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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캡
멜빵가방 물방울 그림자 목련 재떨이 |
Kanako Nishi,にし かなこ,西 加奈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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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짱…….”
화장실에 갔던 엄마가 쭈뼛쭈뼛 창피해하는 얼굴로 돌아왔다. 또 무슨 일이 있나. 덜컥 짜증이 났다. “화장실의 물이 안 내려가.” 엄마는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네?!” “괜찮아. 뚜껑은 꼭 덮어두었으니까…….” 나는 엄마를 그 자리에 두고 쏜살같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 p.25 “나가자.” 구미 짱이 커다란 목소리로 말하고 내 팔을 잡고 일어났다. 유라시아와 프리다가 항의하듯 소리쳤지만, 구미 짱은 내 팔을 움켜쥔 채 플로어를 성큼성큼 가로질러 똑바로 출구로 향했다. 나갈 때 돌아보니 소파에서 고래고래 외치고 있는 두 사람과 플로어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분홍색 멜빵가방이 보였다. --- p.73 “물이야, 물.” 두 마리는 폴짝 개수대로 뛰어올라갔습니다. 그곳에는 조그맣고 반짝반짝 빛나고 꿈결처럼 차가운 그 물방울이 또옥또옥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너희를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말하는 듯 둥실둥실 몸을 흔들며 예의 바르게 개수대로 똑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두 마리는 잠시 동안 황홀한 듯 물방울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차례로 수도꼭지에 혀를 갖다 댔습니다. 아아, 이 수도꼭지의 싸늘한 기운, 입 안으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물방울의 덧없음. --- pp.101~102 야스코의 큰아들은 5년 전에 바다에서 죽었다. 미성년자라도 술을 마시는 건 이 섬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술 마실 장소를 정했는데, 내가 늘 다녀오는 그 바닷가라고 했다. 야스코의 큰아들은 술을 마시고 아이들의 부추김에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다. “미사키 짱은 죽은 우리 아이의 여자 친구였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을 누군가 쥐어뜯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찌릿찌릿 소리를 내고 심장이 그대로 오그라들 것 같았다. --- pp.140~141 “너 말이야.” 처음으로 내가 도전적인 말투를 내보이자 마리는 몸을 쭉, 하고 폈다. 쌓아두었던 걸 단숨에 토해내듯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선정적인 데에만 반응하니까 알려주지. 저건 말이지. 섹스라고 하는 거야. 섹스 알아? 양이 했던 것도 그래. 샘 씨는 그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애초에 너희 아빠와 엄마도 그걸 해서 네가 생긴 거란 말이지!” 봇물 터지듯 말이 쏟아졌다. 큰소리치는 나를 마리는 멍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그 바보 같은 얼굴을 보자 점점 더 화가 나서 나는 더더욱 목청을 높였다. --- p.177 “하스다 씨?” 이타자키 씨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보고 있습니다. 그녀의 손에 그 재떨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내가 봉인하려고 했던, 가슴을 쿡쿡 찌르는 아픈 과거가 그녀의 손에 있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그녀의 손에 있으면 뭐든 달콤한 양갱처럼 그걸 원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듯 생각됩니다. 분명 그것은 여인의 응가를 먹어버렸다는 그녀의 지나치게 빗나간 애정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p.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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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작품을 한데 모은 단편집
『물방울』은 ‘오다 사쿠노스케 상’을 수상했던 작가 ‘니시 가나코’가 쓴 단편집이다. ‘샤워 캡’을 비롯하여 ‘멜빵가방’ ‘물방울’ ‘그림자’ ‘목련’ ‘재떨이’ 등의 단편을 한데 모았다. 오다 사쿠노스케 상은 오사카문학진흥회가 지난 1984년 제정한 문학상이다. 『샤워 캡』- 30세 된 딸이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엄마 바라보기 얘기는 딸이 바라보는 엄마에 관한 얘기이다. 물론 일인칭 시점에서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도쿄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엄마가 ‘논 짱’이라고 부르는 30세가 된 주인공. 이제 두 살 아래 남자 친구와 방을 구한 뒤 동거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과정에 있다. 이때 엄마가 이사를 돕기 위해 왔는데 천진난만하기만한 엄마. 샤워 캡을 뒤집어쓰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 어린아이 같은 것을 느낀다.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랑 가는 모습을 본 뒤 방황을 하면서도 엄마에게 구원을 요청하지 못하는 논 짱. 결국 엄마는 딸이 이사를 하기 전인데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딸의 행복이나 어려움을 뒤로 하고 무사히 도쿄로 돌아가는 것만을 염려한 채……. 『멜빵가방』- 초등학교 입학 때 알게 된 분홍색 멜빵가방을 멘 친구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친구가 된 두 주인공인 미치코와 구미 짱. 전철을 여러 번 갈아타야 했으므로 둘이는 단짝이 된다. 둘은 서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멜빵가방 작전을 짠다. 그 작전이란 구미짱의 가방을 미치코가 잡고 가는 것이다. 집에까지 잘 가기 위해. 구미짱은 성격이 활달해서 미치코를 달고 다녔다. 둘은 성인이 되어 우연히 만나 미국 LA로 단기여행을 떠난다. 그곳 해변에서 현지인 남자들에 이끌려 파티장에 간다. 그곳에서 엉덩이를 더듬으며 작업에 돌입하는 미국인 남성들을 뿌리치고 둘은 잽싸게 빠져 나온다.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 해보았던 멜빵가방 작전이었던 것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물방울』- 고양이가 느끼는 개수대 위의 물방울 고양이가 바라보는 인간 군상들. 두 마리 고양이는 후쿠 씨와 사치 씨다. 둘은 주인인 부부의 말은 알아듣지를 못하면서도 자신들만이 아는 말로 서로 티격태격 싸움을 하기가 일쑤다. 이는 마치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듯하다. 두 암코양이는 개수물에서 물을 핥아 먹으면서 물방울을 알게 된다. 하찮은 것을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고양이들이지만, 이들이 바로 인간을 의인화한 것은 아닐는지도 모른다. 결국 고양이의 주인인 시게루와 에미코의 성공과 이별에 따라 고양이들도 서로 떨어져 살아가게 되는데……. 물방울을 이별이라고 생각하는 고양이들. 『그림자』- 삶의 길목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자신의 것일 뿐 주인공이자 화자인 다바타. 그녀는 실연한 뒤 사내 결혼까지 약손한 한 남자와 만나면서 즐긴다. 그러다 결국 들통이 난 뒤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런 뒤 철저히 혼자 있기를 바라면서 섬을 찾는다. 그곳 바닷가에서 미사키 짱이라는 여자아이를 만난다. 섬사람들은 미사키를 미쳤다고 하지만, 알고 보니 실연의 아픔 때문에 실성하게 된 여자아이다. 겨우 15세에 사랑하던 남자가 물에 빠져 죽게 되자 그렇게 된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주인공은 처음엔 미사키를 미치광이로 여겼으나 결국 그녀의 아픔까지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삶에 드리운 모든 그림자는 오직 자신의 그림자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목련』- 할머니 나무인 백목련은 뒷골목에서도 핀다 목련은 봄에 핀다. 얘기의 주인공은 30대가 되어 이혼남에다 잘 생긴 애인을 만났다. 그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에게는 전처와의 사이에 태어난 일곱 살 짜리 여자아이 ‘마리’가 있다. 주인공은 애인에게 한눈에 반한데다 결혼을 위해 자신을 한없이 낮추면서까지 비위를 맞춘다. 먹을거리에서부터 모든 것을……. 전처가 스튜어디스여서 딸아이를 잘 챙기지를 못한다. 어느 일요일, 주인공이 싫어하는 마리와 동물원엘 가게 된다. 주인공은 애인의 딸도 동물원도 몹시 싫어하지만, 애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마리와 함께 떠난다. 그곳에서 마리는 인간의 원초적인 관심사인 ‘섹스’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 동물들의 사랑 행위를 구경하면서 말이다. 주인공은 애인의 마음을 맞추기 위해 마리와 시간을 때울 뿐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목련을 발견하고 마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재떨이』- 삶의 진정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50년을 함께 살다가 죽은 남편의 재떨이가 자기 집에 세들어 온 소설가인 젊은 여자에 의해 아내에게 전달된다. 주인공 여자는 자식도 없는데다 너무 넓은 집을 혼자 살기에는 벅차 세를 놓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여자는 20?의 소설가. 그런데 뜬금없이 집주인인 할머니를 찾아와 자신의 푸념들까지도 늘어놓게 된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주인공 할머니는 이 소설가를 기다리는데, 어느 날 죽은 남편의 서재에서 발견했다면서 재떨이를 건넨다. 할머니의 앞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남편이 서재에서 골초처럼 담배를 피웠다는 것을 말한다. 재떨이가 남편의 속마음을 나타낸 것은 아닐는지……. |