햇다. 걸을 때 남성의 꼬리를 여성의 작은 구멍에 집어넣었다. 마치 칼을 칼집에 꽂는 것과도 같았다. 당연히 아담이 아기를 만드는 데는 다름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만일 아담이 스스로 아이를 낳았더라면, 여호와는 자신의 자식 아담에게 매우 만족했을 것이다. --- pp 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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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는 자기 방에 혼자 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 아래에서 축 늘어진 황금빛 가죽 장화를 끄집어낸다. 신기가 어렵지 않다. 그만큼 그에게는 너무 큰 장화다! 그걸 신고 걷기는 매우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신고 다니기 위한 장화가 아니다. 꿈을 꾸기 위한 장화다.
그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떠난다. 아주 멀리 떠난다. 그는 거대한 마로니에가 된다. 우뚝 솟아난 꽃들이 작은 크림빛 샹들리에 같다. 움직임 없는 푸른 하늘에 높이 서 있다. 갑자기 바람이 지나간다. 피에르가 부드럽게 살랑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의 수많은 푸른 날개들이 공중에서 파닥인다. 그의 가지들이 축복하는 몸짓으로 흔들린다. 햇살이 부채처럼 활짝 퍼지더니, 청록색으로 무성한 그의 나뭇잎 그늘에 갇힌다. 그는 한없이 행복하다. 한 그루 커다란 나무는(...) -<꼬마 푸세의 가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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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라는 거대한 사유의 산을 오르는 데 지도가 되어줄 만한 한 권의 책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꼬마 푸세의 가출≫에는 철학적 사유로 신화를 재해석하여 소설작품을 창조해가는 투르니에 글쓰기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14편의 대표 단편이 실려 있다. '신화의 위대한 재창안자' '형이상학적 소설가'로 알려져 있는 투르니에의 장편소설이나 산문은 처음 접근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에 비해 이 책에 실린 14편의 단편은 좀더 쉽고 흥미롭기 때문에 그의 작품세계 입문서로서는 최상의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꼬마 푸세의 가출≫에서 투르니에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사물들의 감춰진 의미를 드러내고 본질을 파악하고 있다. 각 단편들의 배경이 되는 신화는 우리에게 널리 익숙한 것이고, 형식이 까다롭지 않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한 작품의 일차적인 의미가 분명히 다가와 투르니에 소설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꼬마 푸세의 가출>은 현실 속에 신화를 구현시키고 있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어린 소년 푸세는 모든 시설이 첨단으로 갖추어진 고층 아파트로 이사간다는 벌목꾼 아버지의 말을 듣고 가출을 결행한다. 트럭운전수를 속여 트럭을 얻어 탄 푸세는 신비한 숲으로 들어가 히피들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거기서 푸세는 로그르에게 숲과 지상낙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대마초를 피운다. 들이닥친 경찰관에 의해 푸세는 24층 고층 아파트로 되돌려져와 자기 방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로그르의 장화를 꺼내놓고 커다란 나무를 행복하게 상상한다. 푸세의 풍요로운 자연과 그 자연을 거세하는 도시의 아버지와의 폭력을 대비시켜 투르니에는 파괴적인 현대문명에서의 영원한 탈출구는 자연임을 상기시킨다. 산타크로스로 분장한 어머니가 갓난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산타 할머니>의 다정한 이미지, 프로이트의 '초자아, 자아, 이드'의 정신분석학을 문학으로 흡수시켜 인간의 정신을 다룬 <들닭> 기욤의 해학적인 이미지, 신체적인 결함과 초인의 모습을 띠는 <붉은 난쟁이> 뤼시앵의 모순적인 이미지, <아망딘 또는 두 정원>에서 고양이를 찾기 위해 담을 넘어 잡초 무성한 정원을 돌아다니다가 초경을 경험하고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변한 모습을 살피는 아망딘의 순수한 이미지, <아담가>에서 아벨의 아들들과 함께 유목생활을 하다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손자 카인이 에녹에 세워놓은 신전으로 찾아든 여호와의 이미지, 소공원의 공중 화장실에서 자신의 고추를 면도칼로 잘라버리는 소년 <튀피크>의 섬뜩한 이미지, <기쁨이 내게 머물게 하소서>에서 비도슈가 정신과 육신, 현실과 예술 사이에서 겪는 절망적인 이미지, 마지막 대목에서 줄에 걸린 여자 속옷들을 호주머니에 챙겨넣으려고 기를 쓰는 <페티시스트>의 카프카적 이미지 등은 상징적 의미가 풍부하고 그런 만큼 해석의 여지가 넓다. 투르니에가 각 작품을 통해 주장하는 진실은 환상을 빌어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데 있다. 섬뜩할 정도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극단까지 묘사하는 부분들은 사회, 문화적으로 우리가 언급하기를 회피하는 터부들이 대부분이다. 독자들이 곤혹스러워지는 부분들, 답이 궁해지고 어려워지는 순간이 이 터부들과 마주치는 순간들이다. 이때 독자는 자신만의 솔직한 물음을 품고 각 이미지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독자의 기다림에 작품이 느릿느릿 답하게 되고, 다수의 새로운 의미들이 합류해 들어오며, 가능한 해석들이 풍성하게 돋아나기 시작한다. 일차원적이고 단선적인 해석, 구태의연한 합리적 해석에 기대고 있었던 의식이 사라지고 난 공백으로 의미들이 충만해지면서 작품의 세계가 열리고, 이때 비로소 작품이 경험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투르니에의 신화적 소설이 함축하고 있는 비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